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학교를 떠난 뒤에는 선생님도 교과서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 성공 스토리와 자기계발서가 쏟아지지만 어쩐지 다른 세상 이야기 같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생각에 귀 기울여 보면, 내가 찾던 해답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이웃에게 위안을 얻을 때도 있죠. ‘생각 읽기’, 우리 주변 사람의 생각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편집자)[/box]
직장을 다니는 우리, 빈번하게 내뱉는 말이 있다. “이놈의 회사, 내가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평소에는 맘 속 혼잣말이었다가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거침없이 그 마음이 입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여지없이 알람 소리에 일어나, 허둥지둥 회사로 향하는 우리네 일상이 반복된다.
정말로, 진심으로,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다음 직장을 알아볼 것이고, 혹은 어쩌면 창업을 고민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채 ‘나 홀로’ 독립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방송인 이거나, 전문직이거나, 특별한 재주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홍순성 씨는 그런 의미에서는 ‘나 홀로 서기’에 성공한 아주 특이한 인물임이 틀림없다. 엔지니어로 99년부터 직장에 들어가 보안 전문가로 일했고 그 이후에는 리커버리(Recovery; 복구)나 네트워크상의 로드 밸런싱(Load Balancing)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자신의 전문 영역을 단단하게 굳혔던 그가 조직을 버리고 홀로서기를 했다. 조직만 버린 것이 아니라 ‘보안 전문가’라는 영역에서도 탈피했다.
엔지니어에서 에반젤리스트로
2006년 회사를 나와서는 보안 SW 및 컨설팅 분야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2008년부터는 어떤 계기가 있어서 그만두었다. 전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분야라는 표현도 어찌 보면 의미가 없다. 엔지니어에서 다른 분야로 전환했다기 보다, 그는 트렌드에 앞선 어떤 ‘분야’를 소개하고 일반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없었던, 일종의 전도사(Evangelist)라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 낸 셈이다. 그리고 그 일을 2008년부터 지금까지, 6년여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가 늘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직접 실행하고 1인 기업으로 오래 일하고 있는 그의 비결이 궁금했다. 어떤 계기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좀 오래된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2003년에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진 다양한 제품군에서 협력사들을 모두 불러 진행하는 행사였죠. 전 그 당시 네트워크/보안 전문가로 활동했었는데, 굉장히 중요한 분야이고 기술력도 필요한 영역이어서 제 일에 대한 자부심이 컸습니다. 말하자면 ‘오피스’ 제품군을 다루는 사람들보다는 제가 전문성이나 희소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런데 정작 행사에서는 오피스 관련 사람들을 훨씬 더 대우해주고 챙겨주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가 궁금해서 마이크로소프트에 있는 사람에게 왜 그러는지 물어보았어요. 정확한 표현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 사람은 오피스 제품을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하기 때문에 대중적인 인지도나 시장성 면에서 네트워크/보안 제품보다 오피스 제품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때, 그는 ‘대.중.성’이라는 세 글자의 중요함을 알게 됐다. 그때의 경험이 홍순성 씨의 ‘엔지니어 마인드’라는 갑옷을 벗기는 계기가 됐다. 그 후로 그는 ‘대중적인 것’에 관심을 두게 됐다.
‘엔지니어 마인드’라는 갑옷을 벗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엔지니어 마인드와 대중성을 결합해서 ‘대중적인 기술의 변화’를 알리는 일이 그가 하는 일이다. 홍순성 씨가 처음 전도사의 역할을 맡았던 것은 트위터였다. ‘트위터 200% 활용 7일 만에 끝내기’라는 책을 발간하고 트위터가 낯선 사람들에게 사용법과 활용법을 알리는 일을 했다.
그 다음에 잡은 주제는 스마트폰, 태블릿 등 스마트 기기 열풍을 ‘일하는 방식’으로 해석한 스마트 워크였다. 2012~2013년에는 ‘에버노트’에 대한 책을 썼다. 이런 주제를 잡게 된 기준은 ‘그냥 재밌고 좋아서’이다.
1인 기업으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그는 “일을 즐기면 된다”고 간결하게 답했다. 혼자서 일을 찾고 만들고 해나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아무리 상사에게 쪼임을 당해도 한 달이 지나면 월급이 나오는 직장인과는 다르다. 그는 스스로 기회를 찾아야 하고, 뭔가 끝없이 일을 만들어 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은 없는지 궁금했다.
없을 수가 없겠죠. 뭔가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몇 년 이렇게 지내다 보니 불안감을 견디는 법을 터득하게 된 것 같습니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는 시간을 견디며, 즐거운 일을 찾아 하다 보면 때론 예상하지 못한 기회들과 만나게 되죠.
매시간을 견디고, 즐겁게 보낼 줄 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 생각했다.
시간을 견디고, 즐겁게 보내기
지난해부터 그가 빠져 있는 일은 네이버에 만든 ‘에버노트’ 카페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그냥 재미 삼아 만든 카페에 회원이 늘어 이제는 식구가 1만 명 가까이 된다. 오프 모임에서 에버노트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큰 낙이 됐다.
에버노트를 쓰는 사람들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본인들 스스로 앞서 나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에버노트를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이 그에게는 함께 먹고 마시고, 노는 친구이자 동료이자,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는 선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홍순성 씨가 전한 개인의 브랜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팁은 “미디어 채널을 잘 활용해서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라”는 것이다. 그는 일찍부터 ‘혜민아빠’라는 닉네임으로 블로그를 운영했고,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것이 지속적으로 ‘홍순성’이라는 이름을 알리고 유지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 것이다.
최근 그는 에어 드론에 빠져 있다. 얼마 전 아마존이 에어 드론을 배송에 활용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발표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드론을 띄워 사진 찍는 것이 요즘 그의 낙이다.
“날 풀리면 드론을 가진 사람들끼리, 한강 고수부지에라도 모여 드론을 날리며 노는 모임 한번 만들어 봐야겠어요”라는 말 속에는 기대와 설렘이 한껏 묻어 있었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지속해서 즐거운 일을 찾아 내며 살고 있는지……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은 하는지…… 그와 인터뷰를 마치고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