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액화노동의 시대에 대응한 완전히 새로운 노동과 복지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6분)
한국 사회는 개발자유주의가 남긴 유산과 모순을 안은 채 2025년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진보와 중도가 형성했던 뚜렷한 정치적 연대는 윤석열 탄핵 이후 점차 이완되며 노동 현실의 복잡한 역학관계가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노동의 경계가 흐려지고 사회안전망 밖에서 흔들리는 삶을 살아내는 개인과 집단들이 점점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되고 있다. 흐릿한 경계와 복잡한 교차성은 연대를 어렵게 한다. 이 가운데 지난해 말의 ‘남태령 대첩’은 이들의 다층적인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기존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2030여성과 농민이라는,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집단의 만남은 우리 사회에 잠재된 연대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그 지평을 확장하는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언뜻보면 어색한 연대가 단순한 조우(遭遇)를 넘어 정치적 조직화와 실천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에는 정책의 구체성과 동맹 지점의 구체화가 필요할 것이다. 2025년은 이러한 연대의 실험이 구체화되는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다.

성장과 착취의 이중주: 개발자유주의의 민낯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독특한 발전 경로를 ‘개발자유주의(developmental liberalism)’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개발자유주의는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한국이 이룩한 압축적 경제성장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경제발전을 지상과제로 삼으면서도 자유주의적 외피를 선택적으로 수용한 혼종적 체제를 의미한다.
이는 권위주의 국가와 자본의 긴밀한 결탁을 통해 노동력을 총동원하는 체제였으며, 장경섭이 제시한 ‘개발시민권’ 개념은 시민들이 어떻게 국가주도 성장을 위한 희생을 자발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는지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러한 한국 개발자유주의의 작동 방식과 현재의 불안정노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아서 루이스(W. Arthur Lewis)의 무한노동공급 이론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루이스가 설파한 무한노동공급 모델은 전통부문(농촌)의 잉여 노동력이 현대부문(도시 산업)으로 저임금을 감수하며 끊임없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급속한 자본축적이 가능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의 경우 1960~1980년대 농촌에서 도시로 물밀듯이 흘러든 청년 노동자들이 이러한 산업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이 단순히 경제적 필요 때문이 아니라, ‘개발시민권’이라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통해 정당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개발시민권자’란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형성된 시민을 의미한다.
이들은 국가 경제성장에 기여한 대가로 자신의 권리와 복지가 보장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와 복지제도가 경제개발에 기여한 ‘개발시민권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선언되었을 뿐, 모든 사회 구성원을 위한 보편적 복지나 재분배로 이어지지 않았다. 복지 제도는 제한적이고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렀으며, 경제성장의 명분 아래 노동권과 사회권의 필수적인 희생으로 미화되었다. 이는 결국 자본의 이익을 끝없이 추구하는 구조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무한노동공급 메커니즘은 오늘날까지도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며 작동하고 있다. 농촌에서 도시로의 단순 이주를 넘어 가부장제 하의 여성노동 착취, 비정규직의 확산, 하청구조의 심화, 그리고 액화노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노동시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무한공급의 원천’을 발굴하며 자본축적의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노동은 권리의 주체가 아닌 성장의 도구로 전락했으며, 이러한 유산은 현재진행형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깊게 작동하고 있다.

액화노동: 플랫폼 자본주의와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이제 한국의 노동 현실은 개발자유주의의 유산 위에 플랫폼 자본주의가 접목되며 무한노동공급 메커니즘이 진화하여 한층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출간한 책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을 통해 전통적 일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현상을 ‘액화노동’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액화노동은 단순히 고용 관계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넘어 노동의 개념을 둘러싼 경계가 형해화되는 현상을 포착한다.
고정된 근무시간, 물리적 작업공간, 명확한 고용관계 등 전통적 임금노동에서 당연시되던 요소들이 희미해지면서 노동은 점차 포착하기 어려운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경계 해체를 가속화하며, 노동이 수행되는 공간과 고용관계마저 구분하기 힘든 새로운 형태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자본과 노동의 권력관계가 한층 더 교묘하게 은폐되는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돈을 버는 직업 또는 일자리 개념은 프로젝트, 일감, 작은 일감 등의 단위로 세분화됨으로써 노동 자체를 쪼갤 뿐 아니라 고용관계 자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다양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 긱노동, 플랫폼노동에는 이러한 변화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들의 고용관계의 모호성은 극대화되었지만 다수 평가자들의 별점과 알고리즘은 이들을 ‘프리(free)’하게 만들지 않는다. 액화노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일과 휴식, 작업장과 사적 공간,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재택근무의 확산, 모바일 기기를 통한 상시 업무 접속, 성과 평가를 위한 지속적 모니터링은 이러한 탈경계화를 가속화한다.


플랫폼 노동의 부상은 2000년대 후반 이후 가속화되었다. 디지털 자본주의의 심화와 함께, 전통적 산업사회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작업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은 단순한 중개 시스템을 넘어 노동과 자본이 만나는 새로운 장(場)으로 기능하며, 이른바 ‘온라인 노동’, ‘긱 이코노미’, ‘플랫폼 노동’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 양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노동의 미시적 분절화와 통제의 정교화다. 플랫폼은 일감을 잘게 쪼개어 다수의 노동자에게 분배함으로써 노동자들의 플랫폼 의존도를 높이는 한편, 알고리즘을 통한 정교한 통제 시스템을 구축한다. 표면적으로는 유연성과 자율성을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과 위험은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되는 한편, 알고리즘을 통한 통제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이는 노동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불평등을 구조화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액화노동은 더욱 정교화된 통제와 착취의 메커니즘으로, 새로운 무한노동공급으로 진화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무한노동공급의 환상을 넘어 노동존엄성 회복으로
현행 법제도와 사회안전망은 급변하는 노동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의 확산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노동의 경계를 끊임없이 재편하고 있지만 현행 법제도는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노동환경의 변화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기본권과 존엄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의 공백을 더욱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노동을 경제성장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핵심 가치로 재정립해야 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법과 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요구한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에서 지적했듯이 노동의 불안정성은 이러한 제도적 부정합의 균열 속에서 증폭되고 있다. 전통적 고용관계를 전제로 설계된 노동관계법과 사회보험제도는 액화하는 노동의 현실과 심각한 ‘지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 사회안전망 배제라는 불안정성에 노출되어 있다.

노동이 기존의 표준화된 모습과는 다르게 변화하는 현상을 ‘액화노동’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노동의 개념을 전통적으로 구성하던 여러 경계가 녹아내리고 있는 이 현상은, 기존에 유지되어온 법 제도를 공부하면서 더 확연하게 관찰되었다.
액화노동은 비표준적(non-standard)이고 비정형적(atypical)인 노동 형태를 포괄한다. 여기에는 비정규직, 하청노동부터 근로자성 자체가 형해화된 프리랜서와 플랫폼노동, 긱노동, SNS 크리에이터, 그리고 ‘세분화된 일감을 맡는’ 다양한 형태의 크라우드노동(crowd work)까지 포함된다.
책 중에서.
이제 우리 사회는 개발자유주의의 유산과 액화노동이 만들어낸 구조적 모순 앞에 서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법제도 개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의 근본적 전환이다. 노동을 더 이상 경제성장의 도구나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핵심 가치이자 기본적 권리로 재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 핵심 과제가 요구된다.
- 첫째, 모든 형태의 노동자를 포괄하는 보편적 사회안전망 구축이다.
- 둘째, 플랫폼 자본의 사회적 책임을 명확히하고 새로운 분배정의를 수립하는 것이다.
- 셋째,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단결권과 교섭력 보장이다.
마지막의 과제는 그중 가능해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새로운 연대 전략 없이 아득하고 추상적이다. 현대의 노동은 더 이상 단일한 형태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한 양상을 보여 집단 간 연대의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아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성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남태령 대첩’과 같은 사례는 기존의 경계를 넘어선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움직임이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학계, 언론 등 다양한 주체들의 유기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연구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연구자들은 새로운 대안 담론을 만들어내기 위한 전략과 이론을 개발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노동자 집단 간 연대의 구체적 접점을 발굴하고 이를 실현가능한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노동을 넘어 젠더 간, 세대 간 갈등을 완화하고 노동시장의 분절화를 해소하기 위한 통합적 접근도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정책적 과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의 수립이라는 더 큰 과제와 맞닿아 있다.
2025년을 맞이하는 한국 사회는 이제 단순한 이념 대립을 넘어 노동의 존엄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 그리고 액화노동의 시대 모든 노동자들을 포괄할 수 있는 사회보장의 새로운 원칙과 분배정의를 수립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 앞에 서 있다. 이는 곧 한국 사회가 개발자유주의가 남긴 노동 착취 구조를 해체하고, 디지털 전환기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보호 체계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명확한 좌표와 방향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