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희 강남구청장(이하 ‘신연희’)은 최근 3개월, ‘서울희망포럼’이란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140여 차례의 글을 게시했다. 게시글 대부분은 야당과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글이다.
“놈현·문죄인의 엄청난 비자금!
놈현은 국민들에게 솔직히 밝히고 용서를 구했어야지, 종북·좌빨세상을 만들어 좌빨들의 자자손손이 이 돈을 잘먹고 잘살게하자는 생각에 재물을 지킬려고 자살한 인간!
아래 놈현·문죄인의 엄청난 비자금·돈세탁 폭로영상 꼭 보시고 널리 전파시킵시다!” (재인용 출처: 한겨레)
이런 글을 쓰고, 공유하는 행위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저 도저한 편견과 증오의 언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한편에서는 연민이 생길 지경이다. 선출직 민선 구청장이라는 ‘껍질’을 떠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우리가 흔히 ‘인격’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을 저 증오의 언어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우리는 이런 행위, 이런 언어를 흔히 ‘흑색선전’ 혹은 ‘허위사실’이라고 한다.
아직, 미완의 혁명
촛불 혁명으로 세상이 뒤집어 지고, 박근혜가 구속됐다. 그 ‘명예혁명’는 이제 곧 대선이라는 축제로 이어질 예정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구악, 우리를 잠식하는 적폐를 청산해야 이 혁명은 비로소 완성된다. 그것이 우리 의무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물론이지만, 앞서 예시한 신연희의 행태는 우리가 청산해야 하는 구태와 적폐를 어떤 표지보다 뚜렷하게 상징한다.
그렇다. 구악은 사라져야 한다.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기 위해선 신연희와 같은 ‘수구 꼴통’이 더는 존재해선 안 된다. 나는 진심으로 증오하고, 또 경멸한다. 그리고 어제 신연희의 행위는 드디어 사법적 판단 대상으로 넘어갔다. 경찰은 지난 30일 “‘가짜뉴스 유포’ 신연희 강남구청장의 집무실과 휴대폰을 압수수색”(JTBC 뉴스)했다. 속 시원한 일이다. 아, 사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정말 사라져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인가 아니면 그 행위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런 사람과 그런 행위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구조인가. 그렇다면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의식의 주형, 제도의 얼개, 권력의 코드, 담론의 설계도는 어떻게 건설되고, 쓰여지는가.
진짜 혁명의 완성을 원한다면,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 건 말과 글이다. 짐승의 언어를 증오하는 것을 넘어서, 편견의 언어를 혐오하는 것을 넘어서 그 증오와 편견을 구조화하는 말들의 풍경, 글들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다. 사이다스러운 신연희에 대한 압수수색을 그저 즐거워만 하지 않고, 그 너머에 담긴 언어와 권력의 관계를 살피는 일, 그런 게 필요하다.
혁명은 축제의 시가 아니라 일상의 산문을 통해 완성된다.
쉽게 쓰여진 말, ‘가짜 뉴스’
특히 언론의 언어를 민감하게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참 지루하고, 좀스러운 일이다. 한겨레는 31일 자 사설을 통해 “가짜뉴스 퍼뜨린 신연희 구청장 엄벌해야”한다고 말한다. JTBC뉴스는 “신연희 구청장, ‘태블릿 PC 조작’ 가짜뉴스도 유포”했다고 보도한다.
공무원으로서의 중립의무 위반이나 100명이 넘는 채팅방에서 공연히 특정 후보(문재인)을 비방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행위는 비도덕적이라는 평가를 넘어 법률적인 처벌이 넉넉하게 가능한 행위로 보인다. 하지만 한겨레와 JTBC가 그토록 쉽게 쓰는 ‘가짜 뉴스’라는 말, 과연 이렇게 쉽게 쓰여도 좋은 말일까.
진정한 주권재민,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원한다면, 가짜 뉴스라는 말에 대해 우리는 좀 더 민감해져야 한다. 여기서 간단한 삼단논법 하나.
- 법률 규정에 의하지 않고는 국민을 처벌할 수 없다.
- 가짜 뉴스는 법률에 규정된 개념이 아니다.
- 가짜 뉴스로 국민을 처벌할 수 없다.
그렇지만, JTBC 기사와 한겨레 사설을 보면, 마치 법에도 없는 ‘가짜 뉴스’라는 말로 손쉽게 누구든 ‘때려잡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언론뿐만 아니다. 왜 아니겠는가. 바른정당에서도 가짜 뉴스에 편승해 공직선거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시작된 가짜 뉴스 열풍과 그 규제를 놓고 대선을 코앞에 둔 우리나라도 시끄러운 상황이다. 지난 3월 3일 바른정당 장제원 의원은 “가짜 뉴스”에 대한 법적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막상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짜 뉴스 대응을 빙자해 선거관리위원회가 통신의 내용을 포함한 디지털 증거를 아무런 제한 없이 수거할 수 있게 하고, 심지어 가짜 뉴스를 오히려 확산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황당한 법안으로 보인다.”
– 오픈넷 , “가짜 뉴스 유통을 조장하는 가짜 뉴스 대응법안에 반대한다” 중에서
가짜 뉴스는 사라져야 한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당위다. 하지만 가짜 뉴스를 사라지게 하는 힘은 국가의 공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공직선거법의 무시무시한 규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질에서 언어의 사슬을 느끼고, 그 사슬에서 자신을 해방하려는 시민 한 명 한 명의 예민한 지적 감각과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나온다.
내 안의 괴물이 이렇게 자랐어
걸작 만화 [몬스터]에는 괴물에 관한 액자 동화가 나온다.
“나를 봐.
나를 봐.
내 안의 괴물이 이렇게 크게 자랐어.”
광기 어린 철인이 남긴 잠언처럼,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footnote]니체, [선악을 넘어서] (1886)[/footnote]
구악과 적폐 청산의 명분으로 ‘가짜 뉴스’라는 말을 흔한 유행어처럼 쓰며 손쉬운 처벌을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오히려 가짜 뉴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손쉬운 처벌의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
가령, 신연희로 상징되는 무지와 편견, 증오의 언어를 ‘가짜 뉴스’라는 무기로 무찌르는 일은 아주 쉬운 일에 속한다. 정말 어려운 일은 그 증오와 편견의 구조 속에서 ‘신연희’라는 이름을 지우고, 거기에 ‘정의’라는 손쉬운 외투로 포장된 나 자신의 욕망과 폭력성을 놓고, 바라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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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나는 신연희의 행위를 ‘가짜 뉴스 유포’라고 손쉽게 단정하고, 그것만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착각’을 독자에게 유포하는 일을 언론이 해서는 안 된다고 앞서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신연희 구청장의 행위가 처벌할 수 없는 행위라는 것은 전혀 아니다.
독자의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고자 굳이 이야기하면, 실정법에 대한 비판(특히 형법상 명예훼손)은 별론으로, 실정법을 존중해야 한다면, 형법이나 공직선거법, 정보통신망법의 관련 규정에 의해 신연희의 행위는 충분히 처벌 가능한 행위로 엄격하게 수사, 검토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