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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한겨레신문 최성진 기자는 2012년 10월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문화방송의 이진숙 전 기획홍보본부장, 이상옥 전 전략기획부장 등 세 사람의 대화 내용을 녹음·보도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그리고 2013년 11월 28일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부(재판장 안승호)는 최 기자에게 징역 6월, 자격정지 1년을 선고유예했습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이 판결의 법리를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박 교수의 ‘가상’ 무죄 변론을 들어보시죠. (편집자)[/box]

무엇이 도청인가?

무엇이 도청인가? 대화의 당사자들이 모르게 제3자가 듣는 것이다. 술집에서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것은 도청이 아니다. 대화당사자들이 제3자가 들을 것임을 알고 있거나 알 수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모르게 듣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대화를 대화상대방 모르게 녹음해도 불법이 아닌 이유는, 우선 내가 대화상대방이 한 말을 듣는 것은 대화상대방이 알게 듣는 것이라서 도청이 아니며 이렇게 합법적으로 청취한 이상 그 기록을 남겨두는 것은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주1).

Prachatai, CC BY NC ND
Prachatai, CC BY NC ND

대화의 당사자들이 모르게 제3자가 듣기 위해서는 대부분 특별한 기계적 수단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청력에 의지해서 듣기 위해서 접근하면 대화당사자들의 눈에 먼저 띄기 때문에 ‘모르게 듣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통신비밀보호법의 모법이 된 미국의 전자통신프라이버시법(Electronic Communication Privacy Act, 이하 ‘ECPA’)은 통신의 감청이든 대화의 감청이든 모두 “특별한 전자적 기계적 수단”을 불법성의 요건으로 삼는다.(주2)

즉, 대화당사자가 모르게 대화의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전자적 기계적 수단에 의한 청취 또는 녹음만을 도청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좀 어렵게 말하면 대화당사자가 대화의 비밀성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범위의 공간 내로 은밀하게 청취자의 청취력을 확장해주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한 청취 또는 녹음을 말한다.

이러한 요건은 헌법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신에게 들려오는 소리를 자연스럽게 들을 권리가 제한된다. 옆방에 인기척이 있을 때 더 잘 듣기 위해서 벽에 귀를 대고 듣는다거나 하는 행위가 모두 ‘도청’으로 인정되어 불법행위가 되어 버린다. 사람들이 자연적 청력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을 듣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 미국의 ECPA는 이 헌법적인 원칙에 충실하다.(주3)

우리나라의 통신비밀보호법

우리나라의 통신비밀보호법도 다르지 않다. 관련 조항인 제3조는 “전기통신의 감청. . .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주4)라고만 되어 있고 “감청”의 정의에만 전자적 기계적 수단의 요건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주5) “대화의 녹음 및 청취”에는 그러한 요건이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감청에 내포된 “전자적 기계적 수단”이라는 요건 대신 “공개되지 아니한”이라는 추가적인 한정요건이 부과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차피 “공개되지 아니한 대화”를 이와 관련되어 해석하려면 ‘청취자가 전자적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자연적인 청력으로 청취할 수 있게 발성되지 않은 대화“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주6)

결론적으로는 전기통신의 감청과 일반대화의 도청 모두 대화당사자들이 비밀성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범위의 공간 내로 대화당사자들 모르게 가청범위를 연장하기 위한 전자 및 기계적 수단이 이용될 때만 처벌되어야 한다

최 기자는 전자 기계적 수단을 쓰지 않았다!

그렇다면 최성진 기자는 그러한 전자 및 기계적 수단을 썼는가? 그렇지 않다.

우선 전화는 그런 수단이 아니다. ECPA와 통신비밀보호법 모두 (1) 일반적인 사용방법대로 사용되는 전화와 (2) 일반보청기는 그러한 수단에서 제외된다.(주7)

bjornfalkevik, CC BY
bjornfalkevik, CC BY

일반보청기야 당연히 도청의 도구가 될 수 없으니 그렇다 치고 전화가 전자 및 기계적 수단으로 인정되지 않는 이유는 전화는 그 특성상 통화 쌍방의 동의에 의해서만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전화를 통해 이쪽으로 들려오는 소리는 의도적이든 사고든 상대방의 동의 또는 통화불종료에 의해서만 들려올 수 있는 것이므로 도청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녹음기능이 켜진 휴대폰을 회의장에 몰래 들여보내는 것은 “일반적인 사용”이 아니므로 예외에 해당하지 않아 도청이 성립한다. 물론 우리 통신비밀보호법의 ‘전자적 기계적 수단’ 요건은 통신감청에만 적용되고 대화 감청에는 명시적으로 적용되지는 않지만, 위에서 말한 합헌적 해석에 따르면 대화 감청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들려오는 소리를 거부하지 않을 권리

최성진 기자는 정수장학재단 이사장과 통화를 시작함으로써 자신의 가청 범위를 이사장의 집무실까지 연장해놓은 상태였다. 이러한 연장은 전화기를 일반적인 방법으로 사용함으로써 이루어진 이상 그 범위 내에서의 청취는 이사장이 통화를 종료하지 않는 한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물론 이사장의 의사에 반한 것이고 모르고 벌어진 상황일 수 있지만, 최성진 기자가 자신의 가청범위를 넓이기 위해 기계나 전자장치를 이용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청취가 합법적이라면 청취된 내용을 녹음하는 것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생활의 비밀, 통신의 비밀 보호차원에서 야박한 해석일지 모르나 또 다른 중요한 사생활의 자유인 “들려오는 소리를 거부하지 않을 권리”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해석이다.

대화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합법적 청취는 도청이 아니다

Dario J Laganà, CC BY NC SA
Dario J Laganà, CC BY NC SA

미국에서는 이처럼 일단 합법적인 청취가 가능해진 이후에 대화상대방들의 의사에 반하게 청취가 지속한 경우 도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판결들이 다수 있다. 예를 들어, 교환원이 전화를 바꿔준 후에 통화내용을 우연히 엿듣게 된 경우(주8), 전파간섭으로 이웃집의 전화통화내용을 우연히 엿듣기 시작하여 무려 1시간을 청취한 경우(주9) 등이다.

이 판결들에서는 우리 통신비밀보호법에 명시적으로는 없고 미국 ECPA에만 명시된 고의성(주1)(주10)이 없었다는 이유로 합법이라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미국 ECPA에 고의성 요건이 명시되지 않았었다면 아마도 “전자적 기계적 수단을 가청범위의 은밀한 확장을 위해 이용했는가‘를 분석하여 똑같은 결과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나라 통신비밀보호법도 ’고의성‘요건이 명시만 되어 있지 않을 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아래에는 2005년 즉 8년 전에 이미 통신비밀보호법이 이와 같이 오독될 수 있음을 예감한 어느 학자의 논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저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대화비밀의 침해는 녹음 또는 청취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통비법 제3조 및 제14조)60). 문제는 청취의 수단을 어떤 범위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있다. 통비법 제3조는 단순히 ‘……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 반하여, 제14조는‘……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3조에 따르면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순수히 인간의 청력으로 청취하는 행위도 통비법 위반이 되나, 제14조에 따르면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는 청취만이 대화 감청에 해당하므로 순수히 인간의 청력으로 듣는 행위는 통비법의 적용대상이 아니게 된다.

생각건대, 별도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순수히 인간의 청력으로 타인의 대화를 듣는 것까지도 규제대상으로 하게되면 우연히 듣게 된 경우에도 대화감청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제3조 제1항은 대화감청금지에 관한 일반원칙을 규정한 것으로 보고, 대화감청은 제14에 따라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한 청취에 국한되는 것으로 한정하여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본다61). 입법적으로는 대화감청에 관한 규정을 제14조에 통일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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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nited States v. White, 401 U.S. at 751 (1971). 물론 미국의 몇몇 주들 그리고 일부 외국에서는 대화상대방 모르는 녹음도 불법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합법임이 이미 확립되어 있고 이에 부합하게 원리를 구성하자면 위와 같다.

2. 18 USC 2510 (4) “intercept” means the aural or other acquisition of the contents of any wire, electronic, or oral communication through the use of any electronic, mechanical, or other device.

3. 18 U.S.C. 2511(1), 18 U.S.C.2510(4)

4.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 ①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ㆍ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경우에는 당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한다.

5.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7. “감청”이라 함은 전기통신에 대하여 당사자의 동의없이 전자장치ㆍ기계장치등을 사용하여 통신의 음향ㆍ문언ㆍ부호ㆍ영상을 청취ㆍ공독하여 그 내용을 지득 또는 채록하거나 전기통신의 송ㆍ수신을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6. 사실 제14조에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되어 있어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이라는 요건을 추가적으로 부과하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전자/기계‘ 요건이 청취에만 적용되고 녹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아마 ‘녹음’은 그 자체로 소리의 저장을 위한 전자 및 기계적 수단을 필요로 하므로 별도의 규정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랬다면 실수이고 위 조항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 또는 녹음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혀야 한다. 자연적으로 들리는 소리를 들을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헌법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녹음과 같은 기록이 전자 및 기계적 수단으로 이루어져야만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 대화당사자들이 비밀성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범위의 공간 내로 대화당사자들 모르게 가청범위를 연장하기 위한 전자 및 기계적 수단이 이용될 때만 처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7.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8. “감청설비”라 함은 대화 또는 전기통신의 감청에 사용될 수 있는 전자장치ㆍ기계장치 기타 설비를 말한다. 다만, 전기통신 기기ㆍ기구 또는 그 부품으로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 및 청각교정을 위한 보청기 또는 이와 유사한 용도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중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것은 제외한다.

18 USC 2510
(5)“electronic, mechanical, or other device” means any device or apparatus which can be used to intercept a wire, oral, or electronic communication other than—
(a)any telephone or telegraph instrument, equipment or facility, or any component thereof,
(i) furnished to the subscriber or user by a provider of wire or electronic communication service in the ordinary course of its business and being used by the subscriber or user in the ordinary course of its business or furnished by such subscriber or user for connection to the facilities of such service and used in the ordinary course of its business; or
(ii) being used by a provider of wire or electronic communication service in the ordinary course of its business, or by an investigative or law enforcement officer in the ordinary course of his duties;
(b)a hearing aid or similar device being used to correct subnormal hearing to not better than normal;

8. Adams v. Sumner, 39 F.3d 933 (1994)

9. State v. McGriff, 151 N.C.App. 631, 566 S.E.2d 776 (2002)

10. 18 USC 2511 (1) Except as otherwise specifically provided in this chapter any person who—
(a) intentionally intercepts, endeavors to intercept, or procures any other person to intercept or endeavor to intercept, any wire, oral, or electronic communication. . .shall be punished as provided in subsection (4) or shall be subject to suit as provided in subsection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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