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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수의 눈물: 무책임한 보도를 한 언론은 책임이 없는 것일까

더운 여름 시원한 빙수 한 그릇이 생각나지 않는 한국인이 있을까.

전통적인 팥빙수에 딸기 빙수, 사과 빙수 같은 과일 빙수, 녹차 빙수까지. 압구정동에 있다는 밀탑, 정통 팥빙수를 표방하는 옥루몽, 연예인이 운영한다는 동빙고 등은 3대 빙수로도 유명하다. 신촌의 빙수 가게 호밀밭 앞에는 대학생들로 보이는 여자들이 길게 늘어서 홀든 콜필드가 왜 그 파수꾼이 되고자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7월 한국경제 1면 ‘토종 빙수’ 설빙 

겨울이 다가오는 마당에 왜 여름 이야기냐 하면, 한여름인 7월 국내 유수 신문의 1면 이야기를 해야겠기 때문이다. 한국경제 신문은 지난 7월 14일 자 신문 1면에 스타벅스 밀어낸 ‘토종 빙수’ 설빙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는 팥 대신 콩고물과 인절미를 올린 빙수를 앞세워 ‘설빙’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스타벅스 밀어낸 '토종 빙수' 설빙

아닌게아니라 설빙은 실제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한국경제 기사는 작년 4월에 첫 매장을 낸 설빙은 불과 열다섯 달 만에 매장을 300개로 늘렸고, 올해 안에 곱절 이상인 800개로 매장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전했다. 나는 실제로 설빙의 빙수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가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확실히 맛은 뛰어나다고 한다. 강남역 인근에만 강남서초점, 강남역점, 강남역 2호점 등 3곳이 생긴 데는 그런 빼어난 맛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마음 불편하게 한 기사의 뒷맛 

그러나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이 기사가 과연 신문의 1면을 장식할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하는 게 의문이었다. 어느 빙숫집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그날의 가장 중요한 머리기사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더운 여름철 빙수 한 그릇이 간절할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해 그랬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분명히 이 기사를 보고 콩고물과 인절미가 들어간 빙수를 찾아 설빙을 방문해서는 한국경제 기사에 고마움을 느낀 사람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저런 기사가 ‘1면감’인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설빙

설빙

마음이 불편했던 다른 이유는 기사에 포함된 한 문장이 어쩐지 기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문장이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설빙이 핵심 상권에 입점하면 월매출 1억 원, 특급상권일 경우에는 하루에 매출 1000만 원까지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어디서 봤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핵심 상권 입점 시 월매출 1억원, 특급 상권의 경우 하루 매출 1000만 원 보장!” 이렇게 쓰면 어떤가? 프랜차이즈 모집 전단이나 기획 부동산 분양 전단 같은 데서 많이 본 문구가 아닌가? 재미있는 것은 저 말이 기자의 말도 아니고 설빙 프랜차이즈 본사의 발언도 아니고 ‘부동산 업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취재원이 누구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따라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문장인 것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월 매출 1억 원’ 

모르긴 몰라도 프랜차이즈 본사에서는 가맹점을 내려고 상담하러 온 사람들에게 한국경제의 이 기사를 보여주면서 얼른 가맹점을 내라고 권유했을 것이다. 가게를 내려고 했던 사람들도 이 기사를 보고 설빙 본사를 많이 찾아왔을 것이고. 국내 양대 경제지로 손꼽히는 한국경제가 그 정도의 열독률은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빙수는 한여름에나 인기가 있는 음식이다. 겨울이라고 빙수를 먹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매상이 심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철 벌어 1년 먹고 살아야 하는 가게가 빙수 가게다. 그나마 겨울에도 장사가 되는 집은 이른바 ‘3대 빙수’처럼 인지도가 높고 상징성이 강한 곳일 터이고, 상대적으로 작은 집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빙수의 눈물’ 

아니나다를까 지난달 말 서울경제는 빙수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올여름 ‘빙수 광풍’으로 문을 연 빙수 가게들이 날이 추워지면서 대부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빙수의 눈물

그러면서 “빙수의 눈물이 진해”지는 데는 가맹점주의 책임도 물론 있지만, 프랜차이즈 본사가 단기간에 가맹점을 폭발적으로 늘린 데에도 원인이 있다고 꼬집었다.

일차적 원인은 ‘빙수 광풍’에 사로잡혀 가게를 낸 창업주에게 있지만, 일각에선 프랜차이즈 본사가 냉정한 상권 분석 없이 단기간에 가맹점을 폭발적으로 늘렸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특히 강남역과 신논현역 주변에 총 4개 점포(강남서초·강남역·강남역2호·강남대로)를 운영하고 있는 설빙은 이 같은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빈털터리로 겨울 맞은 가맹점주들 

지난여름 빙수 가게를 연 가맹점주들은 결국 매장을 개설한 초기에 임대료와 권리금, 로열티, 홍보비를 쓰느라 돈을 날리고 빈털터리로 겨울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서울경제는 지난 8월 21일 자 2면에서도 설빙의 “무분별한 가맹점 확장”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번식’이라고까지 불린 카페베네보다 설빙의 출점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었다.

지난 4월 론칭 1년 만에 100호점을 찍은 설빙은 7월 말 300개를 넘더니 18일 현재 353개 매장을 기록하는 등 연내 500호점 계약을 모두 마친 상태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무서운 속도로 가맹점 수를 늘린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은 3년 사이에 800개 매장을 오픈한 카페베네가 대표적인데 설빙의 출점 속도는 카페베네를 일찌감치 뛰어넘었다.

실제로 맨 처음에 인용한 한국경제 기사는 설빙의 목표가 ‘올해 안에 800개 매장’이었다고 쓰고 있다. 이게 정상적인 가맹점 확장 속도일까.

2004년 아이스베리 30개 vs. 2014년 설빙 800개 

10년 전 같은 빙수 가게로 화제를 모았던 ‘아이스베리’의 사례를 보면 아무래도 의아할 것이다. 주간경향에 2004년 실린 기사 한순간에 깨진 ‘백만장자의 꿈’을 보자.

“당구 이야기를 해보자. 그가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였다. 당시 큐를 처음 만져본 그가 200점을 치는 선배와 맞붙었다. 누구도 그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꼬박 2박 3일간 잠도 자지 않으면서 선배를 물고 늘어졌다. 무서운 몰입과 승부욕이었다. 결국, 최종 승자는 그였다. 내가 아는 그는 좌절하거나 실패한 적이 없었고 아예 실패하는 방법조차 몰랐다.”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중 과일빙수 전문점 ‘아이스베리’를 창업해 대학생 성공신화를 일군 김 모 씨(30)의 학과 선배는 그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대학 4학년 때인 1999년 김씨는 ‘단돈’ 2천만 원으로 신촌 떡볶이집을 인수해 과일빙수 가게를 창업했다. 자본금 2천만 원은 주식투자 등으로 모은 돈이었다.

‘빙수는 여름에만 먹는다’라는 고정관념을 깬 그는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다. 서울 강남을 비롯해 전국 30여 개의 체인점을 구축했고 TV와 여성 월간지 등 수많은 매체에서 그를 주목했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타고난 승부욕을 결합해 만들어낸 성공기였다.

아이스베리

아이스베리

‘대학생 성공 신화’, ‘대박’ 등으로 불린 아이스베리는 서울 강남을 비롯해 전국 30여 개의 체인점’이다. 10년 전 상황이 지금과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30여 개 체인점과 800개 매장의 간극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한국인이 빙수를 간식으로 먹다가 주식으로 먹게 됐다면 모를까. 과연 한국인에게 800여개의 빙수 매장이 필요한 것일까. 여기에 비온 뒤 죽순처럼 솟아난 다른 ‘미투’ 빙수 가게를 포함한다면?

가맹점주 입장에서 본 ‘빙수의 눈물’  

여기서 입장을 좀 바꿔서 생각해보자. 한국경제의 시각이나 설빙 본사의 시각 말고, 가맹점주와 그 가족의 시각으로 돌아와 보자.

아마도 설빙을 차린 그 돈은 어느 집안의 가장이 평생 일한 직장에서 나오면서 받은 퇴직금이거나 갓 사회에 나온 청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여기저기서 빌려 마련한 돈이기가 쉽다. 거기에는 한 가정의 생계가, 젊은이들의 꿈이 달려 있었을 것이다. 빙수의 눈물은 사실 그러니까 빙수의 눈물이 아니라, 어느 가장의 눈물이요, 어느 청년의 눈물이요, 서민들의 눈물이었던 셈이다.

애초의 한국경제 기사에는 기자 이름이 셋이나 달려 있다. 대표적 계절상품인 빙수가, 날이 추워지면 장사가 잘 안된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을까. 그 세 명의 기자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창업전문가에게 가서 설빙이 정말 가게를 내기만 하면 월 매출 1억 원이 보장되는지 물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일까.

“과연 무책임한 보도를 한 언론은 책임이 없는 것일까” 

한국경제는 설빙 기사를 1면에 올린 날 신문 31면에 카메룬에서 4.2억 캐럿 규모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을 따냈다는 CNK 인터내셔널의 문제점을 자신들만 보도했었다는 기자 칼럼을 자랑스럽다는 듯 실었다. 그 칼럼은 이렇게 끝맺고 있다.

10일 검찰 측은 110억 원을 배임한 혐의로 오 회장을 추가 기소했다. 당일 하한가에서 거래 정지된 CNK는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2011년 1월 1만 6000원대에 이르렀던 주가도 1,725원까지 떨어졌다. 그만큼 많은 개인 투자자가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피고인석에는 CNK 및 외교부 관계자만 앉아 있었지만, 과연 무책임한 보도를 한 언론은 책임이 없는 것일까.

과연 무책임한 보도를 한 언론은 책임이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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