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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2015년 9월 19일, 일본 아베 내각은 총 11개 쟁점 법안 개정을 포함한 이른바 ‘안보법안’을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습니다. 한국 대다수 언론과 국민은 법안 통과에 우려를 표합니다. 더불어 일본 내 분위기도 비판 여론이 강합니다. 하지만 안보법안에 찬성하는 국가도 적지 않습니다. 안보법안의 내용과 쟁점 그리고 문제점을 세 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분석합니다. (편집자)

  1. 아베, 안보법안 강행 처리하다
  2. 자위대와 헌법 9조
  3. 안보법안의 다섯 가지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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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를 흔드는 어린 히로히토 왕 (1902)
욱일기를 흔드는 어린 히로히토 (1902)

(1편에서 계속) 

자위대는 창설 초기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본국 헌법 9조 2항은 일본의 전력 보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력 보유는 곳 헌법 9조 위반이다. 이 문제는 자위대가 군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느냐 마느냐와는 크게 관계가 없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헌법 9조 2항을 보자.

“전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본은 육해공군 및 그 외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헌법 제9조와 자위대 

헌법 9조 2항은 군대의 보유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력의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이름이 군대가 아니라고 해도 자위대는 그 외의 전력에 해당하기 때문에 헌법 9조 2항을 위반한다. 그런데 헌법 9조 2항에는 한가지 전제조건이 붙어 있다. 다시 한 번 잘 읽어보자.

전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본은 육해공군 및 그 외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 9조 1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헌법 9조 1항은 일본이 전쟁을 포기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을 포기할 목적으로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쟁이 목적이 아니라면 자위를 위해 전력을 보유한다고 해서 헌법을 위반하지는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자위대가 존재할 수 있는 헌법상의 명분이다. 오로지 일본이 침략을 받을 경우에 자국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자위대 전력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9조 위반 논란과 내각의 해석 

그럼에도 자위대의 존재가 헌법 9조 위반이 아니냐는 논쟁은 끊이지 않았고, 헌법상의 구문만으로는 자위대의 폭주를 제어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헌법 9조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해석을 명문화해서 사실상 헌법 9조를 보충하는 법안에 가까운 존재로 사용해왔다. 이것이 내각의 헌법 해석이다. 일본 정부는 60여 년 동안 이것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는데, 다음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다.

‘헌법 9조는 자위 전쟁은 포기하지 않았지만, 제2항의 전력불보유와 교전권 부인의 결과로서 모든 전쟁을 포기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이 냉전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최소한의 방어를 위해 전력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타협안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특수한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헌법 9조를 위반하지 않는 명확한 범위 설정이 필요했고,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서 등장하게 된 개념이 바로 타인 방어를 의미하는 집단적 자위권이다. 집단적 자위권 개념의 등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오역으로 생겨난 ‘집단적 자위권’ 개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국제 사회는 전쟁을 불법화하려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런 배경 아래에서 1945년 만들어진 유엔헌장에는 자위권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다. 그런데 일본은 유엔헌장의 영문 원문을 번역하면서 유엔 가맹국의 자위권을 인정하는 51조의 내용을 일부 오역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개념이 일본 고유의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 개념이다. 우선 유엔헌장 51조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국제연합 가맹국에 대하여 무력 공격이 발생한 경우에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 평화 및 안전의 유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개별적 혹은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

영어 원문: Nothing in the present Charter shall impair the inherent right of individual or collective self-defence if an armed attack occurs against a Member of the United Nations, until the Security Council has taken measures necessary to maintain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Measures taken by Members in the exercise of this right of self-defence shall be immediately reported to the Security Council and shall not in any way affect the authority and responsibility of the Security Council under the present Charter to take at any time such action as it deems necessary in order to maintain or restore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일본어 번역: この憲章のいかなる規定も、国際連合加盟国に対して武力攻撃が発生した場合には、安全保障理事会が国際の平和及び安全の維持に必要な措置をとるまでの間、個別的又は集団的自衛の固有の権利を害するものではない。

이러한 내용이다. 원문에 등장하는 “this right of self-defence”는 자기 방어와 타인 방어를 모두 포함하는 행위로,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을 모두 포함한 정당방위를 의미한다. 그래서 원문의 “individual or collective self-defence”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권한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엔헌장 51조의 “collective self-defence”는 ‘권역내 정당방위’ 정도의 의미이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이야기하는 집단적 자위권 개념은 국제법상에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처음에는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자위대 창설의 근거를 제공한 구안보조약에서 자위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두 번 나오는데, 그 대목을 한번 확인해보자.

일본국은 오늘 연합국과 평화조약(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서명했다. 일본국은 무장을 해제당하였기에 평화조약의 효력 발생과 함께 고유의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日本国は、本日連合国との平和条約に署名した。日本国は、武装を解除されているので、平和条約の効力発生の時において固有の自衛権を行使する有効な手段をもたない。

Japan has this day signed a Treaty of Peace with the Allied Powers. On the coming into force of that Treaty, Japan will not have the effective means to exercise its inherent right of self-defense because it has been disarmed.

평화조약은 일본국이 주권국으로서 집단적 안전보장 결의를 체결하는 권리가 있음을 승인하며, 그에 더해 국제연합헌장은 모든 국가에 개별적 및 집단적 자위의 고유 권리가 있음을 승인하고 있다.

平和条約は、日本国が主権国として集団的安全保障取極を締結する権利を有することを承認し、さらに、国際連合憲章は、すべての国が個別的及び集団的自衛の固有の権利を有することを承認している。

The Treaty of Peace recognizes that Japan as a sovereign nation has the right to enter into collective security arrangements, and further,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recognizes that all nations possess an inherent right of individual and collective self-defense.

조약에서는 ‘고유의 자위권’이라는 표현이 나오며, 유엔헌장에서 모든 나라의 ‘개별적 및 집단적 자위의 고유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문맥상 이것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자위권 그 자체를 지칭하고 있다. 그러니까 일본도 처음에는 자위권이라는 개념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다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1959년의 스나가와 판결이다.

스나가와 판결

안보법안 논쟁에 관련해 헌법 해석을 수정하면서 아베 내각이 내세운 근거 중 하나가 1959년의 ‘스나가와 판결’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헌법재판소가 존재하지 않으며, 헌법에 대한 해석은 각 재판소(법원)가 개별적 사안에 대해 판결한 판례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1959년 스나가와 판결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했으니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은 사법부의 판단에 근거해 위헌이 아니라는 것이 아베 내각이 내놓은 해석이다.

미군 주둔은 헌법 위반이라는 1심 판결 

1957년 7월 8일 도쿄 스나가와쵸(현재의 타치카와시)의 미군 기지의 확장을 위해 조달청에서 측량을 하던 중에, 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데모대가 미군 기지의 경계 철책을 넘어 기지 내로 침입한다. 이 일로 7명이 형사특별법을 위반한 것을 근거로 기소되었다.

그런데 도쿄 지방 재판소는 1심에서 다음과 같이 판결하며 무죄를 선고한다.

일본 정부가 미군의 주둔을 용인하는 것은 지휘권의 유무, 출동의 여부와 관계 없이 일본국 헌법 9조 2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전력의 보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위헌에 해당하며, 형사특별법의 벌칙은 일본국 헌법 31조에 위반한다.”

이 판결은 큰 파문을 불러오는데,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는 것이 곧 헌법 9조를 위반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1심 재판 결과는 미국에도 큰 충격을 주었고, 전략적 거점인 일본을 잃을 수 없었던 미국은 일본에 정치적 압력을 행사한다(2008년 비밀 해제가 된 문서를 통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결과적으로 기소된 사람들은 2심과 3심에서 유죄를 선고받는다. 그리고 3심 판결문이 일명 다나카 판결문으로도 불리는 스나가와 판결문이다.

1심 뒤집은 2심 그리고 3심(일명 다나카 판결문 = 스나가와 판결)

아베 내각이 사법부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합헌으로 인정했다는 근거로 내세운 판결문의 내용을 한번 확인해보자.

헌법 제9조는 일본이 주권국으로서 지닌 고유의 자위권을 부정하지 않으며, 동조가 금지하고 있는 전력이라는 것은 일본국이 지휘・관리할 수 있는 전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외국의 군대는 전력에 해당하지 않는다.

憲法第9条は日本が主権国として持つ固有の自衛権を否定しておらず、同条が禁止する戦力とは日本国が指揮・管理できる戦力のことであるから、外国の軍隊は戦力にあたらない。

이 판결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갖는지를 판가름하기 위한 재판이 아니었기에 자위권에 대한 판결은 재판의 주요 쟁점이 아니었다. 아베 내각이 재판의 판결문을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고 있음에도, 실제 판결문에는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쓰인 용어는 “고유의 자위권”(固有の自衛権)이다. 일본국 헌법은 본래 자위권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한 내용이다. 아베 내각은 판결문에서 헌법 9조가 일본이 지휘하고 관리 할 수 있는 전력을 금지하고 있을 뿐 자위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으며, 문맥상 이것은 집단적 자위권을 의미한다는 논리다.

판결 법원 재판

‘고유의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  

일본에서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일본 정부의 공식적 문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8년의 내무위원회의 회의록에서다.

그러니 1959년에는 아직 일본에서도 자위권을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위 판결문에서 말하는 고유의 자위권은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만 생각하면 아베 내각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아베 내각의 주장이 모순인 이유 

하지만 이 판결문은 이 짧은 두 줄의 내용만으로도 아베 내각의 주장이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판결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① 헌법 제9조는 일본이 주권국으로서 지닌 고유의 자위권을 부정하지 않으며,
② 동조가 금지하고 있는 전력이라는 것은 일본국이 지휘・관리할 수 있는 전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③ 외국의 군대는 전력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① 헌법 9조는 일본의 자위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자위권의 개념에서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던 시기이니 여기서 말하는 자위권에는 집단적 자위권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②에서 헌법이 자위권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헌법에서는 일본이 지휘・관리할 수 있는 전력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아베 내각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근거로 내세운 이 판결문에서조차 일본의 전력 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③을 보면 외국의 군대는 헌법에서 금지하는 전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구안보조약에 의해서 일본에서는 미국 이외의 타국의 군대가 주둔할 수 없으므로 이것은 미군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미국 군대의 주둔은 합법적이라는 의미다. 이 재판은 애당초 ‘외국 군대는 전력에 해당하지 않음'(③의 내용)을 결론짓기 위한 판결이었다. 그러니 ①과 ②는 ③이 위헌이 아니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헌법 9조의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스나가와 판결은 자위권 행사 근거가 될 수 없다  

스나가와 판결의 쟁점은 일본이 주일미군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헌법 9조를 위반하느냐는 것이다. 만약 주일미군이 사실상의 전력에 해당한다면 헌법 9조 2항을 위반한다고 할 수 있는지가 재판의 가장 큰 쟁점이었다.

이 판결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용인하는 판결도 아니고, 자위권에 대한 헌법 해석이 이루어진 판결도 아니다. 그래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헌법 상의 권리라는 근거로 이 판결을 제시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수라고 할 수 있다.

스나가와 판결로 촉발된 반미 운동

스나가와 판결은 당시 일본 내에 강하게 퍼져 있던 반미 운동의 불씨가 되었고, 이것이 1959년 기시 노부스케 내각의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대한 반대 운동으로까지 이어져서 이른바 ‘안보투쟁’이라고 부르는 상황으로 발전한다. 이때의 총리였던 키시 노부스케가 바로 아베 신조 총리의 할아버지다.

기시 노부스케(1961)과 그의 손자 아베
기시 노부스케(1961년 모습)와 그의 손자 아베  

일본이 전수방위[footnote]전수방위: 전수방위란 외부의 공격을 받은 후에 군사력을 행사하며, 그 정도는 자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치고, 상대국에 대한 선제공격이나 전략공격을 금지하며, 자국 영토 혹은 주변에서만 작전하며, 상대국의 침공이 있을 때마다 격퇴한다는 것으로 지극히 사후적이고 수동적인 군사전략이다. 이로 인해서 무기 체계도 최소한의 방어력의 보유에 한정되며, 공격형 무기의 보유는 금지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참고: 조양현, 일본 방위안보정책의 변화와 전망)[/footnote]의 원칙을 벗어나 전쟁을 수행하는 것과 일본 헌법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는가는 큰 연관성이 없다.

그러니까 집단적 자위권을 논제로 들고 나온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일본은 헌법에서 한 번도 자위권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일본 헌법이 전력 보유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을 뿐이다. 역대 일본 내각이 일관되게 유지해 온 전수방위의 원칙도 이러한 헌법 내용에 준거한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 헌법이 자위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해도 전쟁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 성립될 경우에는 헌법 9조 2항을 위반하게 된다.

안보투쟁(1960)

구안보조약은 전형적인 불평등 조약이었다. 구안보조약은 일본에는 오로지 미국 군대만 주둔할 수 있고(일본 군대는 헌법 문제로 일본에 존재할 수 없다), 일본에 내전이 발생할 경우에 미군이 곧바로 개입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한다. 그럼에도 미군이 일본의 방위를 책임진다는 내용은 명문화하지 않았다.

이러한 불평등한 내용을 수정하고자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의 개정 교섭이 이루어졌고, 내란에 대한 내용 삭제, 미·일 상호 방위 협력 체계에 대한 명문화, 주일미군의 배치와 장비에 대한 양국 정부의 사전 협의 제도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일본 학생, 시민이 구안보조약 체결에 반대해 반미 시위하는 모습. 이른바 '안보투쟁'(1960)
일본 학생, 시민이 미국과의 안보조약 체결에 반대해 반미 시위하는 모습. 이른바 ‘안보투쟁'(1960)

하지만 법안은 엄청난 반대에 부닥치게 된다. 조약의 불평등성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신안보조약은 일본이 공격을 받는 상황뿐만 아니라 주일미군이 공격을 받을 경우에도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대체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신안보조약은 명문화된 내용에 준거하자면 일본이 전쟁에 다시 말려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시 수상인 키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인 도죠 히데키 내각의 요인이었던 인물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일 일정에 맞춰서 법안을 무조건 성립시키려고 여러 절차를 무시하고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엄청난 반대 여론이 형성되었고, 일본 전국은 안보투쟁으로 큰 홍역을 치른다. (‘안보투쟁’의 여파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연기되고, 사실상 취소된다. – 편집자)

YouTube 동영상

신안보조약과 집단적 자위권 개념의 등장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0년 신안보조약은 체결된다. 신안보조약이 체결되면서 자위대는 또 다른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본은 헌법 9조를 통해 전쟁은 물론 전쟁 수행을 위한 전력의 보유를 영구히 포기했다.

1960년 이전까지는 구안보조약에 의해서 일본은 편의만 제공하고 미군은 암묵적으로 일본에 전쟁 수행을 위한 전력을 유지해주었다. 그래서 자위대는 헌법 9조를 위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활동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신안보조약이 미국과 일본의 공동 방위 의무를 명문화하면서 자위대 활동에 대한 논란이 발생한다. 문제는 다음과 같다.

‘만약 주일미군이 공격을 받는 상황이라면 공동 방위 의무에 따라서 자위대가 출동해야 하는가?’

그렇게 된다면 일본은 적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았는데도 타국에 무력을 행사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헌법 9조를 위반하게 된다. 이렇듯 동맹국이 공격을 받았을 때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타인 방어’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공격을 받았을 때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자기방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유엔헌장 51조에서 보장하는 자위권의 두 가지 행사방법(“individual or collective self-defence”)에 각각 대입할 수 있다.

일본어 번역문에서는 이것을 ‘개별적 혹은 집단적 자위’라고 했기 때문에 자기방어는 ‘개별적 자위’, 타인 방어는 ‘집단적 자위’로 나누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행사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각각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정착된다.

이 용어들은 신안보조약 체결 이후에 일본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면서 일반적인 용어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개별적 자위권은 자기 방어, 집단적 자위권은 타인 방어를 의미하는 말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신안보조약 성립 후의 일본은 조약상으로는 미국에 대한 타인 방어의 의무를 준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일본은 헌법 9조가 타인 방어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미군이 공격을 받아도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 된 것이다. 이것을 조금 어렵게 말하면 “일본은 개별적 자위권만을 행사할 뿐 집단적 자위권은 헌법 9조에 위반되기 때문에 행사하지 않는다”이다. 이러한 타인 방어에 대한 우려의 인식을 잠재우기 위해 역대 일본 내각은 헌법 9조가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헌법 해석을 일관되게 유지해 온 것이다.

여기서 일본은 아프간과 이라크에 파병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자위대를 파병한 것은 전후 평화 활동, 비전투 지역에서의 구호 활동, 비전투 지역에서의 급유 활동 같은 것들이다. 동맹국이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무력행사를 하기 위해 참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PKO(Peace Keeping Operation; 평화유지활동)로 해당 지역에 자위대를 파견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요청으로 실질적으로 병력 파견을 하더라도 헌법 9조는 위반하지 않는 상황을 철저하게 지켜왔다.

자위대
자위대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취해왔던 입장은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공식문서 상에 처음 등장했던 1978년 내무회의 자료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당시 사다 내각 법제국 장관의 발언을 보자.

자위권에는 통례적으로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의 두 종류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제법상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안보조약은 물론 대일평화조약(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등 다양한 조약들에도 쓰여있는 것입니다. 다만 국내법상, 즉 헌법상에서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형태로 일본이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디까지나 일본 자신이 무력 공격을 받았을 경우에 이것을 방위하겠다는 내용, 즉 국내법상에서는 헌법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개별적 자위권밖에 행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自衛権には、通例個別的自衛権と集団的自衛権の二色があるというふうに言われておりますが、わが国といたしましては、国際法上は個別的自衛権も集団的自衛権も両方とも持っている。これは安保条約なり対日平和条約なり、いろんな条約にも書いてあります。ただ国内法上、つまり憲法上は集団的自衛権という形において日本が自衛権を行使するということはできない。あくまでも日本自身が武力攻撃を受けた場合にこれを防衛するという内容、つまり国内法上は憲法の制約がありますので、個別的自衛権しか行使できないという考えでおります。

– 1978년 내부회의 회의록

일본이 영해나 영토 내에서 타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우선하여 일본 자위대가 방어하고, 자위대만으로 방어가 안 될 경우에는 미군이 지원군을 보내게 되어 있다.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만약 미군이 적을 먼저 발견해서 교전을 벌였다고 가정해보자. 그럴 경우 일본은 신안보조약에 공동 방위의 의무가 있음에도 미군을 도와줄 병력을 보낼 수 없다. 헌법 9조에 의해 타인 방어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 입장에서는 매우 불평등한 구조고, 작전권이 미군에 있음에도 자위대를 병력으로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현재 미국에 있어서 일본은 기지 운영을 위한 편의를 제공하는 전략 거점에 불과하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신안보조약이 있기 때문에 적어도 일본 근해에서는 공동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동맹군이 되어야 하는데, 헌법 9조로 인해 이러한 구상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미군이 자위대와 더욱 유기적으로 작전을 펼치기 위해서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필요성이 있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까지 꾸준히 일본에 헌법의 개정을 요구해왔다. 이런 요구에 맞춰 일본 정부(정확히는 자민당)는 몇 번이나 헌법을 바꾸려고 시도했지만, 개헌에 대한 반대가 너무 심해서 몇 번이고 초안만 만들고 실제로 개헌을 시도하지는 못했다.

아베 내각, 헌법 못 바꾸면 해석 바꾸면 되지?

헌법 9조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전쟁하지 않는 나라,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지닌 일본인들이 많다는 것은 이번 안보법안 재정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일본을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대일본제국과 단절시키는 기준점이 되는 것이 바로 헌법 9조다. 현재의 민주주의 국가인 일본에 있어서 헌법 9조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해온 것이 바로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해석이었다.

자위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결과론적으로 헌법을 수정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커다란 장벽이 있다. 헌법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국민투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일본국 헌법 96조에는 헌법 개정에 필요한 순서가 명기되어 있는데, 중의원과 참의원 총의원의 3분의 2가 찬성해 국회에서 발의한 뒤에 국민투표를 실시해 승인받아야만 한다고 되어 있다. 일본 국회에서 아무리 헌법을 바꾸고 싶어도 국민투표에서 승인을 얻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헌법 9조 개정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아베 내각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헌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헌법은 그대로 두고 내각의 헌법 해석을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앞서 설명했듯이 일본의 역대 내각은 모두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 헌법 해석을 각의 결정만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아베 내각의 해석 변경에 따라 헌법 9조는 적어도 내각의 공식적인 입장에서는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해석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헌법 해석 변경을 기반으로 안보법안이 제출되었다. 이런 아베 내각의 행동에 대해 일본 내에서 법적 안정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의 여론이 거셌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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