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의 새필드] 영국 셰필드에서 대중문화를 공부한 필자의 이런저런 이야기. 오늘 채울 새 필드는 ‘중증외상센터’ (⏳5분)
오래된 잠언, 우리는 죽음에 관해서만은 경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하고, 동시에 역설적으로, 죽음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슈퍼맨의 고향
여기 생과 사의 갈림길,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순간에 시크하고 매력적인 츤데레 ‘슈퍼맨’이 튀어나와 평범한, 그러니 나와 당신 같은, 인간들의 생명을 구한다. 그리고 그 슈퍼맨은 외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한국의 지독하게 논쟁적인 의료 현실이라는 ‘리얼리티’에서 창조된다. 그 슈퍼맨의 고향은 ‘크립톤 행성’이 아니라 바이탈과의 붕괴와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 양극화, 중증외상센터에 강요되는 경제 논리에 신음하는 의료 현실이다.
1년 넘게 그 출구를 찾기 어려운 전공의 파업과 그 파업을 초래한 정부의 위선과 무능은 한국 의료의 맨 언굴, ‘현실’이다. 반면, 여전히 세계 최고의 의료 수준과 그래도 아직은 의료의 공공성이 어느 정도는 ‘방어’되고 있는 의료 선진국 한국의 모습은 어쩌면 그런 현실 속에서 있을 수 없는 ‘판타지’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판타지를 작정하고 ‘뻥튀기’해서 의인화한 존재가 바로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넷플릭스, 2025)의 백강혁(주지훈)이다.
[중증외상센터]는 판타지의 매력을 발산하지만, 리얼리티의 깊은 어둠과 적나라한 모순을 적절하게 보여주면서 판타지와 리얼리티라는 서로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심연 사이를 줄타기한다. 그리고 그 줄타기는, 적어도 죽음(생명)의 경건함을 슈퍼맨의 매력을 위한 수단으로 소비하는 몇몇 시퀀스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성공적으로 보인다.

병원 시스템에 밀리는 슈퍼맨
[중증외상센터]는 전쟁 지역에서 활약한 천재 외상외과 의사 백강혁(주지훈)이 국내 대학병원의 중증 외상센터에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못 하는 게 없고 안되는 게 없는 슈퍼맨이다.
하지만 슈퍼맨의 맞은편에는 병원이 있다. 병원도 슈퍼맨의 ‘최강의 적’ 렉스 루터만큼 강적이다. 의사 백강혁이 환자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만큼 병원의 재정적 부담은 는다. 그렇게 백강혁은 병원 경영진의 미운털이 된다.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점은 병원 경영진과 백강혁의 갈등 속에서 슈퍼맨의 판타지를 극대화하면서 의료 시스템의 모순 역시 그런 판타지의 질료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비난의 의미도 상찬의 의미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설정 자체는 영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은 드라마에서 슈퍼맨 의사가 보여주는 사회적 상징성이다. 세계 최고의 의료 수준을 유지하는 의료 선진국 한국에서 산부인과가 무너지고, 소아청소년과를 찾아 병원을 헤매며,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해 죽어가는 현실에서 슈퍼맨 의사는 현실의 모순에 눈감게 하는 수면제일까, 아니면 그 현실을 일깨우는 각성제일까.
정부와 의사단체의 힘겨루기에 볼모가 된 지 1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환자인 대다수 시민은 ‘구경꾼’에 불과하다. 한국 의료 대란의 본질은 무엇이고,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중증외상센터]는 물론 전공의 파업으로 상징되는 의료 대란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중증외상센터]는 슈퍼맨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현실의 모순을 기만하지 않고, 다소 코믹하고 과장된 형태로나마, 그 모순과 갈등을 보여준다.

위태로운 의료 공공성
코로나19는 한국 방역 체계의 빛과 그림자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공공의료의 필요성을 각성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2022년 서울에서 큰 병원으로 알려진 아산 병원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수술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이동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또한 2022년 가천대학교 길병원의 소아과 병동에서 당직 설 의사가 부족해 입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에는 서울에서 응급실을 제때 찾지 못한 5살 아동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역의 필수 의료체제가 무너지면서 서울 대형 병원의 ‘환자방’ 문제도 한국 사회의 일상이 되었다.
얼마 전엔 경남 양산시에 있는 민간종합병원이 인구 감소 및 적자로 폐업했다. 지방 의료 붕괴와 수도권 쏠림이라는 지역간 의료 불평등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 체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의료를 소비하고 구매하는 상업적 관계를 형성하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정과 돌봄을 국가와 지역 사회로부터 제공받는 것이고,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존엄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령, 2차 대전 중에 고안된 영국의 국립의료제도(National Health System, NHS)는 의료 공공성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영국이 자랑하는 의료 시스템이다. 2021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보여줄 만큼 영국의 자랑이다. NHS의 기본 철학은 간단하다. 누구나 치료비 없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NHS의 그림자
하지만 영국 NHS의 현실은 초라하다. 환자가 NHS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길고 긴 기다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 정부가 공무원 신분인 의사 임금을 동결했다.
의사의 노동시간 제한은 2009년부터 시작돼 이제 주 48시간 이상은 진료할 수 없다. 만성적인 재정 적자와 의료인 이탈로 환자의 대기 시간은 최대 1~2년까지 늘어난 상태다. 먼 나라 영국 사례는 윤석열의 단순 무식한 양적 확대 정책을 연상시킨다.
윤석열 정부는 필수 의료의 확충 해소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한답시고 바이탈(Vital)과와 지방의료 활성화의 구체적인 전략을 고민하고 제안하기보다는 단지 2000명이라는 의대 정원 숫자만 늘렸을 뿐이다.

사회적 재난으로서의 의료 대란
의료 대란은 그 자체로 가장 무서운 사회적 재난이다. 인간의 생명과 죽음은 가장 개인이면서 동시에 가장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윤석열 내란이라는 정치적 재난에 더해 우리는 의료 대란이라는 사회적 재난의 이중고에 처해 있다.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고, 드라마 속 슈퍼맨 의사는 투덜투덜 거리지만, 언제나 믿음직하게 병원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명을 구해낸다. 그런 슈퍼맨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현실을 질료로 한 판타지로서의 드라마가 아무리 우리를 위로해서 그 위로받은 현실이 정말 건강이 무너진 우리 자신, 우리 이웃을 살리는 것은 아니다. 천재 의사 한 사람으로는 의료 시스템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하지만 드라마 속 천재 의사는 그저 하나의 ‘자연인’이 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다. 그 상징의 힘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상징을 통해 좀 더 어려운 현실 속 질문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드라마는 그 현실로 우리 자신의 희망과 바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아무리 드라마 속 슈퍼맨 의사가 멋지게 아픈 환자들을 치료하고, 그들의 생명을 구해도, 현실 속 인간은 병원을 찾지 못해, 치료비가 없어서 죽는다.

판타지 속의 현실
슈퍼맨에게 ‘크립토나이트’는 가장 근본적인 약점이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에서 슈퍼맨 의사 백강혁의 가장 치명적이고 근원적인 약점은 뭘까. 그것은 이 드라마가 아무리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더라도 본질에서 ‘판타지’라는 점이다.
시청자가 그러니 나와 당신이 그 판타지 속에만 머물기를 원한다면, 백강혁은 아무런 상처도 아무런 패배도 모른 채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위급한 생명을 구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진짜 현실을 외면한 채 드라마의 판타지 속 ‘대체 현실’로만 위로받으면, 현실 속 진짜 슈퍼맨들, 바이탈과 의사들, 중증외상센터 의사들, 온갖 착취 구조 속에서 현실 의료 시스템의 바닥을 지탱한, 지금은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우리에게서 더 멀어진다.
백강혁은 슈퍼맨이다. 그는 판타지이며, 그를 만들어낸 현실 속 모델이 아무리 실존하는 사람이더라도 백강혁의 비현실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백강혁이라는 판타지를 만들어낸 건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한국 의료의 위기이며, 그 위기 속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생명들, 지금도 응급차 위에서 병원을 찾아 헤매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백강혁이라는 판타지 속에서 그 현실을 길어내고, 우리 자신을 살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