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소셜코리아 칼럼] 지리와 위치가 계급이 된 대한민국의 공간적 재난. 지방 떠나는 청년 사회 약자로 전락…지역본사제·노동시간 단축 대안. (양준호 /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 (⏳4분)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치명적인 위기는 0.6명 대로 곤두박질친 출산율 이전에, 국가의 절반 이상이 텅 비어가는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공간적 재난이다. 수십 년간 수백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은 하드웨어 중심의 하향식 균형발전 정책이 처참한 실패로 끝난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이 어떻게 권력화되고 분절되는지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지리학자 도린 매시(Doreen Massey)가 주창한 ‘노동의 공간적 분업’과 ‘권력 기하학’의 렌즈로 보면, 작금의 지역 소멸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자본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빚어낸 착취적 구조의 결과물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철저히 직무의 위계에 따라 공간을 분리한다.

  • 기획·R&D·재무 통제 등 ‘구상 기능’은 최고급 인재가 밀집한 중심부(수도권)에 결집하고,
  • 단순 조립과 제조를 담당하는 ‘실행 기능’은 주변부(지방 산업도시)로 내몰린다.
  • 현재 국내 500대 기업 본사의 77%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 국가 R&D 역량과 인력의 70%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이 기형적인 분업 구조 속에서 수도권은 물리적 제품을 생산하지 않고도 지방에서 창출된 부가가치를 진공청소기처럼 흡수하며, 비수도권은 환경 오염과 산업재해의 위험만을 떠안는 ‘수동적 하청 기지’로 전락했다.

지리적 위치가 계급이 된다… 지방을 떠나는 청년

가장 뼈아픈 대목은 이러한 자본의 공간적 분업이 노동시장의 지리적 불평등으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좋은 일자리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학력이나 산업 특성 같은 객관적 지표로 설명되는 부분 보다, 단지 ‘수도권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리는 각종 프리미엄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지방 노동자들은 공간에 결박당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조적인 ‘임금 페널티’와 ‘차별’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그 파괴적 결과물이 바로 핵심 산업도시의 붕괴와 청년 엑소더스다. 울산·창원·포항·여수·거제 등 한국의 성장을 견인한 5대 산업도시에서 지난 10년간 24만 명이 넘는 인구가 유출되었고, 이 중 80%가 청년과 10대 세대였다. 청년들이 열망하는 R&D 직군과 기획의 좋은 일자리는 ‘우수인재 확보’라는 명목으로 모조리 수도권 본사로 빨려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국에서 1인당 GRDP(지역내 총생산)가 가장 높은 부자 도시 울산마저 청년실업률이 9.7%에 달하는 역설적 위기에 처했다. 공간의 권력을 상실한 청년들은 생존을 위해 고향을 등지고 수도권으로 강제 이주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약자로 전락했다.

특히 이러한 지리적 불평등은 젠더 권력과 교차하며 억압을 가중한다. 남성 생계부양자 중심의 지방 중화학·제조업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는 질 좋은 일자리에서 배제되어 저임금·비정규직으로 밀려난다. 수도권과 인접한 경기도조차 노동시간을 통제한 상용직의 성별 임금 격차가 28.4%에 달할 정도로 노동시장의 분절은 심각하다.

2020년(좌)과 2025년(우) 소멸위험 기초지자체 지도. 빨간색이 ‘심각’ 주황색이 ‘위험’을 가리키는데, 5년 사이 소멸위험 위험과 심각 단계에 놓인 기초지자체가 늘었다. ©한국고용정보원 ‘지방소멸 2025: 신분류체계와 유형별 정책과제’.

해법은 ‘지역 본사제’…복수 본사제 제원 입법도 필요

이 절망의 굴레를 끊어낼 해법은 자본의 거점 자체를 옮기는 ‘지역 본사제(Regional Headquarters System)’의 전면적 도입이다. 단순히 건물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통제력을 잃은 지방에 경영적 의사 결정권과 혁신 역량을 이식하는 작업이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낙후 지역으로 본사를 이전할 경우 최대 12년(10년 100%, 2년 50%)의 법인세 감면 혜택을 보장한다. 서울에는 최소한의 금융 거점만 남기고 지방에 파격적인 재무·인사권이 부여된 ‘제2본사’를 신설하는 복수본사제 지원 입법도 시급히 완수해야 한다. 

성공 사례도 있다. 전북 익산에 본사를 두고 재계 28위 그룹으로 도약한 하림, 생산 거점인 창원으로 본사를 전격 이전한 뒤 영업이익이 7배 급등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본과 현장의 결합이 창출하는 시너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지방 살리는 또 하나의 무기

나아가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파격적인 노동 정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화석연료 중심의 핵심 산업도시들은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주 4일제 도입 등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을 통해 노동자에게 자유 시간을 부여하는 생태·복지 사회로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이는 지방 노동자들의 피로를 덜고 일과 삶의 균형을 복원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열악하다고 평가받는 비수도권의 삶의 질과 정주 여건을 끌어올리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특히 무한 경쟁과 장시간 노동에 찌든 수도권의 삶과 대비되는 ‘여유롭고 생태적인 지역에서의 삶’이라는 새로운 매력을 창출할 때, 비로소 떠나간 청년들의 발길을 다시 지역으로 돌려세울 수 있다. 이는 지방의 자생력을 근본적으로 복원하는 거대한 사회적 기획이다.

학업과 일자리 등을 이유로 비수도권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지역 간 좋은 일자리 격차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린 매시는 “공간은 대단히 정치적이며 사회 불평등의 생산에 깊숙이 관여한다”고 말했다. 자본의 수도권 독식을 방치하는 한, 지방의 KTX 역사는 청년들이 빠져나가는 ‘고속 탈출로’에 불과하다. 텅 빈 공단에 아스팔트만 깔아주던 정책에서 벗어나, 권력을 지리적으로 분산하는 ‘지역본사제’와 노동의 가치를 보듬는 ‘노동시간 단축’을 결합한 ‘공간적 정의(Spatial Justice)’를 실현해야 할 때다. 자본의 상생 결단과 노동시간 단축이 맞물릴 때, 비로소 대한민국 국토 전역은 각기 다른 생명력으로 고동치는 진정한 균형발전의 새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