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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트너가 발표하는 자료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주목받는 보고서가 몇 가지 있다. 매년 이맘때쯤 꺼내 놓는 ‘신기술 하이프 사이클 보고서’는 그중 하나다. 기술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허상, 그리고 현재 위치에 대해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 놓기 때문이다.

가트너의 하이프 사이클

모든 기술은 사람처럼 기대 속에 태어나서 성장하고, 제 역할을 하다가 서서히 성숙하며 사라지는 일생을 겪는다. 저마다 그 주기에 차이가 있고, 빛을 보는 기술과 관심만 받다가 묻히는 기술도 적지 않다.

하이프 사이클 보고서는 혁신 기술로 주목받고,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차세대 먹거리로 정점을 찍은 뒤 성숙 단계를 거쳐 서서히 안정적인 시장 진입 단계로 접어드는 일련의 과정을 하나의 표로 만든 보고서다.

가트너의 하이프 사이클

한 장의 그래프는 각 기술에 대한 현재 위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그래프 앞쪽에 위치한 기술들을 통해 앞으로 발전할 산업들을 미리 내다볼 수 있다는 점도 하이프 사이클 보고서의 특징이다.

2016년 가트너는 이 그래프에 4D 프린팅,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증강 인간(Human Augmentation), 부피측정 디스플레이(Volumetric Display), 감성 컴퓨팅(Affective Computing), 커넥티드 홈, 나노튜브 전자공학,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제스처 제어 디바이스 등을 올렸다. 어떤 것은 낯설고, 어떤 것은 온 국민이 전문가 소리를 들을 만큼 익숙하기도 하다.

가트너 2016년 신기술 하이프 사이클

실제 기술에 쏠리는 관심과 발전, 성숙도는 보폭 자체가 다르다. 대중과 미디어의 관심이 쏠리는 단계는 대체로 기술의 완성보다 기본적인 개념을 보여주는 정도일 때 가장 폭발한다. 사람들은 혁신을 바라지만 그만큼 기술은 쏟아지고 관심도 빠르게 바뀌게 마련이다.

다만 기대와 관심도를 나타내는 세로축의 위치가 아래로 내려온다고 해서 그 기술이 시들해졌다고 해석할 것은 아니다. 살아남는 기술은 이제 본격적인 궤도를 타고 상용화되고, 실제 시장으로 성장한다는 의미라고 보는 쪽이 맞다. 물론 그래프 위를 달려가는 속도 또한 저마다 다르다.

예를 들면 증강현실의 경우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매우 주목받았지만 하드웨어의 한계와 콘텐츠 부족이 시장의 기대를 가로막았다. 결국, 관심이 시들해지나 했더니 ‘홀로렌즈’ 같은 하드웨어 기술과 ‘포켓몬 고’ 등 콘텐츠가 더해지면서 거품을 걷어낸 진짜 기술의 성장이 시작되는 단계다.

시작단계에 있는 4D 프린팅 같은 경우 인터넷이나 뉴스를 통해 접하면 “이런 기술이 다 있나!”라고 놀라고, 그 배경에 형상 기억 합금이나 나노 기술 등이 더해지면서 그 기대감이 더 커진다. 반면 실제 기술이 눈에 보인다거나 어디에 쓰일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관심도(세로축)는 비슷하지만, 기술이 겪는 성장 과정(가로축)에 따라 받아들이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경험, 플랫폼, 그리고 스마트 머신의 시대

하이프 사이클의 또 다른 재미있는 부분은 현재 고민되는 앞으로의 기술들을 내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관심받는 기술은 매우 다양하지만 몇 가지 명백한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한 마디로 ‘더 현실적이고, 똑똑해지는 기기’라고 할 수 있다. 가트너 역시 이를 ‘순수 몰입 경험’과 ‘지각 능력을 지닌 스마트 머신’, 그리고 ‘플랫폼의 혁명’으로 큰 흐름을 정리했다. 사실상 그래프 위의 기술들은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공동 운명체다.

먼저 가트너가 이야기한 분류로 기술들을 뜯어보자. 순수 몰입 경험은 이른바 가상현실로 대표되는 새로운 컴퓨팅 환경을 이야기한다. 특히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처럼 시각을 자극하고 기계가 사람의 움직임을 읽는 제스처 제어 등의 기술은 이미 관심 단계를 넘어 기술에 표준이 잡히고 플랫폼이 생겨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먼 미래 일 같던 증강현실은 홀로렌즈를 통해 하나의 산업으로 떠올랐고 포켓몬 고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YouTube 동영상

여기에 더해지는 새 기술들은 또 다른 감각을 건드린다. 사물이 주변 환경을 반영해 형체를 바꾸는 4D 프린트, 생각으로 컴퓨터를 제어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그리고 감성 컴퓨팅이나 나노 튜브 등의 기술들이 급격히 관심을 끌고 있다. 결국, 이 기술들이 성숙 단계에 접어든 가상현실과 접목되면서 그 경험을 확장할 채비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시기에 차이는 있지만 결국 인간이 본래의 오감 외에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해 시간과 공간을 넘는 경험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려는 데에 목적을 둔 기술들이 발전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아이언맨처럼 기술들을 몸에 입고 능력을 향상하게 하는 ‘증강 인간(Human Augmentation)’으로 모이게 된다.

또 다른 한 축은 바로 지각 능력을 가진 스마트 머신이다. 인공지능의 발달이라고 하면 여전히 터미네이터가 반란을 일으켜 인류를 공격하는 것을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로 연구되는 기술의 흐름은 방향이 다르다. 가트너 역시 인공지능처럼 광범위한 개념이나 머신러닝처럼 한 가지 기술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지각 능력을 가진 스마트 머신’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box type=”note”]스마트 머신

스마트 머신은 스스로 배워서 기대하지 않은 결과를 낼 수 있다. 그것들은 반드시,

  • 경험에 의한 행동에 적응한다. (학습)
  • 인간의 명령에 완전히 의존하지 않는다. (스스로 학습)
  • 예상치 못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

출처: 가트너 IT 용어사전[/box]

인공지능 신경망은 더 미세해지면서 머신러닝이나 딥러닝을 비롯한 기술이 확대되고 이를 기반으로 가상 개인 비서, 스마트 로봇 같은 기술부터 상업용 드론이나 자율주행 자동차, 자연어 처리, 개인용 데이터 분석처럼 우리 주변에 붙어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기기 자체가 주어진 정보를 기반으로 판단을 내리고 더 나아가 미리 주어진 명령에 따르는 그야말로 스마트 머신 기술들이 고민되는 것이다.

결국, 이 기술들이 자리를 잡는 방법은 ‘플랫폼’으로 연결된다. 이제 그 누구도 어떤 커다란 산업을 혼자 이끌어 갈 수 없다. 기술 그 자체보다 생태계 중심으로 전환되는 플랫폼의 변화는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 되고 있다. 이미 소프트웨어 정의는 네트워크를 통해 이동통신 환경을 급격하게 바꾸고 있다.

앞으로 이동통신에 더해지는 신규 서비스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보급되는 세상이 열린다. 기회비용과 낭비되는 자원을 줄이고 대신 그 비용을 성능 향상에 쏟아부을 수 있는 통신 플랫폼을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사물인터넷 역시 이제는 웨어러블 기기나 센서, 통신 기술처럼 개별 기술의 성장세는 성숙 단계에 이르렀다. 중요한 건 그 위에서 플레이어들이 어떤 아이디어를 품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플랫폼 단계의 고민이 시작된다. 구글이나 인텔, 퀄컴 등이 이 시장에 매달리는 이유도 결국 제품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모두를 끌어안을 플랫폼을 쥔 쪽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기존의 컴퓨팅 환경을 기반으로 변화를 이끌어 왔지만, 앞으로는 아예 기존 레거시 환경을 접어놓고 시작하는 클라우드 컴퓨팅과 소프트웨어 정의 등이 중심에 자리를 잡게 된다. 가트너는 양자컴퓨팅, 신경 형태 하드웨어, 사물인터넷 플랫폼, 블록체인 등을 관련 기술로 소개했고, 이들은 하이프 사이클 위에서 아주 빠르게 성장해 나가고 있다. 몇 년 내에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이야기다.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머신의 시대

이 기술들은 모두 제각각의 특성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현재 제안되고 발전하고 성숙하는 기술은 기존과 다른 흐름에 서 있다.

과거에는 PC나 스마트폰, 반도체처럼 손에 잡히는 제품들이 그래프에 올라 있었고, 주목받는 기술로 꼽혀왔다. 사람과 기계가 직접 마주하는 단말과 관련된 기술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인터넷 연결 기술이 떠올랐다. 더 많은 데이터를 빠르고 안전하게 전송하는 그 자체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모든 산업계로 퍼져 나갔다. 하드웨어를 가진 쪽에서는 TV, 가전, 자동차를 비롯해 웨어러블 기기, 헬스 센서 등 스마트폰 그 자체의 뒤를 이을 기기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했다. 다른 한 편에서는 또 새로운 운영체제, 앱, 서비스, 그리고 O2O를 통해 서비스 자체를 확대해 왔다.

하지만 이들은 PC에서 인터넷으로 그리고 다시 모바일로 이어진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세상은 데이터 이동을 중심에 두는 4차 산업 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4차 산업 혁명은 제품과 서비스 자체를 산업에 중심에 두고 있던 기존 산업과는 전혀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연결

사소한 기기들이 서로 연결되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흘려보내던 데이터들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 데이터에 가치를 만들어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머신러닝과 로봇처럼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스마트 머신 관련 기술들이다. 플랫폼은 스마트 머신을 완성할 기본 틀 역할을 하고, 몰입 경험들은 그 결과를 더 직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만들어준다. 2016년의 하이프 사이클 자체가 4차 산업 혁명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가상현실은 손안에 와 있고, 자연어 분석은 머신러닝 기술과 인스턴트 메신저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아마존은 실제 배송 로봇을 고민하고 있고 자율 주행 자동차는 이제 미래 기술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사물인터넷과 블록체인은 혼란의 시대를 지나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단계에 올라서고 있다. 이 기술들은 단편적으로 볼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도 큰 산업이지만 특정 목적을 가진 배경으로 봐야 한다. 바로 스마트 머신 시대로 가는 길 위에 있는 단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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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가트너는 최근 충격적인 보고서를 하나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2020년이면 PC 사업이 철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PC 시장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현상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로 들어가 보면 전통적인 ‘컴퓨팅’이라는 단어가 변화하는 데 대한 경고로 봐야 한다.

컴퓨팅은 이제 손안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5G를 필두로 한 고속 네트워크를 통해 클라우드 위에서 처리된다. 컴퓨터 성능에 따라 콘텐츠가 제한되던 시대는 가고, TV처럼 화면 크기나 화질이 다를 뿐 콘텐츠의 우열을 단말기가 결정하지 않는 시대가 다가온다.

스마트폰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스마트폰이 ‘신기한 기기’라는 이미지에서 멀어지는 순간 우리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창구는 더 늘어나고, PC나 스마트폰 같은 기기는 말 그대로 정보를 전달하는 끝단의 단말기 역할을 맡게 된다. 단순히 더 빠르고, 더 화질 좋은 스마트폰이 중심이 아니라 이를 플랫폼으로 만들어 그 위에서 스마트 기기들을 통제할 수 있는 산업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하이프 사이클의 점들에 환상이 걷어지는 시기(Trough of Disillusionment)에 접어드는 순간 더 좋은 하드웨어, 빠른 인터넷은 ‘ICT 경쟁력’이라는 가치와 멀어지게 된다. 플랫폼과 서비스, 그리고 소프트웨어, 콘텐츠 같은 이제는 케케묵은 이야기가 산업을 뒤엎는 시기가 정말로 우리 코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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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A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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