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 세월호 참사가 불과 반년 전입니다. 또 다시 있어서는 안 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2014년 10월 17일 오후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광장에서 ‘제1회 판교테크노밸리축제’ 축하공연을 관람하던 시민 16명이 목숨을 잃고, 11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환풍구 덮개가 꺼지면서 관람하던 시민들이 추락해 벌어진 참사였습니다.

판교 환풍구 참사, 어떻게 봐야할까요? 더는 안타까운 죽음은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허망한 죽음을 멈출 수 있는 여러분의 지혜를 기다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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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잘못인가, 사회 구조(또는 관리)의 문제인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논쟁 떡밥이죠.

사고 직후 한 게시판 댓글 중에서. 여전히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의견이 많고, 그 의견에 찬성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사고 직후. 여전히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의견이 많고, 그 의견에 찬성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동물의 왕국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예전에 [동물의 왕국]에서 봤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초식동물이 물가에서 물을 마시는데 갑자기 악어가 물속에서 튀어올라서 초식동물 목덜미를 잡고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놀란 다른 놈들은 당연히 물가에서 멀찍이 떨어졌겠죠? 근데 한 10초 지났나? 그새를 못참고 또 슬금슬금 물가로 모여듭니다.

맨 처음에는 한 마리만 가서 물을 야금야금 먹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두어마리가 또 슬금슬금 와서 조심스럽게 물을 마시더군요. 한 1분 지나니까 나머지 녀석들도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물가로 모여들어서 물을 마십니다.

그리고 또 악어가 확 덮칩니다. 무한 반복됩니다. 그 방송을 보면서 ‘동물이라 기억력이 떨어지는가 보다’ 생각하고 말았는데, 인간 사회를 보면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똑같습니다.

물 속에서 먹이감을 노리는 악어, (사진: sdmacdonald, CC BY ND)
물 속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악어 (사진: sdmacdonald, CC BY ND)

인간은 불합리하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이성이 있고… 이런 얘기들을 얼마나 많이 듣고 자랐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성인이 되어서 보니 ‘과연 인간이 합리적인가’, ‘인간의 이성이 박쥐의 초음파에 비해서 더 우월하다고 볼 수 있을까’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사실 저는 인간은 굉장히 불합리한 존재이고, 합리적인 인간이란 다다를 수 없는 이상적인 인간향, 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담배 피우면 수명이 단축되는걸 알지만 그래도 땡기니까 피우죠. 사고 터지는거 보면서도 매번 자격 없는 요리사의 복어 요리 사고가 터집니다. (2010년, 2012년, 2013년)

목숨 걸고 모험하는 사람들 보면 아찔합니다. 물론 그러다 많이들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같은 품질의 상품보다 몇 배가 더 비싸더라도 명품이면 기어이 카드 긁어서라도 삽니다. 편의점이 일반 슈퍼보다 더 비싼데 왜 사람들은 편의점을 갈까요? 똑같은 신라면이 슈퍼는 650원, 편의점은 780원이죠. 그래도 슈퍼마켓 놔두고 편의점가서 라면 사는 사람들 많습니다.

인간을 ‘습관의 동물’, ‘망각의 동물’이라고들 하는데, 맞습니다. 그래서 합리적인 결정을 하기보다는 습관대로, 마음가는대로 행동할 때가 많죠.

시스템이 해야할 일

훈련소에서 조교가 “마지막 20은 구호붙이지 않습니다” 해도 그 중에 기어이 “스물!” 외치는 애들이 있죠. 수능 때 전자기기 가져오지 말라는데도 핸드폰 갖고 있다가 적발돼서 무효처리 되는 학생도 있습니다. 감독관이 “모두 반납하세요~!”라고 말하는데도 갖고 있다가 걸립니다.

인간이란 게 원래 이렇습니다.

“하지 말라”고 백 번, 천 번 말해도 그 중에는 기어이 그 짓 하는 사람이 반드시 생겨나고, 그거 보고 ‘괜찮은데 왜 하지 말래?’하면서 따라서 하는 사람들 반드시 생깁니다. 나이에 따라서 정도 차이는 있지만, 성인이라고 그리 크게 달라지진 않습니다. 약간 더 자제력이 있다는 것, 충동적인 생각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빈도가 좀 낮다는 것, 뭐 이런 미미한 차이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인간은 이런 인간의 불완전함을 시스템으로 보완하려는 것입니다.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라고 백날 붙여놓고 구청에 신고한다고 협박해도 기어이 쓰레기 버립니다. 그래서 이런 곳에 꽃으로 화단을 꾸미거나 환경을 바꿔줘서 ‘아예 버릴 마음이 안들게’ 만들어주는 거죠.

편의점에서 청산가리 팔지 못하는 이유 

편의점에서 청산가리를 판매할 수 없습니다. (안 파는 게 아니라, 팔지 못하는 겁니다.)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편의점에서 청산가리를 팔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거나 남을 죽이려는 생각을 하지 않겠죠.

하지만 인간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편의점에서 청산가리 사다가 자살하거나 복수하려고 남의 집 물통에 섞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공약품은 법률로 따로 정해서 사업자 면허 있는 사람들에게만 팔고 전부 추적합니다.

유통, 판매에 국가가 적극 개입해서 사고를 막습니다.

실수 하기 어렵게…

빌딩 주변에 환풍구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깊이가 10미터 이상 된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알고나니 이렇게 위험한 곳에 그냥 철망 하나 걸쳐놓고 말았다는게 어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위험한 곳이면 애초에 올라갈 수 없게 만들었어야 하거든요.

“올라가지 마세요”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고, 아예 그 위에 올라갈 수 없게, 또는 올라갈 생각조차 들지 못하도록 관련 법규로 명확하게 빌딩 환풍구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정부가 관리 감독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수십년동안 그 위험한 곳에 철망 하나 걸쳐놓고 살아왔던 겁니다. 판교 참사의 원인은 올라가지 말라는 데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환풍구에 ‘올라갈 수 있도록’ 방치한 데 문제가 있습니다.

잘못 쓰기 어렵게 설계하라

이 기본적인 원칙이 건축에만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프로그래밍 쪽에서는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잘못 쓰기 어렵게 설계해라”

사람들이 오해해서 잘못 쓰고도 뭐가 잘못인지 모르게 설계하지 말고, 아예 그런 오해나 실수를 하기 어렵게 설계를 해서 사용자가 신경쓸 일이 없게 만들라는 겁니다. 실수하고 싶어도 실수하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어야 쓸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주민번호 입력하는 필드 옆에 “숫자만 입력하세요”라고 규칙을 적는게 아니라, 아예 숫자만 입력되게 막아버리는 식이죠. 잘못 쓰기 어렵게 설계된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공원 의자입니다. 요즘 공원 의자 보면 의자 가운데 팔걸이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벤치 중간에 저런 장치를 했을까요?
왜 벤치 중간에 저런 팔걸이를 달았을까요?

공원 벤치 가운데 팔걸이가 있는 이유 

저 공원 벤치 가운데에 왜 팔걸이를 달았을까요? 7명이 앉을 수 있는데도 6명 밖에 앉지 못할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했을까요?

누워 자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노숙자들이 와서 술 마시고 누워자면 민원 들어오고 관리자들은 매번 돌아다니면서 단속해야 하는데 여간 성가신 게 아니죠. 노숙자들이 와서 누워 자는 경우도 있고, 겨울에 술먹고 집인줄 알고 자빠져 잤다가 얼어 죽는 사람도 종종 있다보니까 ‘눕지 못하게’ 저렇게 해둔 겁니다.

가운데 쇠로 된 팔걸이를 저렇게 박아두면 눕지 못하기 때문에 관리자가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눕지 마세요’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겨울에 취객이 혹시라도 깜박 잠들었따가 얼어죽지 않았나 신경쓸 일도 없죠. (뭐 그래도 옆으로 웅크리고 자다 동사하면 대책 없음.)

시스템이란게 복잡한게 아닙니다. 목적한 바대로 행동하게끔 자연스럽게 사용자를 유도하는 게 시스템이 할 일입니다.

‘올라가지 마세요’, ‘내려오세요’

백날 말해도 반드시 누군가는 올라갑니다. 게다가 그런 말조차 해줄 수 없는 곳이면 어떻게 되나요? 사고가 터지는 겁니다.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그런 일은 계속 생기는 거죠.

사회 구조를 먼저 봐야 하는 이유

걸그룹이 나오니까 이거 자세히 보고 싶은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당연히 뭔가 딛고 설만한 곳을 찾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합리성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그래서 즉각적으로 환풍구같은 데로 올라가서 편하게 관람하고, 그거 보고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올라가서 보게 되죠. 사회자가 ‘내려오세요” 말한다고 내려가나요? 내려가면 안 보이는데? 다 보고 내려가야죠. 이러다 사고 나는 거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환풍구가 이런 식으로 생겼다면 판교 참사가 발생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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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풍구였다면 판교 참사가 일어났을까요? (사진: city-photos.org)

그래도 경사진 저 위에 기어올라가서 보는 사람들은 있을것 같네요. (애들이라면.) 그러다 떨어져도 팔다리 부러지는 정도겠죠. 그럼 이런 식은 어떨까요?

이런 환풍구는 어떤가요? (사진: http://murciadailyphoto.blogspot.kr/2011/07/coloring.html
이런 환풍구는 어떤가요? (사진: murciadailyphoto)

애들이 올라가기도 불가능하고, 추락 위험도 없으며, 디자인도 예뻐서 보기도 좋죠. 그러면 지하 환기구를 지면 위로 곧바로 노출하지 못하게 법을 고쳐서 관리하고, 감독하면 됩니다. 설계도면 보고 제대로 안돼있으면 건축 허가를 해주지 말고, 기존 건물은 기역자 환풍구를 보강하도록 해야죠.

이렇게 법과 제도, 관리 감독의 강화하는 쪽을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올라가지 말라는데 왜 올라갔느냐?’는 식으로 참사 원인을 개인 잘못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면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를 놓치고, 수많은 개인이 각자 알아서 재주껏 위험을 피해다녀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죠.

이런 식이라면 인간이 모여서 국가를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을 탓하는 건 맨 나중에 해도 됩니다

법이 잘못된 건 없는지, 어디서 관리가 안 된건지, 그런 행동을 방치하지 못한 원인이 무엇인지 환경과 제도, 사회 구조 등을 꼼꼼히 따져보세요. 그래도 별 문제가 없어보인다 싶으면 맨 마지막에 개인의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엇인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잘못을 제대로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판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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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필자가 일간워스트에 올린 글(아래 링크)을  필자 동의를 얻어 편집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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