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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오전 8시]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의 노동과 세계 그리고 인간에 관한 이야기

인트로 & 요약 (2분)

  • 주제는 사회연대임금입니다. 조국혁신당이 공약으로 제시해 화제가 됐죠.
  • 이상헌 박사는 사회연대임금의 문제를 다음 일곱 가지로 나눠 정리합니다.
  • 바쁜 독자들을 위한 요약이므로 시간이 조금 더 허락하신다면 본문을 직접 읽는 걸 권합니다.

1.스웨덴 모델인지 여부가 왜 중요한가? 스웨덴 모델인지 아닌지, 스웨덴에서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스웨덴에서 실패했다는 지적은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 중요한 건 이제 한국은 외국 모델을 수입할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우리 제도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에 관한 논의가 중요하다.

2.노조와 메커니즘의 문제. 현재 한국의 조건에서 사회연대임금은 가능할까? 두 가지 전제 조건에서 일단 탈락이다. 1) 강력한 노조가 전제되어야 한다. 2) 전달 메커니즘이라고 할만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둘 다 없다. 14% 정도의 노조조직률로는 가능하지 않다.

3.기금 방식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금 조성에 참여한 기업에는 혁신당에서 말한 세제 혜택도 가능할 것 같고. 왜 대기업이 기금 조성에 참여해야 하는가? 질문할 수 있다. 대기업이 독식하는 구조다. 그런데 대기업의 이익 독식에 중소기업과 하청기업의 기여는 없나? 이들이 없었다면 대기업의 성장이 가능했을까. 답은 명확하다.

4. 진정성의 조건. 사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하청기업의 간격을 좁혀야 한다는 건 20~30년 동안 반복된 논의다. 왜 진전이 없을까? 진정성이 없어서다. 정치권에서도 언론에서도 기득권 비판에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자기 몫을 챙겼지만, 정말 취약계층 보호에 집중하지는 못했다. 정부든 정당이든 언론이든 시민사회든 진정성을 보여주는 방법은 간단하다. 취약계층 보호에 집중해야 한다.

5. 단계적 해법을 제안한다면, 1) 우선 노조 조직률이 높아져야 한다. 14%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산별, 업종별 고민도 필요하다. 2) 경제 구조의 민주화와 투명화가 필요하다. 3) 노사정위원회의 대화와 소통이 정상화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제거해 정치성을 없애야 한다. 4) 끝으로 국회다. 노사정도 노노도 대기업과 중소기업도 서로 갈찢기고 조각났다. 국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불만이 많다.

6. 포퓰리즘의 문제. 다시 본질로 돌아가보자. 분배 문제다. 이익은 노동 상층이 독식하고, 위험은 노동 하층에 몰빵한다. 이런 상황에서 출현하는 게 포퓰리즘이다(세계화 특집 인터뷰 참고). 노동 계층화를 충격적인 방식(대중영합주의)으로 단칼에 해결한다고 나온다면, 하층 노동자는 열광할 수밖에 없다. 세계화에 따른 이주노동 등의 문제와 결합해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특히 중상층 시민의 주관적 평가절하 현상은 의미심장하다(KDI 보고서 참고).

7. 탐욕의 풍선. 노동 계층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리더십은 필연적으로 독재의 위험을 내포한다. 노동 하층의 불만과 이로 인한 갈등이 점점 커지고, 여기에 중상층(특히 중산층의 주관적 피해의식)이 의제를 과잉 대표하는 현상이 가세하면 문제를 더욱 악화할 위험이 있다. 이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회연대임금: 탐욕의 풍선

알림 및 안내

– 이 글은 제네바 기준 2024년 5월 17일 오전 8시에서 9시까지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 이하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맥락화하거나 소제목으로 표시하고, 이상헌 박사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편집자)

혁신당 공약

  • 사회연대임금은 조국혁신당 ‘사회권 선진국’ 공약의 실현 방안 중 일부로 제시됐습니다.
  • 조국혁신당 공약으로서 사회연대임금의 구체적 내용은 혁신당 홈페이지에 존재하지 않습니다(논평, 정책, 보도자료 항목을 여러 번 살펴봤지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 내용은 조국 대표의 국회 기자회견 발언과 추가 브리핑 및 김보협 대변인 논평 등에 관한 언론 보도를 간접적으로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 참고로 사회연대임금이 “스웨덴에서 40년 전에 실패한 모델”이라는 국민의힘의 논평은 해석상 이견이 있습니다. 이주희(이화여대 사회학과)는 “스웨덴의 사회연대임금제가 실패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경쟁력이 낮은 기업이 도산하면서 스웨덴 경제의 합리화와 구조조정이 가속화했고, 전 산업에서 기술 수준, 성별, 연령 등에 따른 임금 격차가 현저히 축소”했다고 지적하면서, 다만 “1980년대부터 유럽통합으로 인한 구조적 압력과 유연 생산 방식으로의 변화로 서서히 약화되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상 편집자)

“22대 국회에서 국민이 더 행복한 사회권 선진국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겠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겠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에 가지 않는 것이다. (사회연대임금제에 관해) 정부와 대기업, 중소기업 간 임금 관련 적절한 협의와 협상을 진행해 대기업은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중소기업은 일정하게 높이자는 것.”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2024.04.04. 국회 기자회견 중에서.

“사회연대임금제는 대기업의 과도한 임금 인상을 억제하거나,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 상승분에 ‘사회연대임금’을 포함해 협력업체와 하청기업 노동자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같은 날 조국혁신당 추가 브리핑 중에서.

스웨덴? 뭣이 중헌디?


외국 제도 이식하던 시절은 지났다

종종 말해왔던 건데, 외국에 이런저런 모델이 있는데 한국에서 해보자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외국 걸 가져와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는 있는데, 한국은 이미 노동시장에 관한 제도가 빡빡하게 갖춰지고 제도화가 꽤 완성된 나라다. 외국에서 잘된 사례를 한국에 이식하는 건 이제, 이미 별 의미가 없다.

사회연대임금? 아이디어는 좋다. ‘임금 격차’ 줄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연대성을 강조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스웨덴 방식, 독일 방식 이런 이질적인 외국 제도를 이식하려는 태도는 별 도움이 안 될 거로 본다.

스웨덴 제도를 한국에서 논쟁해서 뭐하나

정치권이든 정책이든 학계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이식하려면 한국의 주어진 제도에서 어떻게 적용될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가끔 외국 사례를 가져와서(가령 스웨덴 제도를 가져와서) 한국에서 논쟁하는 경우가 있다. 스웨덴 모델이 뭔지 한국에서 논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스웨덴에서 스웨덴 모델을 논의한다면 의미가 있겠지만, 한국에서 스웨덴 모델을 논의해 봤자 토대가 다르고, 맥락이 다르고, 조건이 다른 데 무슨 의미가 있나.

계층화된 임노동자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령 재분배 정책으로 두드려볼 수도 있고, 임금 협상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최저임금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거고. 노동자 ‘연대성’을 강조하고, 거기에 맞춰 행동을 취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한국 상황에는 난점이 있다.

노조와 메커니즘


노조가 너무 약하다

다 의미가 있다. 노동자 스스로 행동하는 걸 강조하는 동의하는데, 조국혁신당이 스웨덴을 염두에 두고 ‘사회연대임금’을 언급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디어와 실제 상황은 다르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노조는 연대성의 전제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기준으로 한국 노조 조직률은 14.2%였다(2022년 13.1%로 감소, 출처 고용노동부) 같은 해 스웨덴 노조 조직률은 약 65%, 덴마크는 약 67%, 핀란드는 약 59%였다(출처 ILO, 재인용 출처 한겨레).

그리고 교섭 적용률이라는 게 있다. 단체협상이 비노조에 적용되는 비율인데, 프랑스 정도만 예외다. 프랑스는 노조 조직률은 낮지만, 교섭 적용률은 높다.

프랑스는 노조 조직률이 10% 수준인데, 교섭 적용률은 90%를 넘어선다. 전 세계 1등이다. 산업별 교섭을 해서 협약이 타결되면 10%의 조합원뿐 아니라 산업 종사자 모두에게 포괄적 적용이 이뤄진다.

이코노미스트, “위기의 한국 노사관계, 다수를 위한 정책 뒷받침돼야” [이코노 인터뷰],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 2023.07.31

우리는 교섭 적용률도 낮고, 노조 조직률도 낮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대부분은 대기업 위주다. 학계에서는 ‘내부자’ ‘외부자’라는 표현도 쓰는데, 자칫 사회연대임금은 그 취지와 무관하게, 아니 그 취지에 정면에서 반하게 우리나라 노동시장 계층화와 분열화를 강화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노조 조직을 통한 프리미엄이 오히려 더 강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협상 채널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니까. 일종의 ‘레이어’가 생기는 셈이다. 그럴 수 있다. 그런 협상력을 가진 노조는 더 강해지고, 그 소속 노조원만 더 보호될 가능성이 있다.

결정적으로, 한국엔 전달 메커니즘이 없다

사회연대임금이라는 아이디어는 노동 상층부에 존재한 구조적 프리미엄을 전반적으로 분배하자는 거다. 하지만 한국에는 상층 프리미엄을 하층으로 전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가령 스웨덴은 노조가 중앙집권화돼 있다. 스웨덴은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 해당하는 기관이 노동자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역할도 하고, 산별로 조직화돼 있어서 그런 역량을 발휘하기도 좋다. 힘센 노조가 힘이 좀 약한 노조에 좀 더 나눠주고, 비노조에 나눠주자는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다. 노조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중앙집권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그래서 이런 사회연대임금이라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한국에는 없는 것들이다.

기금 방식은 가능


한국은 구조적 메커니즘을 마련하기는 어렵고, 기금 조성은 가능할 것 같다. 가령, 대기업이 임금을 7% 올릴 수 있다면 그걸 5%만 올리고, 나머지 2%를 기금에 넣는 방식이다. 그걸 노사정이 관리하고, 그 기금으로 중소기업과 비노조 노동자를 지원할 수 있다.

대기업 세제 혜택

조국혁신당에서는 ‘인센티브’를 이야기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인센티브를 의미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위 가정적 사례의 2%에 관해서는 기금 조성에 참여한 기업에 세제 혜택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나 정책적으로 가능할지, 그런 기금이 운용됐을 때 실제로 어떤 문제가 생길지는 미지수다. 좀 더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제도가 필요하다. 전반적인 문제의식은 맞다. 임금에서 사회적 연대성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항상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유사한 제도를 민노총이 시도한 적도 있다.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대기업이 적극적이지 않았다. 노동계의 고민거리다. 대기업은 그래도 사업이 잘되니까 그 수준에 맞춰서 임금협상 하는 게 당연하다. 그게 노조의 기본 논리다. 전체로 보면 대기업만 치고 나가는 경제구조다. 중소기업은 배제된다.

대기업 노조?

본인이 일하는 사업장만 고려하는 게 사람 생리다. 그런데 너무 자기 자신만 보면 사회 전체로는 너무 문제가 많아지니까 너무 자신만 보지 말고 자신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더불어 살펴보자, 좁은 이해관계나 한정된 틀을 벗어나서 사회 전체와 함께 나누는 경제성장의 몫을 고민해 보자는 거다. 대기업에 일하는 노동자도 고민은 있을 거다.

대기업 독식, 하청기업 기여분 문제

생각해 보자. 대기업이 잘 나가는 그 경제적 구조에는 중소기업이나 하청기업은 놀고 있었나. 대기업의 승승장구에는 중소기업과 하청기업의 기여분이 있다. 그런데 그런 기여분에 관해 제대로 된 대가가 있었나. 너무 대기업만 독식하는 구조였고, 그게 문제라는 거다.

여기서 문제는 그렇게 대기업이 7%로 인상할 임금을 5%로 축소하고 그 2%를 마련해서 사회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려고 해도 거기에도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기업이 그런 기금을 마련했다고 갑자기 뜬금없이 그 재원을 사회적인 방식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제도 면에서나 구조 면에서나 그게 딜레마다. 그러니까 맨날 싸운다.

이런 관점에서 두 가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지 한 20년~30년은 된 것 같은데, 그동안에 진전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진정성의 조건


물어 뜯기, 갈라치기

우선, 갈라치기 식 공격. 이런 상황이 대기업과 대기업 노조를 공격하는 ‘무기’로 활용된 측면이 있다. 그러면 당연히 대기업과 대기업 노조 측에서는 우리를 공격하려고 하는구나, 우리는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는구나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거다.

가령 한겨레나 경향 같은 진보지에서 대기업을 공격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보수지에서도 대기업을 공격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보수지들조차 마치 비정규직이나 노동시장 양극화, 사회경제적 약자를 걱정하는 것처럼…사실 그들의 논조나 프레이밍을 고려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그게 딜레마다. 과연 진심일까. 정말 진정성이 없는 경우도 많으니까.

취약계층 보호에 집중해라

그렇다면 어떻게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간단하다. 정치권은 기득권(대기업이나 대기업 노조)만 비판하지 말고, 정책적 역량을 취약계층 지원에 집중하면 된다. 그러면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기득권 비판하면서 혼자만 착한 척하지 말고 그 역량을 취약계층 지원에 좀 더 전략적으로 집중하면 그 진정성이 보일 것으로 생각한다.

취약계층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데 기득권만 비판하면 그건 광고 타내기 위한 협박밖에는 안 된다. 진정성은 취약계층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심과 노력, 이를 통한 가시적인 정책적 수단으로 표현되는 거지 기득권 비판하는 시늉으로 대신할 수 없다. 그런 노력을 보여준다면 신뢰성이 생길 거다.

기득권 비판엔 득달같이, 취약계층 보호엔 무관심

정치권이든 언론이든 기득권 비판에는 그렇게 열심이면서도 취약계층에는 무관심하다. 취약계층에 관한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제대로 없었다.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문제도 비슷하다. 시민사회와 노조에서도 고민은 많았었다.

이번 총선이 좀 더 그런 경향이 강하지만 하지만 딱 부러지게 이거다 싶은 정책 제안이 없다. 경제적 계층화를 완화하기 위한 논의, 가령 동일노동 동일임금 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오래된 논의고, 적어도 20년 이상은 된 논의인데도 그동안 논의가 파편화하고, 손에 잡힐만한 결실이 없었던 건 그동안 이데올로기적 접근, ‘머리 없는 가슴’식으로 감정적이고 감상적인 접근이 많았기 때문으로 본다.

단계적 해법


노조와 메커니즘, 지금은 둘 다 없다

보수 쪽에서는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려는 게 눈에 보이고, 노동계나 진보 쪽에서 뾰족한 해법은 없고, 그런 형편이니 논의를 진행하고 나서도 정치권에서만 말 잔치였지, 그에 따르는 구체적인 실천이 없어서 냉소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던 거다. 너무 중요한 사회경제의 핵심 의제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한 걸음도 제대로 진전시키기 힘든 논의인 것도 사실이다.

누구나 연대성을 ‘말로는’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고 구현할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결정적 계기도 필요하고, 그것이 구체적인 시스템이나 구조로 연결될 수 있는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메커니즘도 필요하다. 현재는 그 두 가지가 모두 없다.

1. 노조 조직률

내가 늘 강조하듯, 요술 방망이는 없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전진해야 한다. 굳이 단계를 생각해 보면 이렇다.

첫 번째는 노동자 조직이 문제다. 노조가 조직화되어 있지 않으면 1000억, 아니 1조 10조 기금이 모여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다. 노동자와 논의를 해야 하는데, 그 당사자가 누구겠나. 민노총이나 한노총은 노동 상층부 노동자가 많아서 별 실효가 없다. 중소기업 노조나 힘이 없어 누구보다 기금의 지원이 필요한 노조들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런 노조가 없다.

노동시장 약자는 어떤 식으로든 조직과 임금 협상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은 최소한으로나마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 그게 핵심이다. 쉬운 해법은 없다. 그런데 가장 기본이 첫 계단부터 무너져 있는 상태다. 사실상 노조 조직률 14% 남짓으로는 아무것도 안 된다. 그래서 산별, 업종별로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

2. 경제 구조 문제

두 번째는 경제 구조 문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문제다. 경제구조가 좀 더 민주화하고, 투명해져야 한다. 그렇게 재편하지 않으면 좀 더 진전하기 어렵다. 늘 강조하지만, 노동 문제 절반 이상은 경제구조의 문제다.

3. 노사정위원회

세 번째는 노사정위원회의 대화와 소통에 관한 문제다. 노사정이 생길 때마다 대통령이 좋아하는 사람으로 위원장을 선출한다. 노사정 대화를 끊임없이 연결성 있게 진행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인 성격이 강해졌다. 중장기 과제가 많은데, 지속성과 신뢰도가 점점 더 떨어진다. 대다수 논의가 노사정위원회와의 합의를 필요로 하는 사안이다. 노사정위가 좀 더 유기적으로 효율적으로 결합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4. 국회

네 번째는 국회다. 개인적으로는 좀 불만이 많다. 노사정이 분리된 상황이고, 노노도 분리됐다. 사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분리되고 서로서로 조각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나 국회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정부 역할, 국회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

사회연대임금이 대표적인 사례지만, 임금 격차, 산업 안전의 문제가 그 빈도나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서는 너무 홀대받는다. 그 문제의 절대적인 크기도 문제지만, 그 문제가 고스란히 노동 약자에게 집중돼 있다는 게 더 문제다. 이익의 분배도 엉망이지만, 위험의 분배 더 엉망진창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분배와 위험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직접 나서서 해결하려는 분위기가 너무 부족하다.

포퓰리즘


분배 문제의 구조적 왜곡

이익의 분배와 위험의 분배는 동전의 양면이다. 사회연대임금은 이익의 분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두 가지를 다 해야 하는데, 동력이 잘 생기지 않는다. 우선 노동 상층부는 이익에서도 위험에서도 압도적으로 유리한 입장이다. 이 문제를 서두를 이유가 부족하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예 노동 하층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위험은 노동 하층부에 집중돼 있다. 이들도 유권자라서 정치권이든 언론이든 가끔 언급하기는 하지만, 말만 하고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노동 하층부에 있는 노동자는 이중 삼중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다. 분배 문제의 구조적 왜곡이라고 해야 할까. 참고로 비정규직은 2023년 8월 기준 906만 명로 전체 노동자의 41.3%를 차지한다(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2023년 8월).

대중영합주의

노동 문제에 관해서는 이율배반적인 측면도 많다. 바로 폴 콜리어가 지적한 대중영합주의다. 가령 누군가 대통령에 출마했다고 치자. 노동시장 계층화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겠다고 유권자에게 어필한다. 충격요법 식으로 단숨에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식으로 말한다. 가령 비정규직을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거나 대기업 정규직을 때려잡겠다는 식으로 말한다고 치자.

그러면 국민 입장, 비중이 큰 노동 하층부에 있는 국민은 열광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은 늘 이런 해법은 어떨까, 저런 해법은 어떨까 싸우느라 시간 다 허비하고, 어렵다는 이야기만 하는데, 강력한 카리스마로 모든 걸 단칼에 잘라버리겠다고 하면, 그야말로 영웅처럼 보인다. 마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버린 알렉산더 대왕처럼. 포퓰리즘은 세계화에 따른 이주노동 등의 문제와 결합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참고, 세계화 특집 인터뷰 총 4편).

전 세계적으로 득세하는 극우 포퓰리즘. 지금은 대통령이 된 ‘전기톱 경제학자’ 하비에르 밀레이 당시 아르헨티나 대선 후보 유세 현장. 2023년 11월 15일. 밀레이 인스타그램.

그렇게 포퓰리즘 대통령이 탄생하는 거다. 하지만 포퓰리즘의 가장 큰 문제는 그런 호언장담이 현실에서는 실현할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거다. 당선되고 그런 정책을 시도조차 못 한다. 안 한다. 할 수 없으니까. 그걸 자신도 뻔히 아니까. 이런 포퓰리즘 정치의 먹잇감이 되기 쉬운 계층은 왜곡된 분배 구조에서 소외된 하층 노동자다. 그런 계층이 최소한 30% 정도는 된다. 포퓰리즘은 이런 계층을 손쉽게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

세 개의 풍선, 탐욕의 풍선


포퓰리즘의 먹잇감: 통계냐, 체감이냐

우리나라는? 소외계층이 늘어날까? 포퓰리즘의 먹잇감이 늘어나고 있는 걸까? 이걸 통계의 문제로 보느냐, 아니면 직접 피부에 느끼는 실제 체감(생활)의 문제로 보느냐인데. 중상층부 국민은 자신의 생활에 불만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절대 밑으로 내려간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임금이 꽤 높아지고 있는데도 거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이 점점 더 공격적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즉, 역설적이게도 자신들보다 훨씬 더 차별받고 가진 것도 없는 노동 하층부에 공격적으로 반응한다(아래 KDI 보고서 요약 참고).

“나는 중산층”이란 사람들, 다 같지 않다.

  • 상위층을 20%라고 보면 이 가운데 3%만 스스로를 상위층이라고 본다. 나머지는 중산층이라고 말한다.
  • KDI 최근 보고서를 보면 월 소득 700만 원 이상 가구 구성원 가운데 76%가 스스로를 중층으로 인식했다. 11%는 상층으로 12%는 하층으로 인식했다. 경제적 지위가 하락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한국인의 주관적 계층 구조를 보면 상상 0.7%, 상하 2.3%, 중상 20.8%, 중하 49.6%, 하상 17.3%, 하하 9.3%로 아래쪽으로 쏠린 호리병 구조다. 객관적 상층의 일부가 주관적 중산층으로, 객관적 중산층의 일부가 주관적 하층으로 옮겨가면서 왜곡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 황수경(KDI 선임연구위원)은 “엘리트 중산층의 견해가 중산층의 사회적 니즈로 과대 포장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는 취약 중산층의 위험 요인(주거 불안, 고용 불안 등)을 경감시키는 데 중산층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 높은 중산층 기준은 현실과 괴리된 기대 수준을 형성하고 그러한 허상에 기대어 자신을 평가절하하는 문제로 이어진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잘못 판단한 결과, 진정한 위치를 알고 있을 때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재분배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이상 이정환, 슬로우레터 2024.05.07. 인용)

강력한 리더십, 딜레마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강력한 리더십은 동시에 독재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혹은 사민주의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우리는 노동 상층부의 공격성이 늘어날 위험이 크다. 여기에 또 문제가 있는데 중상층부는 단일한 균질의 집단이 아니다. 이들의 이해관계도 분열할 가능성이 크고, 긴장도도 아주 높은 편이다.

여론이나 정치적 메시지 주도하는 계층이 분열된 셈인데, 그래서 소통이나 정책적 논의가 더 어려워지는 환경이다. 정치가 각 이해 당사자를 조율해야 하는데, 계층으로 나뉜 풍선의 바람을 빼야 하는데, 그걸 팽창시키는 구조다. 그 중산층 어젠다가 전국적 어젠다로 확대하고, 모든 이슈를 과잉 대표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한국의 중산층은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경향성을 보이며, 그런 주관적 착각으로 더 많은 분배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의제를 과잉 대표하는 빨강 풍선

앞서 풍선의 비유를 썼지만, 이 풍선은 특이하게 ‘터지는 풍선은 아니다’. 가령 실린더와 같은 한정된 공간에 각각 풍선이 있다고 치자. 빨강 풍선(중상층 의제), 파란 풍선(최상층 의제), 노란 풍선(하층 의제). 각 풍선이 가지는 색깔이 의제 스펙트럼이라고 할 수 있다.

중상층 풍선은 열을 조금만 가해도 민감하게 반응해서 다른 풍선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이 풍선들이 담긴 공간은 한정돼 있지만 폭발하지는 않는다. 다만, 빨간 풍선(중상층)이 의제와 영향력을 독점해서 그 공간을 차지해 버린다.

파란 풍선과 노란 풍선은 빨간 풍선에 밀려 쪼그라든다. 중상층 풍선은 조금만 열을 가해도 커진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과도 관련된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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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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