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침몰했다.
2014년 1학기, 학생들이 한창 중간시험에 바쁠 무렵이었다. 누구나 그랬겠으나, 나 역시 뉴스 속보를 통해 뱃머리가 서서히 바닷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것을 그저 먹먹하게 지켜보았다. 배가 침몰한 적도 있고, 백화점이나 다리가 무너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현재진행형의 재난이 생중계된 바는 없다. 국가가 급파했다는 헬기도, 선박도, 그저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할 뿐 그 무엇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국가의 무기력함을 생생히 목격했다.
4·16 이후 캠퍼스 곳곳에 노란색 리본이 나부꼈다.
애도와 추모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분노와 저항의 의미가 더해졌다. 국가가 무기력했을 뿐만 아니라, 불성실하며 뻔뻔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4·16에서 우리 모두 확인하고자 한 바는 ‘국가가 최선을 다해 국민을 구조하는 것’이었다. 혹은 ‘자국민 구조에 실패한 국가가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 무엇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나는 국가의 행태에 깊이 실망하고, 분노했다.
캠퍼스의 노란색 물결과는 별개로, 강의실에서 세월호와 관련한 발화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정해진 커리큘럼을 따라가다 보니 곧 종강이었다. 그것이 강의실 안에서 의미화될 수 있었던 것은 2014년 2학기에 이르러서였다. 노란색 리본을 가방에 붙인 몇몇 학생들과 마주할 수 있었던 학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월호에 대한 발화는 무척이나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이 ‘정치성’을 가진 기표로 변질하였기 때문이다. 세월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특별법 제정’으로 수렴되어, 보수와 진보 흑백논쟁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평범한 정치적 인간이다.
그에 따라 내가 기대고 있는 ‘주의’가 있다. 하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정치 논리를 학생들에게 내비친 바는 아직 없다. 나는 강의실에서 ‘정치적인 것’을 다루는 데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내 주변 대학원생이나 젊은 강사들은 대부분 진보적 성향이다. 그 안에서도 많은 분파가 있어서 간단히 분류해 낼 수 없다. 투표권을 가진 이래 녹색당만 지지해 왔다는 선배도 있고, 노동당 당원 신분을 유지해 오다가 정의당으로 옮겨 간 후배도 있고, 노무현을 향한 향수만 가득한 이들도 있다. 물론 새누리당을 지지하거나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보수 성향의 교육감에게 표를 던진 주변인도 있다.
이처럼 개별 주체의 정치성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너와 나의 다양성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들 역시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이 있다. 어떤 ‘주의’를 이끌어 와 포장해 내지 않더라도, 모두의 일상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어떤 현상을 보고 누군가는 편안함을, 다른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한 즉각적 반응 역시 모두 저마다 내재한 정치성에 따른 바다.
최근 학생들이 바라보는 ‘정치성’이라는 것은 이전과는 달리 더욱 ‘합리성’에 기초해 있다. 어느 학생은 내게 말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 같은 진보적 인물이 참 좋아요.”
잘못 들었나 싶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왜 그를 진보적 인물로 생각하니?”
“군 가산점 제도에 대해 찬성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학생은 군 가산점 제도에 찬성하는 행위를 ‘진보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많은 학생이 더는 진영 논리나 그간의 ‘주의’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신이 상식과 합리라 믿는 것들을 모두 수용해 내는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김관진과 안철수는 ‘진보주의자’가 된다. 많은 학생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성으로 스스로 무장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그들이 사상사적 학습에 노출될 일이 적었던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치성이 세대에 따라 부분적으로나마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학생들이 ‘스스로 사유하는 주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강단 위에 선 교수자가 자신의 정치성을 드러내는 것은 옳은 방법론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것은 학생을 사유의 주체로 두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주체로 두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교수자를 존경하고 신뢰하는 만큼 학생은 어떠한 고민이나 성찰 없이 그에 이끌리게 된다. 그것은 건강한 토론이나 교육이 아니라 그저 ‘강요’가 될 확률이 높다.
교수자는 자신의 말을 줄이고, 학생들이 올바른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2014년도 2학기에는 결국 어떤 학생이 세월호를 화두로 제시했다. 나는 굳이 먼저 토론 주제로 삼지는 않았지만, 학생에게서 나온 세월호 발화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그리고 모두에게 자신의 세월호는 어디에 있는가를 물었다. 세월호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주변에 있고, 모든 인간은 이미 세월호의 선장임을 학생들이 스스로 인식할 수 있길 바랐다.
우리는 모두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가 있다.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학생, 선후배, 관계 맺고 있는 그 누군가를 위해, 서로는 선장이자 승무원으로서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한다. 배에 물이 들어찬다고 해서 구명조끼를 입고 홀로 헤엄쳐 도망갈 가장은 없다. 연인에게 상처를 주는 연인, 강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수는 승객을 버려두고 홀로 탈출한 세월호 선장과 다를 것이 없다. 세월호를 통해 나는 그동안 얼마나 부끄러운 선장이었는가 아프게 깨달았다. 세월호 선장을 비난하는 것으로 일차적 사유가 끝나서는 안 되고, 나는 한 사람의 선장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를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2014년도 2학기에는 가방에 노란 리본을 붙이고 다니는 학생이 두 명 있었다. 쉬는 시간에 우연히 보고, ‘리본이 참 예쁘다’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정치적 행위로 보일 것이고, 그에게 편향적 인물로 비추어질 것이 두려웠다. (나는 참으로 나약한 인간이다.) 이처럼 강박에 가까운 자기 검열을 거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강단에 선 한 인간이 짊어져야 할 무게일 것이다.
종강하는 날 따로 불러 ‘리본이 참 예뻤다.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결국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6개월을 더 기다려 2015년 4월 16일, 세월호 1주기에야 비로소 근황을 물으며 그때 감정을 전했다.
언젠가 학생이 내게 추궁하듯 물었다.
“교수님 일베하세요?”
‘일베와 오유’를 주제로 조별 발표를 하겠다기에 “제가 혹시 일베나 오유 유저라도 괜찮겠어요?”하고 농담 삼아 한마디 했더니 그는 그렇게 반응했다. 민감한 주제가 될 것을 조언해 주려고 가볍게 꺼낸 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아도 명백한 내 실수다. 내가 어느 쪽의 유저이든 그런 것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학생들에게 그에 대한 신뢰를 주어야 한다. 그들은 결국 발표 주제를 바꾸었는데, 일베의 객관화는 그에 대한 옹호로 비추어질 수 있고, ‘일베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이 두렵다고 했다.
나는 ‘일베’도 ‘세월호’도 그 무엇도, 수업의 주제로 반갑게 다루고 싶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이 그를 통해 스스로 사유하는 주체가 될 수 있길 바란다. 모두의 정치적 좌표는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정치성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어떤 진영 논리를 펴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사유와 성찰을 통한 것이라면, 그 자체로 무한한 존경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인간으로 언제나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작은 배의 ‘선장’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전 강단에 서거나 하지는 않지만, 강단에 서는 사람으로서의 자기검열에 대한 부분에 학생이었던 입장으로써 공감이 많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