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7~8년 전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와 짝을 이룬 옴니버스 영화 [그라인드 하우스] 중 한 편이었다.

[데쓰프루프]오리지널 포스터
[데쓰 프루프](2007) 오리지널 포스터. © 2007 Dimension/WC

1. 영화 [데쓰 프루프]와 여성의 복수극

[adsense] 확연하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갈라진 이 영화를 이어주는 축은 전직 스턴트맨 마이크라는 인물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들에 출연했던 이 마초는 화려했던 자기 과거를 자랑하고 섹시한 여성의 랩댄스 서비스를 받으러 클럽에 온다. 그가 자신의 성적 욕망을 만족하게 한 후 자신의 자동차로 클럽에서 만난 여성들을 모두 잔인하게 몰살시키는 이야기가 바로 전반부의 이야기이다.

이 마초가 여성들을 죽이는 데에는 아무 이유가 없다. 그냥 여자들이 혐오스럽고 싫어서 죽이는 것이다. 그는 이 차 덕분에 절대로 죽지 않는데(death-proof), 의미심장하게도 이 자동차는 바로 ‘엄마의 차’다. 스턴트맨은 살인 후에도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경찰이 심증은 있지만, 명확한 물증이 없는 사건을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노력을 낭비하기보다 그 시간에 차라리 카레이싱을 즐기는 게 더 낫다고 보는 남자들의 공모로 전반부가 끝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영화는 남성 못지않게 걸쭉하고 불편하게 성적 만담을 즐기던 강인한 여성들이 남성들의 단죄를 받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데쓰프루프]에서 ‘버터플라이’가 ‘스턴트맨 마이크’를 상대로 랩댄스를 추는 장면
[데쓰 프루프]에서 ‘버터플라이’가 ‘스턴트맨 마이크’를 상대로 랩댄스를 추는 장면. © 2007 Dimension/WC
그러나 다른 여성들이 등장하는 후반부는 정반대 이야기로 바뀐다. 이 전직 스턴트맨은 남성들만 위험과 스릴을 즐기는 스턴트맨이 되라는 법도 없고, 여성이 자동차를 자기보다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영화는 실제 스턴트맨인 여성이 맡아 연기한 자동차 액션 장면을 화려하게 보여주면서, 전사 같은 세 여성의 복수극으로 치닫는다. 아무 감정도 없는 듯 잔혹하게 여성들을 죽이면서 변태적인 희열을 만끽하던 이 남자는 막상 자기가 조금 다치니 아파서 미치려 하고, 심지어 위스키로 자신의 상처를 소독하며 질질 짠다.

커트 러셀이 연기를 정말 잘해준 덕에, 이 남자 정말 찌질하게 보인다. 아파 죽으려 하는 장면은 사실 아플 만한데 엄살처럼 보인다. 이 마초는 이 여자들이 진짜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미안하다고, 그저 장난이었다고 사과하지만, 당연히 그 사과는 진심이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결국 여자들이 그 남자를 붙잡아 더는 소원이 없을 것처럼 미친 듯이 패는 것이다.

[데쓰프루프] 후반부의 자동차 액션 장면
[데쓰 프루프] 후반부의 자동차 액션 장면. © 2007 Dimension/WC
7~8년 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사람들이 갑자기 그 여자들처럼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분명히 남성 관객들도 있었을 텐데, 너나 할 것 없이 후련하기는 했나 보다. ‘여자들의 복수도 폭력이니까 나쁘잖아’ 식의 분위기는 느끼지 못했다. 극장 문밖을 지배하는 편견과 차별이 무너지는 약 2시간 남짓의 가상 복수가 그만큼 통쾌했던 것이리라.

2. 메르스 갤러리, 여성혐오를 혐오하다

비슷한 일이 2015년 6월 한국에서 벌어졌다. 마초 톰 하디를 보러 갔다가 여전사 샤를리즈 테론에 놀라고 온다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걸린 극장에서? 아니,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신종 전염병 때문에 신설된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서. 메르스 갤러리이지만 아무도 메르스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이 갤러리는, 현재 ‘남성혐오’라고 불리는 새로운 발화 형식을 만들어냈다.

애초 이 갤러리에는 메르스 의심 환자인지 모르고 홍콩에서 도망 다녔다고 알려진 두 명의 한국 여성을 비난하는 글들이 다수였다. 그러나 이 여성들이 격리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영어 소통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라고 밝혀졌다. 몇몇 갤러들은 슈퍼 전파자인 최초 환자가 남성이었다는 사실은 문제 삼지 않고 여성혐오만 늘어놓는 글들에 반박했고, 이 싸움이 결국 남성 혐오의 발화로 번진 것이라고 한다.

메르스 갤러리는 아주 강력하고 노골적인 패러디의 향연장이다. 한국 남성들의 여성 혐오 발화를 그대로 차용하여 ‘거울’처럼 반사한 남성혐오 발화들이, 당연히 비이성적/비합리적 소통 불가 상태였던 여성 혐오를 그대로 복사하고 패러디한다. 남성들이 맞벌이만 주장하며 맞살림은 하지 않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김치녀를 비난하면서 멀쩡한 컴퓨터를 집에 놔두고 PC방에 가며, 명품가방보다 비싼 자동차와 기계에 환장한다고 비꼬는 정도는 별것 아니다.

운전치 ‘김여사’를 조롱하지만 실제로는 교통사고의 80%를 차지하는 남성 ‘김기사’들, 성매매와 성 접대에 거액의 돈을 쓰는 일반 남성들, 동남아에 현지처와 코피노와 라이따이한 같은 사생아를 남겨두고 온 남성들, 여성들이 만나주지 않는다고 염산을 끼얹거나 살인하는 범죄자들이 도마 위에 오른다. 한국 남성들의 성기 크기가 콩고 남성보다 작다고 조롱당할 때, 한국 남성들이 격렬하게 폭발하는 장면이 가관이다.

김치녀, 된장녀, 개똥녀, 신상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비난받아온 한국 여성들이, 키 작은 ‘루저남’ 정도밖에 이름을 가지지 못했던 한국 남성들에게 ‘김치남’, ‘씹치놈’, ‘소추소심’, ‘실잦이’ 등 수많은 신조어를 자신들이 당한 그대로 갖다 붙여주고 있다.

여성 순결에 대한 남성의 글을 주어만 바꿔서 쓴 메르스 갤러리 패러디 중의 하나
여성 순결에 대한 남성의 글을 주어만 바꿔서 쓴 메르스 갤러리 패러디 중의 하나

이렇게 놀라운 ‘드립력’을 지금까지 어떻게 숨기고 살았나 싶을 만큼 놀라운 여성들의 원색적 비난에 남성들이 부들부들 떠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갤러리의 싸움을 관전한 사람들은 지금까지 한국 여성들은 10년 넘게 인터넷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견뎌왔는데, 단 며칠 동안 똑같은 일을 당했다고 부들부들 떠는 한국 남성을 보는 게 즐겁지 아니하냐고 묻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오로지 이 방식을 따라야만 지금까지 여성들이 어떻게 취급받았는지 남성들이 비로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데쓰 프루프]의 결말에서 느꼈던 통쾌함을 다시 이 여성 싸움꾼들의 쓰레기 같은 글들이 환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메르스 갤러리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의 한 게시물

그러나 지금까지 여성혐오에 질식할 것 같았던 여성들의 맞장뜨기를 위협으로 간주하면 바로 대응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DC 관리자 지금까지 10년 넘게 ‘김치녀’의 남용을 방관해왔으면서, 단 며칠 만에 ‘김치남’이라는 단어를 못 쓰게 금지어로 막았다. (현재는 이용자의 반발로 다시 허용하고 있다. – 편집자) 다른 갤러리들에서 지금도 난무하는 욕설을 그대로 놔두면서, 이 갤러리에만 경고를 날리고 계속해서 글을 삭제했다.

이런 조치는 오직 메르스 갤러리에만 적용되었다. 높은 추천 수를 받은 글들만 올라가는 개념 글 리스트가 길어지자, 로그인해야만 추천할 수 있게 바뀌었다. 당연히 비추천은 로그인하지 않아도 된다. 아주 오래된 몇몇 막장 같은 갤러리에만 적용되던 규칙이 단 며칠 사이에 시행되었다. 10년 넘게 여성혐오가 지배한 DC에서 이렇게 신속하고 예외적인 규제가 시행된 적은 없었다.

메르스 갤러리를 점령했던 여성 사냥꾼들이 이명박 갤러리로 옮겨가자 DC는 또다시 남성혐오 글만 골라서 삭제했고,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자, 결국 DC는 2014년 11월 이후의 모든 글을 통째로 삭제하는 유례 없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후 갤러들이 ‘결혼 못 하는 남자’ 갤러리로 옮겨가서 게릴라전을 계속했다.

지금 메르스 갤러리에 이어 전혀 관련 없던 다른 두 갤러리까지 ‘남성혐오’ 커뮤니티로 탈바꿈해버린 것은, 아마도 DC가 원한 결과는 아니었을 것이다.

3. 방관과 동조를 폭로하는 거울

메르스 갤러리에서 파생된 이 현상은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가 몸의 전염병뿐만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10년 넘게 인터넷과 한국 사회에 만연해온 여성혐오에 대해 한국 남성들은 관리하고 토론하고 말할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방관하고 사실상 즐겼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혐오의 본원지 DC만이 아니다. 일베만큼 과격하지 않을 뿐 여성혐오 발화들을 흩뿌려온 다른 남초 사이트들 대부분이 새로 만들어진 남성혐오를 외면하고 있다.

일베처럼 저렇게 더러운 말을 쓰는 남성혐오자들이 여성일 리가 없고, 남자들이 여자 흉내를 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정신승리형 남성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러나 [데쓰 프루프]의 전직 스턴트맨보다 운전 잘하고 싸움 잘하는 스턴트맨들이 여성이었던 것처럼, 다소곳해야 할 여성들이 남자들처럼 거칠고 상스럽게 말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완전히 착각에 불과하다.

혹은 ‘여시’(장동민 사태로 김치녀 집단으로 규정된 커뮤니티 여성시대의 준말)같은 일부 김치녀들이 저런 짓을 하는 거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이 있다. 남성혐오를 일부 질 나쁜 여성들만의 발화로 치부하는 이 시각은, 여성혐오가 일부 남성들의 발화였을 뿐 전체 남성의 시각을 대변하지는 않았다는 관점과 쌍을 이룬다.

João Carlos Magagnin, triton summer, CC BY https://flic.kr/p/72ffBE
João Carlos Magagnin, triton summer, CC BY
https://flic.kr/p/5UGXh3 João Carlos Magagnin, Coco Rocha, CC BY
João Carlos Magagnin, Coco Rocha, CC BY

여성혐오가 일부 남성만의 문제라는 이유로 방관했다면, 남성혐오도 일부 여성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똑같이 방관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지금까지 여성혐오 발화는 일부 여성의 문제로 국한되지도 않았고, 나머지 여성들의 억울함에 대해서 논하지도 않았다. 남성혐오 발화를 일부 여성들의 문제로 치환하는 이 시각은 그간의 여성혐오가 여성 전체에 대한 혐오였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남성들의 광범위한 동조와 방관에 면죄부를 발행해주기까지 한다. 새롭게 폭발한 남성혐오 발화는 여성혐오에 깔린 위선과 기득권 유지를 폭로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남성혐오라는 새로운 현상을 두고 곳곳에서 논란과 토론이 벌어지자, 흥미롭게도 많은 사람이 여성혐오가 나쁜 만큼 남성혐오도 똑같이 나쁘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곳에서 남성들이 여성혐오가 나쁜 것이라고 진지하게 단언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긍정적인 효과다. 여성혐오가 왜 나쁜 것인지 말할 수 있었던 남성들이 왜 지금까지 간단히 방관, 일축, 무시로 일관해왔단 말인가. 남성혐오가 나와야만 비로소 여성혐오 발화의 쓰레기 같은 불쾌함을 말할 수 있다니 정말 우습지 않은가.

남성혐오 발화가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는 없다. 여성혐오 대 남성혐오 전쟁의 막이 오른 것일까? 메르스 갤러리의 신선함은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그러나 최근 며칠에 한정시켜 보자면, 메르스 갤러리에서 벌어진 일들이 무의미하지만은 않다. 이 여성혐오의 패러디가 남성들의 전면적인 자기반성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해도, 여전히 자기합리화에 급급한 남성들의 위선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스 갤러리의 ‘남성혐오’는 진짜 남성혐오가 아니라 오직 여성혐오에 대한 안티로 만들어진 ‘반면 거울’이라는 점에서, 남성혐오가 아닌 새로운 이름을 가져야 한다.

Ananth BS, Mirror mirror, CC BY https://flic.kr/p/qHDkM
Ananth BS, Mirror mirror,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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