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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서 온 편지: 자식을 잃고 아비들이 울다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놓쳤던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상헌 박사‘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세월호의 아이들. 그 깊은 슬픔은 끝날 수도 없고, 끝나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이 눈물로 빛나는 보석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끝 같데 없는 슬픔으로 빛나는 보석을 만든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편집자)

세상의 아버지들이 자식들을 잃고 울고 있다. 이를 악물어도 혀를 깨물어도 명치 밑에서 올라오는 거대한 것들을 막을 도리가 없다.

정약용, 기생과 노닐던 그때 셋째 아들을 잃다

다산 정약용은 그가 유달리 예뻐했던 셋째 아들을 몹쓸 병으로 잃었다. 그의 나이 불과 세 살이었다. 다산이 잠시 진주로 볼 일이 있어 다녀오니, 이미 아들은 정신을 잃고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고통과 몇 날을 씨름을 하다가 아들은 따뜻한 봄날에 세상을 떠났다.

아비로서 회한이 왜 없었을까. 게다가 아들이 고통스러워 하며 생사를 넘나들고 있을 때를 생각해 보니 그는 “촉석루 아래 남강에서 악기를 늘어놓고 기생을 끼고 춤추고 노래하며 물결을 따라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뜻이 황폐했으니 재앙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어찌 징벌을 면하겠느냐”고 오랫동안 자책했다.

아들의 목숨을 빼앗아 간 병이 천연두라고 믿은 까닭에, 다산은 천연두 퇴치법 연구라는 징벌을 스스로 내렸다. [마과회통](麻科會通)이 나온 연유이고, 다산이 자식을 기리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아들을 평생 가슴에 묻어 두었다. (정약용 산문선, [뜬 세상의 아름다움], 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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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마과회통]

만델라, 감옥에 갇힌 채 장남을 잃다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장남을 잃었다. 로벤 섬에 갇혀 고단한 교도소 생활을 할 때였다. 삼중 추돌 교통사고로 장남이 죽었다(1969년 7월 13일). 소식이 교도관을 통해 전달되자 만델라는 더 좁아진 듯한 방에 자신을 유폐했다. 식음을 전폐하고 긴 침묵에 잠겨 울음을 삼켰다.

그래도 몸을 일으켜 세우고, 아들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해달라고 교도소에 요구했다. 하지만 그의 간절한 바람은 시절의 엄혹함을 넘지 못했다. 교도소 당국의 불허 결정이 떨어졌다.

만델라는 다시 오랜 회한에 빠졌다. 숨 가쁘게 활동했던 시절에 잠시 집에 들를 때 그의 아들은 아빠의 재킷을 무릎까지 내려 입고 자랑스러워 했다. 아비의 부재를 채우려는 아들의 경건한 의식이었다. 지하 활동에 본격적으로 들어갔을 때, 은신처를 어렵게 찾은 아들과 짧은 만남 끝에 이별할 때면 아들은 그랬다.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가족은 내가 돌볼게요.”

넬슨 만델라와 그의 아들(Thembekile Mandela ) (사진: http://www.nelsonmandela.org/news/entry/honouring-thembekile-mandela )

넬슨 만델라와 그의 아들(Thembekile Mandela) (사진: nelsonmandela.org)

그런 아들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어 보지 못하고 고운 흙 한 줌조차 무덤 위에 뿌려주지 못한 채, 그는 갇혀서 그리워할 뿐이었다. 그가 마침내 아들의 무덤을 마주하는 데는 그 이후로 20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1990년 2월 11일 석방).

훗날, 그의 장남에 관해 물으면, 만델라는 저 멀리 허공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긴 침묵 끝에 그리움 가득한 눈빛으로 한마디 하곤 했다.

“그놈, 참 책임감 강한 놈이었지”.

아비의 그리움은 아프리카의 끝없는 지평선이었다. 그는 작년에 아들 곁에 묻혀 45여 년 만에 아들 옆으로 돌아갔다.

에릭 클랩턴, 아들을 노래에 묻다

기타 한 줄로 사랑을 노래해 온 에릭 클랩턴도 아들을 잃었다. 행복한 결혼에서 잠시 이태리 여인에서 눈을 돌리면서 그의 삶이 흔들렸다. 아내와 결국 이혼하게 되었다. 그때 엄마와 같이 있던 아들은 뉴욕의 53층 아파트에서 추락하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의 나날이었다.

인생의 암흑기라고 회고하는 기나긴 사투가 시작되었다. 마지막 순간을 보지 못한 까닭에 클랩턴은 아들을 눈에 꼭꼭 담아두려 했다. 언젠가는 만나리라, 만나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그때를 상상하며 노래를 만든다. 오로지 자신을 위한 노래인지라, 클랩턴은 그 노래를 자신에게 끊임없이 들려준다.

그 노래의 숨소리까지 모두 온전한 나의 일부가 될 때까지, 아들과 한몸이 될 때까지 부르고 부른다. 그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시절이었다.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고, 그가 세상에 이 노래를 내어 놓은 때가 1992년이다. 아들을 잃은 지 1년 만이었다. 그는 아들을 노래에 묻고, 그리하여 아들과 같이 살고 있다.

이 노래가 바로 우리가 익히 아는 “천국에서 흘리는 눈물”(Tears in Heaven)이다.

빌 코스비, 세상 전부를 잃고 인종주의 ‘장사’에 맞서다 

빌 코스비(Bill Cosby)는 미국의 ‘국민 아빠’다. 그가 아빠로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가 ‘아빠’가 아니기 때문이다. 목소리 높이며 권위를 세우는 아빠가 아니라, 좀 모자라는 아빠다. 똑똑하고 딱 부러지는 자식들에게 늘 밀리는 아빠, 그래서 자식들의 사랑과 존경을 얻는 지혜로운 아빠다. 텔레비전에서도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다.

15년 전 추운 겨울날 밤, 늘 희희낙이던 코스비가 세상 전부였던 아들을 잃었다(1997년 1월 16일). 자동차 바퀴에 공기가 없어서 고치려고 하던 중에, 우크라이나 태생의 18세 남짓한 아이가 아들의 머리에 총을 쏘아 버렸다. 이 철딱서니 없는 젊은 아이에게 왜 그랬는지 물었다. 참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껌둥이를 쏘았단 말이야 … 원래 마약 거래상을 털려고 했는데, 명백하게 다른 걸 발견한 거지.”

아들의 죽음에 인종주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코스비는 눈물을 잠시 거두었다. 그때부터 아들을 위한 싸움에 돌입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싸움은 아들을 죽인 젊은 가해자를 위한 것이었다. 먼저, “내 아들을 죽인 것은 총이지 인종주의가 아니다”고 선언했다. 코스비의 단호함에 언론에서도 더 이상 인종주의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이 젊은이에게 사형을 구형하지 말라고 검사에게 요청했다. 결국, 무기징역형으로 재판은 끝나고 이 일은 서서히 잊혀졌다. ‘국민’ 아빠는 그제야 한 아이의 평범한 아비로 돌아와 아들의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서러운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코스비는 바로 그 우크라이나 젊은이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무기징역형을 받아들이고 항소를 하지 않겠다는 이례적인 결정을 전했다. 편지는 이렇게 끝났다.

“나는 유죄입니다. 그리고 이젠 올바른 일을 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피해자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게 기독교인의 도리이자, 내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사악한 일에 대해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이기도 합니다.”

코스비는 그 편지를 받고서야, 이제 아들과 작별할 시간임을 직감했다. 주름이 조금 늘긴 했지만, 그가 환하게 웃는다. 그 웃음에 아들을 묻어 두었다.

빌 코스비와 그의 아들(Ennis Cosby) via 위키백과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en/9/91/Ennis_Cosby.jpg

빌 코스비와 그의 아들(Ennis Cosby) via 위키백과

2014년 대한민국, 세상에서 가장 아픈 아비들

2014년 오늘, 세상에서 가장 아픈 아비들은 한국 남쪽 바닷가에 있다. 차갑게 저녁이 찾아오는 팽목항. 어둠이 가장 빨리 찾아오는 언저리에서 한 사내가 제 자식의 이름을 외쳐 부른다. 밤새 거칠게 타버린 목에서 터져 나온 이름은 바닷물에 닿기도 전에 흩어져 버린다. 그럴수록 아비는 다급해진다. 저 이름이 흩어지기 전에 또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흩어질 이름 위로 이름이 쌓여서 저 바다 어딘가에 있을 자식에게 닿으리라, 그러면 넌 외롭지 않으리라. 하지만 필사적인 외침은 가망 없이 또 흩어진다. 빗방울 하나 떨어지며 사내의 어깨를 토닥인다. 그때마다 사내의 어깨는 흔들리고, 그새 거세진 빗줄기에 사내는 무너진다.

수백 년 동안 울지 못한 짐승처럼 흐느낀다. 사내의 목소리를 전하지 못하는 바다는 사내를 차마 바라보질 못하며, 부질없은 거품파도만 밀어 보낸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아비는 머리를 흔든다. 아니란다. 아니란다. 내 잘못이야.

“아빠는 네게 해 준 게 없구나.
그저 바다만 쳐다보았을 뿐.
미안하다, 아가”

아비들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다. 바다만 쳐다보고 있다. 그들이 언제가 바다와 이별하고 돌아서서 세상의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들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기억하려 할 것이다. 그때 그들의 지친 어깨 옆에 우리가 있어야겠다. 손을 잡아 주어야겠다.

세월호의 아이들은, 자식을 둔 세상 모든 아비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아비들이 울고 세상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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