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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에게 삥뜯기: SW업계의 인력풀은 게임업계다 [익명 칼럼]

정정식 지식경제부 주무관이 페이스북에 “청소년에게 도박이나 음주, 마약을 허용해야 하느냐”며 게임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 게임업계는 물론 이와 직접 관련 없는 많은 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슬로우뉴스는 현재 게임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맡아 개발하고 있는 한 프로그래머의 글을 필자 허락을 받아 익명으로 싣습니다. 게임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이 프로그래머는 소프트웨어 업계에 우수 인력을 유입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게임회사라며, 게임/소프트웨어 업계에 대한 정부의 척박한 시각에 일침을 놓습니다. (편집자)

정정식 주무관 페이스북 글

정부의 척박한 SW, 게임업계 인식

요즘 정부 트렌드는 게임업계 때려잡기다. 공공의 적 하나를 만들어서 사회적 관심을 거기로 돌리는 게 정부의 전매특허이기는 하지만, 게임업계는 거의 전방위적으로 두드려 맞는 듯 하다.

게임이 마약과 동급을 가져서 규제를 해야 한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작년 여름부터 SI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게임의 일부 구조를 만들고 있는 우리 팀은 이미 중증 마약중독자라야 한다. 하지만, 요즘 가장 하기 싫은 일이 테스트를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다. 한 번도 출시되지 않은 대작 게임의 베타 버전부터 시작해서, 우리 프로젝트 결과물이 돌아가는지 확인하려면 게임을 해야 하고, 그렇게 일 여년 테스트로 게임을 하고 있지만, 중독은커녕, 기본적으로 게임 하기 싫다. 마약은 노출되는 모든 사람에게 100% 중독 효과를 낳기 때문에 규제하는 것이다.

컴퓨터로 밥 먹고 살고 있는 우리 업계에서도 게임은 그저 취미의 한 부류일 뿐이다. 야구를 좋아해서 미치는 사람이 있고, 골프도 있고, 낚시나 등산도 있듯이, 게임을 하는 사람 역시 이들 부류와 비슷한 종족일 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수가 적다.

‘악마’를 살려두면서, ‘악마’에게 삥뜯기

한국 사회에서는 결과와 원인을 바꿔 생각해서 원인을 잡지 못하고 결과를 잡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정책은 그저 대증요법일 뿐 원인부터 캐 나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리고 대증요법과 더불어 공공의 적을 하나 만들어 놓아야 한다. 컴퓨터 게임은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아주 좋은 케이스이다. 악마의 산업이고, 이런 악마들로부터 청소년을 지키기 위해, 악마에게 삥을 뜯는다. 그렇다고 악마가 죽어 나자빠지는 것을 바라지도 않는 듯하다. 삥을 뜯어야 하고, 실패한 교육에 대해 책임을 돌리는 어떤 망할 넘들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책결정자나 최고경영자는 아직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매출을 올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러한 산업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소프트웨어 매출만 보았을 때, 삼성은 소니와 에릭슨을 쫓아오지 못한다. 지멘스조차 요즘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분류된다. 자동차에서도 소프트웨어의 역할은 매우 크며, 당연히 한국은 소프트웨어 산업이 없기 때문에, 이런 소프트웨어는 전량 수입한다.

세계100대 SW회사, 안랩도 하지 못한 일

게다가, 소프트웨어는 장비와 번들로 들어간다는 인식이 매우 강해서, 국산 장비들에 대해 소프트웨어의 가격은 일반적으로 0으로 매겨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 세계 100대 소프트웨어 회사에 한국에서 두 개 회사나 랭크되어 있다. 정부가 그토록 악의 축으로 생각하고 있는 넥슨과 NC Soft다. 요즘 유명한 안랩에서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사실 모교의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는 1990년대 말까지 공학이 아닌 자연 과학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애초부터 돈 안되는 것이라고 낙인을 찍어 놓은 셈이다.

공학은 현장이 있어야 성장한다. 그 현장도 갑을병정무의 순서로 내려가는 토목학 개론스러운 현장이 아닌, ‘몽구’모터스나 ‘건희’전자의 어느 정도 사람을 키울 수 있는 여유는 있는 현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업계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인력을 키운다는 게 그저 사치일 뿐이다. 조선 시대도 아닌데, 나이에 따른 새경이 매겨지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기본 베이스를 갖고 어떻게 여유를 부린다는 말인가.

정부에겐 악의 축인 기업이 SW산업를 지탱하는 아이러니

아이러니하게 그래서 정부가 악의 축으로 칭하고 있는 기업들이,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이렇게 인력을 풍성하게 해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한국은 그나마 게임회사가 있어서 가능하다. SK가 있어 기름쟁이들이 먹고 살고, ‘몽구’모터스가 있어서 기계쟁이들이 먹고 살 듯이, 전산쟁이들은 그런 큰 세계적인 회사가 버티고 있어 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정부 지원을 얻은 신기술 회사들은 다 어디로 도망가고, 가장 핍박을 많이 받고 있는 회사 몇이서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 자체의 틀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아주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공부 안 하는 자식을 바라보며, 게임 때문에 그렇다고 전 국민이 위안하게 만들면서, 그나마 살아남아 있는 소프트웨어 업계 회사들 말살하는 정책을 내서는 안 된다. 게임보다 더 위험한 것은 한국식 무한경쟁주의와 뛰어놀 곳 없는 숨 막히는 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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