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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3법을 주도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하 ‘박주민’)이 법 시행 직전에 자신이 소유한 신당동 소재 아파트의 전월세 가격을 전세는 3억에서 1억으로 내리고, 월세는 100만 원에서 185만 원으로 올렸다. 이에 많은 이들이 박주민의 행태를 위선적이라고,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한다. 경과를 간단히 정리하면,

  • 박주민 소유 아파트: 서울 중구 신당동 소재 아파트(84.95㎡)
  • 2020년 7월 3일, 임대료 인상 계약(기존 보증금 3억, 월세 100만 → 보증금 1억, 월세 185만)
  • 2020년 7월 31일, 소위 ‘임대차3법’ 시행
  • 참고로 법 시행 전에 올렸기 때문에 불법은 당연히 아니다.

 

민변 변호사 시절의 박주민 의원(2012년, 사진: 민노)
민변 변호사 시절의 박주민 의원(2012년, 사진: 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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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3법이란?

임대차법 두 조항과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한 조항에 관한 내용으로 다음 세 가지 법(제도)을 말한다.

  1. 계약갱신요구권: 최초 계약 종료시 2년 더 살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집주인의 거부권 없음). 계약 종료 6개월 전~1개월 전까지 행사 가능.
  2. 전월세 상한제: 세입자의 갱신요구권 행사시 집주인은 보증금이나 월세를 5%한도로만 올릴 수 있음 (예: 전세 2억 원에 산다면, 계약만기시 집주인을 보증금을 2억 1천만 원까지만 올릴 수 있음)
  3. 전월세신고제: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전월세 계약 시 임대인이 계약 내용을 관할 지자체에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 전월세의 투명화와 임대소득 파악에 따른 세금 확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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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속임수로서의 민주주의 

정치행위의 본질은 ‘신뢰’다. ‘신뢰’라는 추상적인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실체화하면 ‘예견가능성’이다. 정치행위는 예견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귀적이지만, 예견가능성을 담보하는 건 신뢰다. 예견가능성이 붕괴하면 시스템은 붕괴한다. 한 나라, 한 사회는 수많은 개별적 집단적 욕망이 갈등하는 정치적 유기체다. 공적 행위의 예견가능성이 사라지면, 그때 남는 건 힘과 의지뿐이다. 예견가능성이 사라지면, 그저 욕망이 끌리는대로 힘센 놈이 모든 게임에서 승리한다.

‘동물의 왕국’.

민주주의는 그 야만적인 동물의 왕국을 마치 교양있는 인간의 공동체인 양 위장하는 ‘위대한 속임수’다. 87 시스템(항쟁)이 실질에서 붕괴하고, 97년(IMF) 이후 정치가 경제에 완전히 종속됐다고 해도 그 최소한의 규칙, 그 위대한 속임수는 지켜져 왔다고 생각한다. 그것까지 무너지면, 이제 민주주의라는 허상의 장막이 완전히 사라진다. 그 ‘자기기만’이 그렇게 많은 피와 희생를 치른 투쟁의 결과라는 건 서글프지만, 그건 동시에 위대한 성취이기도 하다.

87년 6월 (사진: 출처 미상)
87년 6월 (사진: 출처 미상)

하지만 나는 그 위대한 속임수가 점점 더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모습들을 본다. 정치행위의 본질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다. 그걸 상징하는 표현은 ‘내로남불’이다. 그 파괴 과정은 나에겐 너무 ‘감정적’으로 다가와서, 정치라면 이제 ‘ㅈ’만 들어도 구역질이 난다. 그럼에도 그 약속, 그 속임수가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지독한 환멸에 빠진 회의주의자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누구에게 투표할까 틈틈이 고민하고, 지인들과 이야기한다.

길게 말했지만, 정치인이 타고나거나 훈련받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은 경험칙상 사실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의 본질적 속성은 ‘기만’이다. 이를 넉넉하게 입증할 크고 작은 사례들은 넘쳐난다. 그럼에도 정치 ‘행위’의 본질은 ‘신뢰'(이어야 한)다. 거짓말쟁이의 진실, 그게 정치다. 정치인의 욕망을 ‘약속’이라는 공적 억압으로 억제하지 않으면 정치는 그저 타락한 권력의 게임이 되어버린다.

기안84와 장항준(사실은 김은희)

최근 유튜브를 보다가 접한 인상적인 기억 하나. 침착맨(이말년) 유튜브에 기안84(김희민)가 나와서 이런 취지로 이야기한다. 자기가 만화에서 그리는 건 사회적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소시민(청년)인데, 자기는 이미 돈 많이 버는 기득권이 되어버려서 이런(소시민적 투쟁? 생존?) 만화를 그리는 게 위선적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고민이다. 만화가 잘 안 그려진다. 그렇게 사회성 없어 보이는 기안84도 그런 고민을 한다.

그런 기억은 또 있다. [킹덤]을 쓴 인기작가 김은희의 남편인 영화감독 장항준이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김은희가 집의 ‘가장’이라면서 이런 얘기를 한 적 있다.

“저는 가장이란 경제적 도덕적 우위를 점한 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가장은 가족 구성원들이 본받을 점이 있어야 돼요. 저희집 가장은 김은희 씨다. 한번은 큰 회사에서 제안을 받았었는데, (누가?) 김은희 씨가요. (웃음) 계약을 하는데 회사 지분(주식)의 몇 %를 받기로 한 거예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 그 지분을 자녀 이름으로 계약을 한다는 거예요. 그게 불법이 아니래요. 그런데 그 주식이 이를테면, 50만 원이면, 나중에 상장이 돼서 막 몇십 배가 되면은 그 50만 원에 대한 세금만 내면 된다는 거예요. 거의 다 (다른 분들은) 그렇게 하셨대요.

(그런데 김은희 씨는)

“그러면 저희는 이렇게 하면 안 되죠! 제가 그런 거 나쁘다고 드라마 쓰는 사람인데. 저는 세금 다 내도 되니까 그냥 제 명의로 해주세요.”

” (장항준, 라디오스타 6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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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의 행동에도 이해할 만한 측면이 있을까. 박주민의 항변처럼 월세를 전에 비해 많이 올렸지만, 여전히 주변 시세보다는 20만 원 싸니까 그건 이해할 수 있는 경제적 선택일까. 언감생심. 금태섭의 지적처럼 ‘동문서답’이다. 사람들이 실망하고 분노하는 이유는 믿음이 깨져서다. 신뢰가 깨져서다. 예견가능성이 붕괴해서다. 말(법 제도) 따로 행동 따로라는 걸 ‘세월호 변호사’라는 헌신적 이미지를 지닌, ‘거지’라는 친근한 애칭을 불린, 그 누구도 아닌 박주민이 몸소 보여줬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보이지 않은 ‘말의 사슬’을 자신의 몸에 칭칭 묶고 사는, 그 말대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게 정치인의 의무다. 그게 말과 제도에 대한 정치행위에 관한 예견가능성을 만든다. 장항준 감독이 전한 김은희 작가의 말을 박주민에게, 그리고 박주민보다 더한 짓을 하고도 아직 ‘들키지 않은’ 정치인에게, 그리고 그런 짓을 앞으로도 하고 싶어 할 정치인들에게, 그러므로 모든 정치인에게 들려주고 싶다.

“저희는 그렇게 하면 안 되죠! 그런 거 나쁘다고 드라마 쓰는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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