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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방과 먹방의 시대.

‘음식시민’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그린피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떠한 방식으로 타인과 ‘관계’하는지, 또 식생활이 개인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고민하고 생각해 보는 사람들. 김종덕 교수(경남대 사회학, 국제슬로우푸드 한국협회장)는 음식시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음식시민’이란 능동적인 자세로 음식에 대해 성찰하고, 음식의 생산∙유통∙소비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람이다. 단순한 먹거리 구매자가 아니라 식량 체계와 관련해 의식을 갖고 대하는 사람이며, 좋은 음식, 깨끗한 음식, 정의로운 음식이 생산∙가공∙유통∙소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람이다.

-김종덕, [음식문맹자, 음식시민을 만나다] 중에서

조금은 생소한 개념이지만,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윤리적 소비’의 또 다른 모습이 바로 이 음식시민의 식생활 실천입니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다양한 수산물, 그리고 참치와 같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가공식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인권유린이나 해양환경 파괴와 같은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음식시민’이라면 어떤 행동을 할까요?

그린피스

제1계명. 할 수 있는 것부터 행동하기 – 참치캔 유통구조 바꾼 영국 시민들 

지난 2014년 3~4월, 테스코(TESCO)와 월마트 계열사인 아스다(ASDA) 등, 영국의 대형 슈퍼마켓들은 시민들의 빗발치는 항의 전화를 받느라 아주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려 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테스코에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과 트윗을 보냈고, 이들 대형 슈퍼마켓에 서명운동을 통해 항의를 전달한 사람도 8만 5천 명 이상이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왼쪽: 시민들에게 해양보호를 위한 ‘피쉬 파이트(Fish Fight)’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는 웹 페이지. ㅣ 오른쪽: 그린피스 영국사무소가 발표한 2014 영국 참치캔의 지속가능성 순위
왼쪽: 시민들에게 해양보호를 위한 ‘피쉬 파이트(Fish Fight)’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는 웹 페이지. ㅣ 오른쪽: 그린피스 영국사무소가 발표한 2014 영국 참치캔의 지속가능성 순위

같은 해 2월 28일, 그린피스의 영국사무소는 영국에서 유통되는 참치캔의 지속가능성 순위를 발표했습니다. 순위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파괴적 조업방식인 집어장치 FAD(Fish Aggregating Device) 사용 여부
  • 소비자 알 권리: 어업지역 및 조업방식을 라벨링을 통해 알렸는지 여부
  • 조업 과정에 대한 추적 가능성
  • 해양 보존구역 보호 여부 등

순위가 발표된 후 영국 소비자들은 ‘더러운’ 통조림 참치를 더 이상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고, 이에 2014년 4월, 테스코는 자체 브랜드를 비롯하여 그 어떤 지속가능하지 않은 참치캔도 진열대에 올리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아스다도 한 달쯤 뒤 같은 의사를 밝혔으며, 참치캔 순위 바닥에 있던 브랜드인 오리앤탈앤퍼시픽(Oriental & Pacific)사 또한 집어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커다란 그물코를 이용해 참치를 잡는 등의 변화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비자의 요구, 바로 영국 음식시민들의 요구가 실질적인 유통망과 생산망의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2014년 3월 3일, 테스코 슈퍼마켓에 2014 영국 참치캔 지속가능성 순위 최하위를 기록한 오리앤탈앤퍼시픽사의 참치를 반납하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의 모습
2014년 3월 3일, 테스코 슈퍼마켓에 2014 영국 참치캔 지속가능성 순위 최하위를 기록한 오리앤탈앤퍼시픽사의 참치를 반납하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의 모습

제2계명: 시민단체의 노력과 언론 보도에 ‘관심 갖기’ 

지난 2004년 참치캠페인을 시작한 이래로 그린피스는 참치업계를 비롯한 수산업계의 파괴적인 조업방식을 고발하는 것에 이어, 원양어선에서 벌어지는 노동착취 문제를 널리 알리고 그 해결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지속해 왔습니다.

2015년에는 타이유니온(Thai Union Group)과 같이 글로벌 공급유통망을 보유한 수산물 기업 소유의 배에서 벌어진 인권유린 사태를 고발했습니다 (*타이유니온은 현대판노예 사건으로도 알려진 인도네시아 벤지나섬의 선원 노예노동과도 연관이 있는 기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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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기] 현대판 노예, 인도네시아 벤지나섬의 선원 구출 사건

2014년 4월 AP 통신은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 벤지나에서 수천 명의 선원들이 노예처럼 감금된 채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국제이주기구 인도네시아 관계자와의 대화 중 미심쩍은 점을 발견한 AP통신 기자의 끈질긴 취재 끝에 밝혀진 이 사건은 수산업계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과 강제노동의 실태를 낱낱이 드러냈습니다.

AP 통신은 벤지나 선원 인권 유린의 배경에 태국 최대 수산물 기업 타이유니온이 존재하며, 이 사건이 미주와 유럽으로 수출되는 수산물 그리고 불법어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총 550명이 넘는 선원이 구조되었으며, 미 국무부와 대형 슈퍼마켓 월마트의 대변인을 포함, 각계의 인사들이 노예귀환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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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는 수산물의 조업과정뿐 아니라 가공과정에서도 발생합니다. 그린피스는 2015년 말 전 세계의 대형 슈퍼마켓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냉동새우를 잡는 과정에 동원되었던 노예노동과 아동노동력 착취 문제를 많은 이에게 알리기도 했습니다.

태국 수산물 산업에 만연한 노동착취 현실
태국 수산물 산업에 만연한 노동착취 현실

지난 수년간 불법어업과 선원 인권유린 등으로 국내외 언론에 오르내린 바 있는 한국의 수산업계 또한 해양생태계 파괴는 물론이고 인권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지난 글을 통해서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지난 5년 사이, 오양 70호, 오양 75호, 오양 77호, 사조 501 오룡호, 101 소진호 사건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한국 국적 어선에서 발생하는 인권경시, 안전불감증, 불법어업 등의 문제가 국내를 넘어 국제사회에까지 알려졌고, 우리나라는 인권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어디서 얼마나 자주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오양 70호와 75호에서 벌어졌던 참혹한 인권침해와 노동착취도 배가 침몰하거나 선원들이 탈출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겁니다. 사조 501 오룡호의 과도한 어업, 노동착취, 안전부실 문제도 선박 전복 사고가 없었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테죠. 마찬가지로 101 소진호에서 벌어진 사건 또한 피해 선원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을 일입니다.

선원들의 인권 문제가 심각하지만, 이는 해양 파괴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치캔의 원료인 가다랑어를 잡는 선망선에서 사용하는 집어장치 FAD는 가다랑어뿐 아니라, 바다거북, 상어 등 멸종위기에 처한 해양 동물들과 눈다랑어와 황다랑어 치어까지 낚아 올립니다. 하지만 한국의 소비자가 FAD를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조업된 참치를 먹고 싶어도, 현재로선 조업방식에 관한 정보를 알기 어렵고, 따라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태평양에서 조업중인 한 한국 선박의 갑판. 멀리 동이 트고 있는 모습.
태평양에서 조업중인 한 한국 선박의 갑판. 멀리 동이 트고 있는 모습.

우리가 수산업계의 인권 문제에 대한 감시를 요구하고 지속 가능한 조업방식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것은 결코 기업을 매도하거나 소비자를 먹거리에 대한 불안에 떨게 하려함이 아닙니다. 이는 수산업계가 좀 더 깨끗하고,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변하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소비자의 ‘정당한’ 요구입니다.

그린피스는 지난 2014년 정부에 대한 정책 제안과 기업에 대한 지침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우리는 수산물의 조업∙가공∙유통 과정에서 인권유린과 환경파괴가 일어나지 않도록 국제기준에 따라 새롭게 정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수산업계에는 지속 가능한 수산물 조업 정책 도입과 수산물 조달 과정을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추적·정기감사 시스템 도입을 촉구했습니다.

우리 밥상 위 공정하고 윤리적이며 지속 가능한 수산물이 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분명 정부와 수산업계 모두가 변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와 업계를 움직이는 궁극적인 힘은 소비자인 음식시민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수산업계를 움직이고 정부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 낼 ‘음식시민’의 힘을 모으기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보다 지속가능하고 행복한 바다를 함께 만들어 가기 위해 그린피스는 여러분께 다음과 같은 제안을 드립니다.

제3계명. ‘지속 가능한 수산물’ 요구하기 

지금 국내 소비자가 수산물에 관해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연근해산인지 원양산인지, 아니면 기껏해야 어느 바다에서 잡은 것인지에 대한 정보뿐입니다. 하지만 혹시 멸종위기종은 아닌지, 잡혀서는 안 될 곳으로부터 온 것은 아닌지, 그물을 끌어올리던 선원이 강제노동을 해야만 했던 것은 아닌지 알아야 하는 것 또한 소비자의 권리 아닐까요?

북미와 유럽 많은 나라의 수산업계와 유통시장에서는 이미 인증제도나 라벨링을 통해 수산물에 대한 정보공개가 일정 부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증제도 중 하나가 해양보존협회(Marine Stewardship Council)의 MSC 인증인데요. 현재 90개가 넘는 국가에서 MSC 기준에 따라 인증된 수산물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홀푸드, 타겟, 코스트코와 프랑스의 카르푸, 영국의 세인즈베리 같은 슈퍼마켓 체인을 비롯해 선진국의 많은 유통업체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MSC 인증을 받은 참치캔과 수산물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어업 방식 중 채낚기 방식으로 잡힌 참치를 사용한 통조림들. 국내에서는 한 생협에서 나오는 ‘착한참치'가 유일.
지속 가능한 어업 방식 중 채낚기 방식으로 잡힌 참치를 사용한 통조림들. 국내에서는 한 생협에서 나오는 ‘착한참치’가 유일.

하지만 국내기업 중에서는 한 기업의 극히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증을 받은 수산물이 없습니다. 지속가능한 참치캔의 경우에도, 한 생협에서 나오는 ‘착한참치’가 유일합니다. 국내 유통되는 다른 수산물과 참치캔에 대해서는 지속가능성의 여부도, 어업지역과 조업방식에 대한 정보도 손쉽게 확인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참치캔이 정확한 어종에 대한 정보도 없이 그저 ‘다랑어’로만 표기되어 판매되고 있을 뿐입니다.

지난 2013년 그린피스는 국내 참치캔 업체를 대상으로 착한참치캔 순위를 발표했으나 아직은 순위의 구분이 무색할 만큼 국내기업의 지속가능성 노력은 모두 초보 단계입니다.

국내 참치업체와 수산물업체에도 보다 지속 가능한 조업방식을 선택할 것과 원산지, 조업방식, 어종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표기할 것, 그리고 인증제도, 라벨링 등 소비자가 쉽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 소비자들 또한 해양환경을 파괴하는 FAD를 사용한 수산물을 원치 않는다고, 그리고 인권유린으로부터 청정한 수산물을 원한다고 말입니다.

제4계명. 멸종 위기 어종 소비 줄이기 

지난 40년간 해양 생물의 거의 절반, 상업용 인기 어종의 경우 75%가량이 바다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근 100년간 참치의 수도라 불리며 호황을 누렸던 어촌 오마(大間)가 사라져가는 참다랑어와 함께 예전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고, 우리 앞바다 동해에서 명태의 씨가 말라버렸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는 일본 한 수산시장의 새해 첫 경매에서 고급횟감 참다랑어 한 마리가 한화 1억 3천9백만 원에 낙찰되었다는 웃지 못할 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고갈된 만큼 귀해졌기에 이런 기상천외한 가격에 참치가 낙찰된 것입니다.

어망에 포획된 참다랑어들
어망에 포획된 참다랑어들

아직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나 우리의 관심을 요하는 해양생물도 많습니다. 우리가 참치캔으로 많이 먹는 가다랑어도 그 예인데요.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의 멸종 위기종 ‘레드리스트’에는 가다랑어가 멸종취약종과 위기근접종의 다음 단계인 ‘관심필요종’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가당랑어처럼 관심필요종으로 분류되어있던 태평양참다랑어가 지난 2014년 두 단계 높은 위험순위인 멸종취약종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태평양참다랑어는 남획으로 인해 불과 20년 만에 개체군의 3분의 1이 사라졌습니다.

중서태평양에서 매년 183만 2천 톤(메트릭톤) 정도 포획되고 있는 가다랑어 또한 아무런 보호없이 지금처럼 잡아올리고 소비한다면, 언제 위기근접종이나 멸종취약종이 될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특히 좋아하던 참복이 지난 40년간 99.99%가 사라져 멸종위기종이 되었고, 뱀장어와 대구 등이 빠른 속도로 멸종 위기에 처한 것처럼 말입니다.

참다랑어, 눈다랑어, 뱀장어, 킹크랩, 참복과 같이 이미 멸종위기 혹은 멸종취약으로 분류된 수산물은 되도록 먹지 않고, 가다랑어 같은 관심필요종도 지나치지 않게 ‘적당히’ 먹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참치를 먹지 말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 대신에, 조금 적게 먹자는 얘기예요. 참치는 맛있는 생선이에요. 하지만 가자미나 도미 같은 생선도 맛있습니다. 참치만 과도하게 먹을 이유가 없지요. 이런 식으로 생각을 바꿔야 해요. 일단 멸종되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 하마바타 히로후미, 일본 오마(Oma) 수산조합 회장

저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게 굉장히 간단한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을 사용하되, 완전히 사라지게 할 정도로 과도하게 쓰지는 않는 것,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얼마간은 남겨두도록 현명하고 윤리적으로 소비하는 것 말이죠.

– 마이크 서튼, 바다의 미래를 위한 캘리포니아 몬테레이 연구소 소장

먹방과 쿡방을 넘어 음식시민으로

지난 2015년 한 해 ‘요리’라는 키워드가 대한민국을 관통하면서, 우리는 바야흐로 먹방과 쿡방, ‘식도락의 전성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허기가 있다면, 쿡방과 먹방으로 시작된 음식에 대한 관심을 ‘음식시민’의 시야로 조금 넓혀 보는 건 어떨까요?

지속가능한 어업방식으로 잡힌 수산물로 차려진 음식
지속 가능한 어업방식으로 잡힌 수산물로 차려진 음식

“좀 더 포괄적인 즐거움이 되어야 하며, 이 즐거움의 중요한 일부분은 먹거리의 원천인 생명과 세계를 정확히 의식하는 데 있다.”

-웬델 베리, [온 삶을 먹다] 중에서

앞에 놓인 재료와 완성된 음식의 맛과 미에 환호하는 것도 좋지만, 식탁 위 아름다운 소우주(microcosm)를 건강하게 지켜주려는 노력도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바다를 지켜가는 꿈을 함께 만들어가는 건 어떤가요? 우리가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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