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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 투개표, 일곱 가지 의혹과 오해

6.4 지방선거(제6차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가 끝나면 언제나 결과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설사 불만이 없다 하더라도 투개표를 합리적인 방법과 절차로 문제없이 운용했는지 의심하기 마련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의심이며, 그런 의심은 권장해야 한다.

선거운동 과정에서의 문제점은 공직선거법에서 자세히 규정하고 그 위반행위는 후보자의 책임이다. 이 규정을 어긴 걸로 보이는 사람들에 관해서만 선관위가 관여한다. 그 위반 사실이 엄중하면 검찰 조사를 통해 당선 무효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투개표 과정의 문제는 전적으로 선관위 책임이다.

이 글에서는 바로 그 투개표 시스템에 관한 다양한 의혹들을 다루기로 한다. 어떤 의혹들은 그저 단순한 오해에 불과할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런 의혹들은 책임 있는 해명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알아보기로 하자.

1. 사전투표 지문 날인 문제

이번 선거에서 최초로 시도된 (재보궐에서는 이미 시도했었으나, 이번 선거에서 최초로 전국적으로 시행했다.) ‘사전투표’ 제도가 있다. 5월 30, 31일 양일간 전국의 읍면동사무소에 설치한 3,506곳의 사전투표소에서 사전투표를 시행했다.

여기에 최초로 적용한 ‘지문 날인 시스템’이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연 이 지문 날인 시스템의 문제는 무엇일까?

사전투표 지문 인식은 신원 식별용?

사전투표 시스템에 채용된 지문인식 과정을 ‘해당 지문만 가지고 신원을 확인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전적으로 오해에 불과하다. 이런 오해는, ‘미드’ 등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으로 인해 발생한 것 같다.

어떤 지문이 있으면 이 지문만 가지고 이게 누구인가를 아주 쉽게 확인하는 장면 말이다. 실제로는 그렇게 빠른 지문인식 시스템은 없다. 만약 이게 우리 국민의 지문 정보가 다 담겨있는 데이터베이스에서 확인해야 한다면 엄청난 시간을 써야할 것이다.

대한민국 유권자 41,296,228명의 지문 중에 비교해야 할 지문이 3,200만 번째에 있었다고 생각해 보시라. 이 작업을 전국적으로 수백만 번을 해야 한다. 또 그렇게 4천만 명의 지문을 다 비교했는데, 하필 이 사람의 지문이 닳아서 변형되어 인식이 안 되는 경우도 상당비율로 발생한다. 아직은 이런 과도한 작업을 감당할 서버 시스템은 없고, 이래서는 투표 자체를 치를 수가 없다.

미국 교통경찰이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지문 스캐너로 지문을 확인하는 모습

미국 교통경찰이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지문 스캐너로 지문을 확인하는 모습 (사진: West Midlands Police, CC BY SA)

사전 투표 지문 ‘이중투표 방지 및 근거자료 확보용

실제로 사전투표에 채용된 지문 스캐너는 이런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다. 신원확인은 신분증으로 한다. 그리고 그 유권자의 인적사항을 단말기에 입력하면, 중앙의 서버에 탑재된 통합 선거인 명부에서 찾아주는 것뿐이다.

그렇게 확인하면 해당 지역에 맞는 투표용지를 발급해 주고, 중앙의 DB에는 이 사람은 투표를 했다는 기록을 남겨 이중투표를 방지하고, 나중에 발생할 시비를 막기 위한 자료로 ‘지문 혹은 서명’을 기록하는 것뿐이다.

지문 날인 싫으면 ‘서명’으로 대체 가능

인권 차원에서 잦은 지문 날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 서명을 대신 선택할 수도 있다. 나름 세심한 배려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사전투표에 적용된 지문 관련 시스템은 ‘지문인식’ 시스템이 아니라 그저 ‘기록을 위한 지문 날인’ 시스템일 뿐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서명’으로 대신할 수 있다.

선관위 사전투표 지문 날인에 관한 공보물

사전투표의 지문 날인이 싫으면 ‘서명’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미지: 선관위 보도자료)

2. 사전투표, 왜 도입했을까?

왜 사전투표를 도입했을까? 투표시간 두 시간만 연장해 달라고 그렇게 아우성을 쳐도 반대하던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무려 24시간을 연장하는 효과가 있는 사전투표제도를 도입했을까? 타당한 의심이다. KFC를 진행하는 김어준 씨가 제기한 의문이기도 하다.

투표시간 연장에 끝내 선관위가 반대한 이유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처음 시작한 ‘투표시간 연장’ 제안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꽤 큰 호응을 얻었지만, 선관위는 끝내 반대했었다. 그때 반대 이유로는 투표종사자의 근무시간이 시한을 넘겨 연장해야 하고, 개표 종사원들의 작업시간 역시 심야로 순연해야 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투표 과정에 투입하는 투표사무원 수는 236,566명이다. 20만 명이 넘는다. 이와 별도로 투표 참관인만 109,320명을 투입한다. 도합 30만명이 넘는 인력을 투표 관리를 위해 투입한다. 이 사람들 전부에게 인건비와 식사를 제공한다.

이렇게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이유는 별 거 없다. 투표소가 많기 때문이다. 모두 13,665 곳에 투표소가 설치된다. 즉 투표소 한 개에 20여명씩 투입하는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투표소가 워낙 많다 보니 30만 명이 넘는 인력이 필요하다. 이들이 정규 업무종료 시간을 넘겨 연장근무에 돌입하면 추가 예산도 만만치 않다.

6시를 가리키는 기차 플랫폼

투표시간을 6시 이후로 연장하자는 안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사진: Scott-Smith-CC-BY-NC-ND)

투표시간 연장, 적잖은 예산과 추가 인력 필요

거기다가 개표작업에 투입하는 인력도 적지 않다. 전국 252개의 개표소에 107,335명의 개표 인력을 투입하고, 약 1만5천여 명의 개표참관인을 투입한다. 이들의 작업 시간이 심야로 순연되면 추가 인건비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즉, 선관위가 집행할 수 있는 예산 범위를 넘어선다. 대략 40만 명이 넘는 인원에게 늘어난 인건비와 식대 2만 원씩만 추가로 지급한다고 쳐도 80억 원이다. 결국, 2012년 대선에서는 그런 예산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과거로 돌아가 2011년에 이미 국회에서 예산을 편성해 줬어야 한다는 점이다.

실무적으로 당시 투표시간 연장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2011년 여름 이전에 2012년 대선에 필요한 선관위 예산을 더 확보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을 해야 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전투표, 어떻게 이리 쉽게 도입할 수 있었나

이렇게 실질적으로 구현이 불가능했던 ‘투표시간 연장’과 달리 사전투표제는 미리 계획이 되고 예산까지 잡혀 있었던 방식으로, 즉 적절한 사전 준비를 통한 정상적인 실무처리로 도입한 제도다.

거기다가 늘어난 노령층의 인구 비율 덕분에 2012년 대선을 통해 투표율이 특별히 여야 어느 일방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인식까지 확산했다. 부재자 투표로 인한 각종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여야 일방에 불리하지 않고 반대하기 어려웠던 제도

근본적으로 일반 유권자들에게 투표의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는 대의적인 차원에서 선관위의 ‘사전투표제’ 도입은 명분이 있는 계획이었던 것이라 여든 야든 반대하기 힘든 안이었다는 점도 들 수 있겠다. 결국, 이 안은 국회에서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실제로 여야 의원들은 이 사전투표제를 가지고는 큰 공방을 벌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광역단체장-교육감 러닝메이트 제도라거나, 몇몇 기초의회 폐지 같은 건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사전투표제도를 도입한 과정에서는 별다른 의문이 있을 여지가 없다. 그저, 중앙선관위가 계획하고, 그 계획이 근본적으로 명분 있는 타당한 계획이었기 때문에 여야 모두 별다른 반대 없이 동의했을 뿐이다.

3. 사전투표 데이터 유출 의혹

사전투표 데이터를 여당에만 유출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이 의혹은 사실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합리적 의심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오해일 뿐이다.

사전투표에서 나올 수 있는 데이터는 어떤 유권자들이 얼마나 투표를 했는가 뿐이다. 어차피 신분증 내밀고 신원을 확인해서 투표용지를 발급받고 투표 여부를 기록했기 때문에 이 데이터는 자동으로 산출된다.

그리고 선관위는 사전투표가 끝나자마자 이 데이터를 지역별로 세분해서 공개했다.

제6회 지방선거 사전투표 최종투표율

제6회 지방선거 사전투표 최종투표율 (자료 제공: 선관위)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연령별, 성별로도 공개했다. 거의 모든 언론에서 이 자료를 보도했다. 즉, 이 데이터가 여당에게만 몰래 제공한 것은 아니다.

사전투표, 어떤 후보 선택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혹시 사전투표에서 이미 유권자들이 어떤 후보를 선택했는지도 알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 정보가 여당 측에 제공된 것은 아닐까? 충분히 가능한 의심이다. 이 경우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전투표를 해 본 사람을 알겠지만, 관내투표와 관외투표로 나뉘어 진다. 관내투표는 투표함에 투입된 그대로 본 투표일까지 보관한다. 그걸 열어보기는 힘들다. 그걸 연다는 것은 곧바로 투표함 바꿔치기에 맞먹는 부정선거다. 단지 데이터를 알기 위해 그걸 미리 열어본다고? 그런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관외투표라면 관리가 더 엄격하다. 선관위는 투표지를 우송용 봉투에 담아 우체국의 특별 우편 경로를 통해 해당 지역으로 우송한다. 이 내용을 뜯어보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사전투표에 참가한 유권자들이 어떤 후보를 선택했는가 하는 데이터는 선관위조차 미리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선관위도 모르는 데이터를 유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4. 사전투표지의 보관 문제

의심하자면 끝도 없다. 선관위 관할 장소에 보관되고 있는 투표함에 누군가 악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관내투표는 해당 지역 선관위 관할 장소에 보관하고, 관외투표지는 우체국을 통해 우송한다. 어떤 경우거나 우려되는 것은 가짜투표지를 만들어 추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당의 후보자에게 기표한 투표용지를 더 만들어서 슬쩍 넣는 것. 이런 행위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부정투표의 주 종목 중의 하나인 것이다.

투표용지 추가, 들키지 않고 조작하는 게 가능할까?

그러나 만약 그렇게 투표용지를 추가해 넣을 계획을 세웠다면 해야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일단 투표함 마다 붙어 있는 투표수 정보를 수정해야 한다. 모든 투표함에는 이 투표함이 어디 투표소에서 투표한 용지들을 담고 있는 것이며, 그 투표소에서 몇 명이나 투표했으며, 언제 봉인되었다는 정보가 있다. 그 정보는 선관위가 가진 서류에도 기록되어 있으니 그것도 수정해야 한다.

거기다가 중앙 서버에 담겨 있는 통합선거인 명부에도 어떤 사람이 사전투표를 했는지가 기록되어 있고 그 집계도 있으니, 그것도 수정해야 한다. 그것도 대충 하면 안 된다. 딱딱 맞아 떨어져야 한다. 안 그러면 개표과정에서 발각된다.

그렇게 수정하는 방법은 아직 투표하지 않은 사람을 투표했다고 추가 기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가 그 사람이 본 투표 당일 날 투표소에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도 않은 투표를 했다고 하는 상황을 당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나타나면 착오일 뿐이다.

그런 경우 동명이인이거나, 투표사무원의 착오로 발생한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전 유권자의 몇 %에 달하는 유의미한 숫자가 발생하면 어떤 난리가 벌어질까? 선거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카드 트릭

투표용지를 바꿔 넣거나 투표함을 바꿔치기하는 건 카드 트릭의 수준이 아니다 (사진: fishbulb1022, CC BY NC SA)

투표함 바꿔치기? 현실적으로 불가능

이 과정을 깔끔하게 아무 문제 없이 처리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나에게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가능한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투표지 추가 투입이 아니라 아예 투표함 자체를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이 또한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선관위는 이를 막기 위해 투표함에다가 전자태그(RFID) 장치까지 부착한다.

사전투표지가 들어있는 투표함 보관의 문제는 단순히 보안 문제가 아니다. CCTV가 있건 말건 경관이 지키건 말건, 그 자체에 접근해서 뭔가 조작을 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복잡하다는 것이다. 이런 조작을 투표 결과를 좌우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벌인다는 것은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소모되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규모의 일을 비밀을 지켜가며 벌이기는 쉽지 않다.

5. 분류기 문제

아직도 이 분류기를 가지고 전자개표기냐 단순 분류기냐 하는 논쟁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다. 이 논쟁의 기원은 공직선거법상 “전산조직을 이용한 투표”라는 조항에 이 분류기가 포함되느냐 안 느되냐 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엉뚱하게 분류기에 PC가 달려 있냐 안 달려 있냐는 논쟁으로 가버린 것이다.

과거 공선법에 이 전산조직 이용이 금지되어 있다는 문구가 있었고, 그 문구를 이유로 무수한 이의제기가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조항의 입법 취지는 터치스크린이나 버튼을 이용한 온라인 투표를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는 것,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계산을 위한 기계장치는 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개정 공선법 제178조 2항에 다음과 같은 조항을 신설해 더 이상 시비를 걸 수도 없게 됐다.

“구·시·군선거관리위원회는 개표사무를 보조하기 위하여 투표지를 유·무효별 또는 후보자(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및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선거에서는 정당을 말한다)별로 구분하거나 계산에 필요한 기계장치 또는 전산조직을 이용할 수 있다. <신설 2014.1.17.>”

논리적으로 투표지 분류기는 그냥 기계장치라고 봐야 한다. 기계를 제어하기 위한 PC가 장착되긴 했지만, 그 PC의 역할은 빠르게 흘러가는 투표용지를 스캔하고 이미지 인식을 통해 이 투표용지가 누구에게 투표한 용지인지를 1차 분류하고 카운트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렇게 스캔한 투표용지의 이미지까지 모두 저장한다.

실제 투표용지의 디지털 사본이 차후에 확인, 참고할 수 있도록 저장되는 것뿐이다. 이런 시스템은 일종의 임베디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오로지 특정한 목적에만 사용되는 장비이지, 그 PC에 뭔가 다른 프로그램을 깔아서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분류기는 네트워크와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PC에 네트워크가 연결되는가 하는 것은 실제로 문제가 된다. 네트워크가 연결되면 외부의 해킹이 가능해지고, 외부의 해킹이 가능해지면, 분류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걸 막기 위해 프로그램 설치 과정까지 정당 참관인들의 입회하에 진행하고 봉인까지 하지만, 네트워크의 힘은 그 모든 장치들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분류기를 제어하는 PC는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는다. 선관위는 랜 케이블을 꼽지 않을뿐더러 아예 PC에 장착된 랜카드를 CMOS 셋업 과정에서 무력화했다고 설명한다. KFC 김어준은 이렇게 말한다.

왜 특정 상표의 노트북을 주문하면서 네트워크 기기, 소위 말하는 랜카드가 아예 없는 기종을 선택하지 않고 달려 있는 것을 주문해서 무력화 하느냐?

충분히 가능한 질문이지만, 해당 업계에 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해답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제작되는 노트북 기종 중에 NIC, 네트워크 인터페이스 카드를 별도로 장착하게 되어 있는 기종은 없다.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다. 만약 선관위가 발주를 내면서, NIC가 없는 모델을 발주 냈다면 업체에서는 선관위만을 위해 NIC를 보드에서 제거한 새로운 전용 모델을 만들었어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단가는 큰 폭으로 상승한다.

기존에 있던 양산 모델이 아닌 전용 모델을 새로 설계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기능이 빠지는데 단가가 올라가느냐는 질문은 하지 말길 바란다. 양산 모델의 단가와 설계를 변경한 전용 모델의 단가 중에 어느 쪽이 높을 것인지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작아 선택의 폭이 좁다

만약 내가 이 장비를 설계하는 입장이라면 별도의 임베디드 시스템을 만들고, 그 위에 이미지 인식 가능한 라이브러리를 포함한 임베디드 리눅스를 올려 기계 속에 넣어서 설계를 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렇게 해 두면 겉에서 보기에는 별도 PC도 없는 걸로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제작하기에는 분류기 시장 자체가 좀 작다. 개표소가 252곳 밖에 안되고, 분류기는 개표소당 적으면 두세 개, 많아야 대여섯 개 쓰이니 천 개 전후의 시장이다. 그 시장을 보고 전용 장비를 설계해서 보드를 찍어 내는 건 상업적으로 수지가 안 맞는다.

결국, 기존 양산제품을 조합해서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분류기에 관한 의혹들은 IT 관련 기술적 지식, 하드웨어 관련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많이 제기된다. 관련한 문제를 쉽게 풀어주는 언론이 없기 때문이다. 선관위 역시 이런 기술적인 문제들을 국민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제대로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 의사소통의 수준 문제라고 볼 수 있겠다.

6. 분류기의 네트워크 연결 문제: 과연 위험한가? 

위험한 것이 맞다. 인터넷에라도 연결되면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조차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만약 분류기를 제어하는 PC를 네트워크에 연결해 외부에서 제어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분류 과정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원순 후보에게 기표한 투표용지를 정몽준 후보의 칸으로 분류해 넣는 것이다. 이러면 개표부정이 되나?

개표기 통과 후 검표원의 육안 검사가 필수다

부족하다. 그렇게 분류된 투표용지들은 다시 검표원들에게 전달되어 육안으로 검사를 하게 되어 있다. 손 개표를 주장하는 분들이 착각하는 것이 현재는 손 개표를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고 하게 되어 있고 실제로 하고 있다. 현장을 한 번만 가보면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분류기를 통해 나온 투표용지를 백 장 단위로 묶고, 그 과정에서 검표원들이 하나하나 들여다보게 되어 있다. 물론 밤새도록 진행하는 개표작업에서 잘 작동하는 분류기를 쓰고 있다면 매번 확인할 때마다 아무 이상이 없으니 좀 대충대충 검사할 수도 있다. 인간이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서로의 손목을 잡고 있는 모습

michael.heiss, BY NC SA

그러나 만약 분류기가 네트워크를 통해 외부에서 조작되고 있다면, 검표원에게 적발되게 된다. 잘못 분류된 투표용지가 자꾸 발견될수록 검표원은 긴장해서 더 열심히 검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잘못된 분류가 빈도수가 어느 정도 이상 올라가게 되면 검표원은 분류기 관리자에게 이상을 통보해야 한다. 아무리 교육을 불성실하게 받았어도 이렇게 계속 틀려 나가면 문제를 확인하기 마련이다.

거기다가 검표원들 말고 각 정당 소속 참관인들도 수시로 이 투표용지 묶음을 들여다본다. 혹시 자당의 후보 표가 다른 묶음에 들어가 있을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말이다.

검표원뿐 아니라 정당 소속 참관인들도 있다

한두 장은 어쩌면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천 장은 절대 안 넘어간다. 당락을 좌우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표를 엉터리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걸린다. 이렇게 걸리라고 이런 개표 업무 흐름을 설계한 것이다. 이런 오류가 계속 나오는데도 검표원들이 지폐 세듯 대충 훑어 보고 넘길 것 같은가?

그 검표원들 지지하는 정당도 다 제각각인 사람들이다. 통제하기 힘든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선관위 직원들도 아니다.

개표 부정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선가 걸리기 마련이고 이 모든 과정을 완벽히 통제하려면 매수해야 할 사람의 숫자는 가볍게 만 단위를 넘어간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관된 상황에서 비밀 유지는 불가능하다.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어서 실제로 해킹까지 되더라도 개표 과정의 안전성을 지킬 다른 안전판이 존재한다는 뜻이며, 그래서 개표 부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우리 사회의 투개표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

7. 기괴한 투표용지의 발견? 

이 질문은 김어준 총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SNS 공간에서 많이 제기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언급한다. 개표하고 보니, 투표함에서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사용했던 투표용지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세상에는 참 이상한 사람들도 많다. 선관위가 골치를 앓는 문제가 있다. 투표소에서 발급한 투표용지보다 투표함 속에 들어있는 투표용지가 적게는 한 장, 많게는 두세 장씩 모자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 투표용지는 어디로 갔을까?

모자라는 투표지의 비밀 

신분을 확인하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에 들어가 기표를 한 뒤 들고 나와서 투표함에 넣어야 하는데 넣는 척만 하고 슬쩍 가져간다는 것이다. 참관인이 있긴 하지만,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노라면 한눈도 팔고 잠깐 졸기도 하고 그러기 마련이니 적발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투표함 개함 후, 투표용지 발급 수와 비교해 보면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투표용지가 발급 수보다 많으면 심각한 문제다. 누군가가 가짜 투표용지를 더 넣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항상 적다. 누군가 투표용지를 그냥 가져가 버린 것이다. 기념품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투표지

투표지를 ‘기념품’으로 삼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사진: rebamex, CC BY SA)

남는 투표지의 비밀

거기다가, 그렇게 가져간 투표용지를 다음번 전혀 다른 선거에 가져와서 투표함에 넣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괴한 성격을 가진 사람의 기괴한 장난이지만, 5천만 명 인구에 유권자가 4천만 명이 넘다 보면 그런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몇백 명 있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이다.

이런 문제는 선관위가 막지 못한다고 비난하기도 참 애매한 문제이다. 실제로 전국 선거에 투입하는 인력은 40만 명이 넘는다. 그 인원이 모두 선관위 직원일까? 절대 아니다. 대부분 공무원, 교사, 은행원, 기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선발해서 몇 시간 교육해 투개표 업무에 투입하는 것이다. 전문성이 있을래야 있을 수도 없다.

그들은 전문성이 없을뿐더러, 온종일 진행되는 투표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누가 해도 무척이나 지겨운 일이다. 수천 명, 수만 명이 눈앞에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시라. 나 같으면 종일 트위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수천만 명이 하는 투표를 관리한다는 것, 그 일의 규모를 정량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들이다.

선관위, 일 잘하고 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하지 못한다. 특히 선관위 최고 결정기구인 위원회는 수시로 집권여당 측에 유리한 편파적인 유권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지역 선관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선거운동 기간에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부분이다.

투개표 과정은 어떨까? 선관위는 무척 열심히 관리하기는 한다. 그러나 절대 완벽하지 않다. 투표함 관리도 허술하고, 봉인도 제대로 안 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투표 사무원 교육 부족인 경우다.

기표대에 관한 이야기도 한 때 시끌벅적했었다. 하지만 그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정작 투표에서 기표대를 문제 삼는 일은 거의 없다.

개방형 기표대

전 세계의 개방형 기표대 모습

무엇보다도 선관위가 가장 잘못하고 있는 일은, 홍보다. 홍보가 부족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유권자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 지문 인식 문제 같은 것도 사전 홍보만 제대로 되어 있었다면 불필요한 의혹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독재정권 시대를 거치면서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시절이 있어서 그런지, 아직도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거 결국은 선관위 책임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이라고 꼭 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감정적으로 의심하고, 합리성이 부족한 음모론에 솔깃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면 서로 손해다. 믿어줄 것은 믿어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관위가 그 믿음을 배신한 것이 확실한 때에는 가혹할 정도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다.

합리적 의심과 편견에 치우친 오해는 구별해야

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 단 하나뿐이다. 불합리한 편견과 이에 따른 오해는 피차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뿐이다. 그 낭비는 개인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 손실로 연결된다.

대신 제대로 된 근거를 갖춘, 진짜 해명이 필요하고 조사가 필요한 의혹을 발견한다면, 그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동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지난 대선 직후 벌어졌던 손 개표 논란은 전형적으로 헛된 음모론이었고 엄청난 동력의 낭비를 초래했었다. 그러지 말자는 것뿐이다.

진짜 근거를 찾아, 진짜 의혹을 제기할 일이다. 그렇다면 나도 앞장서서 선관위에 해명을 요구할 생각이다.

개와 고양이

합리적인 의심은 권장해야 한다. 하지만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은 사회적 비용을 만들어 낸다. (사진: daan f, CC BY NC)

끝으로 이번 제6차 6.4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무사히 치러진 것, 정말로 다행한 일이다. 최초 전국 규모의 사전투표제도 별다른 말썽 없이 무사히 끝난 것도 다행이다. 그럼에도 개표부정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적인 신뢰가 얼마나 쌓기 힘든 것인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교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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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초대필자, 딴지일보 정치부장

월간 더딴지. 딴지 라디오 "그것은 알기싫다", "딴지 이너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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