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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본좌의 주간 뉴스 큐레이션

2017년 12월 넷째 주 좋은 기사 솎아보기

1. 현장에 답이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은 기자라면 한번 쯤 들어보았을 말이다. 하지만 정작 이 당연한 말을 실천하는, 또 실천할 수 있는 기자는 많지 않다. 시사IN 김영미 PD의 스텔라데이지호 추적기는 이 답을 실천해 보인 기사다. 김 PD는 4개국 67일간 정부도 손을 놓아버린 것 같은 스텔라데이지호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명제를 실천하려면, “그럼 대체 현장은 어디인가?”라는 질문부터 해결해야 한다. 김영미 PD가 찾은 스텔라데이지호의 현장은 우루과이였다. 침몰현장은 우루과이에서 3,000km 떨어진 망망대해였지만, 그래도 구조 주체국은 우루과이였다. 우루과이 취재원들을 만나고 만나던 끝에 그는 “배가 두동강 났다”는 증언을 찾아낸다. 유가족들조차 처음 들어오는 새로운 실마리였다.

김영미 pd가 찾은 두 번째 현장은 ‘생존 선원을 구조했던 배’였다. 김 pd는 그 배를 찾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스텔라데이지호 선원 구조 장면이 담긴 영상을 발견하고, 그 영상에 나오는 증언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공개될 정도로 구체적이었다. 그 증언들을 통해 배가 침몰된 과정들이 재구성된다.

김pd는 또 다른 흔적, 미군 초계기 사진을 찾기 위해 먼 이국 땅 우루과이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 과정에서 우루과이 시민사회가 관심을 보였고, 우루과이 시민단체가 실종자 수색을 돕겠다고 나선다. 김 pd는 우루과이 국회 출입기자가 되었다. 만약 김 pd가 우루과이로 가기 이전에 많은 언론인들이 사고 초기 현장에 갔더라면, 더 많은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을까? 김 pd가 말한 ‘면피 의식’이 더 많은 언론과 기자들에게 필요해 보인다.

● 시사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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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딸의 생애주기마다 엄마는 투사가 된다

어쩔 수 없이 투사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 부모들이 그렇다. 장애를 인정하는 것부터 아이가 자라는 과정 전반에서 장애인 부모들은 비장애인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세상과 싸우는 투사가 되어간다. 주간경향이 늘 싸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장애아 엄마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시각중복장애인 효정이의 엄마 복순씨는 아이의 눈을 살리기 위해 굿판까지 벌였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안 이후에도 한동안 장애를 인정할 수 없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아이를 낳고 복직하려던 복순 씨는 직장과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아이의 눈과 발이 되어야 했다. 맹아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현장에 찾아가 포클레인 삽 위에 올라타 “제발 학교에 들어가달라”고 사정했다. 그렇게 맹아학교 설립의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학교장이 아이의 장애를 이유로 입학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장애인 특수교육법 제정을 위해서도 투사가 됐다. 암 치료를 받는 중에도 특수교사 정원을 두고 반대하는 의원들을 만나러 갔다.

특수지자체장애인학교에서도 주변에 아이 엄마들이 인공위성처럼 둥둥 떠다닌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직장을 나갈 수도,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선생님이 부르면 5분 이내에 달려갈 수 있는 어딘가에 앉아 있어야 한다. 이 엄마들은 장애아 관련 정책과 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직접 몸을 맞대고 싸운다. 공동체가 갈등 조정을 포기한 사이, 장애인 엄마들이 투사가 되어 직접 싸우고 있다.

● 주간경향 ‘장애아 엄마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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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누가 이민호 군을 죽였나

지난 11월, 생일을 이틀 앞둔 한 고교생은 현장실습을 나갔다 사망했다. 제주도 특성화고에 재학 중이던 고 이민호 군이다. 회사도 사과하고 정부도 대책을 발표했지만, 특성화고 실습생 문제는 하루 아침에 해결되지 않을,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같은 문제다. jtbc 스포트라이트가 누구 이민호 군을 죽였는지 묻는다.

이민호 군에게 사고가 닥쳤을 때까지 몇 분 간 그 누구도 사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고 사실을 인지한 이후에도 현장 인원들은 사고에 대처하지 못한 채 쩔쩔 맨다. 그러는 사이 20분이 흘렀다. 교육 받으러 간 이민호 군이 사실상 현장을 혼자 책임지고 있었다.

민호 군 사망사고 전에도 많은 실습생들이 죽어나갔다. 2016년 아들 동균이를 떠나보낸 아버지 김용만 씨는 사고가 벌어진 기업보다 학교가 더 원망스럽다고 말한다. 학교가 학생들을 기업체에 던져놓은 채 방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습생들은 성희롱을 당해 그만둬도 사실을 밝히지 못했고, 학교로 돌아왔다는 이유로 징계를 감당해야 했다.

현장실습생 제도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쳐 양성됐다. 정부는 일찍 사회에 진출하는 나라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학교를 경쟁하게 했고, 학교는 취업률을 높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전공과도 관계없는 일터로 학생들을 내몰았다. 기업은 값싼 노동력을 위해 실습생들에게 손을 뻗었다. 정부와 학교, 기업이 책임 소재에서 사라진 사이 그 책임은 오롯이 학생들의 어깨에 올려졌다.

●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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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0년 지나도 여전한 태안의 상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기름유출 사고를 겪은 태안의 상처는 10년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12월 7일,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난 지 딱 10년 되는 날이다. 경향신문이 10년이 지난 태안의 현장을 찾았다.

언론에는 “태안 10년, 123만의 기적”, “태안 기름유출 10년, 다시 찾은 청정바다” 등의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주민들은 아직 회복이란 말을 써선 안 된다고 말한다. 만리포 해수욕장이나 모항항 바다에서 기름 흔적은 찾기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지만 바닷 속은 다르기 때문이다. 미역이나 다시마가 바위에 붙어야 하는데 기름 성분 때문에 붙지를 않고, 먹을 게 없다보니 전복이 자라지 않는다. 먹이사슬이 망가진 탓에 해산물 양이 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건강이다. 방제에 앞장섰던 주민들은 초기에 방제복이나 마스크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 고혈압, 치아 염증, 안면 마비 등이 이어졌다. 태안환경보건센터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전립선암이 두드러지게 높게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 10만명당 5명 수준이었던 백혈병은 2009년부터 2013년에는 8.6명으로 뛰었다.

심리적인 상처도 여전하다. 긴급생계비 지급 기준과 원칙이 명확하지 않아 마을 간, 마을 내 갈등이 벌어졌다. 삼성발전기금 배분을 두고도 주민들 간 갈등이 여전하다. 삼성중공업은 2014년 약속한 3,600억 원 중 2,900억 원을 입금했지만, 11개 지역이 이 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다툼을 시작했다.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판정으로 배분을 둘러싼 다툼은 끝났지만, 이제는 발전기금 관리 수탁자를 놓고 이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 간 환경은 파괴됐고, 주민들은 아프고, 공동체는 갈라졌다.

● 경향신문

태안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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