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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와 우려, 그리고 걱정과 과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뿐만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태, 즉 위기인가 아닌가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집단적 행동의 이면에는 인식론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기적 전략 행동이 아닌 사회를 고려한 집단적 전략 행동에는 인식론이 핵심이다.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극우 유튜브 주장을 빼다 박은 윤석열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 2024.12.12.

계엄 이후, 한국 민주주의를 대하는 세 가지 태도

구체적으로

  1. 현실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중요한 변화와 행동을 준비할 것이고,
  2.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인내하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또한
  3. 현재는 문제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다소 체념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는 2010년대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왔었고, 12.3 계엄을 계기로 모두가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인식은 많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1. 일부는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라고 말하고,
  2. 다른 일부는 한국 민주주의가 회복탄력성의 힘을 보유하고 있어서 계엄을 막아내고 탄핵을 통해서 헌정질서를 지켜냈다고 다소 안도한다.
  3. 또 다른 일부는 한국 민주주의가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가? 나는 위 세 가지 입장을 검토하고, 본인의 인식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1. 한국 민주주의가 문제야

첫째, 한국 민주주의가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심각성과 그 원인을 다양한 방법으로 진단한다. 헌정론자들은 한국 정치에서 제왕적 대통령이 행사하는 법적 권한과 관행적 권한이 너무나 비대하여 통제불능 상태로 나아갈 수 있고, 그것이 유권자들의 요구와 멀어지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대통령이 민주주의자가 아닐 경우 윤석열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대의민주정치 자체를 수렁에 빠뜨린다. 정치경제론자들은 세계적 현상이 된 사회, 경제, 교육 불평등이 민주정치에서 대표성의 불균등을 초래하여 한국 민주주의가 가진 자들에게 편향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한국정치사를 전공한 이들은 권위주의 독재가 1987년 이후 민주화되었다고 하여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권위주의 계승정당을 중심으로 반민주적 유산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관점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가 민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고 인식한다.

독재 후신 세력과 기득권을 최대한 지키고 민주세력의 도전을 차단하며, 중산층과 서민들의 요구는 집권을 목적으로 선택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정당 연구자들은 한국의 양대 주요 정당이 경쟁의 양상은 제도화되었지만, 그 경쟁의 질을 높일 정도로 정당의 조직역량, 충원능력, 정책기능 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선거 연구자들은 한국의 선거제도가 승자독식의 구조이기에 한국정치가 다양한 사회세력을 포용하기에는 지배층 혹은 주류 세력에 편향되었다고 진단한다. 어쨌든 한국 민주주의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무려 ‘내란 우두머리’로 재판받고 있지만,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윤석열(전 대통령).

2. 한국 민주주의는 괜찮아

둘째한국 민주주의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회복탄력성을 보일 정도로 민주세력이 강력하고 나아가 한국의 헌정질서는 지도자를 구속할 정도의 견고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도전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지낼 것으로 진단한다. 

이런 인식에는 두 가지 근거가 있다. 먼저 역사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나라의 지도자를 감옥에 보내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한국은 이런 점에서 정말 대단한 나라이다. 조선의 왕조가 무너진 다음에도 복고운동보다는 독립운동과 공화주의를 중심으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승만이 망명하고, 박정희가 죽어도 슬퍼했으나 그 현실을 받아들였고, 12.12 쿠데타의 주역이자 전직 대통령인 전두환과 노태우를 처벌하였고, 이후에도 이명박, 박근혜 등을 구속했다. 현재 윤석열도 이변이 없는 한 구속될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해외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다. 한국은 20세기 후반에 민주화된 나라들 가운데서도 꽤 성공한 사례에 속하고, 최근 두 번의 헌정 질서 위기에도 시민저항과 탄핵이라는 합법적 절차로 민주주의를 회복시키지 않았던가? 나아가 최근 세계 민주주의가 서구는 물론 비서구권도 위기에 빠지면서 상대적으로 한국이 느끼는 문제들은 다른 나라에서도 관찰되고 오히려 한국이 덜하다는 진단이 위안을 준다.

이런 입장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다소 낙관적 인식을 제시하지만, 그 근거가 이론적으로 탄탄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역사적 경험과 다른 나라와의 상대적 비교를 직관적으로 믿고 위안을 가지는 경향이 강하다.

3. 한국 민주주의는 발전 동력을 상실했어

세 번째학자들은 한국 민주주의는 문제가 있고 그것으로 인해 미래에 더 이상 발전할 동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즉 한국 민주주의가 한계에 직면했다는 인식이다. 이와 같은 입장은 첫 번째 인식과 연결되어 있지만, 첫 번째 인식이 문제를 해결하면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면 세 번째 인식은 다소 비관적이다. 한편, 두 번째와 세 번째 입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현재와 같이 지속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후자는 그 원인을 고민한다.

세 번째 입장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한국 민주주의가 민주정치를 실행할 문화적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문화에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부족하지만, 집단주의, 위계주의, 친소주의, 가족주의가 강하기에 현대 민주주의가 전제하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진단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엘리트 집단에서 “형님 동생”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고 학연, 지연이 여전히 강하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으며, 정치 분야에서도 정치인들의 인터뷰를 들어 보면 그런 문화적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전근대의 사인적 문화가 여전히 강한 사회에서 공적인 객관성을 전제하는 대의민주주의라는 하드웨어, 즉 기계는 잘 돌아가기 어려운 법이다.

다음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든 이유는 대의정치가 논의하여 합의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물 위로 올렸다고 지적한다. 경제와 복지 및 행정과 같은 기능주의적 사안들은 정치세력들 간 양보와 타협 혹은 교환이 가능한 반면 반북과 친북, 반일, 반중, 친미, 반공 등의 사안은 국제정치적 이슈이자 국가적·민족적 사안이며 나아가 한국전쟁과 국제지정학이 국내정치를 지배하는 한국정치의 정체성에서 핵심으로써 민주정치의 토대를 분열시킨다.

박사모 탄핵 반대 집회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2000년대 이후 한국정치의 진보와 보수가 서로 경쟁적으로 상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를 정치화하였고, 선거 승리를 위한 동원 전략으로 활용하면서 현재 양극화는 심각해졌고 한국정치는 이로부터 빠져나오기 어려워졌다고 진단한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이미 도로를 이탈하였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정체가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정선거 음모론: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근본적 위기의 징후

학자들은 현실의 문제를 추상화하여 이해가 쉬운 방식으로 정리하지만, 그 작업 자체가 사람들의 인식에 범위를 축소한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이것을 들으면 이게 맞는 것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다는 인식에 혼란을 경험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제 한국 민주주의 위기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는 한국 민주주의가 근본에서부터 위기에 직면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검토한 세 가지 입장은 다소 한국 민주주의가 그래도 절차적으로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문제가 있다는 첫 번째 입장도, 그럭저럭하다는 두 번째 인식도, 그리고 한계에 직면했다는 마지막 견해도 한국 민주주의가 근본에서부터 도전받는다는 점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한국이 1987년 이후 성취한 절차적 민주주의가 근본에서부터 위기에 직면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 근거는 무엇보다 부정선거론의 확산과 그것이 제도정치권과 연계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부정선거론은 친민주당 성향 언론인 김어준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이 거울 효과를 거쳐 황교안을 비롯한 정치세력에 의해서 퍼져나갔다. 선거 패배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이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부정선거론은 기성정당 지도부와 연계되지는 않았었다.

김어준 제작, 최진성 감독의 ‘더 플랜’ (2017)
Inside Südkorea – USA, China und Nordkorea, 2025.02.25. 캡처.

그러나 윤석열의 등장 이후 부정선거론은 한국의 정치사회에 확산되었고, 국가권력에 의해 한국 민주주의는 죽음, 즉 중단의 이유가 될 뻔했다. 윤석열은 계엄을 하였고, 상당수의 국민의힘 의원은 이에 동조하여 계엄과 탄핵반대를 지지하지 않았던가? 이를 통해 볼 때 선거 절차에 대한 부정은 과거 무시할 만한 변수에서 현재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문제는 선거부정이 그렇게 단순한 변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새롭게 정권교체가 있었다고 하여 쉽게 사라질 변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제왕적이고, 불평등이 문제이며, 정당이 문제라는 지적은 일반적으로 다른 민주주의 나라들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선거와 그 결과 자체를 부정한다는 점은 한국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한국의 선거관리가 작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 월등히 높다는 객관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투표용지 다발이 발견되었다던가, 투표인 명부와 개표가 조작되었다”라는 식의 거짓 주장이 정치 유튜버들에 의해서 확산되고 그것을 믿는 이들이 전체 유권자 중 10-20%가 된다는 점은 다른 어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선거관리를 제대로 할 역량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도 잘 발견되지 않는다.

선거부정을 믿는 이들은 정당의 허약한 내부 정치에서 주요 정치집단이 되어 그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 사례를 윤석열이 보여주었고, 결과적으로 실패하였지만, 계엄이 준비되고 실행된 당시 한국 민주주의는 그냥 무너질 수 있었다. 과연 한국은 그와 같은 위기를 다시 겪지 않을 것인가? 나는 문제가 여전히 계속된다고 생각한다.

‘절차적’ 민주주의 부정하는 이들을 고립시켜야

단기적으로 한국의 절차적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을 고립시키고, 정치적으로 주변화시켜야 한다. 전략적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이들과의 연대를 정파와 이념을 넘어 고려해야 한다. 전략적 관점에서 2016-2017년 촛불 이후 항쟁에 참여한 다양한 세력 중 집권한 문재인과 친문세력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배제한 사례는 돌아보면 너무나 아쉬울 뿐 아니라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렇기에 적어도 민주주의자로 분류된 정치인들은 정파가 다르더라도 최대한 대화와 협력을 구하고, 이를 부정하는 이들을 최대한 고립시키는 다각적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집권세력이 시도하는 대화와 협력은 아마도 정상적인 보수정치인들과 세력들도 바라는 바일 것이다.

장기적으로 한국의 선거를 부정이라고 생각하는 현상은 그만큼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가 허약하다는 점을 방증한다. 사실 한국은 1987년 선거민주주의를 복원하고 엘리트 정치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접근해 온 반면 민주정치의 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IMF 전까지 경제도 좋았고,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국내외 찬사도 있었기에 무척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그냥 둔다고 하여 스스로 잘 작동되는 그런 정부 형태가 아니다. 학교 교육에서부터 대학까지 민주정치가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문법이 될 정도의 교육적 투입이 필요한 것이다.

서구에서는 근대교육이 자유로운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는 목적을 중심으로 변화·발전된 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경제발전과 독재화의 목적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그렇기에 교육의 민주적 효과가 거의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난다. 가령 북한과 중국도 교육수준은 매우 높지만, 교육받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최고의 대학을 나오고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이들에게서 비민주적 혹은 반민주적 행태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의 교육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계엄을 준비하고 실행한 이들은 모두 최고의 교육을 받은 이들이다. 이런 취약한 상태를 그냥 두고 어떻게 한국 정치의 미래가 좋아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마치 어두운 하늘을 보면서 햇볕이 내리길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과제를 달성함에 있어서 지도자의 인식과 역량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한국정치의 발전에서 대통령의 결단이 없이 이루어진 것은 없다. 1987년 이후 제6공화국의 출범에서부터 반헌정 엘리트 군인집단인 하나회의 숙청, 지방자치제도 실시 및 정당개혁에 이르기까지 모든 변화에는 대통령의 관심이 절대적이다. 이것이 현대 대의 민주주의이다. 이재명 정부가 시작되었고, 대통령의 시간과 자원은 늘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몇 가지 주력 분야에 집중하고 성과를 내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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