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슬로우뉴스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주요 판결들을 소재로 진행 중인 ‘광장에 나온 판결’을 연재합니다. 이 연재가 일부 전문가의 관심사에만 머무는 판결과 그 의미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box]
YS 정권 시절, 감사 과정에서 부당한 외압에 의해 해당 감사가 중단되었음을 폭로(양심선언)한 공무원 현준희 씨. 감사 중단을 지시한 장본인으로 지목된 감사원 4국장 남 모 씨는 현준희 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합니다.
현준희 씨는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판결받지만,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합니다. 하지만 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의 결정을 뒤엎고, 다시 무죄를 선고합니다. 그리고 결국, 환송심 재판부의 결정은 대법원에 의해 유지되어 현준희 씨는 최종적으로 무죄가 확정됩니다.
1996년 4월 민변 사무실의 양심선언에서 2008년 11월 대법원에 의해 최종적으로 무죄가 확정되기까지 12년 7개월. 이 ‘기나긴 싸움’의 의미를 김창준 변호사가 논평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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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희 감사 중단 폭로 사건
쟁점:
- 외압에 의해 감사가 중단되었다고 폭로(양심선언)한 현준희 씨의 행위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하는가.
- 1심과 2심에서 무죄로 판결된 사건을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경우, 환송심 재판부가 대법원 결정을 거부하고, 다시 무죄를 선고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판결:
- 현준희는 무죄.
사건 번호와 담당 재판부:
- 2006.10.18 선고, 2002노8743 출판물에의한명예훼손 등
- 서울중앙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김선혜 판사, 고승일 판사, 이중표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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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정권 시절인 1996년 4월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청와대의 외압을 받아 진행 중이던 감사 활동이 부당하게 중단되었다고 내부고발한 감사원 공무원이 있었다. 그 이름은 현준희이다. 1989년의 재벌기업들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실태를 고발한 이문옥 감사관에 이어 감사원 공무원에 의한 제2호 ‘양심선언’이었다.
기나긴 싸움의 시작
현준희 씨에 대하여 감사 중단 지시를 하였다고 지목된 당시 감사원 4국장 남 모 씨는 현준희 씨의 ‘양심선언’에 의하여 자신의 명예가 심각하게 실추되었다고 주장하며 현준희 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다. 감사원 4국장 개인이 고소하는 형태를 취하였지만, 실상은 감사원 자체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한, 나아가 YS 정권의 도덕성이 걸린 큰 싸움이었다.
검찰은 현준희 씨가 감사원 4국장을 비방할 목적으로 기자들에게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이유로 현준희 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기소하였다. 1심은 서울지방법원의 단독 판사가, 2심은 같은 법원의 항소부가 재판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1, 2심 재판부는 현준희 씨에 관해 거듭 무죄를 선고하였다.
1, 2심 재판부는 현준희 씨의 고발 내용이 허위라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현준희 씨의 내부 고발은 감사원이 외부 권력기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여야 한다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4국장 개인을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근거를 밝혔다.
이러한 1, 2심의 판결은 당시 ‘부패공화국’이라고까지 지탄받던 우리 사회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서 내부 고발을 활성화하여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판결이라 크게 환영받았다.
이 당시는 내부고발자의 신분 보장을 규정한 부패방지법이 제정되기 전이라 공직자에 의한 내부 고발은 ‘양심선언’과 같은 극단적인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 판결 이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양심선언’을 한 공직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는 움직임이 한층 더 힘을 받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대법원 판결
사필귀정으로 순탄하게 마무리될 듯하던 현준희 씨 사건에 돌발적인 변수가 생겼다. 2002년 대법원이 2심 법원의 판결을 파기하고 현준희씨가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감사원 4국장의 명예훼손을 한 것이 맞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버린 것이다. 현준희 씨로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기가 막히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대법원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 현준희 씨를 제외한 감사원의 다른 직원들이 일치하여 4국장이 감사기간 중 감사중단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한다.
- 따라서 현준희 씨의 주장이 허위다.
말하자면 감사원 공무원들이 거짓말을 할 까닭이 없으니 현준희 씨 혼자의 말보다는 다수의 말에 더 신빙성이 간다는 취지였다. 국가 사정의 중추기관으로서 감사원이라는 조직의 위상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자, 개인의 힘으로 거대조직에 맞서 싸워야 하는 내부고발자의 수난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대법원이 유죄 취지 판결을 하게 된 결정적인 빌미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준희 씨 스스로가 제공한 것이었다. 현준희 씨는 감사일보(감사진행 사항을 기재하는 일종의 감사일지)에 “4국장이 감사사항을 5국으로 이송하라는 지시를 하였다”는 내용을 사후에 가필하였고, 이를 기자회견 당시 4국장이 감사기간 중 감사 중단을 지시하였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제시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1심 재판 과정에서 이 기사는 현준희 씨가 사후에 가필한 것이라는 것이 확인되었고, 현준희 씨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 이외에 ‘공문서변조죄’로 기소되었다. 이러한 ‘공문서변조행위’는 현준희 씨가 자신의 직급 상급자인 감사반장 조 모 씨가 진실을 은폐할 의도로 이미 감사일보에 가필하여 놓은 것을 보고, 진실이 은폐되지 않도록 하는 차원에서 진실을 기록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당시 감사반장 조 모 씨는 감사기간 마지막 날의 감사반장 지시란에 다음과 같이 가필해 놨다(이 행위 역시 공문서변조행위가 될 것이다).
“사업의 연계성 여부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입증이 안 되고 있다.”
현준희 씨는 이를 사후에 발견하고, 이 같은 감사반장의 가필 행위가 단순한 법리해석상의 이견으로 감사가 종료된 것처럼 은폐하기 위한 기도라 판단하고, 이를 봉쇄하기 위하여 방어적 차원에서 기입하여 놓은 것이었다. 1, 2심 재판부는 이 같은 현준희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공문서변조죄’에 대하여는 선고유예라는 거의 무죄나 다름없는 판결을 내렸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 같은 현준희 씨의 공문서변조행위를 중시하여 이러한 현준희 씨의 행동에 비추어 다른 모든 주장도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접근한 것이다.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로써 현준희 씨 사건은 한마당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리는 듯하였고, 현준희 씨는 주위로부터 손가락질받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법원 판결 이후 열린 서울지방법원에서의 환송심은 그 이후 2006년 10월까지 4년여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현준희 씨는 대법원에 의한 유죄 판결이라는 엄혹한 현실 앞에서 4년 내내 위축된 마음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 기간에 현준희 씨의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많이 희어졌는데, 현준희 씨의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어렵고 슬펐던 시절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현준희 씨의 독실한 종교적 믿음이 아니었더라면 정신적으로 파탄 상태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환송심 재판부, 결정적 증거를 발견하다
그런데 마치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났다. 대법원 판결 이후 4년여에 걸쳐 파기환송심을 진행한 서울지방법원이 2006년 10월 판결을 선고하였는데, 현준희 씨에 대하여 다시 무죄를 선고한 것이었다. 현준희 씨의 고발이 허위사실에 근거한 무모한 폭로가 아니라 순수한 동기에 의한 ‘양심선언’이었음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공직사회의 투명함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져 용감히 내부비리를 고발하였는데 칭찬을 받기는커녕 직장에서 쫓겨났을 뿐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받게 된, 우스꽝스럽기조차 한 사태가 겨우 정상적으로 수습될 수 있는 계기가 환송심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마련된 것이다. 천 길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현준희 씨가 이 판결에 감사의 눈물을 흘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일거에 회복하여 주는 참으로 구사일생과도 같은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이 현준희 씨에게 유죄를 선고하게 된 빌미가 된 감사일보의 가필 사고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조사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하여 재판부는 감사원의 재정금융국과 행정안보국 소속의 2개 과에 보관 중인 최근 3년간의 감사일보 전체를 샅샅이 뒤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감사 기간의 마지막 날의 감사일보에는 감사반장이 아무런 지시사항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고한 관례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 문서 검증의 결과는 현준희 씨의 직근 상급자인 조모 감사반장이 감사기간 마지막 날의 감사반장 지시란에 “사업의 연계성 여부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입증이 안 되고 있다”라고 기재한 것이 사후에 진실을 은폐할 의도로 가필한 것이라는 현준희 씨의 주장이 타당한 것임을 입증하여 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감사원에 대한 문서 검증 결과는 대법원이 유죄 판결의 근거로 삼았던 현준희 씨의 공문서변조 행위가 사실은 진실이 은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었음을 인정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 이후 사건의 방향이 크게 선회했다.
그후 환송심 재판부는 이미 정년으로 감사원에서 퇴직한 고소인인 남 모 전 국장을 다시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였는데, 이 신문 과정에서 남 모 씨는 현준희 씨로부터 국장이 감사 기간에 감사중단을 지시하였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 ‘감사자 견해서’라는 제목의 문서를 현준희 씨로부터 받고도 꾸중이나 질책도 하지 않은 채 상당기간 보관하다가 그냥 돌려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결정적인 증언을 하였다.
이 ‘감사자 견해서’라는 문서는 말하자면 남 모 씨의 주장과는 정면으로 상충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이런 ‘항명’과도 같은 문서를 부하직원인 현준희 씨로부터 받고서도 꾸중이나 질책은 물론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않고 그냥 보관하다가 현준희 씨에게 돌려주었다고 하는 것은 위계질서가 뚜렷한 공직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대법원 판결 이전의 1, 2심 재판부는 기록에 이미 편철되어 있던 ‘감사자 견해서’의 내용을 파악하고 그 진정성을 인정하여 현준희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는데, 대법원이 어찌하여 이러한 결정적인 문서의 존재를 무시하고 유죄의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인지 관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환송심 법원의 무죄 판결이 나오게 된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일 어려웠던 것은 대법원 판결의 무게였다. 환송심에서는 재판부가 몇 번 바뀌었는데, 전임 재판부로부터는 대법원 판결을 심히 의식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현준희 씨의 증거신청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든가 재판을 조기에 끝낼 듯한 태도는 현준희 씨를 무척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인상은 대법원에서 불리한 판결을 받은 변호인의 선입견에 의한 착각이었기를 바란다.
환송심 재판부의 용기
환송심을 최초로 담당한 전임 재판부는 현준희 씨가 감사원에서 보관 중인 감사일보에 대한 문서 검증을 시행해 달라고 애가 타도록 요청하였는데, 감사원에 대한 사실조회 이외에는 허용할 수 없다는 고집스러운 태도를 견지하여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국가기관 간에 상호 위상을 존중하여 준다는 것이 그 뜻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감사원 자체의 명예가 걸린 사건에서 감사원으로부터 성의 있는 답변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을 너무 안이하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전임 재판부의 거부로 감사원에는 “감사 기간 최종일의 감사반장 지시란에 감사반장의 지시가 기재된 건수를 알려 달라”고 조회하였더니, 감사원은 “감사일보는 감사를 주관한 감사반장이 소속된 과별로 보관되어 있고 통합적으로 관리되고 있지 않으므로 최종일에 감사반장의 지시가 기재된 건수를 파악하기 곤란하다”고 회신했다.
나중 후임 재판부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문서 검증의 결과에 비추어 볼 때 감사원의 위 회신은 의도적으로 진실을 은폐한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에 유리한 것이었다면 날밤을 새워서라도 사실대로 회신하였을 것을 생각하면 법원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사실조회는 설령 그 대상이 국가기관이라 할지라도 왜곡될 수 있다는 경계심을 품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다.
사필귀정
냉정히 평가하자면 대법원의 판결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깊은 인식과 배려의 부족에서 내려진 것이고, 어쩌면 내부고발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보인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대법원의 결론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환송심 법원의 판결은 내부고발자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배려를 전제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건설적이고 희망적인 판결이라 할 수 있다.
내부고발자를 ‘조직의 배신자’로 바라보는 시각과 ‘사회의 소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정리되지 못한 채 혼란스럽게 공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내부고발자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환송심 법원의 판결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교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판결이다.
사법 관료화가 염려되는 상황에서 대법원 판결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용기’와 ‘열린 마음’으로 사건 심리를 진행한 환송심 법원의 자세 역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현준희 씨 사건이 환송심 법원에서 다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은, 적어도 현준희 씨의 ‘양심선언’이 누구도 쉽게 무시 못할 정당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해 준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2008년 11월 13일 대법원에서도 환송심 법원의 판결이 유지되어 무죄가 확정되었다. 그렇게 현준희 씨의 ‘양심선언’은 끝내 올바른 행동이었음을 법적으로 최종 평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