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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시대적 과제 개헌

1987년 우리는 국민의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망으로 민주주의의 초석이 될 새 헌법을 쟁취했다. 87년 헌법 체제는 권위주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민주화 시대를 여는 위대한 성과였으며, 지난 30여 년간 대한민국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온 근간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화했다.

30여 년의 세월 동안 우리 사회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다원화되었으며, 과거의 규범과 체계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과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는 낡은 옷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수선하고, 새로운 미래를 담아낼 그릇으로서의 헌법 개정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다.

문제는 ‘어떻게’… 일괄 타결은 비현실적

문제는 어떻게 개헌의 성공에 이르느냐다. 개헌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국민투표라는 높은 절차적 장벽을 넘어야 한다. 헌법개정은 특정 정파의 의지만으로는 결코 달성될 수 없으며, 초당적인 합의와 국민적 동의가 필수적이다. 헌법상으로는 국민 과반의 찬성이면 충분하지만, 헌법개정의 과정과 결과가 국민을 통합해 나가기 위해서는 가능한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극심한 진영 대립과 상호 불신으로 인해 사소한 쟁점 하나에도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국가의 근본 규범을 바꾸는 개헌이라는 거대 담론은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모든 헌법 관련 쟁점을 한 번에 해결하려는 ‘일괄 타결’을 지향하는 접근법은 현실적이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개헌안의 좌초 경험은 이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교훈이다. 당시 정부가 발의한 개헌안에는 대통령 4년 중임제, 선거연령 하향, 수도 조항 명시 등 긍정적 평가를 받은 내용과 함께, 토지공개념이나 대폭적인 지방분권 강화와 같이 사회적으로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사안들이 함께 담겨 있었다.

결국 이 포괄적인 개헌안은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고, 국회 표결조차 시도하지 못한 채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반영하려는 노력은 분명 가치 있는 것이었지만, 갈등적 쟁점을 하나의 개헌안에 모두 담으려는 시도는 개헌안에 내재된 갈등의 복잡성과 이익의 충돌로 좌초될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 좌초 사례는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려다 오히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단계적으로… 1차 개헌 성공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거대한 이상을 한 번에 실현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실현 가능한 목표부터 단계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인내심과 절제가 필요하다. 절제된 개헌 의제를 제시하는 등 사회적 합의 수준이 높은 사안부터 순차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1단계는 ‘합의 가능한 개헌’을 통한 성공의 경험 축적이다. 토지공개념과 같은 이념적 쟁점처럼 여야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문제 대신, 정치권의 합의가 상대적으로 쉬운 사안부터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이미 오랫동안 현행 헌법의 대표적인 흠결로 지적 받아왔던 이중배상금지조항, 이미 사문화된 국가원로자문회의 폐지,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 도입 등을 들 수 있다.

결선투표제는 과반의 지지 없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경우 발생하는 대표성 문제를 해결하고, 선거 과정에서 후보 간 정책 연대를 촉진하여 협치와 타협의 정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제도적 장로서 특정 정파에 유불리한 제도라고 보기 어렵고 선출된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는 데 주된 목적이 있으므로 다른 정치제도 관련 조항에 비해 상대적으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용이하다.

수도 조항을 명문화하는 것 역시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합의가 쉬운 연성 쟁점(soft issue)들을 중심으로 ‘1차 개헌안’을 성공적으로 통과시킨다면, 우리는 ‘개헌은 불가능하다’라는 정치적 무력감을 떨쳐내고, 더 큰 변화를 위한 소중한 동력과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다.

2단계, 지속적 논의 통한 합의 확대

2단계는 ‘지속적 논의를 통한 합의 영역의 확대’이다. 1단계의 성공을 바탕으로, 1단계 개헌 이후에도 국회 내에 초당적인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시민사회와 학계가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 기구는 현 정부 임기 내에 2단계 개헌을 달성하겠다는 등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데 얽매이지 않고, 권력 구조 개편과 기본권 조항 등 핵심 쟁점들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연구하고 토론하며 국민적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1단계 개헌안에 담기지 못한 논쟁적인 요소들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며 합의를 만들어 나가고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 이후의 헌법개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단계적 접근법은 헌법을 박제된 문서가 아닌 ‘시대의 변화와 함께 진화하는 살아있는 규범’으로 인식되도록 할 것이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려는 조급함 대신, 인내심을 갖고 벽돌을 한 장씩 쌓아 올리듯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 물론 단계적, 점진적 접근이 개혁의 근본적인 비전이 부족한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 정치의 높은 벽 앞에서 원대한 비전만을 외치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과, 작더라도 의미 있는 전진을 거듭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미래 세대에게 책임 있는 자세인지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단계적 개헌은 현재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한 단계 성숙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 중꺾정 필자의 견해는 참여연대 공식입장이 아니며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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