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처음 시작한 지 어언 1년이 되어간다. 워낙 산행 고수들이 많아서 1년 경력은 말 꺼내기도 부끄럽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아무리 가까운 거리도 차 타고 다닐 생각만 하던 내게는 놀라운 발전이다. 돌아보면 뿌듯하기 그지없다. 등산에 맛 들이기 전에는 매주 남산 산책로를 걸었다. 대략 8Km 정도 되는 산책로 걷기가 시시해지자 자연스레 산을 찾아 나서게 됐다. 처음에는 좀 이름있는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가을 단풍이 유명하다는 방태산, 설악산, 용문산이 처음 등산을 시작하며 ‘정복’했던 자랑스러운 이름들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서 가장 편안하고, 정이 가는, 그래서 문득 산이 가고 싶을 때 동네 카페 찾아 나서듯 가게 되는 등산코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주 가는 곳이 몇 군데 생기고 그중에 단연 “즐겨찾기”로 꼽을 곳이 만들어진다.
나의 ‘완소(완전히 소중한)’ 코스는 북한산 구기분소에서 올라 승가사에서 사모 바위에 이르는 약 2.1 Km 정도 코스다. 여기서 기운 넘치면 코스를 연장해 문수봉까지 갔다가 대남문을 거쳐 다시 구기동 쪽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이 코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집에서 상대적으로 가깝고 북한산 산성 입구 (구파발 쪽)에 비해 등산객이 적어 나름 한적하게 산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사이 계절 따라 적어도 열 번 이상 오르고 나니 고향집을 찾듯이 곳곳에 익숙함과 정겨움이 배인 곳이 되었다. 고향집 마을에 들어서며 어릴 적 추억을 더듬듯이 이곳을 오를 때면 지난 여름, 처음 이곳을 오르던 기억, 앉아서 수박 먹던 바위, 아들들과 내기하며 숨 가쁘게 오르던 산길, 눈 쌓여 멋진 ‘트리 장식’으로 우뚝 서 있던 소나무, 벚꽃이 날려 계곡 물에 꽃비 내리던 황홀했던 장면들이 산행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재잘재잘 말을 붙인다.
북한산 구기분소에서 오르는 사모 바위 코스는 크게 세 구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등산로 입구에서 삼거리까지 약 700미터 정도 구간. 등산 초입이어서 별로 힘들지는 않다. 계곡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계곡 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저 멀리는 북한산의 육중한 산세가 보이고 계절마다 나무와 숲이 그 계절의 별미를 선사한다.
이 구간에는 다리가 네 곳이 있다. 사실상 다리 네 곳만 지나면 바로 삼거리가 나온다. 입구부터 첫 번째는 박새교. 참새와 같은 종류의 새에서 이름을 딴 것인지 식물의 이름을 딴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두 번째 다리는 버들치교다. 버들치교에 서서 아래를 보면 물이 제법 깊은 계곡에 버들치가 살고 있다. 얼마 전 세어 본 바로는 열 마리도 넘는다. 버들치교에서 육교처럼 놓여있는 나무 계단을 오르고 나면 곧 귀룽교로 이어진다. 귀룽교는‘귀룽나무’에서 따온 이름. 이 등산로에는 유독 하얀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귀룽나무가 많다. 마지막으로 우정교를 건너면 곧이어 삼거리 쉼터가 나온다.
삼거리 쉼터는 사모 바위에 이르는 두 번째 구간이 시작되는 곳. 여기서 오던 방향으로 직진을 하면 대남문으로 향하고 사모 바위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승가사’ 방향으로 왼쪽 길로 가야 한다. 삼거리 쉼터에서 승가사까지 900미터 정도가 두 번째 구간인데 이곳은 계곡물을 이쪽저쪽으로 건너며 산행을 하게 되어 있다. 계곡을 열한 번 건너면 승가사 입구에 도착한다. 여름에 물이 많을 때는 다리를 넓게 벌려 뛰어야 계곡을 건널 수가 있다. 계곡 옆 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발 담그고 쉬는 맛이 일품이다. 애초에 이 코스를 좋아하게 된 중요한 이유인 것 같다.
승가사 입구에서 사모 바위까지는 약 500미터 정도 구간이 남아 있다. 앞의 두 구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경사도가 조금 있는 편이지만 심하지는 않다. 중간에 밧줄을 잡고 오르는 곳도 한군데 있고 바위 계단도 이어져 조금 숨이 찰 정도이다. 그렇게 15분가량 오르면 드.디.어. 사모 바위! 벼슬아치들이 쓰던 ‘사모’의 모양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전쟁 때 헤어진 부인을 그리워하던 남자의 전설이 서린 곳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특이한 모양의 이 바위에서는 무엇을 해도 기분이 좋다. 땀 흘려 오른 만큼의 보상을 주는 북한산 능선을 바라만 보아도 좋고, 큰 숨 들이쉬어 산의 공기를 마셔도 좋다. 오순도순 모여 앉아 점심을 먹어도, 과일을 나눠 먹어도 물론 좋은 곳이다. 간혹 사모 바위 옆 그늘에 돗자리 깔고 단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있다. 신선이 따로 없다.
겨울에는 칼바람이 불고, 여름에는 땡볕에 머리가 뜨거워지며,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선선한 바람이 근심을 떨쳐 주는 곳. 평범하게 계절을 받아들일 뿐인데도 이곳에 오르면 그저 마음이 평온해지고, 어느새 일상의 고단함이 사라진다. 그래서 또 산에 오르는 모양이다.
생활속의 산행! 좋아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