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 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인정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이 고등법원의 항소심을 사실상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판결의 핵심 증거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 씨의 이메일 계정에서 압수한 ‘425지논 파일'(텍스트 파일)과 트위터 공작의 근거인 ‘씨큐리티’ 파일. 대법원은 이 두 핵심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상식에 대한 도전
대법원 판결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면 상식에 대한 도전처럼 보인다.
국정원 직원 김 씨가 자기가 작성했다고 검찰에서 인정했던 파일(파일명 ‘씨큐리티’)에 관해 재판에서는 ‘지금은 모른다’고 번복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파일의 증거능력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일반인도 사기사건 같은 경우에도 실제로 자기가 작성한 문서에 관해 모른다고만 하면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배제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할 만하다.
‘씨큐리티’ 파일은 고등법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판결의 핵심 증거다. 고등법원(김상환 부장)은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확정된 2012년 8월 20일 이후부터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단순한 ‘정치글’을 넘어서서 박근혜 후보에 유리한 ‘선거글’들을 국정원이 더 많이 인터넷에 유포했기 때문에 ‘선거운동’을 했다고 판단했다.
이 씨큐리티 파일에는 고법의 통계적 판단의 토대 대부분을 이루는 트윗글(총 27만7천여 건 중 27만5천여 건이 트윗글)들의 원트위터 계정 269개가 국정원 직원들 22명(구체적으로는 2012년 초에 만들어져 트위터 활동만을 전담한 “안보5팀” 전체)의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아래 그래프는 고등법원 판결에 나와 있는 것이다.
전문법칙(傳聞法則)
대법원은 피고의 인권을 보호해온 전문법칙(傳聞法則) 조항을 들어 증거능력을 부인했다. 전문법칙은, 쉽게 말하자면, 피고가 대질할 수 없는 증인의 증언은 피고에게 불공평하므로 유죄증거가 될 수 없다는 규칙이다.
특히 그 증인이 문서인 경우에는 대질 자체가 불가능하니 전문법칙 적용을 피하려면 문서 작성자가 법정에 나와서 그 문서가 자기가 작성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씨큐리티 파일에 대해서는 작성자가 확인되지 않으니 전문법칙에 의해서 증거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논리다.
하지만 씨큐리티 파일은 그런 식으로만 증거 자격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위 씨큐리티 파일은 제3자에게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국정원 직원 김 씨가 자기만 접근할 수 있다고 한 메일 계정에서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그런 파일의 발견 자체는 김 씨가 파일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가정해보자
내가 절도 피의자라고 하자.
- 내 이메일 계정에서 269곳의 최근 절도 피해 장소와 일치하는 주소를 적은 문서가 나왔다.
- 나는 작성자임을 부인했다.
- 누구도 문서의 작성자를 밝혀내지 못했다.
이 사례에서 법원이 이런 문서가 내 계정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증거에서 배제할까? 내가 다른 이용자의 존재나 해킹의 가능성을 소명하지 않는 한 반드시 증거에 포함하려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천만 개의 주소 중에서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 절도피해장소 269곳의 주소만을 수집해 놓은 문서가 내 메일계정에서 발견됐다.
내가 범죄와 무관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렇게 증거에 포함되었을 때 문서 내용이 진실인지를 다투는 대질을 그 작성자와 하지 못한다고 피고에게 불공평할 것이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검사는 문서의 내용이 진실이라는 변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내용의 문서가 피고에게서 발견되었다는 사실만을 증거로 제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방식만 옳다 고집하는 대법원
물론 씨큐리티 파일이 위에서 밝힌 논리에 의해 증거가 되면 증명하는 사실의 구체성은 떨어진다.
- ‘국정원 직원들이 269개 계정을 이용했다’가 아니라
- ‘국정원 직원 김 씨는 22명의 국정원 직원들과 269개 계정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고 있다’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등법원에는 씨큐리티 파일만 증거로 제출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다른 정황 증거가 있고 고등법원은 이 정황 증거들을 더해 ‘국정원 직원들이 269개 계정을 이용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씨큐리티 파일의 증거능력을 이런 논리로 인정할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거부했다. 고등법원이 “개괄적이고 포괄적인 정황 사실의 존재만으로 시큐리티 파일에 기재된 269개의 트위터 계정 모두를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한 것이라고 인정한 것에 다름없다”는 이유이다.
하지만 어떤 증거로 어떤 사실을 인정할지, 즉 사실심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개입할 권한이 없음은 대법원이 여러 차례 스스로 판결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대법원은 사실을 따지는 사실심이 아니라 법적 논리를 따지는 법률심이다. 물론 대법원은 사실심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고등법원이 위와 같은 방식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전문법칙을 부당하게 우회하는 것이라고 본 듯 하다. 하지만 이 역시 대법원이 법관의 증거취사의 자유를 이례적으로 과도하게 제약하는 것이다.
하나의 사실을 인정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가 전문법칙에 의해 막혀있다면 다른 방식을 통해서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자유심증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기꾼들이 작성 사실을 당연히(?) 부인하는 수많은 문서가 형사재판에서 유죄증거로 인정되는 상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대법원이 이런 식으로 하나의 방식만이 합당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대법원이 스스로 한정한 권한을 넘는 것이다.
“자기가 작성했다고 검찰에서 인정했던 파일(파일명 ‘씨큐리티’)에 관해 재판에서는 ‘지금은 모른다’고 번복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파일의 증거능력을 부정”
“피고가 대질할 수 없는 증인의 증언은 피고에게 불공평하므로 유죄증거가 될 수 없다는 규칙”
변호사들 신날듯ㅋㅋㅋㅋㅋ. 모든 증거에서 이렇게 써먹으면 되겄네. 비슷한 증거 (나는 모른다라고 우기면 증거능력 상실) 로 구속된 애들 항소 줄을 이을듯? 대법원이 열심히 잘 사기쳐야 이득보는 세상이니 열심히 사기치라고 부추기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