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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임시조치’ 제도(일명 블라인드 제도)를 손보려고 합니다. 임시조치 제도는 게시물을 올리는 사용자에게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그 게시물을 관리하는 인터넷 사업자(주로 포털사)에게는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제도로 비판받아 왔습니다.

특히 이용자(게시물 작성자) 입장에서는 정당한 비판마저 그 비판 대상자(권리침해 주장자)에 의해 실질적으로 삭제(‘임시조치’)되는 부작용이 적지 않았습니다. (아래 ‘알바생’ 사건 참조.)

KS-Park그렇다면 방통위 개정안은 이런 비판 의견을 수용한 개선책을 담고 있을까요? 표현의 자유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고민해 온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는 이 개정안을 ‘개악’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박경신 교수가 이 개정안을 개악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를 함께 살펴보시죠. (편집자) [/box]

방통위가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준비 중이다. 특히 ‘임시조치’를 개정하려고 한다. 방통위가 내세우는 개정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임시조치에 대하여 정보게재자의 이의제기 절차를 도입하고, 효율적인 이용자 권리구제를 위하여 명예훼손분쟁조정 기능을 강화하며, 인터넷이용자피해구제센터의 설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

–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 중에서

방통위

나는 방통위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개악’이라고 판단한다. 일단 현행법과 개정안을 비교해 보자.

[dropcap font=”arial” fontsize=”28″]현행법[/dropcap]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침해의 소명과 함께 삭제요청이 들어오면 반드시 삭제 내지 임시조치를 해야 한다. 권리침해여부를 잘 모르겠거나 분쟁이 예상되는 경우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 임시조치 기간은 최대 30일이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8″]개정안[/dropcap]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는 자가 소명과 함께 요청하면 임시조치를 해야 한다. 임시조치 기간은 최소 30일이다. 게시자는 이때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고(첫 번째 저항) 분쟁조정 결과에도 이의를 제기하면(두 번째 저항) 자동으로 소송제기가 되면서 게시물이 복원되어 권리침해를 주장하는 자가 그 소송에서 승소하지 않는 한 게시물은 계속 유지된다.

현행 임시조치 제도가 멍청하다면, 방통위의 개정안은 더 멍청하다. (사진: [덤 앤 더머 투] 포스터)
현행 제도(임시조치 제도)가 문제라면, 방통위의 개정안은 더 문제다. (사진: [덤 앤 더머 투] 포스터)
개정안이 개악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업자가 게시물을 합법이라고 확신해도 임시조치 강요하는 법 

현행법상으로는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에만 임시조치를 하지 않은 책임을 지게 되어 있지만, 개정안으로는 “권리를 침해받았다는 주장”이 있는 경우 임시조치를 하지 않으면 책임을 진다.

물론 사업자들은 현행법 조문도 무언가는 해야 하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에 어차피 의무적으로 임시조치를 하고 있다. 또 둘 다 ‘소명’이 요건이기 때문에 “권리침해”가 소명된 경우와 “권리침해주장”이 소명된 경우가 뭐가 다르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법조문을 읽어보면 어찌 되었든 삭제든 임시조치든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하는 의무도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로 한정되어 있다. 즉, 나중에 사업자가 임시조치를 안 한 것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을 당했을 때 아무리 권리침해의 소명이 잘 되어 있었어도 게시물이 종국적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혀진다면 사업자는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개정법은 명시적으로 “권리를 침해받았다는 주장”만 있어도 임시조치를 할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합법적인 게시물이라도 임시조치를 안 하는 것이 위법이 되어 버린다. 즉, 지금은 사업자들이나 게시자들이 임시조치 요청이 들어와도 ‘이 게시물은 절대로 불법이 아니다’라는 확신이 있다면 소명이 얼마나 되었던 임시조치를 하지 않고 버틸 근거가 있었다.

개정안에서는 이 근거마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Amy Clarke, CC BY https://flic.kr/p/7gFVrj
임시조치 제도는 권리침해 주장자의 신고만으로 표현의 자유를 합법적으로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 (사진: Amy Clarke, CC BY)

2. 임시조치 기간, 현행법 “30일” vs. 개정안 “60일” 

게다가, 현행법상으로는 임시조치가 최고 30일이었다. 물론 복원요청권을 주었는데도 요청하지 않으면 임시조치를 영구적으로 변경하는 사업자도 있었지만, 복원요청권을 행사하면 30일 전에라도 복원해주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개정안으로는 임시조치기간이 30일로 못 박혀 있다. 게다가 게시자가 분쟁조정 신청으로 1회 또 분쟁조정 결과에 대한 불복으로 1회 모두 합해 2회 저항을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게시물이 실제로 가려진 상태가 유지된다.

보통 분쟁조정기간이 30일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면(설명 보충: 법조문에는 분쟁조정을 10일 내에 마쳐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그 안에 마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규정이 없고 단지 분쟁조정기간이 길어지면 임시조치 기간이 그만큼 길어진다는 조항만이 있을 뿐이다. 보충 일시: 2014년 12월 4일 오전 11시 23분.) 합법적인 게시물도 누군가가 불법이라고 주장만 하면 최소 60일은 가려진(블라인드) 채로 있어야 한다.

특히 복원권을 보장해주는 서비스의 경우에도 복원권 신청 비율이 10% 정도이다. 그런데 개정법하에서 분쟁조정 결과에까지 저항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결국, 똑같은 비율로 따지면 1% 정도 게시물만 남게 된다.

검열을 비판하는 표현의 자유 사진
Derek Davalos, CC BY NC SA

3. 사업자 책임, 전 세계 면책조항 대세 vs. 합법 게시물까지 책임? 

다른 나라들은 인터넷의 불법 게시물에 대해서 사업자가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면책조항이 대세다. 왜 그런가.

인터넷의 문명사적 의의는 아무에게도 허락받지 않고 전 세계가 보도록 콘텐츠를 누구나 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게시의 자유 속에서는 불법 게시물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업자에 그 책임을 모두 지우면 사업자는 게시물들을 모니터링할 수밖에 없다.

Neil Kremer, CC BY ND https://flic.kr/p/8Pq6ow
Neil Kremer, CC BY ND

결국, 인터넷에는 사업자의 사후 모니터링을 통과한 게시물들만 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터넷의 문명사적 의의인 ‘허락 없이 전 세계에 말하기’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그런 대표적인 나라인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등은 현재 임시조치를 하고 있지 않다.

사업자의 자발적 검열 유도… 제2의 사이버 망명 사태 원하나? 

다른 나라들은 불법 게시물에도 사업자에게 면책권을 주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불법 게시물에 면책권을 주기는커녕 합법 게시물에도 과도한 책임을 부과한다.

이렇게 되면 사업자들은 더욱 단단히 검열의 고삐를 쥘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제2의 사이버망명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표현의 자유
Looking Glass, CC BY SA

그럼 어떻게 바꿔야 할까? 간단하다! 

“임시조치를 해야 한다”로 되어 있는 것을 “할 수 있다”로 바꾸고 임시조치기간을 마음대로 정하게 해두면 훌륭한 면책조항이 된다. 이미 개정안 10항에 면책조항이 들어가 있는데 지금은 아무런 의미 없다.

왜냐하면, 면책이라는 게 사업자가 어떤 행동을 하도록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이미 개정안 2항에서 “임시조치를 해야 한다”라고 강제를 하고 있어서 동기부여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2항에서 “이거 안 하면 안돼”라고 해놓고 10항에서 “이거 하면 책임은 안 물을게”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이 바꾸면 10항의 의미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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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과 개정안 비교 

정보통신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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