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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4일 오후 2시 이맹희, 이건희 형제의 상속분쟁 항소심의 마지막 공판이 있었다.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82세) 측은 이 공판에서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한 삼성생명 차명주식에 관한 주식인도와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취하했다. 또한, 소송 청구금액도 1심 때의 4조849억 원에서 대폭 축소한 9,400억 원으로 줄였다.

이날 이맹희 씨는 재판에 직접 참석하지 못했다. 법정대리인은 이맹희 씨가 작성한 편지를 재판장에 제출했다. 이 편지가 공개되자마자 여러 언론사는 이 편지의 전문을 온라인 기사로 실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많은 언론사가 곧바로 기사를 삭제했다. 혹시 삼성 측의 요청이었을까? 미디어오늘 기사에 따르면 삼성은 언론사에 삭제, 수정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했고, 언론사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은 남는다. 이건희, 이맹희 형제의 상속분쟁 소송은 그 결과에 따라 삼성의 지배구조를 바꿔놓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많은 언론사가 그동안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일거수일투족 관찰하고 기사를 써왔던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은 지면 제한도 없고 편지의 내용을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이 편지에 대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힘들까?

우선 이맹희 씨의 편지 전문이 실린 언론사를 살펴보자. 참고로 대형 언론사는 단 하나도 없다.

법정 서신이 보도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각 언론사 데스크의 판단에 달린 일이다. 따라서 당연히 각 데스크의 판단에 따라 보도를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이번에는 편지 전문 혹은 해석 기사가 실렸던 흔적은 있지만 삭제되거나 기사 내용이 수정된 언론사를 확인해 보자. 위에서 보지 못했던 대형 언론사들이 섞여 있다.

이상한 일이다. 검색 엔진에는 분명히 기사가 있었던 걸로 잡히고 심지어 뉴스1 같은 경우는 기자수첩 기사를 썼던 것으로 나와 있는데 해당 언론사와 포털에 들어가 보면 감쪽같이 사라져 있다. 그리고 제목에는 분명히 전문이라고 되어 있는데 막상 실제 기사 링크로 들어가 보면 내용은 요약으로 변경되어 있다.

2012년에도 유사한 일이…

2012년에도 이와 매우 유사한 일이 있었다. 같은 사건에 대해 당시에도 여러 언론사가 이건희 회장 쪽에 부정적인 제목이 달린 기사들이 수정되거나 아예 삭제됐었다. 대표적으로 ‘이건희, 도둑놈 심보’ 같은 표현이 있는 기사들이 수정 혹은 삭제된 것이다. 삼성은 당시 일부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선처를 부탁했다는 걸 인정했다. 저 표현은 언론사들이 만들어 낸 표현도 아니고 재판 중에 이맹희 전 회장 쪽 변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번 법정 서신은 이맹희 씨가 이건희 씨보다 형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인 이건희 씨에게 공개적인 망신도 당했고 아들도 감옥에 갈 위기에 처했지만, 형이 먼저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화해를 해서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건희 씨는 형을 공개적으로 망신주고 형에게 먼저 사과하지도 않는 동생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번에 이맹희 씨의 법정 서신 전문을 담은 기사들은 왜 지워졌을까? 왜 제목에는 전문을 실었다고 표시되어 있는데 본문에는 요약만 들어있는 걸까? 여론이 이맹희 씨에 대한 동정으로 흐를까 두려워했던 누군가의 우려가 실제로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삼성의 약점, 또 하나의 가족

익명의 국내 가전업체 전직 사장은 TV 광고 메시지에서 삼성이 휴머니즘을 내세우는데 뒤집어보면 삼성은 덜 인간적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삼성은 1997년 이후로 “또 하나의 가족” 캠페인을 해 나가고 있다. 저 논리에 비추어 본다면 “또 하나의 가족” 캠페인은 삼성이라는 기업의 비인간적인 면 혹은 인간미가 부족한 면을 감추기 위한다는 뜻이다.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 캠페인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 캠페인

예를 들어 [이병철 회장 추모식..삼성家 ‘신경전’]이라는 기사를 보자. 이 기사는 기사에도 언급된 것처럼 “호암의 장자인 CJ 이맹희 전 회장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뒤늦은 상속 싸움으로 선대회장 추모식마저 파행을 빚는 모습”을 설명한 기사이다. 이 기사에 달린 댓글은 많지 않은데 대부분 이건희, 이맹희 두 형제를 비롯한 삼성가(家)의 이견 싸움을 비판하거나 이건희 회장을 비판하는 댓글이 주를 이룬다.

이병철 회장 추모식..삼성家 '신경전' 에 달린 댓글 일부
댓글에 삼성가(家)에 대한 비난, 비판이 적지 않다.

이런 식으로 ‘형과 동생’ 구도의 기사가 언급되는 게 삼성 입장에서는 좋을 게 없다. 가족끼리 다툰다는 것도 별로 좋은 모양새가 아닐뿐더러 형제간의 싸움에 동생이 형에게 대든다는 식의 구도가 성립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이건희 회장은 2009년 8월 배임과 조세포탈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은 뒤 4개월 만에 특별 사면을 받은 다음 해 이병철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 외에도 이건희 회장은 “도덕성이 결여된 기업에서는 좋은 물건이 나올 수 없고, 나와도 반갑지 않다.”, “부정은 암이고 부정이 있으면 반드시 망한다.”와 같은 식의 윤리가 강조된 말을 해오고 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중 백혈병이나 재생불량성 빈혈 등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는 총 37명이고 그중에 3명만 산재 판정을 받고 지금도 그 노동자들이 삼성과 싸우고 있지만, 삼성전자 대표이사 권오현 부회장은 “임직원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이익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이전 제목은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삼성전자에 근무하던 황유미 씨가 백혈병으로 숨진 후 삼성과 싸움을 벌이는 황 씨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이전 제목은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2012년의 “이건희, 도둑놈 심보”나 2014년의 “형(이맹희)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고 용서를 구하는데 동생(이건희)은 모른 체하는” 그런 그림은 삼성이 대중에게 노출하고 싶지 않은 ‘인간성 부족’ 혹은 ‘가족 간의 다툼’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측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터넷에 남은 흔적들은 여러 언론사가 삼성의 ‘인간성 부족’을 숨기는 데 적극 협조하고 있다는 의혹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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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맹희 전 회장의 법정 서신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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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재판장님.세간의 주목을 받는 공인으로서 집안 문제를 법정까지 가져와 국민에게 심려를 끼치고 실망을 안겨드린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호소라고 생각하며 진솔한 속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신 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짧게나마 소회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경남 의령 농가에서 몸을 일으켜 삼성그룹을 창업한 아버지는 우리 7남매에게 너무나위대하면서도 어려운 분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가 세운 삼성가 집안의 장자입니다.삼성맨으로서 아버지를 도와 황무지를 뛰어다니며 한국비료공장, 제일제당 공장, 삼성코닝, 삼성전관, 반도체공장 등 삼성그룹의 많은 사업을 추진하며 오랫동안 삼성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회사에서 제 역할이 커지면서 아버지 의견에 대항하는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당시 아버지 의견에 반항하며 저의 생각이 회사를 더 크고 강하게 만들 것이라는 일념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은 아버지의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버지께 무릎 꿇고 사죄드리지 못한 것이 큰 후회로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는 철두철미한 분이셨고, 삼성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최고 엘리트들이 모여있는 집단이었습니다.그런 훌륭한 조직이 있음에도 아버지는 아무런 유언을 남기지 않고 의장인 소군(소병해씨, 당시 이병철 회장 비서실장)과 가족들로 구성된 승지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었을 뿐입니다.

서로간의 이해관계를 통해 삼성이라는 조직을 끌어 나가기보다는 가족간의 우애와 건설적인 견제를 통하여 화목하게 공생하며 살라는 의도였다고 생각됩니다.아버지에게 미움 받고 방황할 때도 가족은 끝까지 저를 책임지고 도와줬습니다. 지금도 가족에게 너무 큰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신 직후 건희가 한밤중에 찾아와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할 테니 조금만비켜있어 달라고 하면서 조카들과 형수는 본인이 잘 챙기겠다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11살이나 어린 막내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속에서 천불이 나고 화가 났지만, 그것이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삼성을 지키는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믿어 주었습니다.

타지생활의 유일한 기쁨은 재현이가 회사를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나가는 모습을 보는것이었고, 건희가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아 늘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하지만 건희가 저희 가족들에게 한 일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동생만을 믿고 자리를 비켜주었던 저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동생에 대한 배신감, 헝클어져 버린 집안을 보면서 어떻게든 동생을 만나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을 복원시켜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동안 동생을 만날 자리를 마련해 보려고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순간에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건희를 보면서 동생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그러던 중 삼성으로부터 상속포기하라는 서류 1장을 받게 되어 제 자신의 권리와 건희와의 관계를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너무 가슴 아프고 부끄럽지만 재판이라는 어렵고힘든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현이가 삼성으로부터 독립할 때 미행을 하고, CCTV로 감시하고, 제일제당 주식을 다시 사들이고, 장손의 할아버지 묘사(묘 앞에서 지내는 제사)도 방해하고, 대한통운 인수하는 데 뛰어들고, 이 재판이 시작되자 다시 재현이를 미행하고, 대한통운의 해외물량을 빼는 등 그동안 건희가 조카에게 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나열하는 것이저 자신도 부끄럽습니다.

이 재판 도중에 저는 건희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이제 재현이는 감옥에 갈 처지에 있고, 저도 돈 욕심이나 내는 금치산자로 매도당하는 와중에도 이 재판이 끝나면 내 가족은 또 어떻게 될지 막막한 심정이라 저로서는 굴욕적으로 보일 지 몰라도 화해를 통해서만이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건희는 절대 화해 불가라는 메시지를 받고 제가 제안한 진정한 화해라는 것은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해가 성사되더라도 과연 내 가족을 지킬 수 있을 지 불안한 것도 사실입니다.그래도 지금 제가 가야하는 길은 건희와 화해하는 일입니다.제 나이가 83세이고 재작년 폐암으로 폐 1/3을 도려내었으며, 최근 전이되어 항암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급속하게 성장하는 특별한 타입의 저의 암 씨앗은 지금도 혈액을 타고 전이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한달에 한번씩 검사를 하며 시한부 환자처럼 생명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누구보다 죽음에 한발자국씩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비난하며 말하는 “노욕”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부릴까 합니다.

아버지 생전에 사죄하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과 아버지 유지조차 지키지 못한 못난 장자로서는 죽어서 아버지 뵐 낮이 없습니다. 또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못했다는 후회로 두 눈을 편히 못 감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화해라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건희와 만나 손잡고 마음으로 응어리를 풀자는 것입니다.10분 아니 5분만에 끝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저와 건희는 고소인과 피고소인이기 전에 피를 나눈 형제입니다. 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일본 타지의 외로움에서 서로 의지하고 지내온 가족입니다.

이제 해원상생(解寃相生)의 마음으로 묵은 감정을 모두 털어내어 서로 화합하며 아버지 생전의 우애 깊었던 가족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것이 삼성가 장자으로서의 마지막 의무이고 바램입니다.이 재판에 대한 저의 진정성이 조금이나마 전달되었다면 노욕을 부리고 있는 이 노인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 질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진정한 화해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1월 14일 이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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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1. 편지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없으나 돈을 향한 욕망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형제의 모습에 그리고 후회하는 늙은 형의 편지 모두 안타깝네요

  2. 인과 응보라…
    깨달을때 남는건 후회뿐인가..
    깨닫지 못한채 죽는게 나을지도 모릅니다만 기어코 깨닫게 만드는게 세상사인가요.

  3. 분명히 이 글도 삼성직원들이 와서 보겠죠? 여기 아이피 검사 한번 해봐요. 꽤 나올듯.

  4. 우리 부모님 형제도 이렇게 싸웠어 우린 개거지로 살고있지 하여튼 쓰레기들은 쓰레기로살뿐. 건희할배 실망 죽을때 다됬는데 그돈으로 머할려고 우리 큰아빠도 디질때 다됬는데 형제 배신해서 가진건 돈밖에 없는 큰아빠 불쌍하지.. 형제는 말야 중요한 존재야 그걸 깨닫자. 피를나눈 형제야말로 친구이자 동료라고 생각해라 머 그 중에 쓰레기도 있겠지.. 건희할배처럼?? 울큰아빠? 돈은중요한게아니야! 사람이 중요한거지. 쓰레기는 휴지통에 버려야해 분명 맹희할배도 말을돌려서 막 지어냈지만 건희할배는 더 쓰레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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