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소설가 박영한은 ‘지상의 방 한 칸’을 위해 살아가는 팍팍한 삶을 이야기했고,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 혼자만의 방’으로 상징되는 경제적 자립이 여성에게 갖는 사회적인 함의를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거는 이제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모바일 시대,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삶의 한복판으로 들어온 지금, 여기에서 페이스북은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그 존재의 근거지라고 불러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존재의 방’에서 쫓겨난 내 친구,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페이스북 철거민’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페이스북 실명 정책을 통한 ‘강제 추방’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페이스북 철거민의 생생한 이야기를 한 명, 한 명 그들의 생생한 육성으로 들어봅니다.
페이스북 철거민,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편집자) [/box]
피시통신 시절부터 그의 이름은 ‘노모뎀'(nomodem)이었다. 나 역시 노모뎀을 노모뎀으로 만났다(응?). 그렇게 10년 넘게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한 인간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상징했던 그 이름, 노모뎀. 페이스북은 그 노모뎀이라는 이름이 법적인 실명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모뎀을 쫓아냈다.
슬로우뉴스 편집위원이기도 한 노모뎀에게 이름 빼앗긴 자의 소회를 들었다.
- 2015년 5월 8일 늦은 밤
- 휴대전화
– 페이스북에서 쫓겨났을 때 상황을 다시 회상하면.
일언반구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하고, 어떤 해명 절차도 없이 갑자기 쫓겨났다. 그리고 결국은 페이스북 개인 계정을 페이지로 강제전환 당했다. 다시 내 개인 계정을 돌려달라고 하니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개인 계정을 써야 하는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그랬더니 ‘노모뎀’ 대신 ‘이주석’이라는 이름으로 돌려주겠다고 했다. 노모뎀 대신 이주석이라는 이름으로 활성화해주겠다고 했다.
– ‘노모뎀’ 대신에 ‘이주석’으로 강제 이주된 상태라는 건가.
그렇다. 노모뎀이라는 과거의 개인 계정에 있는 이삿짐이 이주석이라는 개인계정으로 옮겨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페이지로 강제전환하면서 페북 쪽은 이렇게 말했다. 노모뎀은 실명이 아니라 비즈니스 네임이나 연예인의 닉네임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환해줬다는 식으로 말이다. 페이지로 강제전환된 내 개인 계정을 보는 건 마치 내 묘비명을 보는 느낌이었다.
– 약간 복잡한데, 교통정리해보자.
- 현재는 ‘이주석’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계정도 존재하고(기존의 ‘노모뎀’에서 강제 이주된 계정)
-
노모뎀이라는 페이지도 존재한다.
– 어떤 과정을 겪었나.
내가 원하는 건 개인 계정에서 사용하는 이름을 오프라인에도 쓰는 이름인 노모뎀으로 바꾸는 거다. 페북 측은 이름이 이미 바뀐 상태라서 60일이 지나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60일이 지난 뒤에 바꾸려고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귀하는 여러 번 바꾸었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는 취지로 답변하더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여러 번 바꾼 적이 없는데?
페이스북 헬프센터를 통해서 바꾸려고 시도했지만, 페북 측은 바꿀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왜 내 ‘노모뎀’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나(…)
– 쫓아낸 뒤에 페이스북이 요구하는 ‘실명 확인 절차’도 아주 까다롭다.
이주석 주민등록증 스캔해서 보내고, ‘노모뎀’이라는 이름으로 발행되거나 언급된 슬로우뉴스와 블로터 기사를 보내면서 왜 노모뎀이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 개인 계정을 사용할 수 없는지 해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해명이 오긴 왔는데, ‘정책에 어긋난다’는 간단한 답변이었다.
– (…)
왜 누구(민노, 이고잉 등)는 이름이 회복되고, 누구(노모뎀)는 안 되나? 그리고 나는 ‘노모뎀’이라는 이름을 오프라인에서도 쓰고 있다! 이주석과 노모뎀, 이 두 이름은 모두 내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쓰는 이름이다.
그렇게 항변했더니 답변 없이 페이스북 헬프센터에 열린 케이스(노모뎀 상담 케이스)가 종료됐더라.
– 철거민이 된 뒤에 페북 생활의 변화는?
페북을 통해 교류한 분들은 내 이름을 ‘노모뎀’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페이스북의 일방적인 조처로 그분들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는 마치 사회에서 격리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이른바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은 나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노모뎀’이라고 불러줬는데, 어느 날 ‘이주석’이라고 하니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어색해하더라. 어제도 한 작가(페친)가 아직도 이주석이라는 이름은 어색하다고 내게 말했다.
사람들은 오히려 이주석이라는 이름을 어색해한다. 페이스북 측 생각으로는 노모뎀을 어색해야 하겠지만.
– 심리적인 변화도 컸을 것 같다.
예전에는 페이스북에 뭘 쓸 때 이 컨텐츠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거라는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페이스북에 쓰는 기록이 언제든 내 잘잘못과는 무관하게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생겼다. 그래서 항상 백업을 걱정한다.
– 페이스북 전반의 정책에 대해 평한다면.
페이스북 정책에 대한 신뢰를 더는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페북 정책에 어긋난다고 판단해 미디어나 페이지를 신고하곤 하는데 ‘문제없다’고 답변을 받은 적도 있고…
– 신고를 종종 하나?
종종 한다. 가령, 어제도 “김치녀”라는 페이지를 신고했는데 페이스북 정책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페이스북은 스스로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정책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김치녀” 페이지가 별문제 없다고 했다. 이해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내 이름을 지우는 정책이나 ‘김치녀’ 페이지가 괜찮다는 정책이나 상식에서 반한다는 일관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왜 페북이 실명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처음에는 페북의 실명 정책을 좋은 취지로 받아들였다. 페이스북 활동에 책임감을 부여하는 취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페이스북 활동에 책임감을 부여하는 방법에 대한 판단에 대해선 잘못이 있다고 본다.
– 페이스북 실명 정책을 도덕적 동기로 보나.
그렇게 본다. 최소한 그 취지는. 지금도 그 취지에 대해선 좋게 본다. 적어도 경제적 동기 외에 그 명분에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 잘살던 집에서 갑자기 쫓겨나면 쳐다보기도 싫을 텐데.
쫓겨난 과정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살았던 집과 비교해보면 여전히 매력이 있다. 그리고 내가 쫓겨난 이유는 ‘오해’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그 오해를 풀고 계속 남고 싶었다.
– 오해라고?
집주인(주커버그)이 아니라 관리인(페이스북 코리아)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집주인에게 직접 내 사정을 이야기했다면, 집주인이 이런 식으로 대응했을 것 같지는 않다. 관리의 문제라고 본다.
– 끝으로 페북 사업자와 페북 사용자에게 한마디.
소셜 네트워크에서 인맥이 형성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사라진다는 건 일종의 사형선고와 같은 효과가 있다. 기존에 홈페이지나 블로그가 정지(가령, 서비스 종료)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마치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은, 그 세계에서는 내가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점을 페이스북이 깊이 고려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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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철거민을 찾습니다!
→ 페이스북에서 쫓겨났거나 이름을 빼앗기셨나요? “컨택 센터”나 댓글로 사연을 공유해주세요.
어라? 이게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기사인듯한데 여기만 댓글이 없네요.
컨텍센터를 통해 제 이야기(문의)를 메일로 발송했습니다.
오늘 저녁에 저도 당황스러운 철거를 당했네요.
신분증이라니, 신분증이라니…..어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가명, 예명 사용이 가능하다고 해놓고 실명 요구라니.
갑질의 도가 지나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