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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베테랑 기자 김훤주가 잘 드러나지 않은 세상 이야기를 따뜻하고 세심한 시선으로 전합니다.


일본 효고현 도요오카시(인구 7.4만, 2023. 12. 현재)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9년 전인 2015년 2월이었다. 도요오카시는 멸종됐던 황새를 민관이 힘을 합해 야생에서 복원해 낸 일본 으뜸 생태도시로 꼽힌다. 황새를 보러 갔던 그 도시에서 나는 고니도 보았다.

황새의 마을 도요오카. 도요오카시 제공.

도요오카에서 보았던 일본 고니


우리는 이른 아침에 주택가를 걸어서 지나가는 중이었다. 아스콘으로 포장된 도로가 깔끔하게 뻗어 있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가 많지 않은 것이 인상 깊었다. 넓지 않은 도로는 전봇대와 동행하면서 2층도 별로 없고 대부분 단층인 주택을 끼고 있었다.

도로 옆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수로도 놓여 있었다. 너비는 1m 정도였고 물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사람이 한 명 쪼그리고 앉아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전방 10m 정도 앞에는 고니가 한 마리 있었는데 수로를 헤엄쳐 그 사람에게 다가왔다.

쪼그리고 앉아 있던 사람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물 위에 내려놓았고 고니는 곧바로 거기에 달려들어 부리를 대고 주억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먹이였다. 고니가 사람을 피해 달아나기는커녕 사람에게 다가와 먹이까지 받아먹었던 것이다.

도요오카 논을 거니는 고니들. 2019년 11월 모습. Tajima Express.

돌팔매질을 당했던 한국 고니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고니들은 사람만 보면 달아나기 바빴다. 재일동포 한 분이 우리와 동행하고 있었는데 신기하다고 했더니 그분은 오히려 그게 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는 저런 모습 종종 봐요. 먹이를 주니까 다가오는 거지요.”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오리·기러기·원앙·고니 같은 철새를 보면 사람들은 예사로 돌팔매질을 했다. 내가 자주 갔던 주남 저수지, 우포늪 등에서 그런 모습을 흔하게 봤다. 그렇게 해서 철새들이 놀라 ‘후드득’ 날아오르면 사람들은 이를 놓칠세라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 찍기 바빴다.

일본 고니는 한국 고니와 다르구나. 고니가 다른 이유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구나. 돌을 던지는 사람은 무서워하고 먹이를 주는 사람은 친하게 여기는구나. 결국 고니도 사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구나.

그러고는 세월이 흘렀다. 1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한국 사람들도 철새를 향해 돌을 집어던지지는 않게 바뀌었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 눈치도 보지 않고 옛날처럼 철새들을 마구잡이로 막 대하는 경우는 없어지지 않았나 싶다.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 주남저수지. 겨울 풍경. 환경부 제공.

창원 도심 한가운데 용지호수와 고니 가족


이러는 사이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창원 도심 아파트와 빌딩들이 앞뒤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창원 도심 한가운데 용지호수에 고니 가족 다섯 마리가 찾아와 겨우내 머물고 있다는 것이었다.

3년 전인 2021년 11월 말부터 그렇게 머물며 겨울을 나더니 이번 겨울에도 조금 늦기는 했지만 1월에 찾아온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었다. 여태까지는 다섯 마리였는데 올해는 한 마리가 줄어서 네 마리가 찾아왔다.

여기 이 녀석들은 사람들을 별로 겁내지 않는다. 용지호수 물 위로 사람들이 먹이를 던져주었을 때 스스럼없이 다가와 부리로 집어 먹는 모습은 9년 전 도요오카 주택가에서 보았던 일본 고니와 다르지 않았다.

덕분에 사람들은 가까이서 고니를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여태까지는 창원 주남저수지, 창녕 우포늪, 합천 정양늪, 부산 낙동강 하구에 가야만 고니를 볼 수 있었다. 그것도 멀리 있거나 수풀에 가려 있거나 하늘을 날거나 하는 모습만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창원 도심 한가운데 용지호수에 찾아온 고니 가족. 왼쪽 위 시계방향으로 2021년 11월 29일, 2023년 2월 6일, 2024년 1월 8일 모습. 경남도민일보 제공.

한때는 잡아 길들여 키웠던 고니


이처럼 용지호수를 해마다 세 차례 잇달아 찾아온 고니 가족을 두고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고니는 원래 경계심이 많아서 사람 가까이 오지 않는 동물인데 이렇게 예외적으로 도심지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도요오카에서 보았던 고니 덕분이다. 고정불변으로 타고난 천성 같은 것은 없다. 원래부터 어떠하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사람이 달라지니까 고니도 덩달아 달라졌을 뿐이다.

게다가 고니는 50~6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잡아서 키울 정도로 흔했다. 언젠가 열일곱 살 많은 큰누나가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고니를 집에서 키운 적이 있어. 고니는 뜻밖에 사나워서 사람을 부리로 쪼기도 했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꽥꽥’ 달려들기도 했단다.”

나는 집에서 고니를 키웠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달린 날개로 그냥 날아가면 되는데 무엇하러 남아 있느냐는 것이었다. 누나가 말했다.

“고니는 덩치도 크고 몸무게도 무거워서 앉은 자리에서 바로 날아오르지 못해. 비행기처럼 활주를 해야 공중에 뜰 수 있단다. 어지간한 마당은 그런 거리가 나오지 않지.”

누나가 말했다. “고니는 비행기처럼 활주를 해야 날 수 있단다.” 2024년 1월 2일 촬영. 경남도민일보 제공.

아름다운 고니가 하고픈 얘기는


그러고 보니 그랬다. 고니는 제법 먼 거리를 내달리면서 날개를 퍼덕여야 날아오를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로 길게 미끄러지고 나서야 착지가 가능하다. 날아오르고 날아내리는 그 모습은 누구라도 한 번 보면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역동적이고 멋지다.

그렇게 많던 고니가 지금은 씨가 말라서 지구상에 2만 마리 정도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30%가량 되는 6000 마리가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경남 합천·창녕~부산 다대포 일대 낙동강 하류에서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머문다.

고니는 혼자 있어도 아름답고 떼 지어 있어도 아름답다. 너울너울 나는 모습은 우아하면서 여유롭다. 한적한 자리를 찾아 가만히 앉아 쉬거나 먹이를 찾아 헤엄칠 때도 고니는 아늑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기품을 잃지 않은 그럴듯한 모습으로 비친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멸종위기종 철새인 고니를 인구 100만을 웃도는 도시 한복판에서 무시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예사로 여길 일이 아니다. 우리가 바로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아름답고 여유롭고 우아한 고니 가족이 인간에게 베푸는 위안과 치유 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

고니도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창원 용지호수를 찾은 고니 가족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우리 고니는요, 사람 하기 나름이에요.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해 보세요. 그러면 계속해서 옆에 있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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