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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막내 동생 어진이.

축구선수 꿈꾸는 막내 동생 

어진이는 세계적인 축구선수를 꿈꾼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실력이 출중한 편인 동생은 전교생이 100명 남짓한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월·화·수·목·금요일 내내 축구를 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도토리축구단이 되어 다른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늘 연습한다. 동생은 오늘도 축구단에서 두 골이나 넣었다.

그런데 동생은 내일모레 열리는 학교 스포츠클럽에서 열리는 축구경기에 참가하지 못한다. 내 동생은 여자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 도대체 왜?? 

내 동생을 포함한 총 세 명의 여자 학생은 다른 남학생의 실력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동생은 중학교에 진학한 뒤 축구부 활동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동생이 가져온 스포츠클럽 참가 신청란은 [남자: 축구/ 여자:피구]로 나뉘어져 있었다.

여자는 축구를 신청할 수 없고, 남자는 피구를 신청할 수 없다. 어진이는 다른 여자친구들과 함께 선생님께 가서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하니 선생님은 주민번호상의 이유를 대며 ‘여자는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어진이는 이런 이야기들을 나와 엄마에게 묵묵한 말투로 전했다. 하지만 너희는 ‘여자라서 못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던 동생과 친구들의 표정은 과연, 정말로 담담했을까.

왜 여자는 축구를 하면 안 되지? 왜 남자는 피구를 하면 안 되지?? (왼쪽: 슈팅 라이크 베컴, 오른쪽: 피구왕 통키)
왜 여자는 축구를 하면 안 되지? 왜 남자는 피구를 하면 안 되지?? (왼쪽: 슈팅 라이크 베컴, 오른쪽: 피구왕 통키)

동생은 내일 참가를 희망하는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께 이야기하러 가기로 했다. 동생과 늘 축구 하는 그리고 ‘축구 할 수 있는’ 두 남자친구도 함께 선생님께 가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여자도 축구 할 수 있다고, 하고 싶다고 말이다.

“하고 싶은데 어쩌라고!” 울음 터뜨린 동생  

내일 선생님께 전할 말을 연습하던 동생은 “내일 말하다가 울면 어떻게 하지”하고 걱정했다. 그리고 이내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은 뜨거운 얼굴을 비비면서 “하고 싶은데 어쩌라고”라고 했다. 그래,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내가 여자인데 어쩌라고. 그게 잘못이란 말인가. 내가 여자라서, 이렇게 속상해야 하고 화가 나야 하는 것은 몹시 억울한 일이며 잘못된 일이다. 왜 학교는 더 나아가 사회는 어린 아이에게 ‘여자’라는 굴레를 씌워 상처를 주는가. 왜 아직도 그러는가.

초등학생 울다 소녀 사람 꼬마 아이 어린이 우는 소녀

웃기다면 웃긴 지점. 현재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축구교실에는 모든 성별이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까지 학교에서 진행했던 (메르스 사태로 취소된 작년을 제외하고는) 축구시합에서 지금까지 한번도 참가신청에 성별의 제한을 둔 적이 없다. 왜 학교가 이런 전근대적인 결정으로 퇴행했는지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를 내세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대와 동떨어져 퇴행하는 학교 행정 

내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우리는 2016년에 살고 있고, 이는 지금이 대한민국에서 성차별을 비롯한 성소수자 담론이 가장 뜨겁게 이뤄지고 있는 시기라는 거다. 기존의 성별제한을 없애는 방법을 모색해도 모자를 판에, 점점 뒷걸음질 치고 있는 학교 행정을 이해할 수 없다.

교실 학교

페미니즘을 포함한 인권교육을 들으면서 나는 어떤 미래를 바랐다. 나는 동생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내 동생이 머리가 짧고, 남자들과 어울려 다니며, 축구를 좋아한다고 해서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일이 동생에게 이런 일이 닥쳤을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어서, 동생에게 용기를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동생에게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지 않아서 너무도 다행이었다.

분하고 짜증난다! 

이 글을 쓰는 걸 동생이 보고는 “나는 지금 분하고 짜증난다고 꼭 넣어줘”라고 부탁했다. 동생에게 고마웠다. 숨지 않고,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아이로부터 나는 어쩌면 내가 바라던 미래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가 어떻든 내일 어진이는 한번 더 크게 자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마지막으로 바란다. 부디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낸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를 다시는 무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동생은 내일 입을 축구복을 가방에 챙겨 놓았다.

유니폼 입은 어진이. 축구선수가 꿈이다. (사진 제공: 조국장)
어진이는 축구선수가 꿈이다. (사진 제공: 조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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