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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중앙일보의 뉴욕타임스 독점 보도에 관한 비판 ‘의견’을 슬로우뉴스 독자와 공유합니다. 외신을 즐겨 보는 ‘신문 애호가’의 시선으로 쓴 칼럼이라는 점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box]

만약 단 하나의 신문을 봐야한다면 나는 뉴욕타임스를 볼 것이다. 전반적인 기사의 질도 최고 수준이지만 디지털에 걸맞은 다양한 인터랙티브 기사들까지 생각하면 뉴욕타임스를 따라갈만한 언론사는 없다. 그래서 중앙일보의 뉴욕타임스 번역 전재 소식을 들었을 땐 꽤 기뻤다.

뉴욕타임스 한국 내 독점 보도를 알리는 중앙일보
뉴욕타임스 한국 내 독점 보도를 알리는 중앙일보

중앙일보는 18일부터 미국의 세계적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의 기사와 칼럼을 국내 독점 보도한다. NYT는 최근 중앙일보와 뉴스서비스 및 칼럼 전재계약을 체결해 국제·외교·경제 분석기사는 물론 의학·출판·패션·공연·리빙 등 NYT의 모든 기사를 중앙일보에 제공하기로 했다.

출처: 중앙일보 – 중앙일보에서 NYT 보세요 … 내일부터 기사·칼럼 독점 보도

그리고 2014년 2월 18일, 뉴욕타임스의 칼럼 하나가 번역 전재됐다.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의 칼럼이었다. 뉴욕타임스의 모든 기사를 옮기진 않더라도 큼직큼직한 인기 기사 정도는 번역해줄거라고 생각했는데, 달랑 한 개였다. 첫날이라는걸 감안하더라도 실망스러운 숫자다.

중앙일보에서 번역 보도한 첫 뉴욕타임스 칼럼

보름 늦게 도착한 ‘글맛 사라진’ 의역

게다가 번역된 데이비드 브룩스의 칼럼 “What Machines Can’t Do”는 2월 3일 뉴욕타임스에 올라온 글이다. 이 글은 뉴스페퍼민트에서 2월 4일 요약 번역됐고, 중앙일보에 올라온 것은 2월 18일이니 보름 정도 늦게 번역된 것이다.(주1) 내용상 크게 시기가 중요하지 않은 칼럼이긴 하지만 보름은 너무 늦다.

중앙일보의 뉴욕타임스 번역은 의역이다. 원문과 문장 하나하나를 대조해서 읽어보면 의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문장만 살펴보면 원문은 다음과 같다.

We’re clearly heading into an age of brilliant technology.

이걸 중앙일보에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눈부신 기술의 시대가 도래했다.

틀린 번역도 아니고, 한국어로 옮길 때는 중앙일보처럼 간략한 문장으로 옮기는 게 더 적절할 수도 있지만, 글 전체에 걸쳐서 지속해서 딱딱한 말투로 번역하다 보니 마치 설명문을 읽는 것 같아 글이 재미가 없어졌다. 박소령 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번역을 거치면서 ‘글맛이 사라졌다’.

20여 개의 칼럼 중 오직 일주일에 하나만? 

또 하나의 유감스러운 소식은 트위터를 통해 접했다.(주2) 강조는 내가 했다. (via @simmany)

NYT의 정규 칼럼 필진은 현재 12명이다. 대체로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 관점이 강한 NYT지만 보수적이고 친공화당 성향의 로스 도섯도 필진으로 참여해 균형을 잡고 있다. 이들 정규 필진의 칼럼 중 한 편이 매주 화요일 본지 오피니언면에 실린다. 18일 데이비드 브룩스의 글이 첫 테이프를 끊는다. 향후 객원 칼럼니스트의 글도 함께 실을 예정이다.

출처: 중앙일보 – 크루그먼·졸리 … 중앙일보서 만나는 NYT 칼럼

뉴욕타임스에서는 정규 칼럼의 필진이 12명이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글 쓰는 칼럼니스트들이 있어서 일주일에 총 21편의 칼럼이 나온다. 여기에 객원 칼럼니스트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수의 칼럼이 나온다. 기사가 칼럼에 대한 얘기만 하고 있기에 칼럼이 아닌 글들의 번역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안희창 중앙일보 옴부즈맨의 메일 답신에 따르면 중앙일보의 뉴욕타임스 번역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via Paranal)

NYT 게재와 관련해, 칼럼은 일주일에 1회 게재합니다. 여러 칼럼 중에 시의에 맞는 것을 선택합니다. 기사는 주로 중앙일보의 위켄드(weekend) 섹션, 건강한 가족 섹션과 중앙 Sunday 등에 수시로 게재할 예정입니다. 관심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점 번역? 생색내기 수준

독점 번역 전재라는 게 이 정도라면 그냥 생색내기 수준 이상이 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IT 전문가는 중앙일보 입장에서는 뉴욕타임스의 이름아래 중앙일보가 가려지는걸 원치 않을테니, 적극적으로 뉴욕타임스 기사를 번역 전재하기보다는 뉴욕타임스의 브랜드만 이용하고자 하는 것일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고 중앙일보 입장에서는 실리를 취하는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독자 입장에서 아쉬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독자가 보고 싶은 건 뉴욕타임스의 브랜드가 아니라 뉴욕타임스의 글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앙일보의 독점 전재 소식은 뉴스페퍼민트 같은 미디어들에게 번역과 관련된 저작권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에 더욱 아쉽다.

현실과 법의 경계 ‘저작권’… 자율적 번역 위축 우려

기존에 뉴욕타임스의 한국 채널이 없을 땐,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한글로 번역해서 인터넷에서 공유하는 게 불법이긴 하지만, 현실과 법적 판단 사이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중앙일보가 뉴욕타임스의 한국 채널이 됐기에, 이제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번역하는 건 뉴욕타임스와 중앙일보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실제 이익 침해로 딴지를 걸 수 있는 중복 번역이 뉴욕타임스 번역 서비스 첫날부터 발생했다.(주3)

월스트리트저널 한국의 경우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를 번역해서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고, 모든 기사는 아닐지라도 충분히 많은 흥미로운 기사들을 번역해주기에 월스트리트저널 한국 때문에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번역이 껄끄러워진다하더라도 아쉬운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 한국에서 그 이상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주4)

하지만 중앙일보는 반대다. 기존에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번역을 확고한 법적 영역으로 가져갈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고, 번역의 수는 감소시키고, 질도 좋아졌다고 하긴 힘들다. 결국, 현재로선 뉴욕타임스가 국내에 진출했다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인 것이다. 그렇다면 남겨진 질문은 이렇다:

중앙일보는 독자에 대한 접근법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닐까?


주석

  1. 서비스 시작일을 맞추다가 늦어진건지는 모르겠지만, 2월 3일에서 2월 18일 사이에 번역 소개할만한 다른 좋은 칼럼들이 있었다는걸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다. (원문으로)
  2. 중앙일보에서 뉴욕타임스 번역 전재 소식을 전하는 기사가 두 개인데, 그다지 길지도 않은 기사를 왜 2개로 나눠놨는지 모르겠다. (원문으로)
  3. 조금 별개의 얘기지만, 실제 글이 번역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뉴스페퍼민트에서는 공식 채널이 생긴 이상 뉴욕타임스 번역을 하지 않는게 옳다고 본다. 뉴스페퍼민트에서 외신 소개와 번역을 해주시는 분들에게는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뉴욕타임스 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저널도 월스트리트저널 한국에서 번역을 하는 이상 뉴스페퍼민트에 번역 소개되는 건 문제의 소지가 있다. (원문으로)
  4.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직접 운영하는 월스트리트저널 한국과 전재 계약을 맺은 중앙일보를 단순 비교하는 게 불공평한 점은 있다. (원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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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읽고 의문 사항 몇가지 적습니다. 저작권과 번역권 관련해서 뉴욕타임스 기사를 번역 전재할 경우 국내에 중앙일보가 계약이 안되었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건가요?
    마치 국내 배급사가 없다면 해외영화를 자발적으로 번역해서 인터넷에 유통시켜도 문제가 안된다는 말씀같아서요.
    그리고 동아일보가 이미 오랜 기간 뉴욕타임스와 계약을 맺고 칼럼을 전재해 왔고 중앙일보랑 계약을 새로이 맺은거 같던데, 그렇다면 이미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건 아닌지요?
    그리고 외신 신디케이션을 할 경우 지면계획에 따라 하루 몇개 미만, 섹션당 얼마나 쓸지 다 돈인지라 세세하게 계약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 오히려 전 뉴욕타임스가 중국판을 내놓은 것처럼 할 돈도 없으니 국내 신문을 이용해서 일단 장사를 시작하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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