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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활동가 A, ‘비영리’에게 이별 편지를 쓰다

비영리에게

인턴일 때가 좋았어. 아니 후원 회원일 때가 더 좋았지. 멀리서 바라보는 너는 멋진 존재였어. 너와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어. 너를 만나며 성장할 나를 상상했지.

너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어. 최저임금 가까운 연봉에도 너는 경력직을 원했지. 몇 군데 인턴을 경험하고서야 너에게 다가갈 수 있었어. “경력직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냐?” 라는 말은 개그 프로그램에만 있는 게 아니었어.

무수히 많은 이름표를 만들고 풀칠과 가위질을 했어. 원래 처음엔 다 그렇대. 그럴 거면 경력은 왜 찾았는지 모르겠어. 가위질을 하며 생각했어. 기업에 입사한 내 친구가 한 달 동안이나 지겨운 신입사원 연수를 받는다고 푸념했는데, 그 재미없는 연수라는 것도 받아봤으면 하고.

“무수히 많은 이름표를 만들고 풀칠과 가위질을 했어.” (출처: UNclimatechange, Delegate name tags, CC BY) https://flic.kr/p/grrq7T

“무수히 많은 이름표를 만들고 풀칠과 가위질을 했어.” (출처: UNclimatechange, “Delegate name tags”, CC BY)

잡무에 지칠 때 즈음 드디어 일이 떨어졌어. 외부에서 들어온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게 된 거야. 기쁨도 잠깐,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생소한 분야에 던져져 허우적댔지. 친절하고 바쁜 선배들은 참고하라며 자료 몇 개를 던져줬어. “다 그렇게 배우는 거야.”라는 말과 함께.

외부 전문가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자문을 얻고 일을 해 나갔던 것 같아. 나는 그나마 밖에서 배울 기회를 많이 찾았지만, 내근 위주인 후배는 안에서 성장동력을 못 찾고 힘들어하다가 그만뒀어. 잘 크느냐 마느냐는 조직의 도움이 없이 온전히 개인 역량에 맡긴 것 같아.

선배들은 전문성을 쌓으라고 해. 저년 차 때는 잡무 하느라고 전문성 쌓을 기회도 없어. 밖에서 교육이나 행사 있으면 좀 빼주면서 말하던가. 전문성은 개인이 알아서 쌓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대학원에 갔어. 일에 치이니 공부할 시간도 마음도 없어. 연봉에 가까운 등록금도 아깝고, 이렇게 학위를 따서 내가 이 조직에서 성장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어.

가장 힘든 건 너와의 불투명한 미래야. 10년, 20년 후에 내가 무얼 하고 있을지가 그려지지 않아. 내 목표는 뭔지도 모르겠어. 비영리에서 성공한 케이스라고 하면 어디 가서 기관장을 하거나 정치를 하는 것 같아. 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어. 여기저기 비영리 활동가의 롤모델을 물어본 적이 있어. 답은 없더라. 후배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는 것, 좋은 환경을 남겨주는 게 아닐까 얘기해 본 적이 있어.

“가장 힘든 건 너와의 불투명한 미래야” (출처 : flickr CCL @tylana) Tylana, Simple Sail, CC BY SA_compressed https://flic.kr/p/aqBT1n

“가장 힘든 건 너와의 불투명한 미래야” (출처: Tylana, “Simple Sail”, CC BY SA)

단체에서 수십 년 일한다고 단체 장이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정작 단체 대표들 보면 외부에서 교수나 변호사 하던 사람들이 오는 것 같아. 시민사회에서 활동가가 승급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 그럼 비영리 활동을 하던 수많은 선배들은 노후에 무얼 하고 있을까? 알고 싶어.

‘영리’처럼, 승진이 곧 성장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비영리에서 성장은 뭘까? 답을 찾기 어려운 것 같아. 고개를 돌려보면, 나랑 같은 시기에 영리에 입사한 친구는 그래도 과장을 달았어. 나에게는 무엇이 성장의 증거인지 잘 모르겠어. 그런 고민도 가끔 사치같이 느껴져. 이 급여로 집은 마련하고 결혼은 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야.

Tetsumo, CC BY https://flic.kr/p/7GxjXM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출처: Tetsumo, CC BY)

우리 주변 대표들을 보면 책 쓰고 강연 다니다가 어딘가 장을 맡는 게 잘 풀린 경우인 것 같아. 씁쓸한 모습도 보여. 본인들은 벌써 리더 격인데 아직도 할 일이 많다면서 책 쓰고 강연 다니는 동안 청년 활동가들이 뒤치다꺼리나 하는 것 같아. 문득 의문이 들어. 내가 하는 일이 사회를 좋게 만드는 건지, 저 리더의 이름값을 높이는 데 동원되는 건지 말이야. 비영리, 그때부터 너에 대한 불신이 싹텄다고 고백할게.

어떤 활동가들은 귀농하거나,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소박하게 사는 거에서 대안을 찾았대. 좋아 보여. 하지만 그런 삶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안 맞는 사람도 있고 그건 ‘개취'(개인의 취향) 아니겠어? 모든 비영리 활동가에게 그런 미래를 살라고 할 순 없잖아. 비영리 활동가에게도 다양한 미래상을 그려볼 롤모델이 보이면 좋겠어.

선배 활동가들이 조직에서 자기 성장에만 매몰돼 있거나 때로는 사내 정치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지 몰라. 활동가의 노후가 불투명하니까, 조직이나 이 분야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닐까 싶어. 20년 후에 내가 이 월급으로 생계를 잘 꾸리고 있을까? 나는 성장했을까? 발버둥 치는 선배가 아니라 후배들을 키워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은퇴 후 삶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난 너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그렇지만 지금은 너와 함께 갈 길이 보이지가 않아. 대학원 대신 기술을 배웠어야 하나 봐. 닮고 싶은 활동가 롤모델을 찾고 싶어. 활동가의 노후를 함께 준비하는 사람들을 찾거나. 그렇지 않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너와 이별을 생각할 것 같아.

길 미래 철길 기차 전망 내일

2016년 2월, 2030 비영리 활동가들이 ‘대나무숲’에 모여 ‘비영리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습니다. 비영리를 사랑하기에 기대도 많았던 젊은 활동가들은 어느새 지쳐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조직에서는 권위에 눌려, 선배에게 미안해서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여기에 털어놓습니다.

가상의 2030 비영리 활동가 A, B, C의 입을 통해 우리가 나눈 고민을 몇 차례 전달하려 합니다. 미래의 비영리를 위해서는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궁금하기도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선배와 독자의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출처: 더 플랜B)

이 글은 위와 같은 취지로 시민·공익활동 인터넷 미디어 “더 플랜B”에서 기획한 ‘2030 대나무숲’의 첫 글입니다. 슬로우뉴스 원칙에 따라 편집해서 발행합니다. (편집자)

  1. → 젊은 활동가 A, ‘비영리’에게 이별 편지를 쓰다
  2. 젊은 활동가 B, 비영리의 ‘조직문화’를 묻다 (발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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