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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판 ‘오징어 게임’이라고 불렸던 ‘피라미드 게임’이 끝났다. 같은 이름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스트리밍 서비스 티빙에서 만든 드라마다.

이게 왜 중요한가.


피라미드 게임, CJENM.

피라미드 게임의 구조.


  • 한 달에 한 번 인기 투표를 해서 A부터 F까지 등급을 매긴다. 한 사람이 5명을 선택할 수 있는데 많은 선택을 받을수록 등급이 올라간다. F 등급을 받으면 한 달 동안 공식 왕따가 된다.
  • 대략 구조는 다음과 같다. (달마다 숫자는 달라진다.) 대략 25명 가운데 1~3명이 A 등급을 받고 3~5명이 B 등급, 6~10명이 C 등급, 10~15명이 D 등급, 가장 점수가 낮은 꼴찌가 F 등급이 된다. 드라마에서는 구체적으로 숫자를 밝히지 않았지만 A 등급은 20점 이상, C 등급은 5점 이상일 거라는 추정도 나돌았다.
  • 핵심은 누군가는 반드시 꼴찌가 된다는 것이다. 성수지(김지연)가 일찌감치 게임의 함정을 발견했던 것처럼 꼴찌가 다수가 되면 게임을 무너뜨릴 수 있지만 누군가가 나 대신 꼴찌가 돼 줄 수 있다면 굳이 꼴찌가 되는 모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이 게임은 결국 나 대신 누가 왕따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게임이다.
  • 피라미드 게임은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만든다. 협력은 어렵고 배신은 쉽다. 서로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어야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데 배신을 하면 일단 나는 빠져 나올 수 있다. 모두가 배신을 하면? 누군가가 F 등급을 받고 피라미드 게임이 계속된다.
  • 피라미드 게임이 특히 더 어려운 것은 이런 죄수의 딜레마를 여러 명이 동시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 역설적으로 피라미드 게임이 지속 가능한 건 D 등급이 절반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언제라도 F 등급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 심리 때문에 괜히 나섰다가 미운 털이 박히기보다는 튀지 않고 조용히 한 표라도 더 얻는 데 목을 맨다.

오징어 게임과 피라미드 게임은 다르다.


  • 오징어 게임은 6단계의 게임을 통과하면 상금을 나눠 가질 수 있지만 생존자가 많을수록 상금이 줄어든다는 게 딜레마다. 두 명이 남았을 때 다른 한 명이 탈락하면 상금이 두 배가 된다.
  • ‘오징어 게임’에서 성기훈(이정재)은 조상우(박해수)를 몇 차례 위기에서 구해주면서 끝까지 함께 간다. 애초에 줄다리기 미션이나 징검다리 미션은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 오징어 게임이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게임이라면 피라미드 게임은 꼴찌가 안 되면 되는 게임이다. 피라미드 게임을 지배하는 논리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다.
  • 피라미드 게임이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각각 5명씩 선택할 수 있지만 25명이 모두 흩어져 있을 때 가장 인기 없을 것 같은 누군가에게 표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누군가가 나보다 낮은 등급을 받게 만드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게임을 주도하는 백하린(장다아)이 가장 많은 표를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나보다 힘이 센 사람에게 표를 몰아줘야 나보다 약한 누군가가 나보다 더 많은 표를 받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명자은 / 피라미드 게임, CJENM.

명자은과 성수지의 전혀 다른 해법.


  • 명자은(류다인)은 누군가가 꼴찌가 돼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꼴찌가 되겠다고 나선 경우다. 어차피 게임은 끝나지 않을 거고 게임의 설계자인 백하린에게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육원 시절 명자은이 백하린의 왕따를 방조한 경험이 있다.) 친구들이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할 때 명자은은 “차라리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
  • 성수지는 “누구도 꼴찌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게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모두가 꼴찌가 돼서 게임을 깨부수자”고 제안했다. 24명이 1명을 괴롭힐 수는 있지만 13명이 12명을 괴롭힐 수는 없다. 성수지의 반란이 가능하려면 모두가 같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한 사람에게 배정된 5표를 적당히 나눠서 모두가 5표 이상을 받게 되면(순환출자 방식) 모두가 D 등급 이상을 받게 되고 왕따를 탈출할 수 있다.
  • 여기서 중요한 건 누구도 F 등급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D 등급끼리의 단단한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남는 게 목표가 아니라 우리 중에 누구도 탈락하지 않도록 붙잡는 게 목표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성수지 / 피라미드 게임, CJENM.

핵심은.


  • 방관자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 피라미드 게임이 가능했던 건 소수의 가해자가 아니라 다수의 방관자들의 ‘나만 아니면 돼’ 심리였다.
  • 슬로우뉴스가 지난해 “오래된 문제, 학폭의 해법을 묻는다” 시리즈에서 확인한 것처럼 친구들의 암묵적인 방관과 지지가 가해자들의 권력의 기반이고 그걸 무너뜨릴 힘이 방관하는 친구들에게 있다는 게 핵심이다.
백하린 / 피라미드 게임, CJENM.

못 본 척하는 친구가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 ‘피라미드 게임’의 결말은 권선징악+인과응보의 상투적인 해피엔딩으로 서둘러 마무리한 느낌이지만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 C 등급과 D 등급의 아이들은 언제라도 게임을 삭제하고 탈퇴할 수 있었지만 과반이 넘는다는 확신이 들때까지는 누구도 먼저 나설 수 없었다.
  • 슬로우뉴스가 인터뷰한 한 학폭 피해 학생은 “내 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당하지 않고 싸웠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 폭력의 해법으로 이야기되는 핀란드의 키바 프로그램은 누군가가 다른 누구를 부당하게 괴롭힐 때 우리가 그걸 멈출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게 핵심이다.
  • 석 달 가까이 학폭 이슈를 취재한 민노씨(슬로우뉴스 편집장)는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대화와 토론으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고, 가해학생 선도도 엄격하게 하되, ‘경미한 학교폭력’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마을, 그리고 때론 학교폭력을 둘러싼 권력의 미묘한 메커니즘을 인정하고, 맞춤형 접근과 토론 및 대화, 다양한 역할극과 게임 등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그 폭력의 의미, 그 상처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을, 그리고 한두 번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 잘못에 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진심으로 용서하는 자세를 보여주면, 그리고 그 잘못에 부합하는 조치와 처벌을 받으면, 패자 부활전도 있는 마을, 어느 마을에 살고 싶으십니까.”
  • ‘피라미드 게임’에서 명자은은 백하린에게 사과한다. “그때 같이 놀자고 말 못해서 미안해. 너무 쉽게 잊어버려서 미안해.” 백하린도 한때 피해자였고 명자은 역시 한때 가해자였다. 하지만 성수지는 단호하게 상황을 정리한다. “합리화 오지고 책임 전가하는 꼴 존나 극혐이고 자기 연민 토 나와.” 왕년에 학폭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지금의 폭력을 용서하거나 이해하는 핑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백하린은 너 같은 방관자들로 성을 쌓아서 게임을 만들었어. 결국 가해자가 하는 변명이잖아. 그리고 그게 백하린이 받을 벌이야. 무관심과 방관. 그 속에 갇혔으니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찾지 않는. 눈 뜨는 순간부터 백하린한테는 거기가 바로 지옥일 거야.”
  • 핵심은 이것이다. 방관자는 가해자나 피해자와 무관한 제3자가 아니다. 방관자는 기본적으로 가해를 강화하고 구조화하는 방조자다. 방관자들이 방조자가 아니라 방어자로 나서면 학교폭력은 매우 어렵거나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은 그 폭력의 구조적 본질을 잘 드러낸다. 

결론.


  • 폭력과 방관의 악순환을 멈춘 것은 처벌과 퇴출이 아니라 잠재적 피해자들의 연대였다. ‘피라미드 게임’도 결국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가고 강제 전학과 퇴학 등으로 끝나지만 핵심은 많은 친구들이 “나도 방관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 ‘피라미드 게임’은 은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방관하는 친구들이 나서면 게임을 끝낼 수 있다는 메시지 역시 몽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다. 이게 이 드라마가 갖는 힘이다.
  • 우리 반에는 성수지가 없다고? 내가 성수지가 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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