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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 세상에는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놓쳤던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편집자) [/box]

대통령께서 내가 사는 동네를 방문하셨다. 소회가 없을 수 없다.

국교 수립 후 첫 방문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개인적 민폐가 적지 않다. 한국에 계신 장모님은 ‘잘난’ 사위가 당연히 대통령을 만날 것으로 알고 계셨다. 나는 저쪽을 알지만, 저쪽은 날 알지 못하는 비대칭적인 관계 속에 있는 사위의 궁박한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신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시질 못하고 아직도 TV 속에서 사위의 얼굴을 찾고 계실 터이니, 이를 어쩐다는 말인가.

아무리 TV를 봐도 내가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없다….”장모님, 죄송합니다.” (사진: islandjoe, CC BY)

사회보장협정, 의미 있지만 크지 않다

1963년 스위스와 국교 수립 이후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방문했다 한다. 그전에도 대통령이 몇 번 온 듯 한데, ‘개인적 사정’이었는지 다보스(매년 세계경제포럼이 열리는 스위스의 휴양 도시)만 잠시 둘러본 건지 궁금해졌다.

이런 역사적 사건은 결국 성과로 판단된다. 공식 브리핑에 따르면, ‘창조경제’에 대한 공감대를 기초로 협력관계를 만들었다는 것이 핵심인 듯하다. 우선 ‘창조일꾼’들이 두 나라를 오가며 일할 수 있게 하려고 사회보장협정을 체결했다. 두 나라에 이중적으로 사회보장 기여금을 내는 걸 피하자는 좋은 취지다.

경제적 혜택이 크다고 하는데, 한국인 중 이에 해당하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 그리고 스위스는 웬만한 선진국들과 오래전에 이런 협정을 했다. 최근에는 인도하고도 했다. 의미는 있으나, 크지는 않다.

스위스 직업훈련 제도 ‘뿌리는 못 보고 꽃만 본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직업훈련 제도였다. 스위스의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안정성의 원천은 고급 기술전문가를 키워내는 직업훈련 제도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도 중요하지만 이차적이다. 여기까지는 정확한 판단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직접 훈련기관을 방문했고, 교환 프로그램도 만들기로 했다. 경제수석은 스위스가 이런 협력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마도 그는 스위스의 직업훈련제도가 독일식의 도제제도라는 사실을 제대로 몰랐나 보다.

스위스의 직업 교육제도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로 상징되는 낭만적인 관광대국 스위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뿌리’를 봐야지 ‘꽃’만 보면 곤란하다. (이미지: 일본 후지TV의 ‘알프스 소녀 하이디’, 1974, 만화 원작은 스위스 여류 아동문학가 요한나 슈피리의 소설(Heidi’s Years of Wandering and Learning , 1880)이다.)

스위스는 중학교부터 기술학교와 대학반으로 나뉘어서, 대부분이 사춘기 때부터 차근차근 기술을 배워가고 대학진학 비율은 낮다. 그래도 월급 차이는 그다지 나지 않는다. 기술학교 나오고 잘 먹고 잘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뿌리는 보지 않고 꽃만 본다. 그리고 꽃을 서로 교환하자고 하는데, 그런다고 해서 한국에서 스위스의 ‘꽃’을 피울 수 없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이나 기술만 수입해서는 안 된다. 그 기술이 태어난 사회제도라는 토양을 살펴야지.

이래저래 따져 보니, 아무래도 이번 방문의 핵심은 ‘소박함’과 ‘겸양’이다. 그런 만큼, 언론도 이 정신을 이어받아 떠벌리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 “설악산 케이블카는 10년째 좌초 중”이라는 전경련

역사적인 스위스 방문에는 경제단체들의 땀과 노력이 숨어있다. 대통령의 ‘주옥같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이런 땀의 결실이다. 전경련에서는 인포그래픽도 만들었다. (아래 이미지 참조) ‘빛나는’ 스위스와 ‘암울한’ 한국을 깔끔하게 비교했다.

융프라우에는 산악열차가 다니면서 황금알을 낳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케이블 공사가 ‘무지한’ 환경운동가들 때문에 좌절되고 있다 말한다.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치밀함에 존경의 뜻을 전한다.

“닮은 듯 너무 다른 한국과 스위스”
(작성자: 오영경 조사역 / 아시아팀, 전국경제인연합회, 2013년 1월 20일)

쓰다 보니 좀 까칠했다. 대통령이 날 불러주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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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언급한 전경련 ‘케이블카’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설악산 케이블카가 자연훼손 가능성을 이유로 든 환경단체 때문에 아직 개통되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그러면서 융프라우와 생모리츠를 예로 듭니다. 융프라우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산악열차도 있고 레스토랑도 있으며 생모리츠는 해발 2km에서도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로가 있다는 거죠. 그럼에도 스위스는 세계경제포럼 1위 국가이면서 환경평가지수 1위 국가라는 겁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저 논리가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나 우스운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천 공사를 보세요. 복원한답시고 바닥을 시멘트로 깔고 한강 물과 지하수를 끌어오고 있습니다. 4대강 공사는 어떻습니까? ‘녹차라떼’라는 비아냥만 하고 지나치기에는 무서울 정도로 자연을 초토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좋을 수 있습니다. 자연환경은 미래 세대에게 잠시 빌려온 것뿐이라는 관점과는 아주 거리가 멀지만요.

필자가 ‘꽃’만 보지 말고, ‘뿌리’를 봐야 한다는 지적은 이런 맥락에서 읽혀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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