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보컬 레슨을 들어보아도, 본격적인 성악을 공부한다면 모를까, 사실 팝 음악의 발성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방법이란 결국 몇 가지 강령으로 요약된다.
노래를 잘 부르는 방법
목에서 힘을 빼고, 소리의 지향점을 명확히 설정하며, 마지막으로 감성을 불어넣으면 된다. 그 중에서도 목에 힘을 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강령이다. 방법 자체는 아주 쉽다. 그저 목과 턱의 근육 그룹을 충분히 이완시키고, 긴장을 풀고 소리를 내면 되는 것이다.
사실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사람은 목에 힘을 빼는데 훨씬 익숙하다. 노래와 마찬가지로 성대를 울리고 혀를 굴리는 일이지만, 말을 하고 글을 읽을 때 목에 힘을 주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노래만 부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갖춘다.
목에 잔뜩 힘을 주고, 핏대를 세운다. 노래가 절정에 달하면 급기야 핏대가 두 세 갈래씩 튀어나오고, 얼굴이 시뻘개지고, 소리도 힘에 부쳐 보인다. 보는 사람이 다 안쓰러울 정도다.
좀 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목에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기 위해 여기에 더 어려운 훈련을 하기도 한다. 성악을 하고 있는 한 친구는 오히려 고개를 뻣뻣이 들고 고음을 내는 훈련법을 소개해주었는데, 그 방법이란 간단하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음을 고개를 뻣뻣이 들고 목 근육이 최대한 긴장된 상태에서 내는 것. 이렇게 하면 평소 소리를 낼 때 완전히 목에서 힘을 빼고 자연스런 호흡에 소리를 맡기지 못했다면 깨끗한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고 한다. 오랫동안 성악을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박진영의 죄
오늘날은 실로 오디션 프로그램 범람의 시대다. SBS의 ‘K팝 스타’는 개중에서도 대한민국 3대 아이돌 기획사(SM, YG, JYP)가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화제가 된 프로그램인데, 최근 들어 이 프로그램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는 이유는 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바로 박진영씨의 독특한 심사평이다. (네이버에 ‘박진영’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박진영 심사평’이 딸려 나올 정도다!)
얼굴이 찡그려지는 것은 발성이 잘 안 된다는 뜻이다.
평소에 말을 하는 목소리로 노래해야 한다. 가끔 중년 흑인 보컬이 XXX 양 대신 노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들숨과 날숨이 적절히 조절이 되어야 한다.
고개를 그렇게 든 자세로는 발성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대강 몇 가지를 꼽아 보면 이 정도다. 네티즌들은 참가자의 무대 뒤에 따라붙는 박진영의 이런 심사평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하며 또 조롱한다. “심사평이 들숨과 날숨이 조화되지 않아 듣기 괴로웠다” 든가, 박진영의 심사평과 얼굴을 찡그리며 노래하는 유명 보컬리스트의 사진을 병렬 배치하며 “ㅋㅋㅋ” 같은 첨언을 달아 조롱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진영의 심사평은 정말 그렇게 조롱받을 만한 것인가? 십 년을 노래한 성악가도 늘상 강조하는 것이 “평소에 말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것”이고 “호흡에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싣는 것”이다. 고개를 들고 노래하면 발성에 불리해진다는 것도, 편안한 표정과 자세로 노래해야 한다는 것도, 얼마나 오래 노래했는지에 상관없이 늘 유념해야 하는 발성의 강령이다.
왜 그것이 강령이냐면… 글쎄, 팝 발성에 어떤 정석이란 게 있다 보기 힘드니 딱부러지게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말을 하듯 편안하게 노래한 것과 힘을 주어 노래한 것을 각각 녹음해 비교해 들어보면 누구나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와 명 보컬리스트의 사진을 대조해 “왜 오디션 참가자는 표정을 찡그리면 안 되고 명 보컬리스트는 표정을 찡그려도 되느냐”고 묻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고음역에서 발성이 잘 안 되면 음을 억지로 쥐어짜내기 위해 표정이 찡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박진영의 지적은 소리가 깨끗하게 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서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그렇지만 표정이 찡그려졌다고 해서 무조건 고음역에서 발성이 잘 안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감정에 몰입했을 때, 노래가 클라이막스에 도달했을 때, – 혹 극단적인 반례를 들자면, 그냥 어딘가가 간지러워서라도 표정을 찡그릴 수 있다. 명제가 참이라고 해서 그 역도 참이지는 않다.
“고개를 들고 노래하면 발성이 잘 되지 않는다”는 박진영의 심사평을 보고 “그럼 클라이막스에서 고개를 들고 노래하는 김범수, 휘성 같은 가수는 뭐냐”며 조롱하는 것도 그렇다. 아마추어들이야 기초 발성이 중요하고 훈련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큼 자세를 강조해야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오랫동안 훈련한 보컬리스트들은 일부러 목에 힘이 들어가는 자세를 취하면서도 목에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호흡하고 발성하기도 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훈련량은 단순히 병렬 비교하기에는 너무 큰 차이가 난다.
박진영의 쇼
박진영의 기술적 지적이 천편일률적이고, 계속 호흡만 강조하는 것이 짜증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정말로 호흡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건 유독 박진영만이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발성 강의에서 늘상 얘기하는 게 바로 호흡이고, 부적절한 호흡, 호흡의 부족, 이런 것들의 아주 미묘한 차이가 무대의 완성도를 천당에서 지옥까지 떨어뜨린다. 그는 참가자에게 필요한 지적을 하고 있다. 다만, 참가자에게 필요한 지적이 청중이 원하는 멋진 장면과 동떨어진 것일 뿐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무대에서 자잘한 기술을 강조하는 것은 재미가 없다며, 감동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보고 싶은 것이라고들 얘기한다. 그러나 정말 그 둘은 그렇게 떼어 놓고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예를 들어,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무대에서는 감동이 느껴진다. 그런데 김연아가 만일 한 바퀴 점프도 제대로 못 하고, 스핀을 하다가 어지러워 넘어지고, 빙판에 앉아 귤을 까먹고 있어도 그렇게 감동적일까?
감동이란 기술적인 기초 위에서만 비로소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연습 없이 흥에 취해 부른 노래를 녹음하고 한 번 들어보시라. 거기에서 과연 ‘감동’이 느껴지는지, 아니면 이게 뭔가 하는 부끄러움에 당장 꺼버리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지. 그 자잘한 기술적 지적은, 사실 노래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기초이며 기반인 것이다.
얼마전 K팝 스타에서는 놀라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한 참가자의 무대에 대해 세 명의 심사위원이 99점, 100점, 100점을 준 것이다. 철저히 주관에 의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런 상대평가에서, 100점이란 굉장히 상징적인 것이다. 만점짜리 무대라는 것은, 더이상 개량의 여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다음 무대에 프레디 머큐리가 강림해서 노래를 부르더라도 그보다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큰 역할을 한 게 박진영씨다. 박진영씨는 노래가 시작하자마자 ‘더 이상의 감동은 없다’는 초롱초롱한 눈빛과 표정을 보여주었고, 카메라는 기막히게 그 표정을 잡아냈다. 심사위원은 노래가 끝나자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고, 박진영의 99점을 시작으로 보아와 양현석씨가 100, 100이란 숫자를 찍는 것을 본 관객들은 무대가 떠나갈 듯한 경탄과 함성, 박수를 보냈다. 네티즌들 역시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평소 미지근한 반응밖에 보이지 않던 프로그램이 갑자기 화제의 중심에 올라섰고, 주요 음원 사이트의 1위 자리를 그 참가자의 노래가 점령했다.
99점, 100점, 100점이라는 비정상적인 점수가 이런 감동과 열광의 도가니를 빚어내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감동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 감동은 노래가 빚어내는 순수한 감동이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쇼 엔터테인먼트 속에서 출연자와 연출자의 고도의 기술로 빚어진 감동인가. 참가자의 감동적 노래보다 박진영의 표정과 보아와 양현석이 준 100점이란 숫자가 더 화제가 되는 분위기를 보며, 감동이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하물며, ‘100점의 감동’이 인터넷을 뒤덮는 동안, 긴 시간동안 노래를 해 오고 가수를 만들어 온 연출자의 기술적 분석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감동을 방해한다는 혹평과 조롱에 시달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려면, 과연 우리가 이 오디션 프로그램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회의가 다시금 부상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감동이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정작 기술적 분석을 하면 쉽게 조롱하고 비난하던 분위기가, 99점 100점 하는 숫자가 만든 ‘쇼’에 대해서는 열광하는 모습이, 나는 무척 낯설다.
멜로 영화를 보러 갔는데 어떤 배우 하나가 자기가 연기 잘 한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자꾸 과잉된 눈물 연기를 한다든지, 아니면 아예 화면을 쳐다본다든지 하면 산통 다 깨지겠죠.
제 기준으로 볼 때 박진영은 과잉된 연기로 쇼를 원하는 시청자의 몰입을 막고 있습니다. 또한 케이팝스타라는 쇼에서 다양한 연기를 해줘야 할 주연급 연기자임에도 단조로운 연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고 있어요.
박진영의 표현을 빌자면 어떨 땐 대충 연기하고, 중반 이후에는 절정의 연기를 보여주면서 평가자로서의 진폭을 보여줘야 하는데, 쇼의 시작부터 끝까지 앵무새처럼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은 톤으로 하고 있는 거죠.
즉, 관객은 쇼를 원하는데, 어떨 땐 너무 진지한 다큐를 찍으며 (공기 드립) 산통을 깨고, 어떨 땐 너무 어설픈 연기 (감동 표정)로 산통을 깹니다. 그게 쇼의 주연배우로서의 박진영의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죠.
박진영의 기술적 분석은 아마추어 출연자를 향해 있기도 하며 시청자를 향해 있습니다. 시청자는 단순히 재미로 조롱하는 것 이상으로 박진영의 기술적 분석 자체에 공감을 못 하고 있는 거죠. 박진영의 말은 사실 어렵지 않거든요. 아마추어 들으라고 하는 말이고, 시청자 중에 노래 한 번 안 질러본 사람 없을 테고요.
진지하면 조롱받고, 가짜 연기를 하면 인기를 끈다?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 박진영의 어설픈 가짜 눈물, 표정 연기에 불쾌한 데다 심사평 자체가 어이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작곡가도 박진영을 조롱하는 판국이고…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박진영이 쇼에서 마치 자신만이 전문가인 양 거만 떠는 꼴에도 불편함을 느낄 겁니다.
출연한 도전자들의 실력과 개성이 고만고만해서 심사평도 고만고만할 수 있겠지만 심사평의 기준을 일관되게 느끼고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전문가의 평가라며 감탄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가짜 연기로 망치고 있던걸요?
저는 타 예술 분야 종사자이지만, 참가자를 향한 박진영의 평을 재미있게 받아들입니다. 물론 오버한다 싶을 때도 있지만, 본인 나름대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참가자에게 진정성있는 어드바이스를 하려고 한다고 느껴지거든요. 나름대로 뼈대도 있구요. 저는 오히려 양현석 심사위원이 불편합니다. 대중취향이라는 코드로 모든 걸 단순하게 정리해버린다는 면에서요.
개인적 의견으로는 현대사회가 그간 ‘예술의 신격화’를 조장하지 않았나 싶네요
아무리 개성적인 자, 타칭 ‘천재 예술가’라도 그 배경엔 무수한 테크닉연습이 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슨 마법처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예술을 하는 그런 예술가의 이미지가 많이 보급된 게 사실이죠.
그런 배경때문에 노래에 대한 평가에 발성 테크닉을 평가 요소로 두는 박진영이 대중적 반감을 사게 된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