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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마라톤을 뛰기에는 너무나 허약한 존재라는 이유로 ‘달릴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먼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일이 아니다. 1967년 4월 19일, 미국의 보스턴 마라톤 경기에 캐스린 스위처(Kathrine Switzer)가 261번이라는 번호를 달고 출전했던 그때가 그랬다.

  • 여성이 뛰면 자궁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 다리가 너무 굵어진다는 이유로
  • 가슴에 털이 자라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 여성은 올림픽에서마저 800m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아래 사진에서, 그녀를 뒤에서 잡고 저지하려는, 까만 옷을 입은 남자는 이 대회 조직위원장 조크 셈플(Jock Semple)이고, 그녀를 방해하려는 사람들을 저지하고, 그녀의 옆에서 계속 뛰게끔 도와주는 사람은, 캐스린의 코치 알니 브릭스(Arnie Briggs)다.

출처: Jock Semple tente d'empêcher Kathrine Switzer de courir le marathon de Boston, le 19 avril 1967 (Getty)
출처: Jock Semple tente d’empêcher Kathrine Switzer de courir le marathon de Boston, le 19 avril 1967 (Getty)

이 사진 속에선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먼저, 캐스린 스위처에 한 해 앞서 바비 깁(Bobbi Gibb)이라는 여성이 번호표 없이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숨긴 채로 3시간 21분이라는 기록으로 마라톤을 완주했다. 이를 보고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마라톤을 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브릭스 코치는 대륙 횡단 일주에서 알게 된, 뛰는 것을 좋아하고 실력이 있는 캐스린에게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해 볼 것을 제안한다.

보스턴 마라톤 당일, 출발점에 선 캐스린에게 누가 이렇게 얘기한다.

립스틱 “아니 캐스린, 립스틱을 발랐잖아?”

“난 항상 립스틱을 바르는데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거야? “

“그럼 사람들이 네가 여자인 걸 모두가 알게 된다고, 그럼 널 뛰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그걸 얼른 지워! “

“난 절대로 내 립스틱을 지우지 않을 거야”

그렇게 출발한 캐스린이 6km 지점을 막 통과할 때 취재 차량 옆을 지나치게 되었고, 그들은 곧 마라톤 경기에 ‘여자’가 있음을 눈치챈다. 그리고 즉시 무언가 느낀 캐스린은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곧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증오로 뒤덮인 사악한 얼굴을 마주한다. 대회조직위원장이었던 조크 셈플이 카스린에게 달려들어 “이 경기에서 꺼져버려! 그리고 네 번호를 내 놔!”라며 어깨와 등을 잡아당긴 것이다.

A woman, listed only as K. Switzer of Syracuse, found herself about to be thrown out of the normally all-male Boston Marathon when a husky companion, Thomas Miller of Syracuse, threw a block that tossed a race official out of the running instead, April 19, 1967 in Hopkinton, Mass.(AP PHOTO)
캐스린에게 달려드는 조크 셈플 대회조직위원장과 그를 내동댕이치는 캐스린의 남자 친구 톰 밀러. (출처: AP PHOTO, 재인용 출처: nouvelobs via Harry Trask, Boston Herald)

그걸 본 그녀의 남자친구였던 톰 밀러(Tom Miller)가 그를 제지하며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옆에서 그녀의 코치 알니는 그녀에게 외친다.

“한 번도 달려본 적 없던 것처럼, 그렇게 달려! “

패닉에 빠진 캐스린은 스스로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내가 지금 포기하면, 더이상 사람들은 여성이 42km 혹은 그 이상을 뛸 능력이 있다는 걸 믿으려 하지 않을 거야. 내가 포기하면, 모든 사람이 이게 단지 눈길을 끌기 위한 광고였을 뿐이라고 생각할 거야.

내가 포기하면, 여성스포츠는 진보하기는커녕 더 퇴보하고 말 거야. 내가 포기하면, 난 다시는 보스턴 마라톤을 뛸 수 없을 거야. 내가 포기하면, 저 조크 셈플과 그와 같은 족속의 인간들이 기뻐할 거야.’

그리고 곧 캐스린의 두려움과 창피함은 분노로 바뀌어 갔다. 그렇게 한 해 앞서, 바비 깁이 번호표를 부여받지 못한 상태로 비공식 기록 3시간 27분의 마라톤 질주에 이어, 이듬해 캐스린 스위처는 4시간 20분이라는 기록으로 마라톤을 완주한다.

결승점에 도달한 캐스린을 기다리고 있던 건 기자들의 ‘연발 미사일’ 질문들이었는데, 그들이 마지막에 던진 질문은 마치 오늘날 여성 인권을 말하기만 해도 “너 메갈이야~?”라는 질문으로 사상 검증을 하려는 시도와 일맥상통한다.

“당신은 ‘서프러지스트'[footnote]서프러지스트(suffragist): 여성 참정권론자, 참정권 확장론자. [/footnote]입니까? “

” 네? 우리는 이미 1920년에 투표권을 얻었고 지금은 1967년이에요!”

이후 캐스린은 미국 선수연합에서 제명이 됐고,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마라톤 도착지점을 넘는 순간, 나는 이게 내 삶의 전투가 되리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1972년, 조크 셈플 보스턴 마라톤 조직위원장은 스스로 여성의 마라톤 출전을 허용한다.

남성에게 당연하게 주어진 모든 분야에서의 권리를, 여성은 이렇게 오랫동안 천천히 하나하나씩 그들의 권리를 투쟁을 통해 쟁취를 해왔다. 첫 여성의 투표권이 그랬고, 첫 여성의 달릴 수 있는 권리가 그랬고, 첫 여성의 운전면허 소유 허용과정이 그랬고, 첫 여성 변호사의 탄생이 그랬다.

그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남성들의 모욕과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 공포, 창피함은 분노로 승화되어 어떤 사명감을 느끼게 한다. 나도 반드시 네가 가지는 그 당연한 자유를 가지고 말 거라는. 그렇게 나의 개별적 경험과 삶은 모든 여성의 전투가 되는 것이다.

느리지만, 결코 뒤로 가지는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진보한다.

2011년 베를린 마라톤 엑스포에 참가한 캐스린 스위처의 모습 (CC BY SA, 위키미디어 공용) https://ko.wikipedia.org/wiki/%EC%BA%90%EC%8A%A4%EB%A6%B0_%EC%8A%A4%EC%9C%84%EC%B2%98#/media/File:Kathrine_Switzer_at_the_2011_Berlin_Marathon_Expo.jpg
2011년 베를린 마라톤 엑스포에 참가한 캐스린 스위처의 모습 (출처: CC BY SA, 위키미디어 공용)

[box type=”note”]이 글은 ‘여성 마라토너: 캐스린 스위처가 여성의 달릴 권리를 부여했을 때’(원제: ‘La marathonienne : quand Kathrine Switzer donnait le droit de courir aux femmes’,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Amandine Schmitt 기자)라는 기사를 번역한 내용에 바탕해 필자의 의견과 논평을 더한 글입니다. (편집자)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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