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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사회에서 ‘이웃’은 가족과 친척, 친구만큼이나 가깝고, 소중한 관계로 인식되었다. 몇 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8]의 장면들을 떠올려 보자.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이웃들이 하나 둘씩 모여 평상에서 수다를 떨고, 서로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동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느 집엔가 모여서 노는 모습은 그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추억이다.

이처럼 과거에는 이웃이 서로 서슴없이 왕래하고, 희로애락을 공유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였으며,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더 없이 잘 어울렸다. 하지만 드라마의 시대 배경으로부터 불과 30년이 흐른 요즘에는 이런 모습을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

현대인에게 이웃이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 결과를 살펴 보면, 성인남녀 10명 중 4명(39.8%)은 현재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이웃이 존재를 잘 모르는 ‘타인’과 다름 없는 것으로, 특히 저연령층(20대 50.8% 30대 45.6%, 40대 32%, 50대 30.8%)과 1~2인 가구(1인 가구 67.3%, 2인 가구 44.9%, 3인 가구 32.6%, 4인 이상 가구 35.6%)에게서 이웃과의 단절된 모습을 많이 엿볼 수 있다.[footnote]트렌드모니터 2019 ‘이웃과의 교류’ 관련 인식 평가 (전국 만 19세~59세 성인남녀 1,000명)[/footnote]

옆집에 누가 사는지를 아는 경우에도 대부분은 그저 얼굴을 아는 정도라고 말할 뿐이다. 또한, 옆집 사람이나, 같은 아파트 주민, 동네 이웃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마냥 당연하게만 생각하지 않았고(“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편이다”-63.1%), 이웃들과 인사 이상의 교류를 하는 모습은 매우 드물었다(“이웃과 대화나 만남 등 인사 이상의 교류를 하고 있다”-21.5%). 더는 ‘이웃사촌’의 개념이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이웃’을 스릴러와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로 활용하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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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람 (2012, 김휘)
이웃사람 (2012, 김휘)

아파트와 1인 가구의 보편화 

이렇게 이웃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구조 및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주거공간이 다세대주택에서 아파트로 이동하고, 가족의 형태가 대가족과 핵가족을 지나 ‘1인 가구’로 보편화되면서, 이웃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많이 사라졌다.

또한, ‘개인화 성향’이 강해지면서 대인관계에 부담감을 갖거나, 관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바쁜 생활로 인해 시간적 여유가 사라진 것도 이웃과의 관계가 단절된 주요 원인으로 보여진다.

실제 이웃들과 인사나 교류를 잘 하지 않는 이유에 관해 이렇게 답했다.[footnote]트렌드모니터 2019 ‘이웃과의 교류’ 관련 인식 평가 (전국 만 19세~59세 성인남녀 1,000명)[/footnote]

  • 평소 이웃과 마주칠 일이 없고(57.9%, 중복응답),
  • 교류를 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으며(52.6%),
  • 그냥 모르고 지내는 것이 편하고(31.2%),
  • 인사나 교류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30.9%)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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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동네에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 있었으면 좋겠고(59.2%), ‘동네친구’ 한 두 명은 있었으면 좋겠다(80.9%)는 바람도 가지고는 있지만, 사회구조의 변화 속에 이웃과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낯선 ‘우리 동네’ 

이웃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고, 교류도 적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애착도 크지 않은 모습이다. 10명 중 4명 정도만이 지금 사는 동네가 자신에게 ‘주거지역’ 이상의 의미를 주며(38.8%), ‘우리 동네’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37.5%)고 응답할 뿐이었다.

동네에서 함께 생활을 공유할 대상이 사라진데다가, 주로 동네를 벗어나 회사와 학교를 중심으로 일상적인 활동이 펼쳐지다 보니, 지금 사는 동네에 ‘거주지’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심지어 현재 살고 있는 동네와 지역에 대한 정보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는데(“동네 및 지역사회에 대해 알고 있다”-52.3%), 젊은 층과 1~2인 가구가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도가 낮은 경향이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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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활동’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도도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지역사회 활동에 주민들의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고 바라보는 사람들은 3명 중 1명(34.4%)에 불과했으며, 참여가 이뤄지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개인의 무관심과 개인 시간 부족, 공동체의식의 결핍 등을 주로 많이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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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에 대한 애착이 적고, 동네에 머무는 시간도 적은 만큼 지역사회 활동에 관심이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대인의 개인화된 라이프스타일은 이런 현상을 지속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무관심의 부메랑, ‘정주 의향’ 제고 정책 필요  

우려가 되는 부분은 이렇게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줄어들게 되면, 그로 인한 피해가 결국에는 지역주민에게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지역주민의 관심과 참여가 적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지방자치제도는 주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방만하게 운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적절한 감시 및 비판의 부재가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결국, 우리 스스로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과 공동체 의식을 갖고, 보다 적극적으로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우리 동네’라는 자의식을 갖고, 오랫동안 한 지역에 머무는 ‘정주 의향’을 높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지역주민들의 ‘정주 의향’을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당연히 집의 소유 가치를 높이고, 자가주택 보유자를 늘리는 경제적 관점의 접근이 뒤따라야겠지만, 그 이상으로 개개인이 지역사회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가지고 다양한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게끔 만드는 정책적 고민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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