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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추석에 쓴 “추석 연휴가 잉여로운 이들에게, 정주행! 추천 웹툰 4선”은 여러모로 화제가 (아마도) 되었다. 이 중 내 의도대로 “덴마”를 선택한 이들은 그 늪에 빠져 추석이 지나서까지 새로운 형태의 명절 증후군을 맛보았다고 한다. 카더라.

이제 설날이다. 나처럼 양력 설을 쇠는 사람들 때문에 다소 에너지가 분산되긴 했어도, 설날은 한민족에게는 추석과 함께 명절계의 양대 산맥임은 분명하다. 지난 글에도 썼듯이 모두가 똑같지는 않은 연휴, 잉여로움이 있다면 웹툰 정주행을 시작해 보자. 소개하는 열 개의 웹툰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취향이며, 가능하면 최근작이고 에피소드 형식이 아닌 작품을 대상으로 했다.

레드썬! 설 연휴야 가라!

설 연휴를 한 방에 보낼 작품이 가져야 할 요소는 무엇일까. 일단 작품이 길어야 한다. 그리고 정주행을 시작하면 다음 편을 계속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몰입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직 완결되지 않은 작품의 노예가 된다.

신의 탑(SIU, 네이버)

“신의 탑”은 2010년 6월 30일 연재 시작 이래 지금까지 170여 회 이어진 장기 연재작이다. 이야기의 기본은 등장인물들이 탑을 한 층 한 층 올라가며 적을 물리치고 성장해나간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상투적으로 보이지만, 정교한 세계관과 캐릭터들의 명확한 개성을 바탕으로 장르적 재미를 극대화하는 뚜렷한 매력을 갖춘 수작이다. 현재까지 630여 회 연재된 “덴마”에 비해 연재 횟수는 적지만, 그 분량의 크고 아름다움 때문에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설 연휴를 금방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주인공은 역시 꽃미남
주인공은 역시 꽃미남

치즈인더트랩(순끼, 네이버)

그림체만 보고 달콤한 순정만화를 생각해선 안 된다. “치즈인더트랩”은 언뜻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스릴러에 가깝다. 주인공의 대학 생활과 인간관계를 통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상에서의 양면성’을 능란하게 다루는 이 작품은 160여 회가 지난 지금까지도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함이 있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연애를 시작해도, 둘이 달콤한 분위기를 풍겨도, 댓글난이 오히려 독자들의 불안한 마음으로 채워지는 것을 보라. 독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요물같은 작품이다.

정주행 팁: 과도한 감정이입은 고혈압 등 각종 질병의 원인! 그래도 보시겠습니까? 네이버 댓글의 여성 캐릭터 욕 지분을 양분하는 라헬(“신의 탑”)과 손민수(“치즈인더트랩”)에 대한 분노를 삭일 수가 없다면 잠시 정주행을 멈추고 하늘을 볼 것.

역시나 꽃미남 꽃미녀 주인공
역시나 꽃미남 꽃미녀 주인공

기다림이 싫다면 완결작을

결말을 빨리 알고 싶다는 이유로 미완결 작품을 안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줄거리와 결말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다. 작품을 천천히 깊이 있게 즐기고 디테일을 발견해가는 것이 실시간으로 연재를 따라가는 즐거움이다. 이에 관해서 길게 말하면 또 다른 글 하나가 나올 것이므로 일단은 생략하고, 그래도 명절이니까 완결된 두 작품을 소개해 본다.

키드갱(신영우, 네이버)

그 “키드갱”(시즌 1, 시즌 2)이 드디어 완결되었다. 아주 우여곡절이 많은 작품이다. 처음에는 1996년 잡지 “빅보물섬”에서 연재를 시작했다가, 잡지 “센”, 온라인 사이트 “코믹스투데이”로 옮겨 다니며 연재했었고, 11권에서 22권까지는 단행본으로만 나왔었다. 22권이 2011년에 나왔으니 여기까지 15년이 걸린 셈이다.

그러다 2012년 2월 네이버에서 1~22권 분량을 페이지형 웹툰으로 올렸고, 그 해 5월 14일부터 시즌2라는 이름으로 이후 분량이 연재되기 시작해 2013년 1월 12일 마침내 대망의 완결을 이루었다. 지금 봐도 넘치는 센스와 화려한 액션을 갖춘 한국 만화의 전설, 17년의 대장정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정주행할 가치가 충분하다.

17년만에 드디어 완결!
17년만에 드디어 완결!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이현민, 네이버)

한마디로 웃기는 물건이다.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은 질풍기획 시리즈의 시즌 1로, 현재 시즌 2인 “아직도 못 들어 보았나! 질풍기획”도 연재를 시작했다. 직장인 일상 만화를 표방하는 개사기 웹툰으로, 소위 ‘열혈물’의 공식을 능수능란하게 발현하는 작가의 감각이 아주 돋보이는 작품이다. 정신없이 웃을 수 있는 유쾌한 작품.

정주행 팁: 그냥 스쳐 갔던 인물들이 뒷부분 어디서 다시 나타날 수 있다. 

과거, 그리고 현재를 보다

곱게 자란 자식(이무기, 다음) / 동재네 식구들(김민재, 다음) / 동네변호사 조들호(해츨링, 네이버)

어쩌다 보니 네이버 웹툰만 소개하게 되었는데 이번엔 다음 웹툰도 있다. 지금 소개하는 세 작품은 우리 시대의 과거와 현재를 잘 담고 있다. 그 중 “곱게 자란 자식”은 공출과 징용에 시달리는 일제강점기 한 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잘 다듬어진 그림체와 연출로 식민지 시대의 비극을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현재를 다룬 작품 중에는 “동재네 식구들”“동네변호사 조들호”가 있다. “동재네 식구들”은 동재의 공장을 주된 배경으로 중소기업, 이주 노동자, 동남아 국제결혼 중개 등 다양한 문제를 담고 있고,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보기 드문 법률 만화로 청소년보호법, 미성년 임신, 공익신고자 등의 사회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

혹시 이 작품들이 너무 무겁고 어둡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세 작품의 공통된 미덕은 소소한 웃음을 잘 녹여내고 있어 때론 크게 웃고 때론 미소 짓게 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정주행 팁: 때론 울게 하기도 한다. 손수건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의 준비 약간. 

갑작스레 세 오라버니를 비롯한 부락의 젊은 남정네들이, 징용이라는 이름 하에 전쟁터로 끌려갔다.("곱게 자란 자식" 중에서)
갑작스레 세 오라버니를 비롯한 부락의 젊은 남정네들이, 징용이라는 이름 하에 전쟁터로 끌려갔다.(“곱게 자란 자식” 중에서)

소녀 그리고 여인

냄새를 보는 소녀(만취, 올레) / 한복이 너무해(만두/차랴, 네이트) / 카산드라(이하진, 다음)

“냄새를 보는 소녀”는 제목 그대로 냄새를 시각화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소녀가 범죄 수사에 참여하는 내용이고, “한복이 너무해”는 민속촌과 대검찰청 트위터 계정을 모티브로 청학동에서 갓 나온 듯한 소녀 속촌이 도시로 와 정대검 검사와 살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카산드라”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이 있든 없든 빠져들 만큼 흥미롭다.

이 세 작품은 그림체만 보면 모두 여성 취향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독특한 소재와 스토리 진행으로 남녀 모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서로 다른 매력이 있는 작품이므로 1회를 보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를 수도 있겠다.

정주행 팁:  여자만 주인공인 것처럼 소개했지만, 각각의 매력이 있는 남자 주인공들에게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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