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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이틀 더 남았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군요. 독자 여러분의 기존 세계관에 날카로운 메스를 댈 과학적 상상력이 넘치는 작품 세 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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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진정한 SF는 무엇일까요? SF는 과학적 세계관과 산업혁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이 SF와 판타지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판타지는 근본적으로 우주 일부는 영원히 우리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가정이 기반을 하고 있습니다. (…중략…) 판타지와는 달리 SF는 우주는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우주는 기계와 같고 우리도 탐구한다면 우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우주를 더 깊게 이해할 때 그 지식이 전파되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인류 역사의 새로운 것이며 이러한 생각들에서 500년 전, 1000년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SF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중략…) 소설이 시작과는 다른 곳에서 결론이 지어진다는 것입니다.”

– 테드 창, 2009년 방한 강연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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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행복한 책읽기. 2004)
테드 창은 새로운 과학기술 또는 우주에 비밀에 대해 눈 뜬 사회는 그 발전에 따라 종국에는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주제를 담는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실린 작품 중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는 몸에 착용하면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별할 수 없는 ‘칼리그노시아’라는 소프트웨어의 강제 착용 조항을 대학교에 만들자는 주장을 토론 형식으로 담은 단편이다.

오늘날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사회적 각성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지만, 그 대응으로는 개인의 윤리의식, 즉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자는 구호에 의존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 소설은 과감하게 묻는다. 과학기술을 통해 사람들이 시각적으로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할 수 없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이런 문제 제기를 통해 인간성을 과학기술로 얼마나 정제할 수 있으며 이것 자체가 윤리적이냐는 또 다른 질문을 이끌어낸다.

일단 이 기술을 사용하고 나면 사람들이 적응하는 것에 따라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볼 거리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은 모두 8편이며 매 작품이 모두 첨예한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예를 든 외모지상주의는 물론, 종교, 인간 복제 등 더 이상 미래의 것이 아닌 현재의 고민이 과학 기술로 인간의 한계가 확장된 세계에서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해준다.

며칠 전 일본에서는 ‘만능 세포를 만드는 쥐 실험이 성공’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어떤 면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과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이 단편들은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가장 흥미진진하게 통역해 주는 작품들이다.

율리 체  [형사 실프와 평행우주의 인생들]

“물리학은 연인들의 것입니다.”

물리학에 대한 오해는 끝도 없다. 일단 이해할 수 없는 숫자와 공식의 향연일 뿐이라는, 그래서 몹시도 지겨우며 이런 것을 발명(?)한 사람은 3대 동안 괴로운 숫자놀음을 해야 한다는 저주를 (그들에게는 저주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함정)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물리학은 연인들의 것이다! 여기 독일의 기지 넘치는 소설가 율리 체가 이를 시원하게 증명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연인이 반드시 알콩달콩 달달한 연애상태에 있으란 법은 없다. 나만 해도 실연을 당하고 정신적 그로기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이 책을 발견한 후 성경처럼 끼고 있었으니까. 이 책은 ‘물리학은 연인들의 것’이라는 문장으로 내 마음으로 열고 평행우주이론(응?)으로 나를 구원했다. 그리고 살인자들은 반드시 범죄 현장으로 돌아오는 데 그 이유는 자신이 정말 그 일을 한 것인지 믿을 수가 없어서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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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실프와 평행우주의 인생들] (율리 체, 민음사, 2010.)
소설에서 살인자는 ‘나에게 이 현장을 보여줘서 고맙다. 난 이것이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아서 미칠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나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난 정신이 나가 있어 물리학이라도 붙들고 싶었다. 평행우주 중 어떤 우주에는 현재의 나보다 더 최악인 경우도 있겠지 하며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다. 살인자가 반드시 범죄현장으로 돌아온다면 옛 남친도 그럴 수 있지 않겠는가? 자신이 저지른 잔혹한 행위가 실제 있었던 일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확인하고 나서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뒤늦게나마 정당한 처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말이다.

참,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 보충하자면 이 소설은 두 명의 천재 물리학자와 이 둘을 둘러싼 살인사건,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형사 실프 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을 그리고 있다.

어슐러 르 귄 [어스시의 마법사]

고등학교 시절,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 인디언 식 이름을 짓는 것이 유행했다.

음악을 하는 친구는 ‘옥수수 피리를 부는 자’라는 이름을 만들었고, 글 쓰는 친구는 ‘여우와 함께 산책하는 자’라고 불러달라 했다. 나는 ‘물속에서 숨 쉬는 자’라는 이름이었는데 당시 가장 아꼈던 친구의 이름이 ‘물’에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디언 방언으로 우정은 ‘아이킨예(I kin ye)’라고 한다.

‘친구의 짐을 대신 지는 자’라는 뜻이었으며 난 사랑하는 친구에게 쓰는 편지의 말미에는 꼭 ‘아이킨예’라고 서명처럼 남겼다. 서로에게 지어 준 이름으로 서로 규정짓고 그 테두리 안에서 우정을 나눴으며 그렇게 쌓인 카르텔은 상당히 견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화려했던 한 시절이 남긴 비문 정도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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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의 마법사] (어슐러 르 귄, 황금가지, 2002.)
‘어스시의 마법사’의 세계 어스시에서는 상대방이나 자연, 사물의 진정한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엄청난 통제력을 가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힘을 갖기 위해서는 진짜 이름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상대방에게 알린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서로 자신의 이름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 싸우는 한편 생사를 나누는 우정을 쌓았을 경우엔 이름을 알려주기도 한다. 주인공 게드는 엄청난 마법의 소유자로 태어났으므로 스스로 진정한 이름을 알고 그것을 통제하는 것도 위험한 모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메타포로 읽을 수 있지만, 소년이 자신의 이름, 곧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 여정이자 그런 자신을 알아보는 친구, 즉 지음(知音)과의 우정을 쌓는 성장기이다. 이 소설은 ‘반지의 전쟁’, ‘나니아 연대기’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지 중 하나로 불린다. 판타지라는 장르의 초창기 세계관이 어떻게 구축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텍스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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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기사보고 테드 창 소설 읽기 시작했어요! 너무 너무 재밌네요!!!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같은 기분이에요. 추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슬로우뉴스 기자분들!

  2. 만능세포 건은 논문조작의 페이크로 밝혀졌죠.

    과학적으로 발전해 나아가는 인류의 사례로는 부적절하지 않나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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