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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현의 택시일기 4: 내가 모르는 아이들의 세계

전직 정치인인 울산 택시기사 김창현 님은 하루하루 겪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연재합니다. 이 택시 일기를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슬로우뉴스에도 연재합니다. 택시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만난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은 때론 유쾌하게, 때론 담담하게, 또 때론 깊은 감동으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 이야기들을 거울삼아 우리는 삶을 돌아봅니다. 그 삶의 풍경을 매주 조금씩 공들여 담아볼까 싶습니다. (편집자)

김창현의 택시일기

내가 모르는 아이들의 세계

오후 2시경, 시티병원 앞에서 여학생 세 명과 남학생 한 명이 무거동 울산대를 가자고 한다. 앞에 탄 남학생이 타자마자 “아저씨. 뒤에도 남학생이 한 명 더 있어요. 제 형 이예요.” 하였다. 무슨 소리야? 의아하게 뒤를 보니 바로 여학생 한 명이 “또 까분다.” 하면서 그 남학생의 뒤통수를 친다. 내가 웃으면서 “매를 벌어요, 벌어.”라고 하니 뒤의 여학생 왈 “그게 아니고요. (개콘에서 나오는 대사억양으로) 사실 우리는 자매입니다.” 한다.

다른 두 여학생들은 넘어가며 웃는다. 남매가 서로 ‘형제다, 자매다’ 우기고 있으니 말이다. 유쾌한 학생들이다. 여학생들은 고 3이 되고 동생은 2년 아래라고 한다. 이때부터 이들의 대화에 빠져들게 된다.

여학생 한명이 어제 밤 사건을 말한다.

“새벽에 몰컴 하다가 엄마한테 걸렸어.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소리를 질러서 그만 ㅋ ㅋ ”
“어머 그래서? 어떻게 됐니?”

“난리가 났지. 임진년 난리는 난리도 아녀. ‘니가 고3 맞냐?’로 시작해서 엄마 고유의 한탄 있거든. ‘이럴 바에는 다 때려치워, 대학은 무슨 대학.’ 또 있어. ‘내가 못살아. 내가 니를 어떻게 길렀는데.’ 늘 마지막엔 ‘니 인생은 니가 살지, 내가 사냐.’로 끝났어.”
“쯧쯧, 화면 바꾸기가 빨리 안 되었나 보지?”

“소리 듣고 내 방 밖에서 한참 서 있다가 들어왔으니 내가 그냥 당했지.”
“그래 나도 그런 적 있어. 게임만 하면 무아지경에 빠져 소리를 지른단 말이야.”

그때 그 싱거운 아들 녀석이 한마디 했다.

“난 주로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몰컴을 하는데 엄마는 아직도 몰라. 왜냐하면 엄마가 꼭 3시경 한번 들여다보고 가는데 그때까진 자는 척 하다가 들어간 후 조용히 일어나면 돼. 이렇게 하면 결코 걸리지 않거든.”

새벽에 잠 안 자고 무아지경에 빠져 컴퓨터 하는 이들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학생들. 그 시각에 몰컴을 하면 도대체 뭘 보지? 혹시 야동?”

“까르르”, “푸하하하. 어떻게 알았어요.” 아주 뒤집어진다. 서로 손가락질 하면서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공격을 한다. 내 얼굴에 웃음이 퍼진다.

“아니에요. 우리는 아주 건전한 청소년들이랍니다. 흐흐흐, 가끔 뜻하지 않게 보는 수는 있지만…”
“어머. 얘. 난 전혀 본 적이 없어요. 야동이 무슨 뜻인지도 몰라요. 호호.”

“입에 침이라도 묻혀가며 거짓말을 하세요.”

또 한 번 웃고. 아무튼 웃음이 너무 많은 아이들이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자꾸 좋아진다.

“주로 다음카페, 게임, 각종 유튜브, 네이버 검색 등인데요. 일단 그 바다 속에 들어가면 헤어나올 수가 없어요.”
“한번은 아버지 야근하시고 어머니는 외가에 간 적이 있는데 아, 그날밤은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밤새 놀았는데 어찌나 좋던지… 천국이 따로 없더라니까요.”

“게임의 세계는 중독증이 있다고 하던데?”
“뭐라 할까요? 새로운 세상이 있어요. 그 안에 역사가 있고 사랑이 있고 기쁨과 슬픔이 있어요. 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몰라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냥 저 세상이로구나 생각하세요. 아저씨.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마세요. 다쳐요.”
“까르르”

그래. 내가 우째 알겠노? 처음 게임기가 나올 때 ‘총알로 파리를 잡는 갤러그’ 같은 게임수준은 훨씬 벗어나 있겠지만 사랑과 기쁨과 슬픔이라고 하니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오로지 내가 모르는 아이들의 세계가 있구나 짐작할 뿐이다. 어른들이 공부에 지장 주는 괴물처럼 컴퓨터를 금지시키는 것은 조금 바보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크는 것일 뿐인데. 내리는 학생들 뒤로 이렇게 말해 주었다.

“나는 열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들을!”

200원을 깎아주자 학생들은 고맙다고 소리 지르면서 또 웃고 떠들며 간다. 여전히 남학생은 뭐라고 싱거운 소리를 했는지 여학생들은 그런 동생을 쥐어박으며 길을 건너간다. 싱그럽다.

한참 혼자 싱겁게 웃으며 차를 몰았다.

2013년 1월 15일 화요일 맑음. (임진년 난리는 임진왜란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참 특이한 모녀의 싸움을 보았다.

타자마자 두 모녀는 싸웠다. 정확히 표현하면 말다툼을 하였다. 딸래미는 고 3, 엄마는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교회 늦었잖아. 엄마 때문에. 아저씨 조금 빨리 가줄 수 없나요?”
“니가 잘못해서 늦었지. 뭐 누구를 탓해?”

“뭐가 나 때문이야? 엄마가 쓸데없이 붙잡아서 그렇잖아.”
“학생이 진하게 화장을 하고 나가려는데 그러면 그게 정상이냐? 지우라고 한 게 뭐가 문젠데?”

“교회 늦었다고 아무리 말해도 살짝 한 눈 화장을 다 지우라고 하니까 이렇게 시간에 쫓기게 되었잖아. 그리고 화장 하는 게 무슨 문젠데? 내가 떡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요일 날 조금 한다고 문제될 게 없잖아.”
“평생 화장할건데 뭐가 그리 급해서 학생이 화장을 해? 젊었을 땐 그냥 젊음 그 자체가 훨씬 이뻐. 그저 엄마 얼굴 봐라. 화장 자꾸 하니까 이렇게 화장독이 있어서 지우고 못 다니지. 일찍 할수록 빨리 시커멓게 돼 이것아. 좀 말 좀 들어라.”

“화장도 하고 싶을 때 해야 좋지. 다 늙어 할매 되서 화장하면 뭐가 좋냐? 엄만 어린 시절에 화장 안했냐?”
“난 안했다. 난 모범생이었다.”

“에휴. 어지간히 범생 이겠다. 할매가 그러던데 속 많이 썩혔다고.”
“외할매가? 그럴리가 없다. 난 동네에서 알아주는 범생 이었어.”

“밤마다 나간다고 외할배가 두들겨 팼다며? 그래서 집나가기도 했다면서 고2땐가?”
“노친네가 쓸데없는 말을… 그기 아니고…”

둘은 약간 조용해졌다. 딸이 일차전은 이긴 것 같다.

“그래도 난 공부를 열심히 했다. 너처럼 고 3인 애가 공부안하고 화장하고 돌아다니지 않았다. 도대체 넌 정신이 있는 애냐? 오늘 같은 날 공부하고 오후 늦게 놀러 나가면 얼마나 좋냐? 아침부터 교회가고 오후엔 놀러 가고 언제 공부 하냐?”
“공부는 하고 싶을 때 해야 능률이 올라요. 그건 인정하지?”

“넌 언제 하고 싶을 때냐? 내가 볼 땐 하루도 하고 싶을 때가 없는 거 같은데…”
“고 3스트레스는 자주 풀어줘야 공부가 잘 된단 말이야. 오늘 같은 날 잔소리 안 듣고 좀 놀고 나면 바로 다음날부터 공부하고 싶어 질거야. 엄마 잔소리만 없으면..”

이때 엄마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니가 잔소리 안하게 만들면 되잖아. 공부한답시고 매일 컴퓨터에 앉아서 엉뚱한 짓 하고 틈만 나면 휴대폰으로 메시지 날리고… 한심하기 짝이 없이 놀면서. 야. 엄만 투자할 만큼 했다.”
“엄마. 공부는 내가 하는 거야. 누가 대신 할 수 없거든. 엄마가 아무리 소리 질러봐야 내가 안하면 안 되거든. 내가 쉬든, 내가 게임을 하든 내가 하는 거거든.”

“야 이년아. 그럼 성적을 일단 올려놓고 그런 소리를 해. 니가 폼 잡고 그런 말하려면.”
“내 성적이 어때서?”

“그게 성적이야 그래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거 같냐?”

“엄마. 난 성적이 높은 대학에 갈 마음이 없거든. 잘하는 애들 사이에서 대학까지 가서 학점 때문에 고생할 마음이 전혀 없어요. 내 수준에 맞춰 가서 좀 즐기며 대학시절을 보내고 싶거든. 엄마. 내 실력에 맞는 대학에 갈 수 있게 좀 도와주세요. 예?”

웬지 엄마가 서서히 밀리는 기분이 들었다.

“누가 너를 데려가겠냐?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을 구하고 그래야 좋은 신랑을 만나는 법이야.”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칙이 어딨냐? 지가 좋고 나만 좋아해 주는 남자 만나 잘살면 되지. 무슨 좋은 대학하고 좋은 남자하고 상관이 있어?”

“살아봐라. 그렇지 않다. 인간 세상에 서열이 없는 것 같지? 다 있다. 대학만 잘 가면 인생이 펴진다.”
“난 학교에서 귀염 받아요.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다 나보고 똑 부러지고 착하다고. 난 의리도 있어요. 친구들한테 잘하거든. 엄마는 친구 많아?”

“나도 친구 많다.”
“엄만 공부 잘했어?”

“나처럼 공부를 안 하면 나처럼 되니까 공부를 하라는 거 아녀? 안 그러면 느그 아빠같은 사람 만나 이 모양 이꼴로 사는거야.”

택시에 타지 않은 아빠가 등장 하였다. 불쌍한 남자.

“왜? 아빠가 어때서? 엄만 아빠 같은 사람 만난 것도 복이야 복.”
“이년이 하는 말 버릇 좀 보소. 왜? 니도 아빠 같은 인간하고 결혼하려고?”

“왜? 엄마 사는 게 어때서?”
“매일 일하고 돈 벌어야 되고 스트레스 받으며 고생하고 살잖아.”

“세상에 일안하고 탱자 탱자하며 사는 사람이 어딨냐?”
“부잣집 마나님들은 손 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산다.”

“그게 뭐가 좋은데?”
“내가 조금 제대로 대학만 나왔어도 니 아빠 같은 사람 안 만났다.”

“아빠가 좀 쫀쫀한 것 빼고 뭐가 문젠데? 엄마한테 잘하지 자식들한테 잘하지.”
“오늘 용돈 줬다고 아주 역성을 드네 들어. 용돈 적다고 투정을 있는 데로 다 부려놓고.”

“용돈? 솔직히 만 팔천 원이 뭐냐? 고3이 놀러 가는데 만 팔천원 갖고 뭘 할 수 있냐? 친구들하고 다 같이 돈 내야 할 때가 있는데 완전 쪽 팔리는 사태 생긴다니까. 그러니까 아빤 쫀쫀하지. 그런데 엄만 놀러가는 자체를 반대하고 아무것도 안주는데 아빤 가라하면서 돈을 주더라. 엄마보다 훨 낫다.”
“억울하면 니가 벌어라.”

“비겁하게 공부하고 용돈하고 결부를 시키냐?”

나는 차를 몰다가 몇 번을 혼자 씩 웃었다.

집에서부터 싸우다가 아빠가 끼어들어 딸에게 용돈을, 그것도 조금 쥐어주면서 빠지고 둘을 나와 택시 안에서 이차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음 감리교회에 도착, 딸을 내려주고 엄마 가게가 있는 공업탑 부근으로 가면서 물어 보았다.

“딸 키우기 쉽지 않네요? 허허”
“지가 잘나서 다 큰 줄 안다니까요? 아까 봤지요? 한마디도 안 져요. 에휴. 공부도 못하면서 입은 어찌나 잘났는지..”
“제가 보니까 아주 야무지고 똑똑하던데요. 잘 키우셨어요. 웬만하면 그냥 밀어주시지요.”
“잘 모르겠어요. 뭐가 뭔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자식이 또 있어요?”
“애 오빠가 있는데요. 군인이거든요. 얘는 지 아빠하고 자주 술을 마셔요. 이 딸래미 하는 말이 아 글쎄 자기도 학교만 졸업하면 술을 많이 먹을 거라고 큰 소리 빵빵 치네요.”
“아마 지금도 마실텐데요.”
“그런 것 같은데 말은 안하네요.”
“엄마가 조금 더 열고 딸래미 편에서 대화를 해보시지요. 어차피 조만간 친구처럼 지내야 대화를 하게 될텐데…”

이 엄마는 딸을 어떻게 길러야 할 지 에 대한 자신이 없다고 한다. 사실 딸은 다 컸다. 뭘 더 어떻게 기르고 자시고 없다. 그냥 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딸의 인생의 선배로 조언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공부하라고 아무리 성화를 해도 딸은 이미 자신의 가야 할 길을 정해 둔 것 같다.

그렇다. 누구나 자신의 길은 자신이 간다. 부모가 이를 대신 할 순 없는 법이다.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직장을 구하고 그래야 보다 나은 배우자를 만나 계층상승을 한다는 엄마의 생각을 어찌 탓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평균 사고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딸래미 편에 자꾸 서고 싶어진다. 아니 기분 같아서는 딸래미 내리기 전에 용돈을 더 쥐어주며 꼭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선영(가명)이 편이다. 니 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힘 내.”

2012년 9월 9일 하루종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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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창현
초대필자, 통합진보당 울산시대표

울산에서 택시 운전하는 김창현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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