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극우 급성장 배경은 ‘불평등’···열쇠는 ‘사회권’ (노대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7분)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친위쿠데타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이 한국 민주주의의 강한 회복력을 확인시켜 주었다면, 이후의 정치갈등은 아직 많은 해결과제가 남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판결의 시간이 왔고, 향후 몇 달의 정치와 정책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 사태로 우리 사회는 대내외적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다. 외부로는 지정학적 리스크, 미·중 무역갈등, AI 기술경쟁, 트럼프 재집권 리스크에 직면해 있고, 내부로는 경기침체, 고용불안, 소득 및 재산 양극화, 주거불안, 젠더갈등 및 세대갈등, 그리고 저출산·고령화 등이 심화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대외정책 외에도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갈등의 근본원인이라 할 경제사회적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는 사회개혁이 시급하다. 지금까지가 대화와 타협이 힘든 정치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정책의 시간이다.

불평등·상대적 박탈감이 한국을 병들게 한다
21세기 주권국가들은 세계화 앞에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선거와 대의제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난 행정·사법권력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 등의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데 별다른 대책이 없다. 좌우로 정권을 바꿔봐도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치권의 부패와 탈법사례, 고용과 주거 등 민생정책의 실패는 계속된다.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진 이유다. 2023년 한국 시민들의 정부 신뢰도는 약 37%로 OECD 평균보다 낮고, 정당과 국회 신뢰도는 각각 20%와 21%로 OECD 평균보다 훨씬 낮다.(OECD 2024년 자료)
선출된 정치권력에 맞서는 ‘사회권력의 시대’가 도래했다. 불평등하고 불안한 세계에서 시민들은 이합집산하며 사회권력을 만들어낸다. 소셜미디어나 SNS 등 수많은 정보매체가 그 중심에 있고, 레거시언론을 넘어 정부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순기능을 하는 사회권력도 있지만, 극우세력처럼 퇴행적 사회권력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극우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모두 부정한다는 점에서 우파나 급진우파와 다르다. 그 지지자는 저학력자, 저소득층 그리고 노년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신뢰나 연대보다 불신과 증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트럼프 대통령 슬로건)나 독일의 극우정당(AfD), 프랑스 극우정당 (RN)이 그렇다. 이렇게 반세계화, 반이민, 성소수자 혐오 등이 이들의 구호가 되었다. 참고로 현재 한국의 극우 지지자는 전체 인구의 13~20%로 추정된다(3월 17일 한겨레).



극우세력의 성장 배경은 분명하다. 정치 불신, 정체성 갈등, 가짜뉴스도 큰 원인이지만 경제사회적 불평등 심화가 근본 원인이다.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Database) 자료에 따르면 1990~2023년 미국의 소득불평등은 0.508에서 0.584로 약 14.9% 증가했고, 유럽은 0.461에서 0.478로 약 3.6% 증가했다. 미국의 소득불평등이 서구국가 중 가장 크게 증가한 셈이다.
하지만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같은 기간 0.350에서 0.457로 약 30.7% 증가했다. 절대 수준은 미국이나 서구국가보다 낮지만 증가율은 미국보다도 두 배 이상 높다. 불평등 심화의 충격이 매우 컸음을 말해준다. 더욱이 소득불평등을 넘어 재산불평등이 커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지고 있다. 분노와 증오 위에서 퇴행적 사회권력이 자라날 토양이 조성된 것이다.
생활세계 해체와 시민연대 위기···사회권 무력화
많은 시민들이 생애주기별로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역순으로 노년층-근로연령층-청년층 순으로 각 세대의 삶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 노년층의 삶은 고통스럽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인실태 조사(2023년)에 따르면 노인만으로 구성된 가구는 전체 노인가구의 88%에 이른다. 3년 전보다 약 10% 증가한 수치다. 문제는 대다수 노인이 해체된 사적안전망(가족)과 취약한 공적안전망(복지) 사이에 방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2023년 현재 노인빈곤율 38.2%, 노인자살률 10만 명 당 59.4명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고 근로연령층 또한 편안한 것은 아니다. 노동시장 양극화는 많은 노동자에게 고용불안과 임금격차를 경험하게 한다. 민간부문 노동자들은 49세에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 약 70세까지 20년간을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로 일한다. 낮은 소득으로 주거를 마련하고 자녀를 양육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부모를 부양하거나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여력이 없다.

끝으로 청년층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시달리고 있다. 정규직 취업이 힘들고,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는 기간이 길다. 이처럼 일자리가 불안하고 주거 마련이 힘든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이 감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핵심 사회권이 보장되지 않는데 다른 정부지원만으로 성과가 나기 힘든 셈이다. 모두가 아는 문제다. 다만 누가 어떻게 실천하는지가 남아 있을 뿐이다.
열심히 일해도 작은 집마저 마련하기 힘들고, 더 일하려 해도 그마저도 어렵다. 누군가는 좋은 처우와 지위를 위해 과도한 노동시간을 견디고, 다른 누군가는 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모순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정책, 어떻게 더 불평등해졌는가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사회적 불평등 해소가 중요하다. 그런데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외환위기 이후 세계화의 강한 충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사회권에 대한 무관심과 선별적 접근 그리고 반복된 정책실패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권을 경시하고 정책에 실패해도 그것을 엄하게 심판하지 않았던 게으른 민주주의 또한 문제였다.
사회권은 선별적이고 불균등하게 발전해 왔다. 정부와 정치권은 노동권과 주거권 문제에 대해서 정책실패의 위험성을 의식해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그러나 핵심 사회권 보장이 지연되면 다른 사회권 강화의 효과를 반감시킨다. 예를 들어 노동권과 주거권 보장의 취약성이 복지제도 강화의 성과를 상쇄하는 식이다.

지난 20년간 사회지출을 가장 빠르게 늘려왔고 많은 제도를 도입했음에도 여전히 시민들의 복지체감도가 낮은 이유다. 비유하면 복지는 80%의 물이 들어있는 잔에 20%의 물을 채워 넘치게 하는 제도인데, 지금 잔의 물이 50%도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회권은 다른 사회권과 이어져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일수록 사회보험을 통한 소득보장이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의 고용 지위는 사회보험 가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동권의 취약성이 사회보장권을 제약하는 것이다. 실제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38.4%로 정규직 노동자의 96.8%보다 매우 낮다. 다른 사회보험도 마찬가지다. 정규직의 고용보험과 건강보험 가입률이 각각 93.6%와 97.1%인 반면, 비정규직의 가입률은 54.2%와 52.6% 수준이다.

부처 간·제도 간 칸막이도 사회권 보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국민연금 개혁을 예로 들 수 있다.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보험료를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 기금의 재정안정성을 위해 보험료를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낮추자는 주장 모두 진정성이 있다고 믿는다. 인구고령화로 가입기간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개혁에는 사회보장권과 노동권에 대한 종합적 고려가 부족하다. 제도 간 또는 부처 간 칸막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그로 인해 민간부문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삶에 대한 배려가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개혁방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컸음에도 정작 반응이 냉담한 이유다. 물론 그동안 연금개혁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보였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불신도 한 원인이다.
하지만 이 개편안은 민간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민간부문 중소기업 노동자와 자영업자 그리고 실업자는 2024년 약 2599만 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88.5%에 이른다. 이들은 심해진 고용불안으로 40대에 주된 일자리에서 나와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로 일한다. 노후가 불안하니 경제활동은 70세까지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가입율이 낮은 근본원인이다.
더욱이 이들은 법정 정년을 늘려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 결국 실질소득대체율을 높이려면 충분한 기여기간을 보장할 고용대책이 관건인데, 이 문제에 대한 고려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국민연금 개편은 노동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 복지부와 노동부, 그리고 이해당사자 간의 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사회권으로 포괄되는 다양한 권리를 유기적으로 봐야 한다. 편의에 따라 선택하고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회권의 효과를 반감시키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시민들의 삶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 다양한 권리의 메타적 권리로서 사회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사회권의 정상화: 지금은 정책 논쟁할 시간이다
우리 시민들에게는 국난극복의 DNA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잠재력이 있다.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저력이 있다.
- 활발한 시민 권력
- 전문성 가진 정부
- 공공서비스를 공급하는 헌신적인 노동자들
- 강력한 정보 인프라
- 풍부한 정책 경험 등
문제는 이처럼 다양한 저력을 어떻게 모아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첫째, 다음 정부는 사회개혁의 방향과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설익은 공약을 고집하거나 기존 정책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집권초기 사회개혁 방향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수립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설계할 강력한 권한을 가진 추진기구를 설립해야 한다. 특히 사회권의 통합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매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둘째, 기존 정당들은 정책정당으로 혁신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5년 단임정부로 성공하는 정책을 만들기는 힘들다. 특히 노동권이나 주거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으로 정교한 개혁안을 만들고, 사회세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당들은 정책생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서둘러 선거공약을 만들고, 집권후 방치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그렇게 성공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제 보수와 진보가 무엇이 다른지 정책으로 입증할 시점이다.
셋째,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AI)기술을 사회권 보장 정책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미 세계는 데이터와 AI기술 경쟁으로 뜨겁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인프라를 가졌지만, 공공부문의 데이터 활용은 여전히 미미하고, 데이터산업의 발전도 더디다. 이제 부처를 아우르는 정보시스템과 AI기술을 결합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애주기별로 사회권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파편화된 제도를 재구조화하고, 조직을 개편하고, AI시스템에 대한 모니터링체계를 준비해야 한다.

넷째, 더 공정하고 작동 가능한 사회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의 사회지출은 1990년 OECD 평균의 17.3%였지만, 2020년 72.6%까지 높아졌다.(2020년 GDP의 15.6%) 그만큼 격차가 감소한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영역의 지출이 낮고, 누가 정책의 사각지대인지 더 곰꼼히 봐야 한다. 지출확대에 앞서 성공한 사회정책으로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보험 중심 패러다임을 넘어선 새로운 대안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사회보장세도 검토해야 한다. 정치권은 ‘증세는 선거 필패’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새로운 민주주의의 사회모델’을 준비할 때다.
당장 현실에서 새로운 세계로 뛰어넘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한 걸음씩 신뢰를 얻고 연대의 경험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는 느린 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