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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라. 희미해져 가는 것보다 일순간 타올라 버리는 삶이 더 괜찮다는 것을.”

– 커트 코베인

왜 음악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좋아서’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돈으로 돌아간다. 주목받지 못하면 돈 벌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은 먹어야 살고, 차를 타야 어디든 갈 수 있다.

결국, 돈은 쓰게 돼 있다. 그래서 음악한다는 이들은 대체로 궁핍하다.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아주 슬픈 장면이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룸살롱에서 밴드 연주를 한다. 하지만 술에 취해 게걸스러워진 취객들은 여자들과 옷을 모두 벗고 논다.

결국, 주인공도 옷을 벗고 ‘아파트’를 부른다. 배우 이얼이 무표정한 얼굴로 웃통을 벗은 채 기타를 연주하며 ‘아파트’를 부르는 모습은 무척이나 서글펐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임순례, 2001)
와이키키 브라더스 (임순례, 2001)

대학에 다니던 시절, 밴드 활동을 하면서 돈이 없어서 찢어진 드럼 헤드를 그냥 놔뒀던 그 기억이 떠올랐고, 그 고귀하신 돈이 끝내 없어서 육중하기 이를 데 없는 구형 베이스 앰프를 이고지고 다녔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은 망했고 흩어졌다 

[모던 파머]는 시청률 5%를 넘지 못하는 SBS 주말드라마다. 한때 홍대를 주름잡던 밴드 Excellent Souls(약칭 Exo, 제작진 왈, 그만큼 잘 나갔던 그들이 처참하게 망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정해진 약칭이라고 한다), 방송 데뷔를 앞두고 뜬금없이 망했던 그들은 모두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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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리더이자 일렉기타 겸 보컬인 민기(이홍기)에게 남은 것은 사채 빚 1억 원과 고추아가씨 선발대회 무대에서 노래하며 고추가 가득 담긴 포대를 일당으로 받고, 식당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처참한 현실이다.

사채업자는 “지금까지 내 돈 떼먹고 외국으로 튄 놈, 외딴 섬으로 튄 놈은 봤어도 살던 집 옆집으로 튄 놈은 처음 봤다”면서 장기를 떼려 들다가 민기의 기타를 보고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빚 갚을 시간 3개월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인디군 소울면 하두록리로 향한다 

드러머 기준(곽동연)은 ‘나도 철밥통을 가질 수 있다’는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붙은 공무원 학원에 다닌다. 하지만 모의고사 성적표에 찍힌 그의 점수는 34점이다.

베이스를 맡던 한철(이시언)은 비정규직으로 근무하지만, 기타를 잡던 그 실력은 룸살롱에서 상사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쓰일 뿐이다.

건반을 맡은 혁(박민우)은 대형병원장 아버지를 둔 덕에 인턴 의사로 일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심사가 꼬여 병원에서 사고나 칠 뿐이다.

사진: SBS  http://program.sbs.co.kr/builder/programSubCharacter.do?pgm_id=22000004561&pgm_build_id=5801&pgm_mnu_id=2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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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가 선택한 빚 갚을 방법은 배추를 키워 팔겠다는 것. 할머니의 유산 땅 1만 평을 보고 설레지만, 맹지인 탓에 값은 불과 평당 200원. 즉, 200만 원이다. 그래서 배춧값 폭등 시대를 맞이하여(현실과 맞지 않지만), 1만 평을 배추로 채워 모두 팔아 사채 빚 도 갚고 음반도 내겠다는 꿈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디군 소울면 하두록리로 향한다.

모던 파머 (SBS, 2014)
© SBS

막장의 시대 틈바구니 속 착한 로맨틱코미디

바야흐로 우리는 막장의 시대를 살고 있다. 온갖 출생의 비밀과 재벌 후계자인 실장님 상무님들이 범람하며, 그런 가운데 외손자를 인정하기 싫은 사위로부터 강탈해 교회 베이비박스에 버리는 데다가, 재벌 회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리를 주가조작범으로 몰아 교도소에 처넣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막장이 아니더라도 의학 드라마는 의사가 사랑을 하는 장르라는 것은 뻔한 상식이 됐다. [미생]도 공중파에 방영될 뻔했지만, 멜로라인을 넣으라는 높으신 분의 요구에 원작자가 거절하면서 케이블 드라마로 태어났다.

과도한 막장과 닥치고 멜로로 규정된 한국 드라마의 문제들은 시청자들의 취향 탓인지, 아니면 높으신 분들의 천편일률적 요구인지 그것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청률은 5% 

[모던 파머]의 시청률은 불과 5% 안팎이다. 주말 저녁 9시라는 황금시간대에 이런 시청률이 나오다니, SBS 높으신 분들의 심기가 어떨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모던 파머]에도 멜로는 빠질 수 없다. [모던 파머]는 록 밴드가 사랑하는 드라마이기는 하다. 삼각관계 사각관계 오각 관계 죽죽 엮여 있다.

하지만 무척이나 착하다. 자극적 설정 없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법한 감정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실상 사람의 감정과 그 표현은 무척 유치하다.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 힘든 환경에서 그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면서 말과 행동이 엇나가기 때문이다.

너무 유치해서 그래서 인간적인 드라마

사진: SBS http://program.sbs.co.kr/builder/programSubCharacter.do?pgm_id=22000004561&pgm_build_id=5801&pgm_mnu_id=2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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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윤희(이하늬)의 태도가 특히 그렇다. 그저 동생이라고만 생각했던 민기를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민기는 자신이 사랑하는, 잘 나가는 가수 유나(한보름)만을 생각한다. 그것을 너무 잘 알기에 괜스레 거친 말을 쏟아부으며 민기를 자극한다. 그러다가 이내 후회한다.

‘사람은 누구나 유치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되려 그 솔직한 감정선이 착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사랑하던 엄마와 너무 닮은 모습에 윤희를 좋아하던 혁이의 안타까운 모습까지 돌아본다면 [모던 파머] 속 멜로라인은 시청자를 잠시 사춘기로 되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유치한 감정선은, 온갖 꽃무늬들이 작렬하는 ‘모던 파머 룩’과 각종 코믹한 장치들과 어우러져 오히려 신선하다는 느낌이 든다. 바로 이 신선함이 5% 시청률의 이유가 아닐까 한다. 갓난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버리는 등의 각종 자극적 설정들이 없는 가운데, 시트콤식 유머 코드들이 나열되면서 불편한 느낌 없이 웃을 수 있다는 장점을 준다.

하지만 막장에 익숙해져버린 대다수의 시청자들에게는 재미를 주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서 5%는 아쉽다.

소통이 사라진 시대의 안타까움

[모던 파머]에서 눈 여겨보는 포인트는, 등장인물 대부분이 저마다 혼자 끙끙 앓고 있다는 것이다. 윤희의 초등학생 아들 민호는 아빠가 없어서 느끼는 슬픔을 가슴속에 채워놓고 잊지만, 엄마가 슬퍼할까 봐 애써 참고 지낸다. 윤희는 그런 아들을 보며 가슴이 미어지지만, 티 내려 하지 않는다.

민기는 윤희와 민호의 고민을 감싸며 “고민을 해결해줄 수는 없어도 들어는 줄 수 있다.”라며 윤희를 달랜다. 하지만 정작 민기는 사채 빚 1억 원의 존재를 밴드 동료들에게 알리지 않고, 안타까워 보일 정도로 혼자서 감당하려고 애쓴다.

혁이는 윤희를 보며 엄마를 닮은듯한 그 모습에 사랑을 느끼고 동시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커지지만, 윤희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장난이었다며 넘어가버린다. 한철은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았지만, 마찬가지로 동료들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실어증에 걸린 한인기(김병옥)는 음악을 했던 과거가 있는 것 같지만,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한인기의 딸 상은(박진주)은 제법 끼를 갖추고 있고 가수가 되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에게 머리만 밀릴 뿐이다. 아버지가 이유를 말하지 않기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고민을 해결할 순 없어도 들어줄 순 있잖아” 

고민을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들어줄 수는 있다는 민기의 말은 평범한 상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을 실천하기가 몹시 어렵다는 것을.

사람에게는 누구나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걱정을 안겨줄까 봐, 혹시라도 내 자존감이 무너질까 봐, 기타 등등 다양한 이유로 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답답해 보일 정도로 혼자서 앓고 살아간다.

대화와 소통을 외치지만 정작 제대로 되는 부분은 하나도 없는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은 아닐까. 혹시 이 부분이 외손자를 교회 베이비박스에 처넣는 식의 막장 드라마가 유행하는 이유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혼자 끙끙 앓으면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이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고민을 티 내지 않고 혼자 앓아가며 웃음으로 애써 감추고 있지만, 그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약하지만 한편으로 강한 사람들이다.

사진: SBS  http://program.sbs.co.kr/builder/endPage.do?pgm_id=22000004561&pgm_mnu_id=20111&bbsCd=pt_mf_02&contNo=1000035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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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대한 아쉬움 물론 있다 

미혼모 문제, 다문화 가정 문제, 쌀 개방 문제, 조선족 불법체류자 문제 등 비교적 다양한 농촌의 현실이 스토리라인에 새겨져 있지만, 인물들의 감정 선과 관련된 미혼모 문제와 다문화 가정 문제 외에는 코믹에 묻힌다는 아쉬움이 있다.

[모던 파머] 특유의 거침없는 코믹 묘사는 장점이지만, 이렇듯 때로는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이미 김장철이 와버린 데다가 중국산 배추의 범람 및 배추 풍년으로 인해 배추밭을 갈아엎는 현실에서, 뜬금없이 배추를 키우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엇갈린 시기의 문제점도 다소 아쉽다.

현재 10부까지 방영된 [모던 파머]는 총 20부작이다. 주말 드라마치고는 방영 기간이 짧은데, 이것은 SBS도 이렇듯 낮은 시청률을 이미 짐작하고 방영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막장 드라마에 대한 유쾌한 반란

하지만 시청률이 전부는 아니다. [나쁜 녀석들]과 [미생]으로 상징되는 멜로 라인이 제거된 장르물들이 케이블 드라마로서 높은 시청률과 화제작으로 통하고 있고, 과거 [한성별곡-정]은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마니아들이 꼽는 수작으로 통한다. 막장 드라마에 반감을 갖는 시청자층은 여전히 존재한다.

[나쁜 녀석들]과 [미생]은 멜러 라인을 피하고  소재와 주제에 집중한다.
[나쁜 녀석들]과 [미생]은 멜로 라인을 피하고 소재와 주제에 집중한다.
적어도 배추를 키워 사채 빚을 갚고 음반도 내겠다는 그들의 꿈은, 반대하는 사위 꼴 보기 싫다고 외손자를 납치해 교회 베이비박스에 버리는 광경보다는 훨씬 건강하고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끙끙 앓고 있는 그들 모두의 고민이 속 시원하게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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