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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놓쳤던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상헌 박사‘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오늘은 ‘월급봉투’에 담긴 이상헌 박사의 어린 시절과 친구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편집자)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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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월급봉투는 그저 붕어빵 봉투 같았다. 갓 태어난 동네 아기들 얼굴에서 종종 보아왔던 황달과 같은 누른 색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불평도 못 들은 척, 어머니는 내 손을 끌고 아버지 회사에 왔다. 도장을 주고 확인절차를 거친 후, 마침내 나타난 월급봉투. 어머니는 기쁜 듯 실망한 듯, 그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재빨리 액수를 확인하고 봉투를 가방 깊숙이 넣었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내 손을 채어가듯 쥐고는 회사 밖으로 종종걸음치며 나섰다.

외항선을 타서 월급날 늘 바다에 계셨던 아버지를 대신해서 매달같이 어머니가 치르는 의식이었다. 아버지의 공백을 아들의 동반으로 메우려 하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버지 회사를 나서는 어머니의 얼굴빛은 늘 월급봉투를 닮아 있었다. 빚 갚고 학비 내고, 아들 기 안 죽이려고 비싼 옷 사다 입히는 사치를 부리면서, 점점 얄팍해지는 봉투. 붕어빵 사 먹기도 눈치 보일 때가 되면, 이미 어머니 얼굴은 백지장처럼 변해갔다. 빚 떼먹고 눙치던 옛 이웃들을 찾아 나서는 것도 그때였다. 내게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붕어빵이 더 중요했던 철없는 시절의 기억이다.

서울로 대학을 간 나는 촌놈이었고, 거기서 본 세상에 쫄아 있었다. 월급봉투 속에 담긴 세상에 눈뜨기 시작했다. 거기에 땀과 권력이 엉키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경제학은 이것을 유려한 수식으로 표현해서, 때로는 문제를 감쪽같이 숨기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배웠다. 그 다른 한편에는, 정치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있었다. 땀과 권력의 비밀을 낱낱이 까발리면서, 지금의 세상에서는 희망이 없다 했다. 그래서 더 쫄았다. 머리는 유토피아에, 발은 디스토피아에 있던 시절이었다.

친구가 죽었다. 학교 시절에 공부 잘하던 모범생이던 내가, 대학의 꿈을 진작에 버렸던 그와 친구는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술집에서 만났고 그러다가 친해진 그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그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시민아파트에서 살았다. 그 아파트의 공동화장실에서 나는 다시 쫄았다. 그곳에서 살아온 그가 경외로웠다. 그는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나의 아버지처럼 배를 탔다. 나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내 친구도 그의 어머니가 그 붕어빵 같은 월급봉투를 매달 받는 것을 즐겁게 상상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월급봉투 한번 나오기도 전에, 필리핀 근해에서 배가 침몰하면서 죽었다.

그의 삶을 알던 학교 친구들은 선박회사에 몰려가 친구를 살려내라 했다. 왜 멀쩡하던 배가 침몰했는지 알려달라 했다. 유족들과 오랜 점거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회사 장부도 보고, 선박 수리 기록도 보았다. 고의성 짙은 침몰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거기서 월급장부도 보아버렸다. 그리고 내 친구가 살아있었으면 받았을 월급봉투의 두께를 보고 한없이 무너졌다. 대학생인 내가 어느 신문사 논설위원의 딸을 일주일에 두 번 가르치고 받던 월급보다 조금 많았다. 분개하고 혈기만 넘쳤을 뿐, 싸울 방법은 몰랐던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기질 못했다.

더 쫄고 비겁해졌던 그때,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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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글 잘 봤습니다
    아~ 선박 침몰 사고… 정말 남의 일이 아닙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무마된 걸까요?

    아이고 저의 댓글로 본문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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