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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국이 급박해지면서 대통령의 진퇴와 향후 권력의 향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00만 시민이 모인 집회가 열리고 이에 고무된 야권과 시민사회에서는 박근혜 퇴진에 대한 강경한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어떤 검증절차도 없고, 위임받은 권력도 없는 일개인이 국민의 안전과 복리에 직결된 국정 전반을 통제할 수 있었다는 것은 국가 체제 전체를 무력화시킨 그야말로 심각한 국기 문란 행위였다.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2016년 11월 12일 (사진 제공: 옥토)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2016년 11월 12일 (사진 제공: 옥토)

하지만 탄핵, 하야, 퇴진과 같은 큰 목소리에 모든 것이 쓸려가 버리기 전에 한편에서는 이번 사건의 사회 문화적 의미에 대해 섬세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를 느꼈다. 상황인식이 명확해지면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도 좀 더 명료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미친 심대한 영향력은 당장 눈에 보이는 광장의 100만 시민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광장 바깥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왜 광장의 바깥인가

사실 나는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열렸을 때 거의 놀라지 않았다. 아마 광장에 나왔던 상당수 시민도 그랬을 것이다. 사건의 세부가 보여주는 저열함에 혀를 내둘렀지만, 그것이 우리 대통령님에 대한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행동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록 장막에 가려있었지만, 한 사람의 말과 글, 최고 권력자로서 보여준 행동들에서 이 정권의 실루엣 정도는 익히 느낄 수 있었다.

2014년 9월 16일 제40회 국무회의 모습 (출처: 청와대) http://www1.president.go.kr/news/media/photo.php?srh%5Bpage%5D=74&srh%5Bview_mode%5D=detail&srh%5Bseq%5D=7260
2014년 9월 16일 제40회 국무회의 모습 (출처: 청와대)

복잡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며 국가를 미래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지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낼 위기관리 능력은 물론 최소한의 의지조차 없다는 것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2014년 4월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소위 '유체이탈' 화법으로 '공무원 퇴출'을 발언하는 박근혜 대통령 (출처: 청와대)
2014년 4월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소위 ‘유체이탈’ 화법으로 ‘공무원 퇴출’ 발언하는 박근혜 대통령 (출처: 청와대)

박근혜 정권은 특정한 몇몇 정책을 제외하고는 실행 의지조차 느낄 수 없는 아주 ‘특이한’ 정권이었다. 대통령에게 일관된 의지가 없다면 숨은 의지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박근혜는 대리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했고, 대통령 뒤의 진짜 권력을 재벌과 정치 기득권 세력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최순실 일가가 끼어들어 있는 것이 이번 게이트의 모양새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권력의 사적 전용에 의한 국가 시스템 파괴, 정경유착과 부패로 인한 민심이반이라 본다면 분명 정론일 것이다. 집회에서도 많은 시민이 비슷한 맥락에서 핵심을 이야기하자고 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최순실, 무당, 굿판과 같은 것이 아니라 기득권 이해관계에 복무하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문제이기에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옳은 말이고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소한 것에 주목하라

하지만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특이점은 바로 그 사소하다 여겨지는 것들에 있다고 보인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철통같이 기득권을 지지해온 새누리당 지지층에 거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으며 그 의심은 바로 그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되어 박정희 신화에도 상당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실감 나지 않는다면 당장 일베만 훑어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총선 ‘진박’ 공천이라는 공천참사 속에서도 일편단심 박근혜를 지지했고, 총선 패배 이후에도 김무성을 욕하던 다수의 게시판 여론이 지금은 박근혜를 욕하며 이명박을 불러내거나 일부는 하릴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러내는 것이 ‘멘붕’의 포인트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세요
2014년 6월 4일 지방선거에 등장한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세요”라는 현수막. 여당의 지방선거 전략은 정책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박근혜 지키기”로 올인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게 먹혔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갔다. 이런 현수막을 만나는 건 앞으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우리는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리던 30% 내외의 박근혜·새누리당 핵심 지지층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안을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내재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우선 그들이 부패 혹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붕괴시킨 것 때문에 이번 정권으로부터 등을 돌렸다고 한다면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부패에 대해서라면 당장 20여 년 전 노태우 정권의 5,000여억 원의 비자금과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자원외교의 규모를 떠올려보면 좋으리라. 민주적 절차가 문제라면 국정원 선거개입을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상 지금까지 민자당-새누리당 계열의 기득권 정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간판과 얼굴을 바꿀지언정 부패나 민주적 절차 훼손만으로 지지를 거두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반부패나 민주적 가치 수호는 그 자체만으로는 핵심적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민심 이반의 ‘숨은’ 원인

“나라를 다 팔아먹어도 새누리당”이라는 울산의 한 시장 상인의 말로 상징되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박-최 게이트가 흔들어 놓은 것은 우선 문화적인 부분이다. 그들은 상당 부분 전통적이고 봉건적인 문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 무당, 사이비 종교와 같은 코드는 왕조의 흥망에 대한 기준으로 보더라도 망조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무당, 환관에 의해 휘둘리는 왕권과 그들의 전횡은 상당한 부패를 용납할 수 있는 그들의 인식체계에서도 쉽게 용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팔선녀회라든지, 교주 최태민 씨와의 관계, 연설문이나 미르k같은 이름에서 발견되는 의심스러운 종교색, 최근 사퇴하긴 했지만, 안전처장 내정자의 굿 파문까지. 본질적이지 않아 보이는 부분들이 그들에게는 어떤 통계자료보다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표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승려이자 목사이며 영세교를 창시한 최태민(1912년 ~ 1994년). 그의 '유산'은 최순실에게 이어진다.
승려이자 목사이며 영세교를 창시한 최태민(1912년 ~ 1994년). 그의 ‘유산’은 최순실에게 이어진다.

또한, 최순실로 대표되는 비선 실세들의 면면 역시도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검증된 권위에 대한 존중이 높고 엘리트 집단을 선호한다. 그런데 권력을 실질적으로 움직인 최순실은 공식적인 학력마저도 의심스럽고 어떤 전문적인 교육을 받거나 공직을 경험하지도 못했다. 이번 비선 실세가 경기고-서울대 출신의 변호사라도 되었다면 그들이 느끼는 감성은 아마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지배를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지만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지배받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 신화의 원천

기존 박근혜 지지층은 상대적으로 권위적 리더십을 선호하는 집단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들의 권위주의 선호 현상이 반드시 비합리적이고 반민주적인 것만은 아니다. 미국 선거에서도 보듯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권위적 리더십을 선호하는 계층은 상당 비율 존재한다.

다양한 의견을 고려하여 민주적 합의를 이루는 것보다는 강력한 지도자에 의한 일사불란한 통치력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반드시 비합리적이라는 근거는 없다. 강력한 지도자와 엘리트 관료를 기반으로 하는 체제가 시끄러운 민주적 리더십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박정희가 표상하는 이미지: 하면 된다, 경제발전 그리고 쿠데타와 독재
박정희가 표상하는 이미지: 하면 된다, 경제발전 그리고 쿠데타와 독재

그런데 그들 스스로 권위적 리더쉽은 한국사회에서 검증을 거쳤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이 바로 박정희 신화의 본질이다. 그 과정의 공정성과 비민주성은 별론으로, 그들은 배를 곯던 시대에서 상당한 물질적 부를 일궈낸 시대를 두 눈으로 목격한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집권기는 무도하고 부도덕하기는 했지만,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시기와 겹치게 된다. 그것이 집권자의 능력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박정희 신화는 비록 그들이 다소 부패하기는 했지만 거대한 국가적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능력과 최소한의 공익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신화인 것이다.

사사로움과 사소함의 메시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보여주는 ‘찌질함’은 그런 측면에서 권위주의적 향수에 젖은 지지층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정유라의 학교(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찾아가 교사와 교수를 상대로 ‘깽판’을 친다든지, 최순실이 다니던 병원에 특혜를 준다든지, 최순실에게 편의를 제공했던 대한항공 직원의 승진에 압력을 넣는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며칠전 jtbc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가 최순실 조카가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교민 만찬에 특별히 참여할 수 있도록 지시했고, 그 최순실 조카가 운영하는 유치원이 베트남에서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봐 주었기도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거대한 강의 ‘지류’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사사로움과 사소함, 그리고 그 저열함과 천박함(‘저런 짓까지 했나!’)은 박근혜 정권의 민낯을 드러낸다. 많은 이들이 그 ‘찌질함’을 피부와 와 닿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낀다. 그 점이 아주 중요하다. 이는 비리를 저지르는 수준 낮은 방법과 스케일만으로도 이 정권이 과연 국가적인 거대 사업들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세력인가를 의심하게 만들고야 만다.

출처: 뉴스타파
출처: 뉴스타파

이명박 정권이 거대한 토건 사업을 일으켜 국고를 통째로 들어 먹은 모양새라면, 이와 대비해서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박근혜와 최순실은 생쥐처럼 여기저기 보이는 대로 뜯어 먹기에 바쁜 모양새다. 그런 측면에서 언론에서 꾸준히 터뜨리고 있는 최순실 일가의 비리, 특혜 의혹들은 상당히 효과적이며, 다른 종편의 자극적 보도 태도 역시 새누리당의 지지기반을 무너뜨리는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 정치지형의 변화

이번 사건은 분명 정권교체를 이루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낼 것이다. 하지만 사건의 진행 추이와 대처에 따라 3당 합당 이후 형성된 민자당-새누리당의 핵심 지지기반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 남지 않은 정권을 당장 가져오거나 새누리당이 분열하여 좋은 선거 구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 총선의 유리한 정치 구도가 새누리당의 오만을 가져왔듯 구도가 유리하면 야권은 분열하고 방심하게 되어있다. 결선 투표가 없는 한 6월 항쟁 이후의 노태우 당선과 같은 사태는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 그야말로 정치인들의 능력과 의지에 달린 문제일 것이며 유리하다 해서 완전히 통제되지는 않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새누리당 지지세력의 마음을 이탈시켜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다행히 환경은 조성되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만들어놓은 지금의 교착상태는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데 필요한 시간과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크고 작은 비리 뉴스는 끊임없이 생산될 것이고 이번 정권의 정치뉴스는 대체로 가십성이라 피로감을 유발하지도 않을 것이다. 퇴진요구는 커지지만, 박근혜 정부는 물러나지 않고 친박과 비박의 내부 투쟁으로 붕괴 직전인 새누리당에 혁신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국민 다수는 말한다. 새누리당이 '공범'이라고.
국민 다수는 말한다. 새누리당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라고.

이런 상황에서 완력으로 성급하게 권력을 인수하는 것은 저들의 마음속 한구석에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투표는 상당 부분 정당 혹은 정치세력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후 정권(혹은 과도권력)의 조그만 잘못으로도 그들을 새누리당 지지로 돌아서게 할 가능성이 높다. 물러나게 하더라도 박근혜에게 표를 준 사람들에게 이 정권의 저열함과 무능을 스스로 곱씹을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 중 일부가 당장 내일 야당에 투표하는 것보다는 시간을 두고 그들 중 상당수가 앞으로 새누리당 계열의 당을 찍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더 근본적인 변화다. 5%, 10%의 이탈만으로도 정치지형은 바뀔 수 있다.

광장의 바깥

이명박과 박근혜의 9년 집권기는 아주 천천히 박정희의 신화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명박은 박정희의 경제 개발 신화를 조용히 무너뜨렸다. CEO 대통령이 만든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우리는 똑똑히 지켜보았다. 공공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불려온 박근혜는 신화의 남은 지지대를 극한의 무능력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하지만 5%의 국정 지지도로 그 신화가 무너졌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이름의 정당과 정치인의 이름으로 회복될 수치이지만, 콘크리트에 큰 균열이 생긴 것은 사실이고 놀랍게도 상당 부분 허물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야권이 정말 잘해야 하는 시기다.

Nesster, viewing back, CC BY SA https://flic.kr/p/yFbw8
Nesster, “viewing back”, CC BY SA

하지만 지금의 게이트 정국은 일부 언론사의 노력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박근혜라는 정치인의 ‘신기에 가까운 개인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 총선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이 정도의 무능력자가 권력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민주적 지도 선출 체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야권은 강하게 압박을 하되 현재의 교착 상태에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의 정권퇴진 운동 선언 시기는 그런 맥락에서 괜찮았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그 ‘늘어지는’ 과정 자체가 그들에게는 탄핵이나 하야와 같은 정치 스펙터클보다 훨씬 더 뼛속 깊이 새겨지는 역사적 교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광장의 불길은 댕겨졌고 퇴진은 너무나 당연한 요구이기에 정국은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하지만 싸움을 하다 보면 싸움의 논리와 승패에만 집중하게 마련이다. (어쩌면 김무성이 탄핵을 주장한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틸 의지가 있는 한 싸움은 쉽게 끝나지는 않는 법이다. 그럴 때면 한숨 돌려 광장 바깥 먼 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번 둘러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무엇을 하게 되더라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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