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기업은 불황에 허덕이는데 은행들은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는 연간 합산 순이익이 16조 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도 1분기 4대 금융지주 순이익은 5조 원에 육박한다. 전년 대비 16% 넘게 늘었다.

반면 한국경제는 마이너스 성장 중이다.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2%였다.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일자리는 말라가고 있다. 기업은 ‘트럼프 관세 쇼크’ 불확실성에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사회 전체의 부가가치는 멈춰있는데 은행들 이익만 늘어나고 있다.

신간 ‘부자 은행 가난한 사회’는 돈을 너무 많이 버는 은행업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렸다. 저자인 경제학 박사 임수강은 은행 수익 대다수가 높은 예대 마진(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 차이)에서 비롯한 ‘이자 장사’라는 점을 지적하며 “은행이 사회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좌우 모두 ‘부자 은행 가난한 사회’에 공감한다. 중앙선데이 경제선임기자 배현정은 책을 인용하며 “은행은 단순한 이윤 기관이 아닌, 사회적 기능이 있다”면서 은행의 과도한 이윤 추구를 비판했다.
  • 매경이코노미 편집장 김소연도 ‘부자 은행 가난한 사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은행을 바라보는 곳곳의 시선이 서늘하다”고 전했다. “은행들이 돈잔치를 벌이는 동안 다수 국민은 고금리에 휘청대고 있다”고 진단했다.
  • 임수강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국내 은행들이 수익에 몰두해 자금을 생산적인 곳이 아닌 부동산 대출에 집중시키고 있다. 은행이 자기 이익에만 매달려서 기업 대출보다 주택 담보 대출에 영업력을 집중시키면 쉽게 이익률을 높일 수 있지만 그 결과 부가가치를 직접 생산하는 산업 부문은 허약해질 수 있다.
  • 사회의 금융 자원이 부동산 같은 비생산적 부문으로 흐르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자산 금융’으로 공고해진 현재의 금융을 ‘생산 금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금융 규제에 대한 논의다.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임수강을 만났다. 그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단기 수익을 좇는 은행, 구조적인 ‘금융 배제’.

— 은행은 기업 활동 등 실물 경제를 지원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챙겨 수익을 내는 산업이다. 한국의 실물 경제 실적은 바닥을 뚫고 있는데, 은행 수익은 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됐나?

“IMF 외환위기 후 금융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은행의 대형화, 겸업화, 엄격한 BIS 비율(은행의 위험 자산 대비 자기 자본 비중) 등이 원칙이었다. 그 결과 외국 자본이 은행을 소유하면서 운영 방식이 상업적으로 탈바꿈했다. 기업 대출보다는 개인 대출, 특히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 담보 대출이 영업 중심이 됐다. 여전히 은행 대출을 받고 싶은 중소기업이 많지만 그쪽으로는 돈이 흐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 영업 초점도 기업의 장기적 성장보다는 단기 수익에 맞춰져 있다는 지적인가?

“관계형 금융(Relationship Banking)은 은행이 우량한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와 지속적으로 접촉해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금융을 말한다. 지금은 드러난 수치를 중심으로 기업 평점을 매기는 거래 중심 영업을 한다. 그렇다 보니 자격이 있는데도 금융을 받지 못하거나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신생 기업 사례도 적지 않다. 문턱을 높게 세우고 거기에 조금이라도 미달하면 금융 자격을 박탈하는 ‘금융 배제’(Financial Exclusion)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은행도 기업 아닌가? 기업이 이윤을 좇는 걸 나무랄 수 없고, 은행 역시 상장 기업이기 때문에 주주에게 배당을 지급하고 주가를 높이려 노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논리라면 시중은행들이 중앙은행(한국은행)으로부터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는 것부터 금지해야 할 것이다. 은행들은 중앙은행에서 낮은 정책 금리로 돈을 빌려 고객에게 대출해주고 있다. 중앙은행 시스템 하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은행의 공적 의무, 즉 공공성이 있다는 뜻이다. 1억 원을 보장하는 은행의 예금자 보험 제도만 봐도 구멍이 나면 결국 국가가 지원해준다. 금융에 문제가 생기면 국가가 나서서 보장해주는데, 이는 은행의 사회적 기능 때문 아닌가. 은행은 손실을 사회화하면서 이익은 사유화하고 있다.”

— 최근 새마을금고는 임직원 비리,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등 위기를 겪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로 수익성과 건정성 모두 악화한 것이다. 새마을금고를 포함해 농협, 신협, 수협 등 상호금융 및 저축은행 상황이 비슷하다. 부동산 대출로 위기를 겪었다.

“서민과 소규모 기업에 금융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지역밀착형 서민 금융기관들이 소액 신용대출 취급을 줄이는 등 본래 기능을 소홀히 한 것이다. 그 대신 투자은행처럼 부동산 개발 사업에 손을 댔다가 큰 손실을 봤다. 이들의 영업 행태가 바뀐 까닭은 정부가 금융 구조조정을 하면서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정책을 편 데 있다. 노무현 정부 시기 저축은행 규제 완화, 문재인 정부 시기 새마을금고 규제 완화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정부가 자금이 투기 시장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종부세를 도입하고 높였지만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로 넘쳐난 유동성이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 하나의 대안으로서 지역 공공은행 설립을 강조했다. 지자체가 소유권을 가지고, 지역 서민과 소상공인, 영세 기업에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은행으로 알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공공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40% 정도 된다. 우리는 국책은행이 일부 공공은행 역할을 하고 있는데, 비중으로 따졌을 때는 40%보다는 낮을 것이다. 독일의 란데스방크(Landesbank)가 대표적이다. 주(州) 정부가 주요 주주로 참여한다. 우리 신협과 비슷하지만 규모가 더 큰 슈파카세(Sparkasse)도 공공 역할을 한다. 이런 은행의 존재만으로도 기존 상업은행들의 영업 행태 변화를 유인할 수 있다.”

‘부자 은행 가난한 사회’ 저자 임수강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슬로우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슬로우뉴스 기자.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착각.

— ‘부자 은행 가난한 사회’는 금융 규제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 금융이라고 하면, 정치가 개입돼서는 안 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은행은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는 중앙은행이나 금융기관 독립성을 이야기할 때 ‘정부로부터의 독립’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중앙은행과 금융감독원은 시장에 종속·포획돼 버렸다.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미국의 중앙은행 시스템) 부의장을 역임한 앨런 블라인더 교수는 도리어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금감원도 가급적 시장 자율에 맡기는 라이트 터치(light-touch)가 기조인 영국 모델을 본따 1998년 출범했다. 금융 감독이 느슨하다 보니 저축은행이나 동양그룹 사태, 홍콩ELS 사태, DLF 사태 등 초대형 금융 사고가 2~3년마다 한 번씩 터지지 않나?”

— 미국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해임을 압박하는 등 정치적 중립 논란이 있었다. 이런 개입은 문제 아닌가?

“대통령이 중앙은행에 구체적 지시를 하달하고 마음대로 압박하라는 뜻이 아니다. 중앙은행은 정부 정책을 금융 차원에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1970~1980년대에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중앙은행이 이를 인수했고, 정부가 그 자금을 노동 및 복지 정책에 썼다. 지금은 거의 금기시하고 있는 자금 조달 방식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면 재정 정책을 제대로 운용할 수 없다. 외환위기 때 IMF가 우리에게 요구한 게 중앙은행 독립성이다. 중앙은행은 정부에 돈 지원하지 말고 금융시장만 보고 정책을 펴라는 것이다.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금융과 재정 사이 벽을 세운 것인데, 제대로 된 복지 정책을 해보려면 이런 장벽을 허무는 게 필요하다. 장하준 교수(런던대 경제학과 교수)도 국가 부채를 더 늘려 복지 정책에 써야 한다고 말하지 않나? 중앙은행이 지금과 같은 ‘독립’을 고수하면 복지 정책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누가 게임의 규칙을 만드나… 금통위에 노동자·농민 대표가 들어가자.

— 기준금리를 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구성을 다양화하자는 주장은 급진적이면서도 신선했다. 부연하자면, 금통위는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포함해 총 7명 위원으로 구성한다. 금통위 의장인 한은 총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부총재는 총재가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나머지 5인 위원은 각각 기획재정부 장관, 한은 총재, 금융위원회 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이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위원회를 만드는 이유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함이다. 과거 금통위에는 다수 농민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농림부 장관 몫 인사가 들어가기도 했다. 지금은 자영업자, 중소기업, 노동자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구조다. 그 가운데서도 은행연합회 입김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은행 대표는 금융위원회에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나라도 있다. 은행은 감시 대상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노동자 몫 인사가 들어가고, 12개 미 연방에 설치된 지역 연준은행(Federal Reserve Bank) 이사회의 경우 금융계, 비금융계 구성이 다양하다. 우리는 은행 편중 구성으로 은행업계 입김과 압박에 취약하다는 문제가 있다.”

— 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현행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주주 자본주의를 더 고도화하고 재벌 기업의 불합리한 경영 및 지배 구조를 개선한다는 명분이다.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뿐 아니라 노동자를 포함한 이해 관계자를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안은 대주주와 소액주주 사이 형평을 꾀하자는 게 골자인데, 주주와 함께 노동자 권리도 보장하는 의사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작업장, 산업 조직, 거시 경제 차원에서 노동자 이해가 반영되는 의사 결정 과정을 마련해야 금융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 금융의 힘을 보장하는 IMF 금융 체계에서 금융 자본과 실물 자본, 자본과 노동의 힘은 균등하지 않다. 금융기관 이사회나 금통위에 노동자 대표가 참여할 때 힘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

—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을 골자로 하는 청년 공약을 발표했다. 민주당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방침을 밝히는 등 금융시장을 육성하는 쪽으로 무게 추를 옮기고 있다.

“가상자산이든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인위적으로 자산 시장을 팽창하는 정책은 민주당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 대선 공약으로 내놓은 것들을 보면 다소 걱정이 된다. 노무현 정부가 정권을 내준 것도 부동산 때문이었고,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자산 가격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따라 정권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이재명 정부 운명도 여기서 결정될 거라 본다. 표심 때문에 선심성으로 자산 통제를 완화하는 기조로 간다면 정권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사진=민주당 제공.

부동산 잡는다며 금융은 방치, 실패의 경험에서 배우자.

— 문재인 정부가 세금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다 실패했다는 진단도 흥미롭다. 문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한 이유가 글로벌 유동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데 있다고 분석했다. 어떤 의미인가?

“문재인 정부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총대를 메고 앞에 섰는데 안타깝게도 국토부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수단이 없다. 금융을 다룰 수 있는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이 나서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이미 금융 상품으로 취급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담보 대출을 규제한다고는 했으나 담보 대출 규모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등 실상은 느슨한 규제였다. 새마을금고의 경우 규제가 완화돼 부동산 대출을 쏟아냈고, 전세 자금 대출도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명목으로 대폭 증가했다. 게다가 미국의 양적 완화로 유동성이 대규모로 국내에 흘러 들어왔다. 이런 유동성은 외국은행의 국내 지점을 통해 시장에 풀린다. 이 돈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지만 규제 조치가 없었다. 저금리 기조로 말미암은 유동성과 부동산 가격 상승의 연결고리를 끊을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는 게 패착이다.”

— 주주 자본주의 논쟁을 하면, 사모펀드 MBK나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등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회생 절차가 진행 중인 홈플러스의 경우 MBK가 인수한 후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재무 건정성이 악화했고 부동산 등 가격이 되는 알짜 자산은 팔려나가고 있다.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2004년 정부 주도로 사모펀드를 도입·육성한 지 20년이 지났다. 이제는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평가를 냉정히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진짜 기여하고 있는지 말이다. 지금까지는 계속 규제를 풀어주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투자액을 늘려왔다.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이 여러 사모펀드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는 사모펀드 투자에 신뢰를 주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EU만 봐도 기업 인수를 위한 사모펀드의 차입 경영은 규제 대상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가끔 보고서를 내는데, 사모펀드 수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모펀드로 인해 일자리가 감소하거나 기업 자체를 해산시키는 등의 부정적 효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찾아볼 수 없다. 육성 정책을 계속해야 하는지, 당장 포기해야 하는지, 이를 판단하고 평가할 연구가 필요하다.”

임수강은 누구.

  • 정치경제학 전공한 독립 연구자. 전남대서 ‘세계시장 가치법칙의 관점에서 본 1997년 경제위기’ 주제로 박사학위.
  • 1988년 동서증권에 입사해 10년 채권 트레이더 근무.
  • 은행경제연구소,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연구.
  • 2004년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실 보좌관 활동.
  • 경기연구원 시절 이재명 기본 시리즈 하나인 ‘기본금융’ 연구 책임자.
  • 임수강은 기본금융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금융에서 배제된 청년이나 일시적 실업자들이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있게 지원하고, 대출을 갚지 못할 시 그에 따르는 손실이 얼마인지 분석하는 작업을 했다.”
  • 앞서 말한 매경이코노미 편집장 김소연은 임수강 이력을 언급하며 “은행권을 향한 따가운 시선에 한 시선 보태고 있지만, 정치금융 또한 폐단이 만만치 않은데, 정말 만만치 않은 시절이 오고 있다 싶다”고 했다.
  • 임수강은 김소연의 촌평에 “(그런 평가는) 나한테 전혀 마이너스가 아니다”라고 웃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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