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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에서 코커스[footnote]코커스는 반드시 경선을 의미하는 단어는 아니다. 그냥 정치적인 결정/행동을 위해서 모인 그룹을 가리키는 단어다. 하지만 경선에 사용될 때는 프라이머리처럼 각 지역에서 지지하는 당의 후보를 뽑기 위한 행사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코커스가 프라이머리와 크게 다른 점은 비밀투표가 아니라는 것. 손을 들어 (혹은 강당에서 지지후보별로 편을 갈라서기도 한다) 특정 후보에 대한 표시하고, 그런 사람들의 숫자를 계수해서 승자를 결정한다. 하지만 프라이머리와 다르다는 것은 단순히 공개투표라는 것만 아니라, 그렇게 지지의사를 밝힌 유권자들 사이에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고 그러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바꿀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령 코커스에 모일 때는 A, B, C, D 후보별로 40%, 30%, 20%, 10%의 지지자들이 있었는데, 몇 시간 후 결과는 50%, 20%, 30%, 0%로 뒤집힐 수 있다. 그렇게 (미리 결정한 대로 표만 찍고 나오는 프라이머리와 달리) 코커스에는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다이내믹한 면이 좀 더 강하다.[/footnote]를 설명할 때는 그게 얼마나 낡고 멍청한 선거방식인지에 대한 조롱이 반드시 들어간다. 그 이유는 아래에 트윗 된 동영상 하나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동전 던지기? 정말?? 

동영상에 등장하는 선거구에서 샌더스와 힐러리 지지자들이 정확하게 동수로 갈렸고, 아무리 양쪽을 설득해도 마음을 바꾸지 않자 동전을 던져서 이긴 쪽에 대표자들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런 동전 던지기를 한 곳이 6군데 있었고, 전부 힐러리 쪽이 이겼다.)

하지만 그건 카운티 대표자들을 보내는 거고, 주(state) 대표자들을 보내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어제 힐러리가 이겼다고 한 것과는 다른 얘기다. ‘이게 도대체 무슨 얘기?’ 그렇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를 하기 힘든 중세시대의 유물을 보는 기분이 든다. 오죽했으면 MSNBC도 그 부분을 잘못 설명을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렇다고 대단히 창피한 것도 아니다. 경선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기자들이 방송에서 헛소리하는 것조차도 미국 선거의 전통처럼 느껴질 만큼 매 선거 때마다 볼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의 선거방식은 그만큼 후진적이고, 끝난 후에는 항상 시빗거리를 남긴다.

그뿐인가? 기독교를 믿고 옥수수 농사를 짓는 백인들로 가득한 아이오와의 인구 특성상 다원화한 미국 전체를 반영하지 못하면서도 첫 번째 경선지라는 이유로 정치인들의 특혜(옥수수 농업에 대한 정부 지원)를 받는 등 부작용도 많다.

동전 던지기
jeff_golden, CC BY SA

그런데 도대체 왜 미국은 아이오와 코커스에 열광하는가?

왜 미국은 이런 구식제도를 바꾸지 않는가?

M1 vs. M16

오래전에 읽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로 사용하던 구식 M1소총이 월남전 참전을 계기로 M16으로 바뀌던 시절, M16을 처음 잡아본 저자의 소감은 이랬다고 한다:

신형 소총은 지금까지의 소총과 달리 손잡이가 권총처럼 되어 있어 손에 착 감기고, 반동이 적어서 방아쇠를 당겨도 쏜 것 같지 않다. 내가 방아쇠를 당긴 행위와 그 결과로 죽는 사람의 사이에 인과관계가 실감이 나지 않아 인지적, 감정적 단절이 생기고, 죄책감이 그만큼 줄어든다.

어떻게 보면 현대의 투표방식이 그렇다. 비밀투표를 원칙으로 하다 보니 투표는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고립된 행위가 되고, 그 결과로 선거는 공동체적 성격, 소셜로서의 성격을 상실하고, 나의 표와 당선된 후보 사이에는 심정적 단절이 느껴진다.

M16-SP1_compressed

하지만 아이오와는 그렇지 않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손을 들거나 그룹을 만들고, 시끄럽게 떠들고 설득하고 하는 과정에서 내 생각이 드러나고, 누가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지도 알 수 있다. 프라이버시가 없고 피곤한 제도이지만,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이해, 그 공동체 속에서의 나의 위치, 그리고 함께 대표자를 뽑는 민주주의적인 행위가 태곳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선거철만 되면 전문가들이 미국의 선거제도 혁신을 외치지만, 미국은 불편하고 오류 많고 후진적인 아이오와 코커스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연두교서”라고 이상하게 번역하는 미국의 ‘State of the Union Address’만 봐도 그렇다. 말 그대로 “연합(합중국)의 현재 상태”를 대통령이 의회에 보고하는 연설이다. 이 연설은 미국 헌법 2조 3항이 규정하는 “(대통령은) 가끔 의회에 연합의 현재 상태를 보고하고, 필요하고 시급하다고 판단되는 조치들을 의회에 권고해야 한다”는 구절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대통령이 트윗을 날리고 24시간 뉴스가 일상이 된 오늘날 대통령이 굳이 거창하게 의회를 방문해서 생중계해가며 상황을 보고하는 게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아이오와 코커스, 위태로운 승리자들 

양당이 공식적으로 승자를 발표했다. 공화당의 크루즈, 민주당의 힐러리가 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패자인 트럼프와 트럼프를 상대로 1.2%까지 따라 붙은 루비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힐러리의 승리는 민주당의 아이오와 코커스 사상 최소 격차라는 결과로 그 의미가 퇴색했다.

DonkeyHotey, CC BY
DonkeyHotey, CC BY
DonkeyHotey, Hillary Clinton-Caricature, CC BY https://flic.kr/p/A9MuTa
DonkeyHotey, “Hillary Clinton-Caricature”, CC BY

트럼프의 아이오와 패인은 무엇일까? 많은 신문이 풀뿌리 조직을 잘 키워온 크루즈의 성공이라고 이야기하고, 일부는 막판에 토론회에 불참한 트럼프의 패착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네이트 실버는 다른 주장 하나를 보탠다. 공화당의 코커스 참여율이 아주 높았고, 그 말은 처음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 많은 숫자가 트럼프 지지자였다. 즉, 가져가야 할 표 다 가져가고도 결국 3위 같은 2위를 했다면?

“그 친구가 생각만큼 인기 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심지어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도”.

“The dude just ain’t all that popular. Even among Republicans.”

과연 실버의 말이 맞는지는 뉴햄프셔가 알려줄 것이다.

Jamelle Bouie, trump with his hands up, CC BY https://flic.kr/p/xJfKqd
Jamelle Bouie, “trump with his hands up”, CC BY

아이오와 코커스는 계속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아이오와에서 하루 저녁에 일어났다. 네이트 실버는 항상 “아이오와는 여론조사가 가장 힘든 곳”이라고 주장해왔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아이오완들이 증명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아이오와가 증명한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아이오와 코커스는 정말로 흥미진진한 행사라는 것.

그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아이오와 코커스를 바꾸지 않을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마치 전통 깊은 이탈리아 피자집에서 수십 년이 되어도 바꾸지 않는 오래된 벽돌 오븐처럼, 아이오와 코커스는 비록 낡고 불편해도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활활 타오르는 심장이기 때문이다.

DonkeyHotey, Iowa Caucus, CC BY https://flic.kr/p/DkPHFd
DonkeyHotey, “Iowa Caucus”,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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