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냐의 북라이딩] 국민의힘 지지자 중 30%는 “상황에 따라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낫다”(동아시아연구원, 2025)고 답했다. 위기는 넘겼지만, 마음 속 내전을 지워야 할 과제가 남았다. (⌚6분)

🚲마냐의 북라이딩📚
내전의 조건
바버라 F. 월터,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지난겨울 이후 마음으로는 내전 상태다.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내란 시도에 놀란 것보다, 그게 정당하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데 더 놀랐다. 집권 여당은 내란수괴 편에 서서 비상계엄을 옹호했다. 서부법원 폭동 사태는 안전하다고 믿었던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우리는 대선 후보에 대한 테러를 진심으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우리만 그런가? 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도 민주주의 퇴행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 세계 대전은 지난 세기의 일이라 여겼지만, 평화는 위태롭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파국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할 때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라는 책을 만났다.

바버라 F. 월터(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 교수)는 내전, 정치적 폭력, 테러리즘 연구자다. 책은 ‘폭군 쌍년’인 주지사를 납치해 처형하기 위해 모의 군사훈련을 벌였던 미시간주 극단주의자들 이야기로 시작한다. 2020년 코로나 외출금지령에 반발하면서 비롯된 일이다. 이들은 의사당을 습격해 의원들을 인질로 잡고 처형하는 구상도 검토했다. 트럼프가 부추기고 면죄부까지 내준 의사당 폭동 사태는 판도라의 문을 열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늘었다고 생각했지만, 내전도 나란히 늘었다. 1870년에는 내전을 겪은 나라가 거의 없었지만, 1992년에 이르면 50개국 이상이 내전을 겪었다. 90년대 보스니아에서 10만 명 이상 희생되던 무렵, 르완다에서는 후투족과 투치족 살육전에서 100만 명 이상 숨졌다. 알제리, 소말리아, 콩고, 조지아, 타지키스탄도 반란을 마주했다.
20세기도 잔혹했지만 21세기 내전은 또 사뭇 다르다. 광대한 전장, 군대가 사라지고 서로 다른 종족과 종교 집단이 게릴라전, 민병대 싸움을 벌인다. 한 나라가 폭력 사태로 가고 있다는 징후는 불평등이나 빈곤보다 정치체 문제가 가장 컸다. 내전은 완전한 독재(autocracy)도, 민주주의(democracy)도 아닌 중간 상태 아노크라시(anocracy)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험난하게 민주주의를 획득해도 다시 쇠퇴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독재자 지망자들이 권리와 자유를 조금씩 갉아먹는 탓이다. 아노크라시 시민들은 투표권 등 민주주의를 일부 누리기는 하지만, 광범위한 권한을 지니고 견제와 균형을 거의 받지 않는 지도자 밑에서 살아간다.
내전을 부르는 예비 독재자들
민주주의는 새로운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독재에서 벗어나면서 시민들이 새로운 권력을 얻는 반면, 한때 특권을 누렸던 이들은 영향력을 잃는다. 권력을 누렸던 이들이 그걸 쉽게 내놓을 리가. 같은 맥락에서 ”신속하고 대담하게 개혁을 시도할수록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도 유념해 두자.
높은 인기로 선출된 지도자들은 종종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를 무시하려 든다. 그 안전장치는 대통령에 대한 제약, 입법 사법 행정의 견제와 균형, 책임성을 요구하는 자유로운 언론, 공정하고 개방된 정치적 경쟁이다.
“독재자 지망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건전한 민주주의의 요구보다 더 앞세우면서, 일자리, 이민, 안전 등에 관한 시민들의 공포를 이용해서 지지를 확보한다. 그들은 이제까지 존재한 민주주의가 부패와 거짓말, 서투른 경제 및 사회 정책만 늘릴 것이라고 시민들을 설득한다…그들은 ‘강한 지도자’와 ‘법질서’가 필요하다고 시민들을 설득할 수만 있으면, 시민들이 나서서 자신들을 뽑아줄 것임을 안다…. 헌법과 선거제도, 사법부의 약점을 파고들면서 나라를 아노크라시로 추락시킨다. 법적 방법-당파적 인선, 행정 명령, 의회 표결-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정치인들이 막을 수 없거나 막으려 하지 않는 방식으로 권력을 공고히 굳힐 수 있다. 이렇게 독재화가 고조되면 내전의 위험이 더욱 커진다.” (43쪽)
우리는 저런 독재자 지망자를 알고 있다. 그의 행태는 평범한 독재자의 경로를 따랐다. 저런 자는 안정된 민주주의를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한쪽에 지나치게 유리한 대통령제가 비례대표제에 비해 내전에 취약한 것도 팩트. 선거는 때로 한 집단의 지위가 하락하는 고통스러운 증거가 되어 그들이 차라리 무기를 들게 만들기도 한다.

폭력을 부르는 갈라치기
아노크라시 국가가 전부 내전을 겪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싱가포르처럼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 아노크라시 구간에서도 평화와 안정을 누리는 사례를 들었다. 그렇다면 어떤 나라는 아노크라시 단계에서 혼돈과 폭력의 순환에 빠지는 걸까. 이라크 소녀에게 내전 직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사람들이 시아파인지 수니파인지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나는 이라크인이에요.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죠?”
미국을 내전 상황으로 그린 영화 ‘시빌 워’에 바로 저 질문이 등장했다. 총구를 겨눈 군인에게 “나는 미국인”이라고 살려달라며 벌벌 떠는 상황. 군인은 묻는다. 어디 미국인?(What kind of American are you?) 출신, 혹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그냥 쏴 죽이는 게 내전이다. 단순히 종족과 종교가 다르다고 싸우지 않는다. 극단적 정치적 양극화가 파벌주의로 가는 게 위험 신호다.


유고슬라비아의 이질적 국민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수행했던 티토의 시대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대신 종족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인기를 끈 밀로셰비치의 시대로 끝장났다. 민족주의를 부추긴 인도 모디 총리 덕분에 한때 무슬림과 힌두교도가 어울려 살았던 뉴델리는 종교 구분선을 따라 쪼개지고 있다. 어떤 지도자는 이렇게 위험하다. 그들은 패거리로 날뛰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정체성을 둘러싸고 분열을 부추기는 인물은 정치인만이 아니다. 기업 엘리트(아마 브랜드 충성도를 추구하는), 종교 지도자(신도 확대를 추구하는), 언론인(자신들의 시청자, 독자와 수입을 늘리려고 하는) 등 고만고만한 종족 사업가들도 있다. 이 엘리트들 또한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패배할 운명이다”(74쪽)
소셜미디어로 증폭된 위기
“지구적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현상이 인터넷의 등장과 스마트폰의 도입, 광범위한 소셜 미디어의 사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 리 없다.. 사람들은 고요보다 공포, 진실보다 거짓, 공감보다 분노를 좋아한다…”(142~144쪽)
저자는 “적자생존의 장인 소셜 미디어에서는 가장 공격적이고 뻔뻔한 목소리가 다른 모든 목소리를 집어삼킨다”며 “자유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체제 경쟁에서 소셜 미디어는 의도와 무관하게 독재자들의 승리를 돕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랜 차별과 고통을 견디는 시민들이지만 희망이 사라지는 것은 견디지 못한다. 그때 폭력은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진다. 단순 시위로 해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1990년대 평화 시위 성공률이 65%였다면 2010년 이후에는 34%로 떨어졌다. 미국에서는 최근 민주당 지지자 33%와 공화당 지지자 36%가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정당성을 어느 정도 느낀다. 2017년에는 양당 지지자의 8%만이 그렇게 생각했다. 미국 민병대 숫자는 2008년 이전 43개에서 2011년 334개로 급증했다. 1970년대 미국 폭력적 극단주의 조직은 대부분 좌파였으나 오늘날에는 4분의 1도 안 된다. 현재 미국 극우 과격파의 65%가 백인 우월주의로 뭉쳤다. 우파의 테러 공격과 음모는 2012년 14건에서 2020년 8월 기준 61건으로 늘었다.

제노사이드(종족 청소)는 10가지 단계를 거친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분류, 상징화, 차별, 비인간화, 조직화, 양극화. 미국은 현재 5단계를 지나 6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이어 준비하고, 박해하고, 절멸하고, 자기들이 저지른 범죄를 부정한다. 미국에서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대규모 충돌이 필요하다고 믿는 극우 단체가 프라우드 보이스, 스리 퍼센터스, 오스키퍼스 등 수백 개에 달한다.
내전을 피하는 법
이른바 충돌의 덫(conflict trap)을 피해 2차 내전을 피할 수 있었던 대다수 나라는 거버넌스의 질을 강화할 만한 능력이 있었다. 경제 살리기보다 더 중요한 거버넌스 개선은 법치(법적 절차의 평등하고 공정한 적용), 발언권과 책임성(시민들이 정부를 선택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정도, 그리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유능한 정부(공공 서비스의 질과 행정 조직이 질과 독립성)가 핵심이다. 입맛대로 법치를 외치는 대신 제대로 법치, 믿는 것만 보는 대신 공론장을 복원한 언론, 게다가 유능한 정부라니 하나하나 어려운 과제다.
무엇이, 왜 중요한지 알기 위해서는 시민 교육이 필수.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가치와 습관, 규범이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 미국은 이른바 과학기술공학수학 융합교육(STEM)에 1천 배 더 예산을 쓴다는데, 우리도 시민 교육 없다고 봐야 한다. 함께 읽은 북클럽 멤버 J 님에게 초등학생 아이가 “아저씨, 이재명 되면 공산주의 되는 거 아녀요?”라고 물었다는데 민주주의를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할까.

어른도 어렵다. 또 다른 북클럽 멤버 H 님은 최근 부정선거를 믿는 직장 동료와 정치적 대화는 피한다고 했다. 동창 단톡방에서도 정치 이야기는 금지다. 서로 설득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각자 SNS의 내 편만 바라본다. 그런데 시민들이 서로 대화하지 않고도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을까?
우리는 아노크라시로 진입한 것으로 보이지만, 다행히 총기 사용을 금지한 나라. 언제 어디서든 총기 난사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미국보다는 덜 불안하다. 선출된 권력을 견제하는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넘어진다는 것도 배웠다. 그러니 내전이 불붙지 않도록 온 힘을 모아야 한다. 저자의 마지막 당부를 덧붙인다:
“소셜 미디어 확성기를 치워버리고 협박꾼, 음모론자, 봇, 트롤, 가짜 정보 전파 기계, 혐오 장사꾼, 민주주의의 적들이 떠들어 대는 스피커 소리를 줄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