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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스민의 미친 법이 발의됐습니다.”

얼마 전 위와 같은 제목의 글이 페이스북을 타고 급속히 공유됐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직접 인용임을 고려해 맞춤법은 따로 바로잡지 않음.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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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뉴스속보입니다.

1. 한국거주 불법체류자가족에게 교육/육아/의료복지를 제공하는 법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습니다. 곧 통과되어 법개정이 완료되어 내년에 시행하리라 예상합니다. 의료급여 제공, 의무교육 제공, 불법체류자이지만 미성년자라면 합법 체류권 제공 등의 혜택이에요. 불법체류아동이 한국 초-중-고등학교에 입학하면 고등학교졸업때까지 불체자가족 모두가 국외추방 면제구요.

2. 다들 아시겠지만 저들 불법체류자는 한국에서 그 어떤 의무도 하지 않습니다. 국정부가 요구하는 합법체류자격을 무시하고 한국에 불법체류하는 범죄자일 뿐이고, 국외추방이 마땅합니다. (중략)

4. 12월 5일에 입법발의 되는 저 법이 통과되면 당장 내년부터 아래처럼 됩니다. 불법체류자 가족 : 납세의 의무? 그게 뭐임? 불체자는 주민세 소득세 건보료를 안 내지만, 한국인과 동등한 복지를 받음. 게다가 18년간 세금 한 푼 안 내어도 국외추방 없음. 불체자가족의 복지비용은 한국人의 세금으로 충당함^^ 병역의무? 만 18세 이상이 되면 영주권이 나오므로 군대도 면제^^  (중략)

다른 사이트에 올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ㅜㅜ 다른 사이트에 널리 알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릴게요(저는 다른 사이트 ID가 없어서요ㅜㅜ) 저 법이 통과되면 대한민국이 망하는거 직행이에요ㅜㅜ (중략) “글 퍼트리는거 30초 걸리는데 귀찮아서 안 할래”라고 했다가가 저 법 통과되면………. 당장 내년부터 여러분이 낼 세금이 늘어납니다. 내야할 세금은 늘어나지만, 받을 복지는 그대로입니다. 말씀드렸듯이 방글라데시 1.9억 파키스탄 1.2억 미얀마 5천만 필리핀 1억 등지에서 한국에 불법체류하러 엄청 몰려 올거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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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글, 다시 불붙은 ‘이민자에 대한 적개심’ 

조금만 신경을 써도 알겠지만, 속보가 나왔다는 “12월 1일” 아직 오지도 않은 날짜, 아니, 이미 지난 날짜다. 사실은 이 글은 2014년의 12월에 작성된 글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당시 큰 논란이 됐고, JTBC 뉴스룸의 팩트체크 코너에서는 이 사안에 관해 이미 검증을 진행했다.

YouTube 동영상

JTBC의 팩트체크 결과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이 법안은 이자스민 의원이 발의했다 (X)
  2. 저소득층에게 제공되는 의료혜택을 불법체류자의 자녀에게도 주자 (O)
  3. 불법체류자의 자녀에게 의무교육(중학교까지)의 혜택을 주자 (O)
  4. 불법체류자인 자녀의 부모는 추방되지 않는다 (X)

게다가 글 게시자가 글 머리에 링크해놓은 기사에 들어가 보면 버젓이 “정청래 의원 등 국회의원 10명의 의원입법으로 발의”라고 적혀있다. 따라서 글의 최초 작성자는 아마 이 사실을 알고도 이자스민과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이 글을 작성했던 것으로 의심된다.

충격적인 점은 이 글이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킨 강한 적개심과 이에 따른 적극적인 공유 활동이다. 심지어 이자스민 루머 글에 오류가 많음을 알려주는 JTBC 팩트체크 동영상에도 이민자들을 혐오하는 많은 댓글이 달려있다. (일부 비속어는 X로 처리, 직접 인용임을 고려해 따로 맞춤법을 바로잡지는 않음. – 편집자)

“세금도 지불안하는 불체자외국인 쳐먹여 살릴려고 자국민 세금올리고 뜯어내나??? 대한민국 국민은 굶던가 죽던가 나몰라라 하면서 개 X같네~ 진짜 이나라는 총 몽둥이가 필요한 나라다”

“이거 만든XX의 국적이 궁금해진다 우리나라가 아닐것 같음 왜 우리나라가 딴나라 이민자를 떠받들어야 하지?인도주의적은 적절한 선까지 여야 돼는데??”

“이잣스민 개간X이 한국을 망쳐먹고 노동자 늘려서 대기업살기좋은 환경즉 서민 ,한국 국민들 삶을 아작내는짓 얼굴마담하고있다!!!?”

그리고 2년 뒤, 이 글은 다시 날짜도, 진위도 확인되지 않은 채 일파만파 퍼졌다. 이는 나에게 ‘이민자’라는 주제가 갖는 강력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영국민이 브렉시트에 표를 몰아주고, 미국민이 트럼프에 표를 몰아주게 했던 예상보다 컸던 바로 그 힘, ‘이민자에 대한 적개심’ 말이다.

2년 전 이미 잘못된 사실로 확인된 정보를 다시 유포하고, 여기에 사람들은 호응한다.
2년 전 이미 잘못된 사실로 확인된 정보를 다시 유포하고, 여기에 사람들은 호응한다. (출처: 해당 페북 게시물의 공유 화면 갈무리)

눈먼 증오, 눈먼 공유

이민자에 대한 적개심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무분별한 공유활동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글은 무려 2년 전 글이다. 게다가 글 시작부터가 “12월 1일 속보입니다.”다. 2016년 12월 1일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기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던 공유자들은 아마도 글을 그저 훑어봤거나, 아니면 아예 읽지 않았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냥 제목만 보고 ‘이자스민이 또 미친 법 냈다네! 내 이럴 줄 알았지! 아우 열 받아!’라며 분노를 담아 공유한 것이다.

어떻게 읽지도 않은 글을 공유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글을 보고 새로운 생각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평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글을 수집하는 것 같다. 본인들은 팩트를 확인하고, 자신이 논리적인 견해를 갖추게 되었다고 믿겠지만, 사실 자신의 견해가 먼저 있었고 이에 호응하는 팩트(?)만을 수집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일베의 논리들이다. 그들의 주장을 보면 대부분 그 배경에는 극우 집단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데, 그들 자신이 자신을 참조해가며 계속 극우의 주장을 발전시킨다. 아마 그들이라고 진보의 글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편향적으로 취할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들은 글을 보고 자기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강조하기 위해 글을 수집한다.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 증거는 모조리 폄하, 제거하고,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증거와 근거만을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이 소셜미디어에서는 더욱 구조적으로 강화된다. 이런 확증편향 현상은 필연적으로 '눈먼 증오'를 강화한다.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 증거는 모조리 폄하, 제거하고,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증거와 근거만을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이 소셜미디어에서는 더욱 구조적으로 강화된다. 이런 확증편향 현상은 필연적으로 ‘눈먼 증오’를 강화한다.

이것이 일베만의 이야기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페이스북에서 공유되는 기사들을 보고 보이는 반응을 한번 생각해보자. 기사의 제목과 썸네일만으로도 내 감정을 표현하기엔 충분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읽어보지도 않고 그 기사를 공유한 적이 많지 않았던가?

나는 며칠 전 2년 전 이자스민 관련 루머가 다시 공유되는 게 황당하다는 취지로 글을 썼다. 루머 글의 링크와 함께 말이다. 그러자 예상보다 훨씬 많은 댓글이 달리고 공유가 일어났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댓글과 공유 중 절반 정도가 필자의 글을 읽지도 않은 채 그저 “이자스민의 미친 법이 발의됐습니다”란 썸네일만 보고 욕을 다는 댓글과 공유였다는 것이다.

공유 링크는 일파만파로 퍼졌고, 나는 글의 썸네일을 지움과 동시에 링크만 공유가 될 때마다 찾아가서 전체 글의 취지를 함께 공유해달라는 댓글을 남겨야 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아직도 이 이자스민 루머 링크는 계속 퍼지고 있고, 나는 계속 댓글로 A/S하고 있다.

필자(엄태웅)의 페북 게시물에 남긴 댓글들. 이자스민 소동을 비판하는 취지와는 반대로 비판대상인 공유된 게시물과 썸네일만을 보고 이자스민을 비난하고 있다.
필자의 페북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 이자스민 루머를 비판하는 필자의 취지와는 반대로 비판 대상인 링크 인용된 게시물과 그 썸네일만을 보고 이자스민을 비난한다.

글을 읽은 분 중에서도 글의 진위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그저 나의 마음과 일치한다는 이유로 더 정확한 사실확인 없이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아마 이자스민 루머 글을 분노와 함께 공유하신 분 중 절반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원래 자기 뜻에 부합하는 글일수록 더욱 그럴싸해 보이고, 더욱 사실확인에 게을러지는 법이다. 그러니 통렬한 이른바 ‘사이다’ 글일수록, 또는 엄청난 음모를 품은 글일수록 더욱 주의해서 보도록 하자.

어떤 분들은 ‘세상에 정보가 넘쳐나는데, 그걸 어떻게 일일이 팩트체크하며 공유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그럴 여유가 없다. 이런 분들은 다음의 세 가지만 기억하시면 된다.

  1. 내가 팩트체크할 시간이 없다면, 충분히 팩트체크할 시간이 있는 믿을만한 언론사의 글들만 공유할 것.
  2.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글들(예: 페이스북 글, 카페 글, 자극적인 미끼 제목 기사)은 퍼 나르지 않을 것.
  3. 그래도 퍼 나르고 싶다면 최소한 의심 가는 문장 한둘이라고 검색해보고 공유할 것.
페이스북에서는 페이스북의 법을 따르라. 이건 잔인한 현실이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는 사용자에게 많은 편익을 주지만, 확인되지 않은 루머에 편승해 이를 확산하며, 확증편향 현상을 구조화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사실 기성 언론사의 글들만 하더라도 각 언론사의 당파성에 따라 사실관계 판단이 대단히 자의적인 게 현실이다. 따라서 그런 기사들 속에서도 진위 판단이 힘들진 데, 커뮤니티 글이나 페이스북 글을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없이 공유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그러니 공유할 때 위의 세 가지 원칙은 꼭 확인해보자.

이미 우리는 얼마 전 “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과 법적 보호를 위해 남깁니다. 가치가 있을 겁니다. 오늘이 마감날입니다.”로 시작하는 행운의 편지에 휘청하지 않았던가. 아니, 갑자기 뜬금없이 오늘이 마감날이라니. 이런 황당함에도 그토록 수많은 공유가 사실확인도 없이 일어나다니.

이주 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에 대해서

사실 이 법안 내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과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이주 아동의 기본권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보장해 줄 수 있는지는 그 적정선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그저 “내 세금으로 왜 불법체류자를 먹여 살려야 하느냐”, “의무는 하나도 안 하면서 권리만 챙겨가려는 나쁜 놈들 아니냐”,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왜 불법체류자를 도와야 하느냐.”와 같은 즉각적인 분노처럼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이 문제와 관련해 이자스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이 있다. 이주 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이다. ‘역시 이자스민이 이런 짓 했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약 200만 한국 체류 외국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이자스민 의원이 국회에 입성한 것이니, 그녀가 이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 체류자격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은 수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사실상 국가는 이들을 방치하고 있다. (참고 기사) http://news.mt.co.kr/mtview.php?no=2016111517218227983
이주 아동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 체류자격 없는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은 수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인간으로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인권도 누리지 못한다. 정부는 이들을 방치하고 있다. (참고 기사, 머니투데이, ‘굳게 닫힌 대학의 문, 미등록 이주청소년 방치가 국가 이익?’)

이 법은 이자스민 의원은 여야 국회의원 22명과 함께 발의했지만, 곧 법사위 게시판에 역대 최고의 댓글을 기록하며 시민들의 반대에 가로막혔고, 결국 임기 내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그리고 이자스민 의원은 현재 20대 국회의원도 아니다. 결국, 이민자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대부분 반대 의견이 많은데 세금도 안 내고 일자리 빼앗아가고 군대도 안 간다는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아요.” – 이자스민

한국일보 – 이자스민 의원 “미등록 이주아동 방치하면 사회적 비용 더 커져” (고경석, 2016. 1. 4)

“내 세금으로 왜 불법체류자를 먹여 살려야 하느냐”

사실 불법체류자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다. 우리는 더는 이민자를 배격하며 살 수 없는 나라가 됐고, 그들의 노동력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상당히 크며, 많은 선진국이 이민자들을 성공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선진국이 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민자 융화는 우리가 꼭 풀어야 할 사회문제일 것이다.

합법적 이민자의 유입과 함께 불법체류자의 발생은 어느 사회를 보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좋든 싫든 그들은 대한민국의 땅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자녀들 역시 대한민국의 땅에 태어나 한국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만약 그들의 자녀들을 방치한다면 그것은 아동에 대한 인권 유린일뿐더러 나중에 꼭 그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외국에 존재하는 베트남 갱이니, 히스패닉 갱이니 하는 것들 역시 해당 국가의 방치가 그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비록 불법체류자이지만, 이들을 유능한 사회자원으로 탈바꿈하는 일 역시 우리 사회가 해내야 할 과제이며, 이미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들의 존재는 미래 대한민국의 큰 힘이 될 것이다.

“의무는 하나도 안 하면서 권리만 챙겨가려는 나쁜 놈들 아니냐”

물론 불법체류자들이 내는 세금은 모든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한국 직장인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법체류자들이 모두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직접 현금으로 내는 직접세 외에 각종 소비활동 속에서 발생하는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넘는다. 따라서 극단적인 사례로 직접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이미 한국의 내수 시장을 통해 적잖은 세금을 내는 것이다.

그들이 탈세하는 것에는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들에 대한 분노는 자영업자나 전문직이 저지르는 탈세에 준하는 분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해외에 유령회사를 세워 수백억 원을 탈루하거나 거대 재산을 밀반출하는 가진 자의 부도덕한 행위에 비하면 더 적은 분노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들의 탈세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 이에 적합한 ‘합당한 분노’를 물을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꼭 자녀들의 교육권 박탈이나 의료권 박탈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주민들도 세금 낸다. (출처: CotCredit, "Tax", CC BY https://flic.kr/p/rnjfcL)
우리나라의 간접세 비중은 아주 높다. 즉, 소위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이들도 세금 낸다. (출처: CotCredit, “Tax”, CC BY)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왜 불법체류자를 도와야 하느냐”

외국 빈곤 아동에게 기부를 하는 사람을 보면 주변에서 꼭 하는 얘기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 많은데 왜 하필 외국에 기부하니?”, “너 주변에도 어려운 사람 많을 텐데, 왜 굳이 먼데다가 기부하니?”. 하지만 그렇게 국내, 국외를 구분하는 사람들 치고 기부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오히려 외국에 기부하는 사람이 국내에도 기부활동에 적극적인 경우는 많이 봤지만 말이다.

인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보편적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는 불법체류자가 처한 ‘인권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지 법 테두리 안에서만 인권을 운운하는 나라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을 돕기 위해 이주민을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분도 도와야 하고,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주민과 그 자녀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주민 자녀를 포기한다고 갑자기 우리나라에서 어렵게 사는 분들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불법 체류자란 없다

사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불법’인 존재로 산다는 게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모르겠다. 인간은 모두 고귀한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누구는 피부 색깔에 따라, 누구는 부모의 재산에 따라, 그리고 누구는 부모의 국적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차별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은 서글프다.

인간이 땅 위의 한 곳을 밟고 살아가는데 과연 불법이 어딨을까?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고, 건넌 뒤에도 ‘불법’의 차별을 받으며 사람다운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깝기만 하다.

2016년 9월 2일 오전(현지 시각) 터키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서 숨진채로 발견된 아이(에이란 쿠르디). 쿠르디는 터키 해안을 떠나 유럽으로 가려다 뒤집힌 배에 탔던 시리아 난민으로 밝혀졌다. (출처: 터키 '도안 통신')
2015년 9월 2일 오전(현지 시각) 터키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3살 먹은 아이 에이란 쿠르디. 쿠르디의 가족은 터키 해안을 떠나 유럽으로 가려다 뒤집힌 배에 탔던 시리아 난민이었다. (출처: 터키 ‘도안 통신’)

이 세상에 ‘불법체류자’란 없다. 사람이 사는데 ‘불법’이란 게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을 이유로 동물 취급해야 할 이유도 전혀 없다. 이미 미국에서는 불법체류자(illegal aliens)이란 말이 폐기되고, ‘서류 미비의 이민자'(undocumented immigrants)란 말을 쓰고, 이런 배경에는 제도 아래 사람이 있지 않고, 사람 아래 제도가 있다는 헌법 정신이 있다.

외국, 특히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은 대부분 초기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고, 불법 이민자 신분으로 서러움을 느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자 연장이 순탄치 않아 적법한 비자를 갖지 못한 많은 학생, 노동자, 자영업자들이 한때, 그리고 여전히 ‘불법체류자’의 상태다. 하지만 이들의 인간적 권한은 법을 통해 최소한으로나마 보호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청소년 추방유예조치(DACA)[footnote]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footnote]로 1만 명의 한국 학생이 ‘아직 추방당하지 않고’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간다. 아직은 말이다. 트럼프 당선으로 미국 내 1,100만 명이 추방 위기에 처했고, 그중 한국인은 19만 명이다.

‘불법체류자’면 아프고, 사고가 나서 다쳐도 병원을 찾지 못해야 하는가? ‘불법체류자’의 아이들은 부모가 일하러 나간 집 안에 방치되어야 하고, 배움의 때를 놓쳐 어둠의 자식들이 되어야 하는가? 이들에 대한 교육과 의료에 대한 문제는 이들의 인권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안전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적극적인 난민 포용 정책을 펴는 캐나다. 캐나다의 언론사 토론토스타는 '시리아 난민'을 환영한다는 특별 사설까지 쓰며 이들을 환영했다.
적극적인 난민 포용 정책을 펴는 캐나다. 캐나다의 언론사 토론토스타는 2015년 12월 10일, ‘시리아 난민’을 환영한다는 특별 사설까지 쓰며 이들을 환영했다.

캐나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우리는 가족을 맞이하는 것처럼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평화와 기쁨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시즌을 더욱 밝게 빛내주셨습니다.
토론토 시민들은 앞으로 몇 달에 걸쳐 우리나라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시리아인 2만 5천 명 가운데 첫 번째로 도착하시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토론토 스타, 21015년 12월 10일 자 특별 사설 중에서 (번역: 뉴스페퍼민트)

어떤 사람들은 ‘그럼 너희 나라로 돌아가지 그러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희 나라 가서, 너희 나라 법으로 교육과 의료혜택을 받으란 이야기 말이다. 그렇다면 반문하겠다. 이들을 그들의 나라로 돌려보내기 위해 그들의 ‘건강’과 그들 자식의 ‘교육’이라는 비인간적인 수단을 이용해도 좋은 걸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서도 그들이 다른 나라로 와야만 했던 그 슬픈 사연을 같은 인간으로서 귀 기울여 볼 순 없을까?

많은 이들이 트럼프를 비판하며 그의 혐오 발언들과 차별적 언행들을 지적한다. 멕시코에 벽을 쌓겠다든지, 무슬림을 몰아내겠다든지 하는 모든 발언은 흡사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사람처럼 보이고, 그런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불법체류자’를 대하는 모습도 트럼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브렉시트가 멍청한 짓이고, 트럼프 당선이 멍청한 선택이었다면, 사회의 분노를 외국인 노동자에 떠넘기고, 비정상회담에 나오는 백인과 안산의 노동자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며, ‘조선족을 한국에서 청소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이 곧 또 한 명의 트럼프이고, 또 한 명의 혐오자들인 것이다.

DonkeyHotey, "Donald Trump's Taj Ma WALL", CC BY SA https://flic.kr/p/FnQ2cC
DonkeyHotey, “Donald Trump’s Taj Ma WALL”, CC BY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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