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맘껏 삶을 모험할 수 있도록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게 교육의 역할이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멈춰라. (이윤영 인디고잉 편집장) (⏳4분)

얼마 전, 후배가 글을 썼는데 한번 봐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보내준 글을 읽는데 술술 잘 읽혔다. 맞춤법도 틀린 곳이 없었고, 딱히 손볼 곳이 없는 글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석연찮았다. 무엇보다 후배가 쓴 글이 아닌 것 같았다.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성실하고 정직한 목소리가 특징인데, 그런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글의 흐름이나 문장이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들이었다.

혹시 글쓰기 연습하려고 학원에 다녔는지, 아니면 글 쓰는 방법 알려주는 책을 읽고 따라 쓴 글인지 물었다. 둘 다 아니었다. 챗GPT를 사용한 것이란다. 쓰고자 하는 글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고 얻은 결괏값이었고, 자기보다 훨씬 잘 썼다고 느꼈다고 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챗GPT 기술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 후배는 앞으로 글을 잘 쓰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맞춤법은 종종 틀리기도 했지만, 열정이 가득해 생동감이 넘치는 글을 쓰던 후배였다. 그 글을 이제 보기 어려울 것 같아 안타까웠다.

문해력 학원 찾는 학부모들

내년 3월부터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  AI Digital Textbook)를 초등학교 3, 4학년과 중1, 고1 학생들을 대상으로 도입한다. 단순히 AI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로 전면 도입한다는 점에서 현장 반발이 심하다.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기술인데 교육의 핵심이 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AI가 교사를 대신해 학생을 평가하고 진단하게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어떻게 대비하고 대응할 것인가? 디지털 화면만 들여다보고 AI가 지시하는 대로 학습하는 아이들은 앞으로 대인관계를 제대로 맺을 수 있을까? 지금도 교권이 무너져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사가 많은데, 과연 교사의 자리는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잠깐만 생각해 봐도 발생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중대한 문제가 무수히 많다.

또 종이가 디지털로 대체되면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는 어떠한가.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나라는 스마트기기가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이들의 성장을 저해하는 선택을 구태여 할 셈인가.

그렇지 않아도 문해력 저하와 스마트기기 중독 문제가 심각해 걱정인 학부모들은 서둘러 문해력 학원을 찾고 있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뀔 판국이다. 돈 있고 정보력 있는 가정의 아이들만 그런 학원에 갈 수 있을 텐데, 이로 인한 격차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큰 사회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완성에 가까울 만큼 발전한 자동차 자율주행 기술도 윤리적인 문제로 전면 도입을 주저한다. 하물며 백년대계라는 교육 문제를 이렇게 서둘러 결정하는 것은 정당하지도, 옳지도 않다. 학생들의 기본 인권을 짓밟을 수도 있는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AI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AI의 위험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영역이 무엇인지 묻자는 것이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지식과 정보를 정리하는 데는 AI가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하지만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밝히지 못한 무엇인가를 탄생시키고 발굴하는 일은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인간의 몫이다.

[호모 유니쿠스]를 쓴 임헌우 계명대 교수는 인디고 서원에서 열린 인문학 강의에서 “평균적인 답변이 아니라, 그 너머의 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힘”이 인간다운 면모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미 알려진 세계 너머를 상상하고, 지금까지의 통념을 깨는 힘을 가진 것이 “소설가나 시인의 문법”이라고 했다.

단어 찾아 헤매는 시인, 인간의 진짜 모습

이 이야기를 듣고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단어를 찾아서’라는 시가 떠올랐다. 시인은 자신이 마주한 상황에 관해 기술하고자 했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Wisława Szymborska, 폴란드 시인, 1923-2012,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러나 시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지만 / 그 어느 것도 적절치 못하다.” “온 힘을 다해 찾는다. /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자신이 듣고 본 것을 표현하기 위해 단어를 찾아 헤매는 시인의 모습, 이것이 인간의 진짜 모습이다. 나의 정신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그 정확하고 분명한 단어를 찾고자 하는 행위는 인간이 창조해 낸 모든 것의 토대다. 그 말에 가닿고자 인간은 언어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곡을 연주했고, 수학과 과학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왔다.

교육은 이러한 힘을 가진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어야 한다. 자신이 느낀 것, 본 것, 들은 것, 경험한 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돕는 것, 그래서 무의미해 보이는 삶에 의미를 더할 수 있도록 하는 돕는 것, 이제까지 없던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정답을 정해놓고 그것을 맞추게 하는 일은 이 고도로 발전한 인공지능의 시대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AI의 등장은 100년 가까이 이어져 오는 낡고 구태의연한 교육 방식을 끊어낼 수 있는 이유가 되어야지, 그것이 교육의 주체가 되고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마음껏 단어를 찾아 삶을 모험하는 일에 훼방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AIDT 도입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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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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