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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일상,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이야기들이 지금도 우리의 시공간 속을 흘러갑니다. 그 순간들을 붙잡아 짧게 기록합니다. ‘어머니의 언어’로 함께 쓰는 특별한 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box]

커피

오랜만에 토요일 오전 제대로 아침을 먹었다. 집에서 종종 커피를 마시는 나에게 어머니가 물으신다.

“커피 마실래?”

“네네, 주세요. 어머니는 요?”

“나 아까 마셨잖아.”

“오늘 토요일인데요? 안 드셨을 걸요?”

“아차, 오늘 토요일이구나. 깜빡했네. 그럼 마셔야겠다.”

“네네.”

때로 기억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같이한다는 것은 서로 잊고 있던 것들을 일깨워준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같이하는, 또 같이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토요일 오전.

dyobmit, CC BY
dyobmit,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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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부스럭부스럭. 어머니가 뭔가를 찾으신다.

“여기 있네.”

“뭐 찾으셨어요?”

“응 손톱깎이. 손톱 깎으려고.”

(따각 따각)

“어휴 시원하다. 별것도 아닌데 되게 시원하네.”

(ㅎㅎ) “그쵸?”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다. 손톱 길게 기르면서도 잘 사는 여자들 많잖아. 근데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짧게 자르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지 엄청 답답해.”

“저도 그렇게 자랐잖아요.” (ㅎㅎ)

(ㅎㅎ) “너도 그 기분 알지?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못하고 있다가 딱 하면 기분 좋아지는 거.”

“잘 알죠. 인간관계도 그런 게 있잖아요.”

“응응. 미안한 거 있으면 담아두지 말고 바로바로 이야기를 해야 돼. 꿍하게 담아두면 계속 답답하다.”

“그렇죠. 괜히 담아두면 자기만 더 힘들어지죠.”

“먼저 숙이고 들어가는 법도 알아야 돼. 진리를 거스르거나 양심을 팔아먹는 거 아니면 바로.”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간 어머니. 나는 ‘진리를 거스르거나 양심을 팔아먹는 거 아니면 바로’라는 말을 되뇐다. 수도꼭지 잠그는 소리.

“야야, 화장실이 천국이다. 어제 하루 백열등 나가서 완전히 캄캄하더니 이렇게 좋네. 진짜로.”

환한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미루지 않고 등을 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다툼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어두워지는 건 마음속 작은 전등 하나가 나갔기 때문에, 그 작고 미세한 필라멘트 하나가 툭 끊겼기 때문이겠지. 서로와 함께 했던 역사는 빛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동력은 그대로인 거잖아. 어쩌면 먼저 사과하고 양보하는 건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등 하나 다는 일 아닐까? 그러면 모든 게 천국처럼 밝아지는 거.

“미안해요, 엄마.”

“성우야, 내가 너한테 너무 가혹했다. 미안하다. 더 잘할게.”

kodomut, CC BY
kodomut,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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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묘비

 

얼마 전, 어느 분의 장례식에서 돌아오신 어머니. 불쑥,

“성우야, 엄마 죽으면 이렇게 묘비에 써주렴.

‘큰아들은 나를 기쁘게 했고,
둘째 아들은 나를 든든하게 했고,
막내아들은 나를 즐겁게 했다.’

그리고 지금 묻혀있는 네 아버지와 같이 화장해서 강물에 훨훨 뿌려줘.
예전에는 꼭 장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게 더 나을 거 같네.”

어머니는 정말 끝까지 ‘나는 다른 이들에게 이러이러한 사람이었다’가 아니라, ‘누구누구는 나에게 이런 존재였다’로 남고 싶으신 걸까.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달리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더 마음이 아리다.

RHL Images, CC BY SA
RHL Images, CC BY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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