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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우리 국민이 국내에서 범죄를 저질러 국내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데 중간에 다른 나라에서 자기네가 처벌하겠다고 그를 보내달라고 하면, 당연히 이를 거절하는 법원의 선택이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냉담

범죄인 인도를 거부하는 법원 결정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심지어 결정한 강영수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를 대법관 후보에 올리지 말아 달라는 청원에 50만명 이상이 동참하였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는 모두 알고 있다. 심지어 인도거부결정을 내린 법관까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결정문을 읽으면서 그는 “범죄인을 미국으로 보내 엄중한 형사처벌을 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고 유사한 범죄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법원도 이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해당 범죄에 대한 우리 법제, 재판과 처벌 과정이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비판을 이미 법원도 듣고 있다는 뜻이다.

더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사법 판단의 결과로 추구할 수 있는 정의의 가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 불신이 거의 임계점에 다다른 결과로 볼 수 있다. 사법 판단 절차의 주체인 법조 구성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강영수 판사에 대한 국민청원은 5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했다. (출처: 청와대)_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0416
강영수 판사에 대한 국민청원은 5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했다. (출처: 청와대)

인도거부결정 되짚어보기 

이 사건 판사들은 꽤 어려운 길을 택하였다. 만일 반대 결정을 내렸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드디어 미국법의 힘을 빌려 흉악한 범죄에 마땅한 처벌의 길을 열었다며 여론의 칭찬과 존경이 잇따랐을 것이다. 송환을 요구한 미국에서는 감사의 표시가 있었을 것이고, 다른 나라 언론으로부터 “달걀 절도범” 수준으로 아동 성착취물을 취급하는 나라라는 비아냥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모를 일이지만, 판사 개인은 대법관 임명을 받았을 수도 있다.

이 모든 행복한(?) 조건을 외면하고 왜 거부 결정을 내렸을지는 이제 좀 더 냉정히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판사들이 사회 기득권의 시각에 물들어 피해자의 고통을 잘 모른다는 주장이 주된 비판의 이유로 거론된다. 사법농단 사태를 필두로 하여 실제 불공정의 대명사로 줄지어 이어졌던 떠들썩한 판결에는 실제 이런 흔적이 잘 보인다.

특히 ‘패륜’과 ‘흉악’, ‘극악’, ‘참사’ 등의 용어로 수식되는 사건의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와 더불어 자포자기와 쓴웃음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경험에서 추측해 볼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이유가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판사 개인들로서는 좀 억울할 수 있겠다. 검찰 수사와 입증책임, 구형도 큰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소위 전관예우와 같은 부조리한 관행을 탓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국민들이 보기엔 모두 다 잘못이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지 않는다 하여 비판이 어리석다 말하는 것은 이러한 괴리를 함께 만든 이들의 오만일 뿐이다.

국민 대다수 정서와 동떨어진 법원의 송환불허'결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민 대다수 정서와 동떨어진 법원의 송환불허’결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관점에서 인도거부결정을 바라보는 것은 부당한 측면이 있다. 우리와 미국의 범죄인 인도조약과 범죄인 인도법에 따르면, 인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범죄지 관할국에서 재판할 필요성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에서 대부분의 인도 요청에 응하였던 이유는,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범죄를 행한 사실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태원 살인사건 범인을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인도받았던 것 또한 같은 이유이다.

하지만 다크웹 ‘웰컴 투 비디오’ 사건과 같이 네트워크를 통해 실행되어 행위지가 명확하게 구분될 수 없는 범죄인 경우에는, 이 사건 결정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범죄지 관할권을 결정적 요인으로 두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 옳다.

또한, 미국에서 범죄인의 범죄로 특정한 6개의 범죄(아동 성착취물 광고 음모, 아동 성착취물 광고, 미합중국으로 수입하기 위한 미성년자의 노골적인 성표현물 제작, 아동 성착취물 유통 음모, 아동 성착취물 유통, 자금세탁) 중 자금세탁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하여 우리 법원의 재판이 모두 완결되었고 형 집행도 끝났다.

결정문에서 언급하였듯, 만약 검찰이 1심 재판[footnote]2018고단1640호[/footnote] 당시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함께 기소하였다면 아예 미국의 인도요청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 범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규정된 우리나라 법의 재판을 받지 말고 10년 이상의 형벌이 예상되는 미국의 처벌을 받으라는 것이 인도 결정의 핵심 내용이다.

그런데 그렇게 결정하는 것이 옳은가?

안전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으로서 이런 흉악범이 미국에 가서라도 중형을 받을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같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범죄인 인도조약과 범죄인 인도법은 그러라고 만들어진 규범이 아니다. “범죄의 예방과 억제에 효율적인 협력 제공 및 범죄인 인도 분야에서의 양국간 관계 증진” 그리고 “범죄 진압 과정에서의 국제적인 협력 증진”, 이들이 명시된 유일의 목표이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범죄의 범인을 처벌할 대한민국 법이 있고, 처벌할 국가기관이 있음에도, 오직 중형을 내리기 위해 범죄인을 다른 나라로 보낸다는 것은 이 규범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혼동하지 말자. 대한민국이 처벌을 ‘잘’ 하는가의 문제는 이 규범에서 다루는 내용이 아니다.

이 사건 인도거부결정을 내린 판사들은 엄한 단죄를 할 수 없는 현실과 쏟아질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규범 자체의 목표에 충실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사법권 행사를 포기하였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불이익, 즉 범죄인을 인도함으로써 해당 사이트 국내 회원들에 대한 수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포기하지 않았다. 결정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소비자이자 잠재적인 제작 또는 배포·판매자가 될 수 있는 우리사회의 D사이트 회원들에 대한 발본색원적인 수사가 이루어져야만 이와 같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관련 범죄가 근절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그 예방과 억제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 노력에 부응하는 것으로서, 관련자에 대한 수사와 합당한 처벌을 통해 이 사건 조약의 취지를 실효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범죄자 '손정우를 위한' 정의는 실현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피해자를 위한 정의는 실현되었는가? (출처: OhLizz, CC BY)
범죄자 ‘손정우를 위한’ 정의는 실현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피해자를 위한 정의는 실현되었는가? (출처: OhLizz, CC BY)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인가?

판결문 내용을 추적하면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3,055개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사이트에 게시하여 4,073명의 회원에게 7,293회에 걸쳐 415.53026469 비트코인(한화로 약 406,674,621원 상당)을 지급받고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판매·배포·제공·공연히 전시하는 등으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2항(법정형 10년 이하의 징역) 위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4조 제1항 제2호(법정형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 위반의 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1심에서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하였고 법원은 징역 2년 및 집행유예 3년의 형과 암호화폐 몰수, 약 3억 5천만원의 추징을 선고하였다는 점이다. 2심도 징역 1년 6월의 형과 몰수 및 추징에 그쳤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도대체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하였던 이유는 무엇인가? 거기에 반응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한 법원은 과연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까? 이들은 자신의 판단을 이해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으로 생각했을까? 아니, 국민의 이해를 신경쓰기나 하였을까?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다. 이들 구형과 판결이 달랐다면 우리는 이렇게 분노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법도 마찬가지다. 위 제11조 제2항 법정형은 지난 6월에서야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바뀌었다. 누구도 아닌 어린이가 성착취의 피해자였는데 말이다.

우리나라 사법당국은 과연 아동들을 제대로 지킬 의지와 능력이 있는 걸까?
우리나라 사법당국은 과연 아동들을 제대로 지킬 의지와 능력이 있는 걸까?

‘괴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터무니없이 정의와 멀어진 법, 검찰권, 사법권, 그리고 묵인된 전관예우. 각자 익숙한 경로에 의존하여 온 이들의 행태에 국민은 좌절하고 분개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납득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납득이 왜 필요한지를 강제로라도 알려주어야 한다.

인도거부결정을 한 판사들은 결정문에서 범죄인을 인도하지 않는 대신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관련 범죄의 예방과 억제”를 강화할 기회로 삼자고 제안하였다. 법과 권력에 대해 처절한 반성과 개혁을 통해 흉악범에게 우리 스스로 납득할 만한 형벌을 내릴 수 있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그 시작도 지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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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필자는 장철준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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